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장편소설

동반자

  • 작가 김갑용
  • 발행 2026.08.21
  • 장르 일반
김갑용

김갑용

2016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으로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토성의 겨울』이 있으며, 2022년부터 소전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장편소설 『냉담』을 출간하였다. 두 번째 장편소설 『동반자』를 <월간 장편소설>에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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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를 중단해. 씀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니.」

그의 말대로였다. 평소에도 나는 말을 많이 한 날이면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장막 친 벽감 안에 틀어박히더라도 그날 바깥에서 상대와 나눈 말a들만 머릿속을 떠돌았다. 떠도는 말들은 새로운 만약의 대화를 재생성했으며 나는 거기에 속으로 또 응답하고 반박하며 하루의 남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지난 말들은 곱씹을수록 내가 써야만 하는 글과 멀어지는 성질이 있다. 대화의 순간에만 해도 무심코 지나쳤던 말 속의 암시를 뒤늦게 깨달은들 그것은 그때가 지난 이상 아무 쓸모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글을 쓰는 데 이용했을 표현력과 집중력을 실체 없는 말들에 허비하느라 남은 하루 동안 나는 소진되고 공허한 인간이었다. 어쩌면 아무리 목적에 따라 내가 구분 지어 사용할지라도 말과 글은 여전히 본질적으로 공통된 언어고 둘 다 내게 부여된 한 사람의 몫일 테다. 그러나 말이 목소리로서 내 곁에 잠시 머물다 쉽사리 빈약해지는 데 반해 글은 침묵함으로써 나와 동떨어져 존엄해진다. 반대로 글쓰기가 나와 가까워진다면 말에 대해 그러하던 것처럼 글에 뿌리 깊은 반감을 품을 터였다. 가깝다는 건 언어가 본디 지닌 공허하고 비열하고 밋밋한 성질을 현미경 같은 시선으로 세세히 들여다보면서 치밀어 오르는 경멸감을 외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리감, 돌이켜 보건대 그게 내가 바라던 전부였다. 말과 글에 대하여 인간이라면 지닐 법한 존엄한 태도가 내게는 부재했다. 그게 나의 큰 결점이었음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인간의 정주하는 삶이 도로 거두어진 지금이라면 글의 존엄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더불어 글쓰기를 비롯한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 재앙을 겪은 지금의 나로부터 멀어지기는 이제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한동안 우리는 얼이 빠진 채로 서로 거리를 두고서 검은 산중을 걷고 있었다. 체감하기로는 이미 꽤 높이 올라 아마도 산의 중턱이다. 밤이 우리를 푸르게 빛나도록 했다. 처음에만 해도 암중에 그대로 잠겨 분간되지 않던 육신이 어둠에 적응해 가며 차츰차츰 빛을 드러냈다. 우리가 담겼던 물에서 비롯된 발광하는 성질이 육신에 미약하게 깃들어 빛이 사라진 공간에서 그 존재감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독한 물질에 오염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제 몸을 역하게 여기도록 만들었다. 진작에 썩어 짓물러야 했던 육신이 모종의 방부 처리로 평상시의 외형을 계속 유지하는 데 우리가 본능적인 거부감을 지니는 건 당연하다. 우리는 죽었어야 한다. 피가 상처로 죄다 빠져나갔고, 그밖에 신체를 활성화하는 모든 체액마저 동났는데, 어째서? 의구심은 생명의 동력 없이도 더디지만 부단히 움직이는 중인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내 상태를 어떻게든 긍정할 수 없었고, 내게서 뒤처져 걷는 단독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적신에는 내가 욕망할 수 있는 부분이 남아 있지 않았다. 생이 자아내는 욕망 없이도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할 수 있을까? 