2026년 11월 장편소설

동반자

  • 작가 김갑용
  • 발행 2026.10.21
  • 장르 일반
김갑용

김갑용

2016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으로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토성의 겨울』이 있으며, 2022년부터 소전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장편소설 『냉담』을 출간하였다. 두 번째 장편소설 『동반자』를 <월간 장편소설>에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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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물이 꽤 빠졌다. 이제 수도의 진산은 고개를 살짝 쳐들어야 산머리가 올려다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산자락과 맞닿은 완만한 기슭 또한 물 밖으로 차차 드러났는데, 마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 미처 정비하지 못한 해수욕장같이 진흙투성이의 지저분한 잔해로 뒤덮여 있었다. 육안으로도 수평선이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진 게 체감되었고, 흡사 검은 암서로 가득한 해역에 접근한 듯 인근에 자리한 동산들의 산머리가 수면 위로 두둥실 떠올랐다. 남쪽으로는 한때 마천루로서 그 위용과 생김새가 저마다 남달랐으나 현재는 유리창이 깨지고 반파되어 죄다 동일한 인상의 진회색 폐건물들이 비죽비죽한 철근을 여기저기로 꼬부라뜨린 채 서서히 솟아나고 있었다. 이곳이 수도이자 대도시였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흔적들이 드러나는데도 내게는 비통한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외려 물에 잠긴 유령 도시를 관광하듯 한가로웠고, 만일 수중에 사진기가 있었다면 간조에 이르기 전에 서둘러 이 장관을 사진으로 남겼을 것 같았다. 폐허는 인적 없이 평화로웠다. 며칠밖에 안 지났는데도 반세기는 넘게 흐른 듯 낡아 보여서, 그 오래전의 비극은 지금의 나와 아무 관계 없는 거로 느껴졌다. 물론 사태는 그제 발생했다. 나는 청년 시절부터 계속 수도에서 살았고, 요 며칠 동안에도 내내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이곳에 있었음에도 수도에서의 생활은 내가 세 들어 사는 그곳이 진짜 수도가 아니며 그 외곽 언저리임을 뼛속 깊이 곱씹게 했다. 첨단 유행을 자랑하고 여러모로 윤택한 수도의 중심부로 진입하는 일은 내게 감히 가질 수 없는 꿈이었고, 그 꿈이 지금에 이르러 수포가 된들 다른 무엇보다 유달리 아쉬울 일은 없었다. 나는 수도에서 살았지만, 이곳에 애정을 지니지는 않았다. 수도에 사는 이들을 같은 시민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애당초 나는 여기에 정착한 시민이 아니라 고향에서 밀려난 난민에 불과했다. 부자든 가난한 이든, 지위와 계층이 어떻건 간에 그들 모두는 나의 경쟁자였다. 나는 싸움에 참여한 여느 촌뜨기 악바리에 불과했다. 수도는 내가 가져야 했던 걸 선점해 나를 내려다보는 이들과, 먼저 선점한 나를 대신해 길거리와 지하에 나앉은 이들이 모인 도시였다. 서로 뺏고 뺏기던 걸 모두 무위로 되돌린 지금 도리어 홀가분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부표에 매달려 부유하는 가까운 수면 위로 부지불식간에 어느 파괴되지 않은 한 도시가 비치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에 거꾸로 매달린 마천루들이 물 표면에 드리워진 듯했는데, 그렇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광경이었다. 한데 잔잔한 물결을 따라 일렁이는 그 건물들은 우리 아래 수심 깊숙이 잠긴 거로 여겨졌고, 또한 사태라고는 발생하지 않은 듯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한 도시로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바닷물은 걸레 빤 물처럼 탁했다. 무언가가 그렇게 선연히 비칠 수가 없었다. 가령 우리가 녹갈색 수면 위에 거무스름한 잔영을 겨우 드리우는 데 반해 그 도시는 신비로운 녹청색을 띠며 형체를 선명하게 유지했다. 높이 솟은 고층 건물들 사이로 난 도로로 딱정벌레만 한 크기의 차들이 줄줄이 내달리고 개미처럼 조그마한 사람들이 건물에서 물밀듯이 빠져나와 인도 위를 걷는 게 훤히 내려다보일 정도였다. 그것은 환영일 터였다. 나는 물에 잠긴 두 다리로 물장구를 쳐가며 그 형상을 지우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흙탕물이 일면서 잠시 흐릿해질 뿐 물결이 잠잠해지는 대로 형상은 선연하게 되살아났다. 도리어 어느 마천루의 옥상 난간이 내 발아래 있는 듯 돌처럼 단단하고 각진 뭔가가 발끝에 차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의심을 떨쳐 내지 못한 나는 의견을 구하려고 단독자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이미 그는 요지경에 홀린 아이처럼 고개 숙여 시선을 수면에 못 박은 채 꼼짝하지 않았다. <어이>하고 내가 불러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부표를 붙들던 한 손을 풀어 그의 어깨를 흔들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불안정하게 부표를 안던 남은 한 팔이 미끄러져 정작 내가 물에 깊이 빠지고 말았다. 나는 습관적으로 눈을 감고 숨을 꼭 참으면서, 두 팔을 머리 위로 내저어 부표가 엉킨 끈을 잡는 데 성공했다. 다시 수면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영 쉽지 않았다. 이번에는 물 밖의 그도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지 않았다. 내가 눈을 뜨자 물속에서 힘없이 대롱거리는 그의 하반신이 올려다보였다. 한데 물속은 아까와는 다르게 탁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을 지는 저녁의 한순간처럼 서정적인 분홍빛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는 어느 평화로운 도시의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수면 위에서 보던 것처럼 그렇게 높은 상공이 아니었다. 퇴근길의 차들로 들어찬 대로 한가운데의 신호등이 나와 같은 눈높이에서 초록 불빛을 깜박였다. 나는 건널목 위에서 썰물이 지는 유속을 따라 흐늘거리고 있었다. 차로의 신호등이 정차 신호를 내보내면서 건널목의 양편에 선 사람들이 오가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내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퇴근길에 으레 그렇듯 그들은 제 머리 위를 올려다보지도 않았다.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하늘이 차츰차츰 주홍빛으로 물들더니 점차 선홍색으로 강렬해졌다. 태양은 시가지의 건물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방금 승객을 태운 버스들이 건널목 앞에 줄지어 서 있고, 중앙 차로에 맞붙어 길쭉하게 난 정류소의 차양 아래 두 사람이 남아 붙어 앉아 있었다. 그 둘은 마치 밤새 빈소를 지키다 온 듯 검은 옷차림이고 몹시 음울해 보였다. 나는 어쩐지 그 둘에게 밀착감을 가지고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퇴근길의 지치고 짜증이 난 여느 군중과는 결이 달랐고, 여러 대의 버스가 차례차례 정류소에 도착해 앞문을 열어젖혀도 멀거니 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했다. 노을에 잠긴 그들은 아름다웠다. 그들은 버스가 아니라 이 풍경 속에 잠기기만을 기다려 온 것 같았고, 석양이 그들을 부드럽게 감싸안고 반짝이며 감미로운 춤을 추는 듯했다. 나는 마치 카페의 창가에 앉아 저무는 풍경을 감상에 젖어 바라보듯 친밀감을 지니고 그들을 응시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크고 작은 건물들과 맞붙은 하늘은 이제 전에 없이 새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한 손을 힘줄이 서도록 꽉 맞붙잡고서 눈에 띄게 떨면서 차양 너머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그제야 이상함을 눈치채고 고개를 쳐들어 내가 떨어진 수면을 올려다보았을 때, 상공에는 토성의 고리같이 널따랗고 엷은 띠를 두른 붉은 반구형의 거대한 광원이 지상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나는 정류소의 둘에게 피하라고 고함을 질렀지만, 바닷물이 입속으로 밀려 들어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퇴근길로 붐비던 시내가 마침내 눈부신 붉은빛에 잠겼다. 정류소의 두 사람도 서로의 손을 꼭 잡은 그대로 빛에 잠겨 소멸하고 나자, 내 시야는 온통 붉기만 했다. 나는 허공에 달린 끈을 붙든 채로 마치 바람 빠진 기구가 서서히 강하하듯 저절로 내려갔다. 보이지 않는 바닥에 드디어 발이 닿았을 때 붉은 시야가 차츰차츰 아래로 꺼지고 물에 잠겼던 내 얼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물속에서 바닥을 딛고 서서 출렁이는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쥐고 있던 끈이 손아귀에서 슬며시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니야.」 어느새 멀쩡해진 단독자가 내 옆에 서서 마찬가지로 고개를 물 밖으로 내민 채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우리가 붙들던 부표 더미는 부지불식간에 우리로부터 멀어져서 급격히 얕아지는 수면 위를 떠돌다 차츰차츰 부력을 잃고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래.」 나는 수중 세계에 대한 상실감으로 눈물 없이 울먹거리며 겨우 대답했다. 「가자.」 나는 물속에서 그를 향해 한 손을 내밀었다. 그가 수면 아래 잠긴 내 손을 맞잡는 게 느껴졌다.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해 가며 물속을 걸었다. 삼각주처럼 부드러운 토사가 쌓인 지대에 올라와 둘러본 세상은 이제 질척거리는 진흙과 흙탕물로 가득 찬 늪지로 변모해 있었다. 수도에 듬성듬성 자리한 높고 낮은 산 아래로 펼쳐진 뼈대만 남은 네모난 터전들에 염전처럼 채 빠져나가지 못한 물이 고여 있었다. 우리가 선 바위산 기슭의 골짜기에서는 실개천이 졸졸 흘렀고, 타다 남은 나무 밑동들이 여전히 꽂혀 있는 땅은 바닷물이 모든 것을 한바탕 휩쓸어 갔음에도 벌거벗은 황무지의 황토색이 아니라 잿가루에 착색된 듯 회백색을 띠었다. 실상 산이든 평지든 어디든 간에 대지는 모조리 균질한 회백색이었다. 검은 허공과 회색 불모지로 경계 지어진 세상은 한 폭의 추상화처럼 극단적으로 단조로웠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지점토처럼 진득거리는 산기슭을 떠돌았다. 그러다 무의식중에 서쪽으로 흐르는 큰 물줄기를 따라가고 있었다. 우리 말고 움직이는 건, 게다가 일정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대상은 그것뿐이라서 어쩔 수 없이 의존하게 되었다. 달리 갈 곳이 없지는 않았다. 