예전이라면 밤의 산중에 혼자 남겨지는 것보다 의지할 상대와 함께 걷는 게 마땅히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는 마땅히 홀로여야만 한다는 듯이, 함께 걷는 그가 불필요한 짐처럼 거슬렸고 언제 닥쳐올지 모를 마지막을 함께할 만한 대상인지 의심이 들었다. 너는 누구냐고, 이제껏 내가 그렇게 묻지 않은 연유는 원하는 응답을 듣지 못할 것을 알아서였다. 또한 애당초 내가 갈구한 동반자가 아니어서였다. 설령 물었더라도 그는 말을 돌렸을 것이다. 그 자신이 단독자임을 자처한다는 것, 그 외에 그가 내게 알려 줄 수 있는 정보는 없는 듯했다. 그 역시 내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을 것이나, 그것은 내가 체감하지 못하는 단지 말에 불과할 터였다. 발걸음 소리마저도 미약한 그였다. 그가 잘 따라오는지 뒤돌아볼 때마다 마주하는 구멍 난 동공은 이전에 나를 바라봤다고 느낀 것도 착각으로 되돌릴 만큼, 앞을 향하면서도 나를 비껴 나가 분간되지 않는 검은 풍경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한데 그는 동시에 나를 따라오고, 놓치지 않았으며, 심지어 지키려 들었다. 하물며 그는 나를, 글을 쓰지 않는 소설가인 나를 염려했다. 나는 그에게 한 번도 내 직업을 두고 으스댄 적이 없었다. 그리고 모든 게 잿더미가 된 벌거벗은 산에서 자기 몸 말고는 수중에 아무것도 없는 내게 글쓰기라는 미천한 재주를 내보일 기회는 없었으며, 혹시 주어지더라도 그래야만 할 동기를 느끼지 않았을 테다. 그에게 내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과 달리 그는 글쓰기로 내게 내보일 것을 요구했다. 그는 나 자신에게 중요한 것들을 떠올려 보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는 모든 게 처음이고 서툰 학생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행세했고, 내가 체감하는 대상을 써야만 한다고까지 말했다. 그 대상이 지금은 부재하더라도 말이다. 그 말은 내가 동반자와 부산물에 관해서 단순한 회고의 성격을 넘어서 허구라는 형식을 통하여 내가 관측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까지 써낼 의무가 있음을 상기시키는 듯했다. 말할 것도 없이 지금의 내게 그 둘은 더할 나위 없이 고통스럽고 잊고 싶은 기억이다. 거기다가 그의 요구는 자기 자신을 충족시켜 달라는 게 아니었다. 그의 요구에는 그 자신이 포함되지 않았고, 독자로서의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비치기도 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그저 소설가라는 내 소임을 일깨우려는 소탈한 책임감만이 그를 지배하는 듯했다. 내 방으로 돌아온다면, 그곳에 동반자와 부산물이 없더라도 나는 능히 그의 말대로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데, 그 가정에는 내가 생환하여 상처를 회복하고 이미 지난 일이 된 사태를 되돌아볼 여유를 충분히 갖춰야 한다는 조건이 포함되는 까닭이다. 더군다나 그 시점의 나는 더는 그와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사태의 발발이 나와 그의 동행을 가능하게 했듯이 종식을 통한 일상의 복귀는 그 반대를 의미한다. 어쨌거나 산중에서 정처 없이 죽음을 향해선지 생존을 향해선지 모를 걸음을 떼는 지금 나는 목전의 상황, 그러니까 암중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데 온 신경을 몰입하는 일에 급급하지, 글을 쓰는 건 안중에도 없었다. 나는 그의 이해할 수 없는 요구를 거부하려고 일부러 앞장서서 험지를 골라 경사진 산면만을 올랐다. 마치 너른 빈터나 두 몸이 거할 수 있는 좁은 바위굴이라도 나오면 꼼짝없이 그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는 듯이. 글을 쓸 수 있는 최소한의 도구도 없음이 나나 그에게 그다지 심각하게 고려되지 않는다는 건 희한한 사실이다. 글쓰기의 환경이란 게 머무를 수 있는 장소와 쓰고자 하는 의식이 전부라면, 저간 왜 나는 수도 없이 쓰기를 중단하고 스스로에게 파산을 선고했던 것일까? 오늘날에 비견하면 그것은 진정한 파산도 아니거늘. 마침내는 그도 자기를 방해하려는 내 의중을 이해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앞장서겠어. 장소와 거기에 이르는 길은 내가 찾을 테니, 너는 온 힘을 다해서, 오직 글쓰기를 통해서 삶을 연장하고, 그렇게 끊기지 않은 명을 온전히 소설에만 집중해야 해.」

하지만 그는 쉽사리 내 걸음을 따라잡지 못했다. 성치 않은 두 몸 가운데서 그나마 내가 걸음이 재고 움직임마다 치밀어 오르는 통증을 인내하는 데 더 익숙했던 것이다. 나는 길잡이 역할을 곱게 내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러자 그가 내 목덜미를 홱 잡아챘고, 내가 힘없이 그에게로 나가동그라지면서 우리는 함께 뒤엉켜 경사면을 굴렀다. 숯이 된 그루터기에 걸려 멈추고 나자 우리는 잿가루 범벅이 된 벗겨진 피부에 엄습하는 따가운 통증으로 한참 신음했다. 내 위로 엎어진 그가 몹시 차가워 오한이 든 듯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간 벌거벗은 몸으로 밤중에 돌아다니는 와중에도 추위는 거의 인식되지 않았는데, 정말로 춥지 않다기보다는 다른 고통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어서였다. 하지만 그의 적신에서 전해지는 냉기는 얼음송곳처럼 날카롭게 나를 후벼 팠다. 그 고통에 나는 그를 화들짝 밀쳐 내며 일어섰다. 그 역시 마찬가지로 나에게서부터 전해진 찬기에 벌벌 떨면서, 이 상황에 환멸감을 느끼듯 쓴웃음을 흘리며 따라 몸을 일으켰다. 나는 그를 더는 바라볼 수 없었다. 서로의 푸른 적신을 응시하는 시선에 증오가 묻은 게 드러날까 두려웠다. 마주친 이래로 여러 사건마다 서로를 구하려던 우리가 왜 그런 시선으로 상대를 쏘아보겠느냐만, 바로 그 이유로 우리는 적대시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를 향한 모든 행위의 의도가 구원의 손길로 귀결됨은 지금같이 절박한 상황에서도 지긋지긋한 법이다. 나는 그의 요구대로 순순히 글을 쓺으로써 내 실존을 확인받고 생을 연장하려는 생각이 추호도 없다. 과연 글쓰기가 내 생을 연장하기는 하나? 만일 그렇다면 나는 더더욱 글쓰기를 멈춰야 한다. 시간의 끝이 보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도록 영원 속에서 모든 순간을 묘사해야 한다는 것은 생의 축복이라기보다는 형벌의 개념이 아니던가? 내게 필요한 건 삶의 중단이고, 이는 곧 허구적 글쓰기를 향한 강박의 중단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걷는가? 우리는 왜 다시 산중으로 올라 헤매는가? 그건 가만히 있는다고 원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인간다운 무언가를 잃어버려서 죽음의 성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 상실의 장소는 이 바위산일 테고 나는 왔던 길을 돌아가 그것을 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정확히 같은 지점에서 정반대의 목적으로 나와 함께 산으로 돌아와 내 삶을 보전하려 했다. 그렇다면 그는? 내가 쓰는 삶을 복구하면서 생명을 얻게 된다면 그는 자신의 무엇을 되찾아야 하는가? 분명 자기 내면에서 이미 수차례 제기되었을 그 질문으로부터 그는 요지부동인 것으로 보였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는 안중에 없는 듯했고, 어쩌면 스스로에게 신물이 난 건지도 몰랐다. 내가 그에 관해 이해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건 명약관화하다. 그는 한 시민이라고 그림자들이 말했다. 나 역시 그렇다. 그와 내가 맺는 동행 관계에서 소설가라는 직업은 아무것도 아니다. 피할 수 없는 재앙 앞에서 세상에 좀 더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고 후세에 증언할 수 있는 선민을 우선 살려야 한다는 선입견은 여기서 통하지 않는다. 그나 나나 별반 다를 것 없이 사태 이전부터 세상에 이바지하는 바가 없고, 또한 한 사람분의 삶도 감당 못 하는 반쪽짜리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는 내가 자기에게 속한다고, 자신의 것이라고 이전부터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지금 그는 얄팍한 교훈극의 판에 박힌 조연이 되어 한 작가가 역경에 굴하지 않고 결국 써내기까지 곁을 맴돌며 독려하는 헌신적인 배우자인 양 굴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그 자신에게 더욱더 부당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소리 높여 항의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말을 꺼낼라치면 그때마다 그가 몸을 던져 두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고 강제로 주저앉힌 까닭이다. 그는 온 힘을 다하여 마치 만악의 근원이 거기에 있다는 것처럼 내 입을 짓눌렀다. 그러고는 먹기를 거부하는 병자의 입에 죽을 흘려 넣듯이 〈써야 해〉라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되풀이하며 내 녹아 버린 귀에 강제로 자신의 원을 주입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몇 시간이고 그는 반복해서 나를 들볶을 수 있을 터였다.