최소한 나는 갈 곳이 있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내가 세 들었던 집터에 언젠가 들를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의욕이 샘솟지 않았다. 거기라고 해서 지금 눈앞에 보이는 폐허의 풍경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시신은 다 썰물을 따라 쓸려 나갔을 것이고, 나는 내가 알던 낯익은 존재들을 그곳에서 찾아내지 못하거나 눈앞에 두고도 알아볼 방도가 없을 것이다. 가령 지금도 곳곳에 시신이 마치 젖은 몸을 말리듯 바위나 언덕 위에 걸려 사지를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태평스레 누워 있었는데, 대개 진흙투성이의 그들은 검게 그을리거나 신체 부위가 불어 터지고 훼손되어 원래는 어떤 생김새였는지 좀체 짐작할 수 없었다. 간혹 꽤 멀쩡하게 보존되고 입은 옷도 젖기만 해서 적신을 면한 시신도 있었다. 그들은 아마 폭발과 화재로부터는 안전했을지 몰라도 대지를 뒤덮은 바닷물로부터는 피신할 곳이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나와 단독자처럼 둘씩 짝을 지은 이들이 종종 물가에 드러누워 있기도 했다. 그들의 모습은 강변으로 피서를 나와 일광욕을 즐기다 까무룩 잠든 듯 여유로워 보였다. 그 외양만으로는 그들이 죽기 전에 얼마나 큰 고통과 공포에 시달렸을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생전의 모든 걸 풀지 못한 수수께끼로 만들어 버리는 죽음이라는 게 원래 그렇기는 했다. 반면 살아 있는 듯 움직이는 우리는 며칠간 겪은 고통이 외양에 고스란히 박혀 있었다. 삶이야말로 고통이었다. 죽음이 주어지지 않은 한 우리는 움직여야 했다. 어째서 우리 둘에게만 그런 기이한 불행이 찾아왔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는데, 곧 의문은 너무도 간단히 풀렸다. 물가의 진흙밭에 반쯤 파묻혀 있던 한 사람이 부스스 몸을 일으키더니 휘청휘청 걷기 시작한 것이다. 시신으로 여겨졌던 많은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서 자신의 상태에 경악도 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인적 드문 산속을 헤매느라 사람들을 그다지 맞닥뜨리지 않은 탓도 있지만, 종종 마주쳤던 시신들이 정신이 들어 일어나기까지 충분히 기다려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우리밖에 몰랐던 거다. 깨어난 그들은 정신이 들고서도 자신이 왜 살아 있는지 별다른 의구심이 들지 않는 듯했다. 그들은 누가 정신이 들면 그곳으로 대피하라고 이르기라도 했는지 모두, 그러나 서로를 기다려 주지 않고 외따로 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두 다리를 잃은 사람도 두 팔과 가슴으로 늪지를 기어갔고, 그들의 행렬은 바위산의 서쪽 산자락으로 이어졌다. 그곳은 산의 등줄기 중 하나가 완만하게 시작되는 부분으로, 아무래도 그 너머의 기슭에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어쩌다 보니 우연히 행로가 겹친 우리도 다소 얼떨떨한 기분으로 그들을 따라가게 되었다. 그들은 과묵했고, 서로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우리 역시 그들에게 무얼 묻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방금 깨어난 이들이 우리보다 딱히 지금에 대해서 뭘 더 알 것 같지는 않아서였다. 그들의 목적지가 어딘지는 함께 가보면 알게 될 터였다. 죽음이 오지 않는 한 시간은 많았다. 거기다가 물난리가 언제 다시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고지로 향하는 것은 생존의 측면으로 봤을 때 일견 타당했다. 어쩌면 그들의 본능 한편이 저 위에 젖지 않은 피난처가 존재하리라고 제 주인에게 넌지시 일러 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유례없이 큰 달과 검은 하늘 아래서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어둠 없이 충만한 빛 속에 잠긴 듯 그림자가 없었다. 사람뿐 아니라 지상 위로 불거진 모든 사물이 죄다 그러했다. 나와 단독자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서로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똑같이 만신창이 상태인 우리가 땅에 떨어진 사탕에 꼬인 벌레들처럼 사방에서 산자락으로 모여들었다. 산을 오르지는 않았다. 마치 순례자들이 차마 성역에 들어서지 못하고 주변을 빙빙 돌듯이 우리는 산 밑자락을 둘러 걸었다. 그러나 나와 단독자에게 산은 신성하지는 않고 다만 무의미한 고행을 요할 뿐이었다. 성치 않은 몸으로 오른다손 치더라도 깨달음이나 안식은 없다는 걸 우리는 잘 알았다. 산에서 한 무리의 인파가 내려오고 있기는 했다. 아마 그간 산중에서 맞닥뜨렸던 시신들이 정신을 차리자 죽음이 거기에 없음을 깨닫고 황망히 하산하는 것일 터였다. 이제 산에는 아무도 없었다. 옛 시절에 도읍지마다 진산을 지정하고 우러러보았다는 게 지금으로서는 먼 사실로 다가왔다. 그들은 산에서 사회와 계급을 공고히 결속하는 신화적 영감을 얻고 목재와 식량을 구했을 테지만, 우리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산이 우리를 저버린 게 아니라 우리가 산을 배신했다. 산에서 내려와 평지에 정주한 지 너무 오래되었다. 우리는 산에 토굴을 파거나 암굴에 숨어 살던 시절을 잊었고, 이제 와 그런다는 건 패배나 치욕을 의미했다. 달동네는 사회로부터 밀려난 이들이나 사는 곳이고 지금 우리 신세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우리는 산기슭에서 함께 기거해야 할 판이었다. 늘 그랬듯이 거기에는 나와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있을 것이다. 나는 나와 닮은 처지의 그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과만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건 언제나 곤욕이었다. 오직 우리뿐인 그곳에서 우리는 쉽게 역겨워졌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리라는 게 기쁘지 않아?」 함께 걷는 단독자가 마치 누가 엿들으면 안 된다는 듯이 소리 낮추어 내게 물었다. 여기서 그들은 내가 잃어버린 동반자와 부산물을 지칭하는 걸 테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존재하기만 한다는 건, 그게 내가 애타게 그리워하던 타인일지라도 아무런 기쁨을 주지 않았다. 삶도 죽음도 주어지지 않은 현재가 지속되는 저주가 그들에게도 주어졌으리라는 게 자못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도리어 지난 삶의 방식이 불가능해지고 바로 지금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생의 양식이라는 데서 돌이켜보건대 이전의 관계는 청산하고 새 존재를 받아들여야 함을 예감했다. 그자는 신도 인간도 아닐 터였다. 그자는 진창 속에 굴러떨어진 우리를 외면하지 않고 같은 눈높이에서 지긋이 마주 응시할 것이다. 그자의 호명을 통해 우리가 자기 존재로부터 해방될 거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죽지 않은 자들이 이룬 느슨한 행렬을 따라 야트막한 구릉을 오르자, 만곡한 산자락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민가들이 내려다보였다. 그곳이 이틀 전 잠시 머물렀던 산기슭 동네라는 걸 알아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동네를 말굽 모양으로 감싼 산자락이 제방 역할을 해서 다행히도 물난리는 피해 간 듯했으나, 전란의 화마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했는지 벽돌로 지어진 집들이 폭삭 내려앉거나 지붕이 날아가는 등 온전하지는 않았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이 초토화된 수도의 중심부에 비하면 그나마 형편이 나았다. 단독자를 만났던 전철역이 있는 바로 그 동네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던 건 구릉 바로 아래에 자리한 신교회 건물이 내가 기억하던 그 웅장한 위용을 크게 잃지 않아서였다. 비록 정면 외벽의 십자가 장식과 양편으로 솟은 두 첨탑의 꼭대기가 떨어져 나갔지만, 혼응토 기반이 어찌나 단단한지 본당의 박공지붕 몇 군데에 큰 구멍이 났을 뿐 건물이 거의 온전히 기능할 성싶었다. 만일 동네 어딘가에 구호소가 설치되었다면, 유력한 후보지 중 하나인 지하의 전철역은 철로를 통해 물이 들어찼을 테니 저 신교회 건물에 피난민들이 모여 있을 가능성이 컸다. 한데 모든 사람이 들어갈 수는 없었거나 아니면 애초에 그들을 받아 주지 않았는지, 많은 이들이 동네의 길가에 모여 머물거나 점점이 떠도는 모습이 조그맣게 내려다보였다. 별도로 통제되지 않는 듯한 그 광경에 한편으로 안도감이 들었다. 공권력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계엄의 손길 또한 미치지 않은 거로 보이는 그곳에서 더는 환난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현재의 지경에서 계엄은 터무니없는 망상일 수도 있었다. <누가 잿더미에 나앉은 국민을 통제하고 또 다른 사태의 국면으로 내몬단 말인가?> 그렇지만 땅이 있는 한 그곳은 한 나라의 영토일 수밖에 없고, 그 말인즉 국토 구석구석까지 국가의 주권이 미쳐 있음을 의미했다. 이 난리가 국가에 의한 것이라면 무릇 그 수습도 정부가 치러야 마땅하겠으나, 사태를 일으킨 권력 주체가 암암리에 잔존해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유혈 사태를 발생시킬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했다. 반면 모든 국토가 초토화된 마당에 한 올바른 세력이 사람들을 규합하여 새 정부를 세웠으리라는 가망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여겨졌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봤을 때 진정한 혼란은 지금부터였다. 이 나라, 나아가 저 나라를 포함한 전 영토는 아마 외세로부터 버려졌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눈이 있다면 반도가 온갖 유독하고 불확실한 낙진으로 오염되었고 손쓸 새 없이 파괴되어 인도적 지원조차 불필요하다는 판단이 이미 이루어졌을 것이다. 반도의 국민이 사태 속에서 한도를 넘어서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제삼자에게는 마치 모종의 유해한 방부제가 첨가되어 시간이 지나도 썩지 않는 음식같이 위험하게 비칠 터였다. 우리만 모를 뿐 이 전란이 주변국으로 확대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참극이 전 지구적으로 옮아가지 않으리라는 것도 순진한 발상이었다. 이렇게 긴장 관계에 있던 두 나라가 총력전으로 동귀어진했을 때 이해관계에 속한 동맹국들이란 반대 진영을 향해 지난한 보복과 견제의 길을 먼저 걷지, 참상의 수습은 언제나 그다음으로 미뤄 두기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다른 나라에도 검은 하늘의 세상이 왔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이 나라와 저 나라가 그동안 워낙 고립되어서인지도 몰랐다. 그것만큼은 여기 반도에 국한된, 아니 이곳만을 위해 마련된 특별한 무대 같았다…….