우리는 굴러 넘어진 지점에서 몸을 일으키고서 서로에게 몸을 돌린 채 꽤 오래 그대로 있었다. 나는 그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유혹에 저항했고, 그는 나를 구속하려는 욕망으로 들끓는 몸을 자제하는 성싶었다. 그럼에도 다시 움직여 길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았다. 이대로 계속 멈췄다가는 그가 써야 한다며 또 성화를 부릴 테고, 그 역시 글을 쓰기에 보다 알맞은 장소를 찾길 원했다. 움직이는 생명이 아무것도 없는 밤중의 산속에서는 산란한 바람 소리만이 들렸다. 우리는 말할 때를 제외하면 숨을 쉬지 않았고, 심장도 뛰지 않았으므로 멈춰 선 그 자리에서는 아무 소리도 발생하지 않았다. 나는 잠시 기분이 좋아졌다. 한 번의 결정적인 일격만 가한다면 빈사 상태의 육신이 찍소리도 못 내고 나가동그라지면서 곧이어 사고가 끊기리라는 달콤한 상상이 들었다. 내 생각에 나는 그동안 충분히 죽음으로 자신을 내몰지 못했다. 지금보다 더 높이 올라가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린다면 생명과 의식의 근간인 머리가 망치로 내려친 호두알처럼 산산이 조각날 테고 그 상태에서는 분명 더는 생각하거나 움직일 수 없을 테다. 바람이 심상찮았다.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니 잠깐잠깐 별 서너 개가 반짝였다가 사라지고는 했는데, 매연을 머금어 검어진 구름이 바람에 내밀려 계속해서 이동하느라 그런 듯했다. 구름의 기나긴 행렬이 끝을 보이는 순간 문명이 사라진 지상으로 신비로운 우주의 별빛이 쏟아질 것이다. 한데 지금은 언제인가? 내가 며칠간 정신을 잃었던 게 아니라면, 토요일, 어쩌면 자정을 지나 일요일이다. 언뜻 떠오르기로, 일요일은 그의 생일이고 성주간의 시작이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보름달이 전부 찰 것이다. 금요일을 놓쳤으니 보름 전에 부산물을 데리고 동물병원에 방문하겠다는 계획은 진작에 무산되었다. 왜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무 쓸모도 없는 일상의 일정을 환기하는 것이지? 그것은 충분히 죽지 않아 시간 감각이라는 것이 내게 남아 있어서고, 아직도 사태 속에서 세상과 일상이 무너졌다고 진정으로 받아들이기보단 망가진 제 일신만 직시해서다. 마치 나와 단독자만이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조난된 것처럼. 만일 그럼에도 내가 글을 써야 한다면, 그래, 이 사태를 글로 쓸 수 있다면, 나는 산을 벗어나 건물이 무너져 내린 도시의 대로를 걸어야 한다. 잔해 속에서 동반자와 부산물의 시신을 수습해야 한다. 비록 그들이 어딨는지, 내가 살던 동네가 정말로 땅속으로 꺼졌는지 알 길이 없지만. 나는 가까이서 두 눈으로 보고 만져 보지 않고서야 도무지 실감하지 않는 그런 인간이니까. 그래야 나는 굴복하고 내 몫을 받아들일 테다. 글쓰기는 그야말로 굴복이다. 모든 것을 문자로 재확인한 끝에 철저하게 실패했음을 공인하는 것. 그러나 현재의 내가 굴종하지 않으리라는 것 또한 자명했다. 나는 쓰는 삶으로부터 버려져 이곳 산에 있고, 이는 그간의 창작이 오늘날에 비추어 봤을 때 결코 유효하지 못했음을, 그러므로 지난 글쓰기의 행적이 도달하지 못했던 지점에 적신으로 내던져져야 했음을 뜻했다. 더는 처절한 실패를 곱씹지 않으면서 사태로부터 탈출할 가능성은 죽음 외에는 없다.

단독자라고 내 속내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앞장서서 비트적거리며 다시 산을 올랐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또한 마지막 탈출 시도를 염두에 뒀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의미를 서로 다르게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느꼈던 자살의 암시를 나는 기억한다. 그것은 한 사람과의 조우를 통해 쉽게 번복되지 않으며, 오히려 상대에게 전염시키는 성질을 지닌다. 물에 잠겼을 때 우리 몸에 깃든 푸르고 유독한 발광 물질같이, 우리가 자살을 진지한 가능성으로 인식하는 순간 남들과 구별되는 위험한 표식이 낯에 생겨난다. 그런 모습이 남들 눈에는 특별해 보일지 모르나,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고, 설령 알아차리더라도 단지 해치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가 가시화된 것으로 간주할 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사위는 어두워진다. 사물은 잿더미처럼 구별되지 않는 복수가 되고, 광활하게 펼쳐진 암중의 풍경에서 그 무엇도 세부적으로 볼 수 없다. 글은 세상 어디에도 쓰이지 않는다. 여기에 쓰일 글이랄 게 있단 말인가? 이야기할 것이 모두 불타 버리고 영감의 바다가 메마른 마당에 내게 주어진 하나의 의식은 나 자신의 불행에 휘말려 그 입마저 막혀 버렸다. 또한 글은 구체적으로 가시화되는 것인데 암중에서 어찌 이를 기대하겠는가? 아무것도 묘사되지 않고 또한 서술되지도 않는다. 오로지 빛을 발하는 내 몸만이 글을 품는데, 죽음으로 귀결하는 기나긴 사변인 그것은 사람들로부터 들키기 전에 말소해야 할 비밀이나 다름없다. 목적지를 향한 길은 낙차를 생성하기 위해 지극히 높아져 오르막을 이룬다. 그리하여 우리는 멸시받는 종교인이 겪는 고행을 남들 앞에 재현한다. 우리는 한 인간의 형상을 한 탈을 벗어 던지고 점차 신화 속의 괴물로 변모한다. 그러나 자신이 그런 모습인지는 알지 못한다. 설사 거울이 있더라도 들여다본들 유리의 표면에는 우리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시선은 거울에 비친 상을 넘어 죽음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그곳에는 내가 없다. 그게 내가 바라 마지않던 거다. 내가 없는 것. 나아가 우리에서 벗어나는 것, 그게 바로 동반 자살이다. 여기서 사태는 어디 있는가? 여기에도 계엄법이 적용되는가? 우리는 사태와 법을 벗어나거니와, 우리의 목적지는 치외 법권이다. 여기서 공동체는 어디 있단 말인가? 죽음 속에도 공동체가 있기는 하던가? 죽음까지 함께하는 동반자는 어디에도 없다. 죽음 전까지의 동행이 있을 뿐이다. 도서관에서 마주친 그림자들의 사멸이 덧없어 보였던 이유는 그들이 죽음 속에서도 이상적인 공동체와 그 구성원 개개가 현전하리라 믿어서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들이 그림자로 갇힌 이유이기도 하다. 그림자로서의 현시에 사로잡혔기에 그들은 죽음에 이르지 못하고 선고 유예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실은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게 바로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나는 단독자의 멱살을 잡고 이렇게 다그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인간이냐고. 이게 생이냐고. 이것은 차라리 허구나 다름없다고. 그런데 너는 현실이 된 허구 속에서 내가 씀으로써 또 다른 실재를 생성할지도 모를 위험한 거짓말을 지어내기를 원하느냐고. 내가 그렇게 그를 몰아세우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여정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목이 길어질수록 허위로 쓰이는 지면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테니. 허구가 진실이 되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건 오직 결말밖에 없다. 그러니까 자살은 책을 처음부터 읽지 않고 바로 마지막 장으로 직행하는 것이다. 그게 내가 바라는 거다.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온갖 실패를 재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왜냐하면 이미 실패했으니까. 그렇기에 이곳 산중을 헤매는 패잔병 신세가 되어 그의 푸르뎅뎅한 등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걷고 있음이니까.