길에 정체가 발생했다. 주변에서 몰려든 죽지 않은 자들이 너무 많았고, 목적지가 한곳인 그들은 걸음이 너무 느렸다. 이제 우리는 서로서로 떨어져 걷지 않고 북적거리는 인파가 되어 마치 출근길에 사람으로 가득 찬 전철역 층계에서 그러하듯 거북이걸음으로 구릉을 내려갔다. 나는 인파 속에서 단독자를 잃어버릴세라 그리고 머릿속 근심에서 벗어나 상대에게 의지하고자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어쨌거나 이 나라와 저 나라는 한 방면에 관해서는 다른 나라들에 앞서 꿈꾸던 선진국 반열에 오른 셈이었다. 예전처럼 현대 문명의 윤택한 생활을 누리는 한편으로 불안스레 세계 대전의 가능성을 떠올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두 국가 사이에 잠재되었던 거대한 혼돈과 폭력이 한순간에 일소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람 개개인 또한 저마다 살면서 해결할 수 없는 혼돈을 내부에 쌓아 가기 마련이다. 그들은 그것이 폭발하거나 만인에게 폭로될 언젠가를 두려워한다. 때로는 세상을 제 속과 같은 혼란으로 치닫게 함으로써 그에 견주었을 때 자신이 품은 폭탄은 아무것도 아니게 만든다. 이제 우리 속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원점이다. 무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지난 세기 반도에서 벌어진 한 민족 간의 전쟁이 과거의 계급을 거의 완벽히 무위로 되돌릴 뻔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처럼 우리는 잿더미 위에서 서로가 누구든 평등하게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혼돈이 국가와 국민 내부에 쌓여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까지 다 함께 힘을 합쳐 문명의 재건에 나설 테다. 생존하려고 다투지 않아도 되고 모두가 똑같이 상처 입은 빈자다. 새로운 인류의 새 낙원이 펼쳐진다……. 그런 우리에게는 새 양식이 절실하다. 어쩌면 내가 나설 수도 있겠다. 저간 소설가라는 직분을 내세워 내 역할을 한정 짓고 어떻게든 축소했지만, 새 나라에서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다른 쓸모가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하면 이 나라나 저 나라가 아닌 새로운 공동체를 결성하고, 모두가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동시에 서로의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계엄법 없이도 예외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지금은 머리를 감싸 쥔들 묘책이 떠오르지 않으나, 새로운 땅에 적응하다 보면 그에 걸맞은 현실적인 대책이 마치 소설을 쓸 때 불시에 영감이 샘솟듯 떠오르리라고 여겨졌다. 정작 나는 예전에 스스로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되뇌던 소설가의 전형에서 벗어나 있었다. 필멸하는 한 사람으로 머물면서 정답을 도출하지 않고 끊임없이 실패와 질문만을 재생산하던 나는 더는 없는 거로 여겨졌다. 하지만 동네에 도착하여 채 끝나지 않은 사태의 또 다른 면모를 마주하는 순간 이 모든 계획이 한 소설가의 순진한 망상으로 끝나리라는 것 또한 잘 알았다.

동네 초입의 신교회 건물에 가까워졌을 때 한 무리의 벌거벗은 사람들이 대열을 이루어 우리가 있는 구릉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속도를 맞춰 쉬지 않고 달리면서 동네의 외곽을 도는 그들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나를 포함한 지금 대다수 사람의 신체 상태로는 그렇게 일정히 달릴 수가 없어서였다. 조금 멀리 떨어진 우리가 보기에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늠름했고, 앞서 연이어졌던 재앙도 견뎌낼 만큼 강인한 신체를 가진 듯했다. 반면 우리는 찬란한 생의 음침한 응달이나 되는 듯 문드러지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해 비틀거리는 몸을 가졌다. 정말이지 부럽지 않을 수 없이 역동적인 신체였다. 동네에 인파가 들어차서인지 외곽까지 밀려난 병자들도 같은 마음인지 마치 뛰어난 선수들의 경주를 지켜보듯 입을 헤 벌린 채 선망의 눈길로 구경하며 거지 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러나 십수 명으로 이루어진 한 무리의 달리는 군중은 경로에 끼어드는 그들이 거치적거렸는지 마주치는 족족 험악하게 밀쳐 냈다. 잿빛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도 따라서 힘껏 달려 보려고 했으나 채 열 보를 딛기 전에 탈진해서 자리에 주저앉고는 했다. 만신창이 육신을 가진 나로서는 회색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달리는 행렬이 자못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그들이 덤벼든다면 이길 방법이 없는 데다 어쩌면 순찰 중인 자경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렇게 동네로 물밀듯이 밀려오는 쓸모없는 피난민들을 더는 들이지 않고 쫓아내고자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걸지도 몰랐다. 한데 달리는 행렬이 가까워져 그들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서 혹시 모를 걱정은 금세 사라졌다. 그들도 달릴 수 있을 뿐 어느 정도 상처를 입었으며 개개에 따라 외상의 정도가 달라 보였다. 어떤 이는 피부가 살짝 벗겨진 정도인 데 반해 누구는 복부의 열린 상처로 흘러내리는 내장을 한 손으로 주워 담은 채 힘겹게 겨우 대오와 속도를 맞추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구는 사지는 멀쩡한데 낙석에라도 맞았는지 머리통 한쪽이 처참하게 함몰되어 있었다. 사태 한복판에서 피해를 고스란히 입은 이들에 비하면 달릴 수 있는 그들이 행운아임은 분명했으나, 어째서 그렇게 남은 체력을 소진해 가며 열과 성을 다해 달리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를 목표로 삼은 것도 아니었다. 달리는 그들이 어느새 우리 앞을 지나쳐 멀어진 것이었다.

그중 한 사람이 발목이 꺾이면서 심하게 넘어지는 바람에 무리에서 이탈했다. 그들은 기다려 주지 않고 낙오자를 짓밟고 멀어지면서 조롱 어린 휘파람을 불었다. 넘어진 자가 욕설을 퍼부으며 바로 몸을 일으켰지만, 한쪽 발목 관절이 탈구되어 덜렁거리는 탓에 이전처럼 달리기는 틀린 모양이었다. 「저 사람에게 뭐 좀 물어보자.」 내가 단독자에게 말했다. 구릉에서 내려온 우리는 난민 행렬에서 빠져나와 낙오자에게로 허정허정 걸어갔다. 가까이서 본 그는 몸의 뒷면이 죄다 분홍색으로 익어 부풀어 있고 뒤통수의 머리카락도 벗겨져 있었는데, 걸음 소리를 듣고 돌아보면서 드러난 멀쩡한 앞모습으로 보건대 지난 폭발로부터 어쩌다가 운 좋게 절반의 육신을 보전한 듯했다. 그는 우리가 다가오는 꼴을 보자 재수 없다는 듯 침을 바닥에 뱉으며 일갈했다. 「꺼져!」 내가 <뭐 좀 여쭤봅시다>라고 말을 걸자 그는 놀란 기색이었다. 「어쩌다가 이리되었나요?」 단독자의 물음에 낙오자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말하는 걸 보니 몸만 망가졌지, 다른 사람들처럼 정신도 망가지지는 않은 모양이군요. 보는 대로입니다. 달릴 수 있는 사람들은 달립니다. 달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달리지 못하고요. 아주 단순한 차이지만 우리에게 남은 재산은 몸뿐이니까요. 뽐내는 거지요. 패배자들과 한데 모여 끙끙 앓는 것보다는 그나마 멀쩡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곧 한 바퀴 돌아 다시 이곳으로 올 겁니다. 그때까지 나는 이 망할 발목을 수습하고 다시 합류해야 해요.」 하지만 그가 주저앉아 두 손으로 힘주어 접질린 발목을 맞추려고 할 때마다 발꿈치의 피부가 쓸려 누런 진물이 흘러나왔다. 마침내는 뼈에서 살과 힘줄이 분리되어 힘없이 덜렁거렸다. 그가 분한 듯 괴성을 지르고는 체념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가망이 없군요. 다른 무리에 합류해야겠어요. 달릴 수 있는 무리가 그야 최고지만 거기 속할 수 없다면 다음가는 무리를 찾아야지요.」 단독자가 다시 물었다. 「어쩌다가 그리되었나요?」 그는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 듯 잠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입을 열었다. 「나는 자살하려고 다리 위에 올랐었지요. 그간 살 희망도 없었지만 죽을 용기도 없었는데, 모든 게 멈춘 세상이 내게 동기를 부여했어요. 그런데 다리 난간 위에 선 순간 번쩍이는 섬광을 마지막으로 기절했다가 깨보니, 강물 위에 코를 박고 엎드린 채로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불바다였죠. 강물 위까지 훑고 지나간 불길에 등짝을 비롯해 물에 잠기지 않은 몸의 뒷면이 먹음직스럽게 익어 있었고요.」 자신의 처량한 사연에 그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한편으로는 어쩐지 의기양양한 기색으로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우리에게는 없는 눈물샘과 피부가 자신에게 있음에 감사하는 눈치였다. 그가 계속 말했다. 「강물에 처박혀 한동안 숨을 쉬지 않았는데도 죽지 않더랍니다. 그게 운명이라면, 살아야지요. 지금은 남들보다 처지가 조금 나은 편이기도 하고, 이제야 생각해 보면 내가 죽고 싶었던 건 나보다 남들이 너무 잘살아서가 아니었나 싶어요. 그건 너무 불공평한 일 아닙니까? 지금이 바로 정의가 바로 선 거지요. 나면서 주어진 몸 하나로 승부를 보아야 하는 시대가 왔으니까요.」 「어떤 승부요?」 내 물음에 그가 고개를 기울여 삐딱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언젠가 제 쓰임이 무언지 알게 되면 사람들은 앞다투어 일하고 재산을 꾸리지 않겠습니까? 이봐요. 사람이 지금같이 무일푼인 상태로 머물며 계속 거리에 널브러져 있으리라고 여긴다면 오산입니다. 세력을 형성하고 남들보다 더 잘 살려고 노력해야지요. 그동안 살아남은 방식이 그러한데 지금이라고 달라져야 한다는 법도 없죠.」 나는 짐짓 고개를 주억거렸다. 「법이요. 지금도 법이 있답니까?」 「어디 산에라도 처박혀 있었던 모양이군, 이 양반. 계엄법이 우리의 목숨을 붙든답니다. 계엄법이 선포된 걸 모르나요? 조항 모두를 기억하지 못해도 첫 번째 항은 압니다. 살라고요. 어떻게든 살라고요. 생산성 없는 죽음은 금지되었습니다. 그것이 비상사태에서 국가를 유지하는 유일한 비책이거든요. 국민 없는 국가가 말이나 됩니까?」 다시 몸을 일으키려 하는 낙오자에게 내가 부축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그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거절했다. 「누가 누구에게 동정인가요? 여기서는 내가 당신을 걷어차도 아무도 뭐라 안 합니다. 내가 선량한 시민이라서 이것저것 알려 준 걸 다행으로 알아요. 여기 오래 있으면 예수쟁이가 따라붙으니 나는 새 일행을 구하러 이만 갑니다. 짝을 지은 그쪽은 거기가 어울릴지도요.」 그가 절뚝거리며 동네의 언덕길을 더디게 오르다가 길가에서 나타난 한 불한당들로부터 강도를 당해 멀쩡한 앞쪽 피부가 벗겨지는 걸 우리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는 몸에 들러붙은 껌처럼 늘어나는 거죽을 뺏기지 않으려고 자신을 꼭 껴안았지만, 수적으로 열세였다. 패거리 중 하나가 환호성을 지르며 빼앗은 물건을 치켜들더니 이내 자신의 검게 탄 윤곽 위에 인두겁을 걸쳤다. 아까 낙오자가 우리에게 친절했던 건 단지 갈취할 재산이 없어서라는 걸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반쪽짜리 인피를 걸친 자는 자꾸 흘러내리는 게 불편했는지 도로 그것을 벗은 다음 공 모양으로 구겨 들고서 패거리와 함께 언덕길을 내려와 신교회 건물 뒤편으로 사라졌다. 자신의 유일한 재산을 빼앗긴 채 남겨진 낙오자도 피부가 벗겨진 얼굴이 쓰라려서인지 아니면 절망해서인지 두 손을 얼굴로 감싸고서 터덜터덜 언덕마루를 지나 우리 시야 저편으로 멀어졌다.

아무도 군침을 흘리지 않는 몸을 가진 우리로서는 무관한 일이었지만, 덕분에 이 동네의 생태에 관해 많은 부분을 알게 되었다. 낙오자가 전한 소식 또한 분명 허황한 측면이 있어도 어쨌거나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했을 흉보였다. 우리는 계엄으로부터 도망쳐야 했다. 기본권이 침해되는 일, 가령 그것이 사람으로서 마땅히 죽을 권리를 가로막는 거라면, 우리에게 실제로 벌어진 그 일이 정말 헌법 위의 계엄법의 소행이라면 마땅히 거기서 벗어나야 했다. 모든 일이 다 끝난 뒤에도 계엄이 유지됨은 이로써 설명된다. 아직 국민이라는 담보가 남은 것이다. 그들마저 죽음으로 손아귀에서 빠져나간다면 그때 정부는 모든 게 끝장이었다. 계엄이 적용되고 불한당들이 활개 치는 길거리보다는 그래도 믿음과 사랑이 충만한 교회에 머무르는 게 더 안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자들이 신을 내버리지 않았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들은 이전보다 더 큰 애덕을 발휘할 터였다. 어쩌면 지금 그 무엇보다 절실한 건 신의 은총이므로, 신성한 본당에서 이방인에게 배덕한 짓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낙오자의 지난 말대로 우리는 한 짝이었다. 험난한 세상을 버텨 내기에 둘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험난한 여정에 지치기도 했고 떼거리가 덤벼들었을 때 우악스레 이겨 낼 자신이 없었다. 반면 신앙 공동체는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면모의 군상들이 모였더라도 일치된 믿음과 규율로 결속했기에 우리가 받아들여지기만 한다면 비교적 안전한 울타리일 거로 여겨졌다. 설령 그들이 이해하지 못할 종교적 행위를 강요한들 짐짓 겉으로만 따르고 속으로는 순복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아까 우리가 구릉에서 내려와 낙오자에게 향했기에 신교회 건물은 왼편에 있었다. 옆에서 바라본 그 건물은 전쟁이나 긴 세월로 부식되고 모서리가 부러진 동제 검투사 투구 같은 모양으로 내부를 견고하게 감싸고 있었다. 수직식 건축 양식에 걸맞은 첨두형의 기다란 창들은 유리가 모두 깨져 노랗게 밝혀진 안이 어렴풋이 들여다보였다. 회백색 대지 위에 유일하게 온기 어린 색으로 밝혀진 그 건물은 아늑해 보였고, 한편으로는 지금 세상의 기이한 물리적 법칙이 통하지 않는 최후의 요새처럼 어쩐지 결연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가 서려 있었다. 그런데 난민들의 길게 이어진 행렬은 가까운 그곳의 문을 두드리기보다는 동네 깊숙이 가로지르는 언덕길을 오르길 자처했다. 그들이 원하나 나와 단독자는 모르는 무언가가 동네의 중심부에 있음이 자명했다. 외곽까지 밀려나 서성이는 이들 중 한 명이 괜히 멋모르고 건물 가까이 다가가 기웃거리다 창 안에서 날아오는 돌멩이를 얻어맞고 황급히 제 무리에게로 돌아가기도 했다.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어떡하지?> 나는 단독자의 한 손을 맞잡은 채 오갈 데 없이 방황하는 연인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말없이 검은 허공을 올려다보는 그를 따라 무심코 고개를 쳐들자 흉측하게 벌거벗은 바위산 위로 떠올라 기묘한 빛무리에 휩싸인 달을 마주했다. 달은 어느 방향으로 하늘을 쳐다보든 간에 그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월구가 사람의 상식을 초월한 크기에 달한 지 오래라 아직도 계속 커가는지 아니면 정점에 도달했는지 이제는 감히 짐작되지 않았다. 내가 다시 시선을 내려 그의 낯을 보는 순간 기묘한 낯섦이 일었다. 말라붙은 시체처럼 검누렇던 그의 낯이 내가 모르던 사이 미묘하게 달처럼 회색빛을 띠어 가는 듯했다. 어쩌면 지금 세상의 대기와 빛이 지닌 그런 성질이 투영된 건지도 몰랐으나, 문득 그가 월석처럼 굳어 버릴까 두려워졌다. 하물며 그는 달에 지나치게 혼이 빠지도록 홀려 있었다. 내가 쥐고 있던 그의 손을 흔들자, 그가 정신이 들어 나를 보았다. 「나를 봐봐.」 내가 한 그 말에는 내 낯빛 또한 이상한 점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 보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한데 그는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 앞으로는 너만 볼게. 하늘은 올려다보지 않을 거야. 너도 그럴 수 있겠어?」 그 말에 나는 알 수 없는 숙연함을 느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 서로만 보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우리는 이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교회 건물 쪽에서 문이 삐그덕 열렸다가 쾅 닫히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한 사람이 달구지 같은 것을 타고 건물에서 빠져나와 우리 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그런데 마소가 달구지를 끄는 게 아니라 사람이 무릎을 꿇고 사지로 기어 오고 있었고, 그의 등 위에는 마부 역할을 한 다리 없는 자가 두 손으로 고삐를 쥐고 기우뚱거리는 몸을 아슬아슬하게 균형 잡으며 앉아 있었다. 그가 역축 역할의 사람 목에 연결된 고삐를 흔들며 열심히 걸음을 재촉했지만 아무래도 평범히 두 발로 걷는 속도보다도 훨씬 더딜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마부가 두 발이 없으니 참작의 여지가 있겠으나 우리가 지켜보기에는 인간적으로 심히 부당하면서도 효율에 맞지 않는 처사로 여겨졌다. 목말을 태우거나 등에 업고 두 발로 걸어 다녀도 되는 까닭이었다. <게다가 인력으로 끄는 달구지라니.> 마부가 고삐를 쥔 한 손을 풀고 우리를 향해 반갑게 흔들었다. 하지만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그들이 여기에 도달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릴 게 뻔했기에 우리 또한 그들에게로 걸어가 노고를 덜어 줘야 했다. 그런데 가까워진 그들 뒤에 달린 달구지가 다름 아니라 마찬가지로 엎드려 무릎 꿇은 채 사지로 기는 여섯 사람이라는 걸 알아챘을 때 우리는 겁을 집어먹고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2오 3열 대형으로 이루어진 달구지는 뒷사람이 앞사람의 가랑이 사이에 머리를 집어넣는 식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첫 번째 오의 가운데 사람과 마부를 등에 업은 자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서로를 결속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역축과 달구지 모두 사람이었다. 겉보기에나 맡은 역할이 있을 뿐이지 마부를 제외한 모두가 자기 힘으로 움직였다. 그들의 모습은 기괴하다기보다는 우스꽝스러웠다. 마치 곧 있을 보름에 맞춰 사자놀음이라도 준비하는 듯한 그들은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외양이 흐트러지는 탓에 얼마 가지 못해 잠시 멈춰 군체의 형태를 추스르고는 했다. 어쩌면 쉬이 얼씬대는 불신자들을 겁주어 쫓아내고자 신자 여럿이 반인반마의 우상을 흉내 내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주변의 폐인들이 달구지 주변으로 몰려들어 흥분한 목소리로 아우성치는 모습으로 보건대 도리어 그들을 자극하여 분격하게 하는, 하지만 나와 단독자로서는 알 수 없는 요소가 있는 듯했다. 반면 마치 뜨거운 열기에 녹아 흘러내린 밀랍 인형처럼 생긴 마부는 주변의 위협에도 아랑곳없이 태평했고, 맨 허리에 끈으로 비끄러맨 팔뚝만 한 크기의 투박한 목봉을 굳이 꺼내 들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우리를 곧게 응시하면서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고삐를 흔들어 걸음을 재촉했다. 반면 나는 차마 이 기이한 행렬과 말을 섞기 난처해져 단독자를 돌아보며 고개를 내저었고, 이미 거리가 상당히 좁혀진 이상 왔던 길을 되돌리기보다는 그의 손을 잡아끌어 언덕길 쪽으로 방향을 틀려고 했다.

「우리를 기다렸으면서 왜 그러는 거요?」 의중을 눈치챈 마부가 우리에게 쉭쉭대는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물었다. 나 역시 불퉁하게 대답했다. 「초행길이라 도움이 필요했었지요. 그런데 아닙니다. 이만 돌아가시지요.」 시비를 각오했거늘 외려 그들의 맘에 드는 대답인 모양이었다. 가랑이에 얼굴을 박은 사람들이 땅을 짚은 두 손을 들어 올려 짤막하게 박수쳤고, 마부를 등에 진 사람도 말이 묘기를 부리듯 용케 상반신을 잠시 치켜들며 환호했다. 말뜻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에 당황한 단독자가 어색한 어투로 거짓말을 보탰다. 「날이 저물어서 잘 곳을 찾아 다른 데로 가려고요.」 그 말에 마부가 날카롭게 지적했다. 「하늘이 이렇지만 지금은 아마 정오쯤이고, 그러니 등불 없이도 서로를 알아보는 거요. 게다가 여기 가까이에 잘 곳이 있어요. 벌써 시내로 들어가려고요?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마부가 잠시 고삐를 내려놓고 한 손을 자기가 올라탄 등에 짚고 엉덩이를 살짝 들어 올려 밑에 깔린 담요 같은 것을 남은 한 손으로 꺼냈다. 그다음 두 손으로 자랑스레 펼쳐 보인 그것은 인피였다. 「아까 한 복된 신자가 당신들을 위해 귀한 겉옷을 연보하였습니다.」 넓게 펼쳐지지 않고 거의 고스란히 사람 형상이며 머리와 샅 부위에 징그러운 체모도 달린 그것을 달구지 위에 가로로 깔고는 그가 우리에게 권했다. 「올라타시지요.」 달구지 주위에서 아우성을 치다 말고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이 다시금 흉포하게 고함치기 시작했다. 그들로부터 몸을 지키려면 달구지 위에 올라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기야 그들이 잿가루처럼 고운 회색 흙을 한 움큼씩 쥐어 우리를 향해 뿌리는 통에 나와 단독자는 엎드린 사람들 위에 황급히 올라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병약해 보였다. 그래서 최대한 무게를 분산하려고 달구지 역할을 하는 여섯 명 사이에 고루고루 걸쳐 앉았으나, 오히려 그럼으로써 단단히 결속되지 않은 틈새에 하중이 쏠리면서 그들이 불안정해진 대열을 겨우 유지하느라 끙끙 신음을 흘렸다. 그런데도 불평하지 않는 그들을 위해 나는 앞줄을 그리고 단독자가 뒷줄을 맡아 각자 세 등 위를 가로질러 드러누워야 했다. 누가 내려다본다면 객사한 시체를 실은 수레처럼 보였을 것이다. 우리가 자리를 잡고 난 뒤 마부가 고삐로 신호를 보내자 엎드린 이들이 천천히 반시계 방향으로 게걸음 하며 왔던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사이에 아우성치는 무리가 달구지를 에워쌌다. 그제야 마부가 허리에 찬 목봉을 꺼내 들어 앞길을 가로막는 한 명 한 명을 후려치는 게 앞줄의 내 눈에 보였다. 쓰러진 이들 위로 달구지가 기어가면서 심히 기우뚱거리는 탓에 우리는 그들의 등을 손으로 짚어 가며 균형을 잡았다. 정말이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비인간적이고 가혹한 나머지 내가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라고 마부에게 물었다. 「손쉽게 구원을 바라는 파렴치한들이에요. 지극히 낮은 데 엎드려야만 그들이 원하는 높은 곳에 가닿을 수 있음을 제가 손수 가르치는 겁니다.」 목구멍에서 바람이 새는 듯한 그의 목소리는 태연자약하면서도 마치 어느 풍년에 낟알을 거두는 농부의 그것처럼 숨길 수 없는 보람이 묻어 있었다. 하기야 그들에게 겨우 이 정도 폭력은 그들 육신과 정신에 깃든 참혹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듯했다. 그들은 이미 망가져 있었다. 고장 나 내다 버려진 가전제품이 길을 막고 있다며 행인에게 발로 걷어차이는 걸 누가 보고 눈살을 찌푸린들 어쩌겠는가? 가는 길이 더디니 나조차도 답답해져 괜한 매를 버는 그들을 향해 손을 휘저었으나 그 손짓의 의미가 무언지 전연 깨닫지 못하는 눈치였다. 평소 우리가 죽지 않는 자들이 나오는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걸지도 몰랐다. 그런 영화에서 병원체에 감염되거나 초자연적 종교 의식에 홀린 그들은 맹목적으로 산 자에게 달려들며, 치명상에도 죽지 않고, 예전의 총명한 자아를 되찾을 길이 없다. 따라서 그들에게 동정은 사치에 불과하고, 그들은 단지 주인공 무리의 생존이나 인류의 보존이라는 장엄한 대의를 위해 해치워야만 하는 비인간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나 또한 이성을 지녔을 뿐 지금 길을 가로막는 이들과 육체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공격하기보다는 우리에게 매달리며 단지 애원하는 듯했다. 그들 역시 인간이라는 걸 아무도 모르지 않았다. 그들의 말을 알아듣고 동정을 베푸는 법을 알지 못할 뿐이었다.

「그들은 못다 한 죽음에 이르고자 그곳에 갔다가 그만 심연을 내려다보았지요. 구덩이요. 보지 말아야 할 걸 봤으니 미치지 않고서야 달리 어쩌겠습니까.」 아주 가까이서 내게 말 거는 목소리가 누군지 몰라 누운 채로 두리번거렸다. 내가 등을 맞댄 이들을 두드려 봐도 그중 하나가 이렇게 답할 뿐이었다. 「저희도 들었습니다. 성령이 임한 모양입지요. 더는 말 걸지 말고 그저 우리의 소임을 다하게 놔두십시오.」 출처 모를 목소리가 내 귓가에 대고 다시 말했다. 「납니다. 그쪽이 깔고 누운 거죽이요.」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누워 있는 나와 단독자 사이로 구깃구깃 드러난 인피의 얼굴 부위가 잡아 뜯길 때의 상처로 피범벅이 된 입술을 끔벅이는 게 보였다. 「용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소리를 내는 신체 기관과 분리된 거죽만으로 말할 수 있다는 사실도 물론 그렇지만 내 정신이 머리가 아니라 피부에 속해 있다는 데 비하면 휘파람 같은 잔재주에 지나지 않죠. 이 거죽은 몸에 붙어 있을 때나 떨어져 나간 지금이나 나의 유일한 자랑이자 재산입니다. 빼앗으려 한들 빼앗길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가 이 재앙 속에서 증명된 셈이지요.」 우리가 깔고 누운 게 아까 노상강도를 당했던 자의 반쪽짜리 인피라는 걸 깨닫자, 나는 그 지경에 이르러서도 우쭐해하는 그것에게 측은지심을 느끼는 한편으로 짜증이 치밀었다. 「제 몸으로부터 뜯겨 나간 뒤의 상황을 당신은 모르는 모양이군요. 댁의 피부 없는 나머지 부분은 멀쩡히 언덕을 끝까지 올라 제 갈 길을 갔답니다. 의지를 가진 둘 중에 누가 더 진정한 당신인지는 나야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얇디얇은 거죽보다는 몸뚱이가 양적인 면에서 더 유리할 거로 보이는군요.」 그렇게 쏘아붙이자 그것은 구멍뿐인 눈과 입을 구겨진 결 따라 이리저리 비틀며 괴로워하더니 안쪽 눈가에 용케 보전된 누선으로 눈물을 몇 방울 흘리고 있었다. 「그렇군요. 나를 동정하지 마십시오. 여전히 나는 당신보다 우월한 거죽을 가졌습니다. 그 몸이 어디로 갈지도 쉬이 짐작이 가요. 구덩이로 가겠지요. 내 몸뚱이는 언제나 죽음을 동경했고, 자기가 처한 곤경을 단번에 해결할 편리한 길로 생각했으니까요.」 「거기가 어딘데요?」 내 물음에 그것이 입술을 팔락거리며 웃었다. 「죽고자 하는 이들이 한데 모인 곳이지, 달리 어디겠습니까? 죽음이 간절한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그곳이 어딘지 알지요. 용기는 있지만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여기 외곽을 떠도는 자들은 목전에서 용기를 잃고 미쳐버렸지만 자기 존재의 소중함을 아는 거고요. 나는 어느 쪽도 동정하지 않아요. 나 역시 재앙이 벌어지기 직전에 죽음의 구렁텅이로 뛰어내려 봤으니 하는 말입니다. 이제부터는 주어진 영생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해야 해요. 교회 같은 건 집어치워요. 모든 게 확고한 절대성을 띠는 지금, 보이지도 않는 신이 무슨 소용이랍니까? 우리를 지금의 자신으로 태어나게 만든 새로운 창조주에게 봉사하며 영생을 채워야 합니다. 내가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이 내 부탁을 들어줘야 합니다. 내가 초심자인 당신에게 친절했던 것처럼 당신도 그럴 수 있겠나요?」 나는 마음이 약해졌다. 「말해 보세요.」 「나를 끄집어내서 허공에 던져 주세요. 깃털처럼 가벼워진 몸을 나부끼며 공중을 자유롭게 날 수 있을지 알고 싶습니다. 멀리 날아갈 수만 있다면 내 쓰임새를 잘 아는 이를 찾아 나설 겁니다. 위엄 있는 장교였으면 좋겠어요. 통수권자에게 명예롭게 하사받은 군도의 칼집에 씌워져 한 쌍의 봉황이 각인된다든지, 상황실에 펼쳐진 전술 지도가 되어 비밀스러운 군대 부호로 치열한 전선을 내 피부 위에 표시한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그게 여의찮다면 군사 교범을 감싼 고풍스러운 가죽 장정이라도 되고 싶습니다. 나를 대신하여 이 나라를 호령하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이바지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요. 나는 언제나 누구에게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던 내 나약함에 치를 떨었지요.」 인피와 대화하는 사이 달구지가 가로막는 사람들을 짓밟고 떨쳐 내 가며 신교회 건물 앞에 당도했다. 나는 깔고 누운 거죽을 잡아당겨 꺼내 달구지 뒤로 힘껏 내던졌다. 그것은 바람에 실려 공중으로 팽팽하게 펼쳐지면서 젊은 육신을 되찾고 아래에 있는 비참한 우리를 깔보듯 잠시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신이 은총을 거둔 양 별안간 바람이 멎자마자 딱한 그것은 금세 흙바닥에 고꾸라져 달구지를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짓밟히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언덕길 너머의 사람들이 모인 구덩이로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타 사람들과는 달리 나와 단독자에게만큼은 죽음을 향한 본능이 길을 알려 주지 않은 것이 의아하게 여겨졌다. <누군가와 밀착감을 지니고 함께한다는 건 어쩌면 죽음이 아니라 삶을 받아들이는 행위인가? 하기야 나는 죽음을 늘 생각했지만, 하물며 요 며칠은 말할 것도 없지만, 내 오성은 늘 무엇에 빠져들어 실감케 하는 걸 방해했지. 어쩌면 그간 죽음 자체보다도 삶을 동행하는 상대에 대해서 더 많이 고민했던 듯해. 그렇지만 내게 죽음과 동반자는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 하나같은 두 개념이야. 그 둘은 항시 나라는 자아의 종말을 암시하지. 지금껏 나는 결말이 같다는 이유로 그 둘 중 어느 것도 진정으로 선택하지 않았어. 그래. 이것이야말로 내가 선택해야 하는 문제고, 어쩌면 나의 지난 동반자는 이미 그 선택을 마치고 부산물과 함께 구덩이 아래로 사라졌을지도, 그래서 내가 그와 여태 재회하지 못한 걸지도 모를 일이야. 그는 나보다 야무지니까.> 나는 계속 기척 없이 누워 있던 단독자를 흔들었다. 아무 대화 상대가 없던 그는 내내 마주 보던 달에 홀려 아까보다 선연한 석회색을 띠고 거의 돌처럼 굳어 있었다. 그는 의식은 있는 듯해도 아무런 의지가 없어 보였다. 내가 신경을 미처 쓰지 못해 그렇게 된 데 죄책감이 들었지만 그가 정신을 들게 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거기다가 우리를 태운 사람들이 예고 없이 대형을 해체하며 벌떡 일어나는 통에 우리는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고, 곧이어 헹가래를 올리듯 네 활개를 붙잡혀 들어 올려졌다. 두 다리가 없는 마부도 합세해 단독자의 한쪽 죽지를 최대한 높이 들어 올렸으나, 다른 세 명과 키가 맞지 않다 보니 그가 맡은 쪽의 팔이 바닥 가까이 축 처졌다. 「이봐요. 우리도 발이 있다고요.」 내 불평에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의 우악스러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던 내가 힘이 빠져 고개를 아래로 젖힌 순간 뒤집힌 신교회 건물이 열주로 듬성듬성 꿰인 아가리를 벌려 나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단독자를 든 선두 행렬을 따라 마치 고래의 수염에 걸러지듯 열주 사이를 지나자 건물의 우람한 위용에 비하자면 청빈하다 못해 옹색하기 짝이 없는 외양과 크기의 목제 양개문이 우리를 맞아 양편으로 활짝 열렸다. 그러자 뒤집힌 시야로 같은 생김새의 또 다른 나무문이 드러났고, 굳게 닫힌 그 너머에서 쿵쾅거리고 떠들썩대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아마도 신도들이 모인 예배실일 터였다. 우리는 방향을 꺾어 촉광으로 어둑하게 밝혀진 복도로 부지런히 그러나 지루할 만치 천천히 옮겨졌다. 마부가 엉덩이를 좌우로 비틀면서 조금씩 전진할 때마다 그의 허리춤에 걸린 목봉이 돌바닥에 부딪혀 떽떼구루루 소리를 내며 우리를 따라왔다. 양초는 벽면의 일정한 간격마다 자리한 작은 방문 옆 바닥에 하나씩 놓여 있었고, 그 불빛 아래서 사람을 비롯한 사물이 오늘부로 잃어버렸던 그림자를 되찾아 복도에 길게 벗어 놓았다. 작은 촛불이 빚어낸 당연한 그 현상이 나를 안도하게 했다. 이 안에만 있다면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 여겨진 것이다. 「봐. 그림자가 있어.」 내 눈앞에서 힘없이 덜렁거리는 단독자의 발바닥에 말 걸어 봐도 대답은 없었다. 이제 달이 보이지 않음에도 그는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했다. 방문 앞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어떤 방에서는 말없이 슬피 흐느끼는 소리가, 또 다른 방에서는 무언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지르는 새된 비명이, 방금 지난 방에서는 깔깔거리는 행복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내가 혼란스러운 기색으로 두리번거리자, 불편한 몸으로 걷기 힘에 부쳐 끙끙거리던 마부가 나를 안심시키려고 말했다. 「원래 사람은 꿈꾸던 전례를 앞둔 순간일수록 걷잡을 수 없이 뒤숭숭한 법이지요. 하지만 오늘이 지나면 꿀처럼 달콤한 나날이 펼쳐질 겁니다. 다들 그렇게 희망하니 이곳에 온 거고요. 동서고금을 통틀어 잿더미 위에서 지난날보다 더 큰 애덕이 꽃 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의 말에 힘입어 나는 더 늦기 전에 심금 한구석에 자리한 불안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었다. 「혹시 착각했을까 말하는 건데, 우리는 당신들이 찾는 신이나 선지자가 절대 아닙니다.」 그러자 내 아래로 실소가 터지면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들었어?>라고 묻거나 <신이라니, 환장하겠네>라며 구시렁거렸다. 곧 그들은 잠잠해졌으나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쓸모 있는 정보를 담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도리어 잠시 후에 단독자의 왼쪽 다리를 든 사람이 참다못해 나를 돌아보며 성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너는 특별하지 않아. 너는 나인 거나 다름없어.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우리 위에 서라고 데려온 게 아니란 말이야.」 우두머리로 여겨지는 마부가 마치 정당한 일침이라는 듯 그를 제지하지 않고 침묵했기에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불 꺼진 초가 놓인 어느 방문 앞에 도착해 우리를 내려놓을 때까지 그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부가 옆 방의 불 켜진 초를 가져와 불을 옮겨 붙이면서 나보고 들으라는 듯이 혼잣말했다. 「말은 그래도 본성은 선할 테지…….」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두드렸다.

문이 빼꼼 열리고 나서 조용한 게 안에 있는 사람이 우리를 살펴보는 듯했다. 단독자가 자꾸 비틀대며 똑바로 서지 못하는 탓에 한 사람이 그의 양 어깨를 붙들고 있었다. 「한 사람은 상태가 영 좋지 않은데.」 문 너머에서 들려온 그 말에 사람들이 저마다 <아까만 해도 멀쩡했어요>라든지 <원래 중요한 의식을 앞두고 혼절하는 일도 있지 않겠습니까>라며 변명을 주워섬겼다. 「봐주시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우리도 단장해야 한단 말입니다.」 마부가 초조한 어투로 말했다. 「이 사람은 나의 동반자입니다.」 혹시나 나만 들이고 그가 내쫓길까 봐 염려된 내가 거짓말했다. 「이곳 사람인가요?」 문 너머의 상대가 떠보듯 묻자, 이번에는 거짓말하지 않고 내가 살던 동네 이름을 말했다. 상대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 들어 봐요. 별 도움은 되지 않겠네.」 「그럼 안 되는 건가요?」 내가 불안스레 물었다. 우리를 날랐던 인부들이 단독자를 벽에 기대 세워 두고 일찌감치 복도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버려질 수는 없었다. 「아니요. 나 역시 피난민입니다. 대개가 그렇죠. 들어오시오.」 마침내 허가가 떨어졌지만 문은 활짝 열리지 않았다. 내가 기다리다 지쳐 문을 열었을 때 작은 방 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바삐 뭘 준비 중이었다. 원래는 교무를 보던 방이었는지 사무용 책상과 철제 장이 한편에 치워져 어지럽게 쌓여 있었고, 창과 마주 보는 벽에 세워진 사람 키만 한 거울 앞에서 한 사람이 반절 난 석유통에 담긴 검고 찰진 반고체를 기다란 막대기로 휘젓는 데 한창이었다. 그는 온몸이 거칠게 굳은 회반죽 같은 걸로 뒤덮여 있어, 마치 화산재에 파묻힌 이의 형상에 석고를 부어 만든 인물상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자자. 시간이 없으니 거울 앞에 서요.」 그의 재촉에 나는 머뭇거리다가 단독자를 부축해 어둑한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그는 내가 이끄는 방향으로 그런대로 움직일 수 있었고, 황홀경에 취한 양 달뜬 낯이었다. 몸에 회칠한 자가 하던 일을 멈추고 심드렁한 태도로 그를 끌어당겨 거울 앞에 반듯이 세웠다. 「금방 해치울 테니 한 사람은 기다려요.」 할 일이 없어진 나는 방 안을 서성이다가 바깥의 가지런한 열주가 내다보이는 유리창이 깨진 창가 아래에 한 사람이 쭈그려 앉아 있는 걸 뒤늦게 알아채고 깜짝 놀랐다. 「뉘십니까?」 내가 묻자, 뒤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당신 부모도 못 알아봐요? 혼주잖아요.」 뚱딴지같은 말을 듣고 내가 돌아보자, 원통의 검은 반죽을 단독자의 상반신에 치덕치덕 바르던 그가 방해된다는 듯 짜증스럽게 마주 보았다. 「이 동네 사람인데 자기가 혼주로 모셔진 걸 영 받아들이지를 못해요. 자꾸 누구를 기다린대요.」 앞서서 내게 출신을 물었던 이유가 명약관화해졌다. 내가 정신 나간 작자와 아는 사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그를 잘 보듬고 설득하기를 바랐던 거다. 하지만 당장 내게도 설명이 필요한 판국이었다. <혼주라니? 이 동네에 나의 혈연이 있을 리가 없는 데다, 하물며 또다시 혼례라니?> 나는 혼례에 앞서 한창 단독자를 치장 중인 자에게 해명해야 했다. 「우리는 이 환난 속에서 살길을 찾아 여기에 온 것뿐입니다.」 그러나 그자는 바빴다. 「그래요. 누군들 안 그렇겠어요.」

내 말을 건성으로 들은 듯한 대꾸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다시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창가에 쭈그려 앉은 자는 흉하게 허리가 꾸부러진 노인이었다. 그는 여기 사람들 대부분처럼 적신이었다. 제 몸에 바른 회색 칠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져 있었다. 만약 사태 이전에 그를 보았다면 미개한 토인이라고 여겼을 테다. 머리에 얼마 남지 않은 백발이 징그럽도록 길어 상반신을 성기게 덮었고, 그 사이로 드러난 배와 엉덩이 거죽이 탄력을 잃은 고무처럼 늘어져 내렸다. 그는 오늘날의 사태를 비껴간 듯 노화를 제외한 다른 상흔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교회 안의 이들이 온몸을 알 수 없는 반죽으로 칠하는 건 자신의 치명상을 가리려는 연유에서일지도 몰랐다. 그 노인은 세월의 풍화로 쭈그러든 외양과 상반되게도 어쩐지 자기가 쭈그려 앉은 자리에서 수십 년의 세월을 능히 버틴 듯 견고하게 비쳤다. 그가 방어적으로 몸을 공처럼 말고 가녀린 두 팔로 껴안아서 그래 보이는 건지도 몰랐다. 자세히 보니 그가 소중히 안은 건 제 육신이 아니라 누런빛의 마분지 상자였다. 신발 상자만 한 그게 그의 유일한 소지품이었다. 난리통이 벌어질 때 집에서 자신의 귀중품을 추려 거기에 담아 나온 거라는 짐작이 들었다. 아무리 봐도 그는 나의 부모가 아니었다. 내가 잊고 산 지 오래여도 그들이 1백 살이 넘어 보일 정도로 긴 세월이 흐르지는 않았다. 단독자의 부모도 아닐 터였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혼주라는 역할을 두고 그를 이해시킬 명분이 눈곱만치도 없었다. 그는 자기가 품은 상자 외에는 아무것도 안중에 없는 듯했다. 누가 오기를 기다리는지 그는 종종 고개를 들어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 기색으로 창을 내다본 다음 다시 시선을 숙여 자신이 품은 상자를 잠시 빼꼼 열어 그 안의 귀중품이 무사한지 확인하고는 했다. 나는 그의 행동에 친밀감이 들어 설령 그를 방해하는 것일지라도 말을 걸고픈 추동을 느꼈다. 나 역시 동반자를 기다리며 아무것도 안 하고 창밖을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그라는 존재를 고대만 하고 영영 재회하지 못하는 건 아닐지 서글픈 한편으로 내 존재의 빈 부분이 기다림으로 충만히 차오르는 듯 서늘한 감동이 나를 소름 돋게 했다. <그런 날이 있었지. 그러나 기다림은 영원하지 않았어.> 나는 그의 옆에 편히 주저앉았는데, 먼저 말을 거는 수고조차 들일 필요 없었다. 그가 나에게 차디찬 손을 굼뜨게 내밀어 맞잡게 하고는 힘들여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할 필요 없었다. 그가 이야기를 건네주는 태도는 일견 자연스러웠고, 노인으로서 후세에게 전할 일화 하나쯤은 진작에 토씨 하나까지 외워 놓았다는 듯 막힘없었다. 그 이야기는 지난 역사를 관통하면서 깨달은 지혜를 품은 듯했으나 그것은 내가 감히 형용하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질 터였다. 이야기는 길었다. 어느새 내 차례가 와서 거울 앞에 서야 했는데도 마치 귓가에 속삭이듯 가까이에서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전승되었다. 온몸에 먹칠을 마쳐 며칠 간의 외상을 말끔하게 가린 단독자가 내 자리를 대신했다. 그 또한 천치 같은 정신 상태에서도 노인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들렸는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나를 치장하는 자만이 <정말이지 한 번이라도 입이 열리면 멈출 줄 모른다니까>라며 툴툴댈 뿐이었다.

노인의 진실한 이야기, 즉 지어낸 허구가 아니라 자신이 겪은 거의 전 생애에 대한 술회는 이러했다. 그는 내가 예상한 대로 한 사람을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으며, 언젠가 재회하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었다. 그게 자신의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이다. 기다리는 상대는 약혼자였다. 그들에게는 단지 부부의 연을 시작하기에 적절한 날만이 필요했고, 아직은 정해지지 않은 그 기일이 오늘임을 깨닫게 되면 별도의 혼례식 없이 함께 보금자리를 차리기로 되어 있었다. 약혼자가 자신의 일터로 떠난 어느 날 이야기의 주인은 오늘이 바로 혼인하기에 적절한 날임을 깨달았다. 그는 오늘을 기념할 선물을 준비하고 연인을 기다렸다. 약혼자가 탈 없이 퇴근했다면 둘은 함께 살게 되었을 테지만, 전란이 발생했다. 군대에 강제로 징집되거나 전투에 휘말려 사망했는지 지금까지 그는 돌아오지 않았고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때부터 자신이 노인이 된 지금까지 이 동네를 떠나지 않고 기다려 왔더랬다. 전 국토가 초토화된 전란이 끝난 뒤로 이 나라와 저 나라의 분열이 고착되고 독재와 계엄이 연이어지는 한편 수차례 물난리를 거쳐 오늘날 이 나라가 영원한 밤에 이를 때까지 그는 선물이 든 상자를 소중히 간직하며 창밖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노인은 회까닥 정신이 이상해져 아이처럼 칭얼거렸다. 「엄마 아빠가 말했어. 자기 전에 누워서 눈을 감고 하나, 둘, 셋만 세면 다음 날 아침에 돌아와 있을 거라고 말이야. 근데 나는 잠이 많아서 매번 셋까지 세기도 전에 까무룩 꿈나라로 가버렸어. 그래서 엄마 아빠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야. 두고 봐. 오늘 밤에야말로 셋까지 세는 데 성공할 거야.」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이제 막 화장을 마친 내게로 다가와 상자를 열어 선물을 내 검은 목에 둘러 주었다. 그것은 분홍색 비단 리본이었다. 그가 창가 자리로 되돌아가면서 뭉클한 시선으로 나를 뒤돌아보는 게 거울에 비쳤다. 그는 다시 바닥에 앉아 두 팔로 무릎을 끌어안고 거기에 머리를 파묻은 채 잠을 청하며 졸음에 겨운 듯 힘없이 중얼거렸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문이 열렸다. 그때부터 상황들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한 무리의 악사들이 관악기 대신 손나발을 불며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흥이 하나도 솟지 않는 그 맥 빠지는 입소리는 혼례식의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나와 단독자는 그들로부터 쫓기듯이 방을 나왔다. 우리의 혼주를 맡기로 되어 있던 노인이 풀썩 쓰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뒤에서 누가 <죽었나 본데?>라고 말하더니 살가죽을 짝짝 때리는 마찰음이 이어졌다. 곧 다른 사람이 매몰차게 대꾸했다. 「아냐. 잠든 거야. 쓸모없는 양반 같으니라고.」 자꾸 재촉하듯 떠미는 사람들을 밀어내랴 단독자를 부축하랴, 정신이 없던 차에 내가 뒤돌아본 순간 후미의 두 사람이 노인을 들어 올려 창밖으로 밀어 떨어뜨리던 중이었다. 내가 흥분하여 고함을 지르려던 찰나 복도의 방문들이 열리며 한 쌍씩의 사람들이 뛰쳐나와 환호성을 질렀다. 어찌나 거센 함성인지 나는 고함을 되삼켜야 했으며 복도의 촛불들이 흔들흔들 춤을 추고 삐거덕거리던 문들도 일제히 쾅 닫혔다. 그들이 뜨거운 촛농이 흘러내리는 양초를 한 손에 집어 들었다. 우리는 죄다 똑같이 검게 분장한 인파에 밀려 예배실로 행진했다. 더는 단독자를 부축할 수 없을 정도라 나는 그의 손을 일방적으로 쥐고서 놓치지 않으려고 팔이 빠지도록 잡아당겨야 했다. 아까와는 달리 예배실의 문은 활짝 개방되어 있었다. 우리보다 이미 앞서서 입장해 온몸에 칠한 검댕이 회백색으로 굳어 가는 이들로 가득 찬 내부는 입추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때 복도에 들어찬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소리쳤다. 「밀어!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셋>을 외칠 때마다 그들은 충차로 성문을 타격하듯 예배실 입구를 향해 돌진했다. 우리는 기어이 예배실 안으로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금자탑처럼 쌓였고, 곧 어떠한 극한의 고통도 적응하는 경이로운 신체 상태를 이용해 하나둘 빠져나와 혼잡스러운 피로연에 합류했다. 나는 그만 단독자를 잡은 손을 놓쳤으나 모두가 똑같이 분장한 난장판 속에서 그를 되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이 혼란한 속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자기 짝을 알아본단 말인가?> 알아볼 수 없었다. 딱 봐도 내가 있는 예배실은 본당의 가장 큰 공간이었고, 그럼에도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원래 맺어진 짝이 누구인지는 사람들에게 더는 상관없는 듯했다. 그들은 가까이 있는 사람이 누구든 줄줄이 서로 손을 맞잡았고, 누군가의 손에 뜨겁게 녹아 가는 양초가 들렸더라도 개의치 않고 함께 그것을 맞붙잡았다. 그들은 크고 작은 동심원을 수없이 생성하여 반시계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까치발을 들어 간신히 들여다본 원의 중심에는 남들과 똑같이 검게 단장한 다리 없는 마부가 혼자 흥에 겨워 제자리에서 춤추듯 회전하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내미는 손길을 뿌리치며 겹겹이 싸인 원들을 뚫고 바깥쪽으로 나아갔다. <내 짝을 찾습니다!>라고 고래고래 소리쳐 봐도 그들이 마치 합창하듯 <우리가 당신의 짝이오!>라고 되받아치는 통에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한편, 원들이 완전히 둥글게 호를 그리지 못하고 굴절되는 구간들이 종종 있었는데, 그곳들에는 큼직한 첨탑 윗동이나 부서진 지붕 일부분이 처박혀 있었고, 순간 그 위의 천장에 났을 구멍을 반사적으로 올려다보려던 나는 사람의 넋을 앗아 가는 달을 떠올리고 황급히 시선을 거두었다. 어쨌거나 광란에 빠진 군중과 춤을 추느니 사악한 월구 아래서 땅만 보며 걷는 게 차라리 더 나을 것 같았다. 나는 인파를 뚫고 예배실 출구 맞은편 벽에 선 단상으로 나아갔다. 남들보다 높이 서 있으면 단독자가 나를 알아보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단상 한가운데 벽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신을 형상화한 커다란 고상이 박혀 있었다. 이곳 건물이 신교회의 종교적 이념에 따라 우상은커녕 아무런 장식도 없는 데 비추어 봤을 때 십자고상의 존재는 매우 이질적이었다. 매번 더 큰 원을 빠져나가며 가까워질수록 그것은 고통에 차 더욱 생동감 있게 몸부림치는 듯했다. 한데 가까스로 단상에 올라서 마주한 그것은 나무를 깎아 만든 고상이 아니라 단지 벽에 못 박힌 외국인이었다. 그는 사태 첫날에 나와 부딪혀 죽음을 맞은 줄 알았던 선교사로, 자신의 처량한 신세에도 불구하고 검은 비닐이 착 달라붙어 이목구비 윤곽이 선명히 드러난 낯을 들어 올려 나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애덕으로 충만한 아름다운 광경이지요.」 그가 비닐을 바스락거리며 유창한 이 나라 말로 입을 열었다. 「나는 잿더미가 된 이 나라에서 자생한 새로운 종류의 박애를 선전 문구가 적힌 얇디얇은 면사포가 씌워진 시선으로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 합동결혼식은 정전이 일어난 첫날 밤부터 내내 지속되었지요. 이미 예식은 모두 끝나고 피로연만 한없이 이어지는데, 그럼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짝들을 꾀어 들여오고 있어요. 그런데 내가 주재하게 될 의식이 합동결혼식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 도망치다 붙잡혀 강제로 못 박히지 않았을 텐데요. 이들은 매우 영리합니다. 혼자인 사람을 내쫓고 짝이 있는 이들만을 이곳 교회로 불러 모으지요. 선교사던 내가 외따로 고립된 개인들에게 포교 활동을 하느라 헛된 시간을 보낸 것과 달리 그들은 단시간 내에 교세를 확장하였습니다. 그 비결은 사랑할 줄 모르는 한 사람이 아니라 이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은 연인들을 포섭한 데 있지요. 나는 몰랐던 거예요. 사랑할 줄 아는 자들만이 더 큰 박애와 평등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요. 이제 그들은 만인의 신부고 신랑입니다. 나 같은 종교인은 그동안 범애를 설교하는 동시에 한 배우자만을, 한 신만을 따르라고 불합리하게 강요했지요. 물론 나는 이 지경에서도 여전히 한 신에게만 순복합니다. 하지만 죽지 않은 나를 보세요. 우리는 이미 신의 나라에 입성하였습니다. 지상의 나라에서는 지상의 법도를, 신의 나라에서는 천상의 법도를 따라야지요.」 나는 그의 운명론적인 태도에 부아가 치밀었다. 「그것이 계엄법입니까?」 내 반박에 비닐 아래에서 입을 꾹 다물던 그가 딴소리했다. 「신의 말이 곧 주권이자 법이니까요.」 그렇게 말한 뒤 그는 질식해 죽어 가는 신을 연기하듯 비닐 아래로 눈구멍과 입 구멍을 크게 벌린 채 경악으로 몸이 굳은 것처럼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나는 이런 꼴을 보지 않으려고 결혼식을 주저했던 거야. 축복하기 위해 모인 인파. 근심을 꺼내서는 안 되는 이 축제 같은 분위기. 신랑과 신부에게는 아무도 관심 없는 혼란의 도가니. 어느 때보다도 두 사람의 확고한 결단이 필요한 순간에 도리어 그 의지를 꺾어 버리고 혼잡한 분위기로 몰아가는 기이한 축복 의식. 그런데 내가 지금 그 속에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더는 이 결혼식을 견딜 수 없었다. 한 공간에 이다지도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내가 단독자를 알아보고 되찾는 걸 방해하는 데 억하심정이 들었다. 나는 다시 단상 아래로 내려가 둥글게 무리 진 사람들 가운데로 뛰어들어 한 명 한 명을 억지로 떼놓으며 <우리는 영원히 죽고 있는 거야>라는 말을 반복해서 고래고래 소리쳤다. 나의 훼방에 주변에서 바삐 돌던 이들이 멈춰 의아하게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나는 기세등등해져 세상이 떠나가라 고함을 질러 더 많은 이가 나를 주목하게 했다. 「영원히 죽는 마당에 이 결혼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예식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돌아갈 가정도 없으면서. 한 사람을 마주 보고 자신이 그 사람의 것이고, 그자가 나의 것임을 인지하지도 못하잖아. 한 사람도 진정으로 볼 줄도 모르면서 어떻게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 무엇보다도 사랑의 결실인 아이도 기대할 수 없는 병든 육신으로 말이야. 나의 짝을 내놔. 그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소관이야.」 나는 잠잠해진 그들을 향해 꾸짖는 한편으로 왜 내가 그토록 화가 났는지 의문이 들었다. 단독자가 나의 소관이듯이 합동결혼식을 거행하는 그들에게도 존중받아야 할 자기들만의 소관이 있을 테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나는 내 회심의 일격에 그들이 뉘우쳤기를 기대하며 사실상 일어나지 않은 그 반응을 즐기듯 그들 한 명 한 명의 검회색 낯짝을 쳐다보았다. 얼마 안 지나 인파 속에 숨겨진 한 사람이 되받아쳤다. 「아이요. 우리가 바로 아이들이에요. 모두가 한때는 아이들이었지요. 당신 말은 이상해요. 우리의 유년을 부정하잖아요. 당신은 왜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에게서 앗아 가는 거죠? 우리예요. 우리가 당신 눈앞에 있잖아요. 우리가 바로 사랑의 결실이고, 미래예요. 우린 우리대로 살아야지요. 우리는 이제 하나예요. 우리는 우리밖에 남지 않은 거예요.」 그 말에 사람들이 발을 쿵쿵 구르며 환호하고 박수쳤다. 반면 나는 또 다른 의문에 빠져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 동네에 와서 아이들을 한 번도 보지 못했어. 연약한 그들은 이 사태 속에서 살아남지 못한 걸까?> 「다시 시작해요. 다시. 자!」 누군가의 호령과 함께 사람들은 다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들의 경로에 있던 나는 다시금 단상 쪽으로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사람이 인파를 비집고 나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나야. 네 말이 맞아. 네 말을 듣고 정신이 들었어. 나는 너만의 짝이야.」 모두가 같은 분장을 한 이곳에서 말의 진위를 확인하기란 어려웠다. 그가 내게 안겨 아부하듯 속삭였다. 「정말 근사한 리본을 맸네!」 나는 일단 그의 손을 맞잡고 벽에 바싹 붙어 사람들을 피해 예배실을 빠져나왔다. 아까 창밖으로 밀어 던져진 노인이 열주 사이에 쓰러져 있었다. 그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긴 잠에 빠져든 듯했고, 악몽이라도 꾸는지 회칠한 주름진 낯을 찌푸리고 있었다. 지금 이곳이 그가 꾸는 악몽의 세계라는 해괴한 망상이 든 나는 그를 흔들어 깨우고 싶었으나 마침맞게 예배실 밖으로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발견하자, 단독자라 주장하는 자를 이끌고 건물 밖으로 나와 지근에서 진을 친 정신 나간 폐인 무리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러고는 그들과 분간되는 온몸의 분장을 손끝으로 벗겨 내기 시작했다. 결혼식에서 도망쳐 나온 우리를 잡으러 쫓아온 거라는 두려움이 들어서였다. 회색으로 밝아지며 굳어 가는 정체불명의 검댕은 손쉽게 떨어졌다. 내가 머리를 흔들어 대자 낯을 두껍게 감싸던 검회색 가면이 땅바닥에 툭 떨어졌다. 가면 안쪽에는 평온히 잠든 듯한 표정의 내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내가 데리고 나온 사람의 낯을 살펴보았다. 마찬가지로 분장이 벗겨진 그는 내가 알던 단독자처럼 극심한 화상을 입은 외양에 두 눈의 동공이 구멍 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지니던 상처와 완전히 일치하는지 확신이 서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우리를 쫓아 나온 게 아니라 그저 혼례식이 끝나 해산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며칠간 이어졌다는 피로연이 왜 하필 지금 마무리된 건지는 알 길이 없었다. 축차적으로 정연히 줄지어 나오는 그들은 <정말 멋진 예식이었어> 따위의 한담을 주고받으며 우리가 숨은 폐인 무리를 지나쳐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제야 나는 고분고분히 우리를 받아 준 폐인들 개개를 돌아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은 아까와는 달리 잠잠했고, 단지 사람들에게 내쫓겨 한데 모인 지친 노숙자들 같았다. 그들 가운데는 내가 지난 며칠간 마주친 사람들 그리고 그 당시에만 해도 시신인 줄 알았던 자들이 섞여 있을지도 몰랐다. 나를 단죄하려던 그자들. 나를 이끌려던 그들. 사태에 대해, 지금에 대해 내게 입장을 묻던 목소리들. 그간 내가 그들의 목소리를 마냥 묵살할 수 없었듯, 지금 폐인이 된 그들의 꼴을 하찮게 여길 수도 없었다. 그들은 의식과 의지가 있던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자기가 선 자리에서, 그 지정학적 한계를 뛰어넘는 한 지평을, 나아가 사태로부터 탈출할 혜안을 마련하려고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기어이 무엇을 봤다. 우리가 천성을 거슬러 가며 겨우 유지하던 그 존엄을 잃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천성 그대로의 광인이 된다. 그들 각자는 내가 감히 그렇게 되기를 원했지만, 수중에 놓인 알량한 자존감 때문에 목전에서 망설인 끝에 포기했던 천성 그대로의 한 인간이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내 목에 둘러 매인 비단 리본을 보고 흥분하며 우짖었다. 나는 그가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떨리는 손길을 내 목을 향해 내밀며 무어라 말하려 했으나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단지 사태 속에서 때 묻지 않은 귀한 인공물이 탐나서일 수도 있었다. 애초에 리본의 주인은 원래 내가 아니었다. 나는 미련 없이 그것을 풀어 그자의 목에 걸어 주고 단독자를 데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러다 왜인지 마음이 걸려 뒤돌아보았을 때, 고운 분홍 리본을 목에 건 그자는 자기가 속한 무리를 홀로 벗어나 예식을 마치고 해산하는 인파를 지나치고 이제는 못에 박힌 선교사와 열주 사이에 쓰러져 잠든 노인만이 남겨졌을 신교회 건물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하기는, 그 정도면 필요한 사람은 교회에 전부 남은 셈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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