그러다가 내 마음 한편으로 자라나는 그를 향한 분노가 한도를 넘어섰다. 나는 그가 답답함에 뭐라도 길게 하소연하기를 기다리며 계속 걸었다. 어느덧 그가 힘겹게 산을 오르다가 기어코 운을 뗐을 때, 나는 걸음을 멈추고 마치 열화상 카메라에 감지된 시체처럼 붉은 기 하나 없이 푸른 그의 윤곽이 위로 비스듬히 멀어지는 걸 적개심을 지니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가 자신이 내는 소리에 사로잡혀 내가 더는 따라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놓치는 동안 나는 사냥감에 고정된 맹수의 눈처럼 그로부터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이 틈을 빌려 그에게서 도망친다는 치욕스러운 선택지는 내 안중에 없었다.

「네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그 대상이 나일지라도. 그러나 네가 생각하는 그들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진리는 변하지 않아. 누가 죽었다면 그건 네가 죽인 거고, 그 대상은 다름 아니라 너의 글쓰기야. 그런데 너는 왜 포기하려 드는 거지? 네가 누군가를 잊는다면 세상이 그들을 잊는 거야. 나아가 그들이 널 망각하는 거라고. 나는 네 자해 행위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겠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걸음을 멈추었고, 이미 상황을 파악했지만 차마 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듯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비탈 아래 선 나를 발견하자마자 그의 얼굴은 추하게 일그러졌다. 이내 그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짐짓 자애로운 표정으로 탈바꿈하더니, 중심을 잡으려는 건지 탈주한 작은 짐승을 포획하려는 건지 모를, 상체를 비스듬히 숙이고 두 팔을 펼친 자세로 서서히 내게로 거리를 좁혀 내려왔다. 하지만 이미 나는 뒷걸음치며 말하고 있었고, 그러자 그가 인내심을 잃고 내게 달려들었다. 오직 그의 의지에 반하여 표명하고자, 나는 멈춰 서 그로부터 멀어진 거였다.

「네가 누구기에? 너는 나의 동반자도 아니고 하물며 부산물도 아니야. 도리어 너는 그 둘에게 있어 부정한 상간자나 다름없어. 한데 너는 사태가 부여한 역할극에 지나치게 도취했어. 그걸 빼면 너하고 나의 관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에도 네가 나에게 아무런 비중이나 의미도 드러내지 않는 연유는 자신의 그 연약한 실존이 들통날까 두려워서인 거야. 너는 그러니까 한 인간이 아니지. 그렇지 않아? 너는 단지 이 사태의 등장인물이고, 그렇기에……」

나는 채 말을 끝내지 못하고 또다시 입을 틀어막혔다. 그는 나를 넘어뜨려 위에 올라타고는 억지로 자기를 마주 보도록 내 머리를 움켜쥐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고, 복수를 앞둔 이의 회심에 찬 미소를 잠깐 띠었다가 내게 입을 맞추었다. 지난 불길에 입술이 녹은지라 서로의 잇몸 뼈가 시릴 정도로 강하게 부딪혔다. 나는 코앞에 놓여 흐릿하게 올려다보이는 그의 낯을 마치 벌레가 얼굴에 올라탄 것처럼 두 손으로 정신없이 찰싹찰싹 때리며 밀쳐 냈다. 그리하여 우리는 또다시 산의 어디인지도 모르는 비탈에 쓰러져 있었다. 내 말이 그에게 사랑의 정념을 불러일으킨 것은 당연히 아닐 테다. 내 입을 막는 데는 차라리 손찌검이 더 효과가 있었을 것이고, 그저 증오스러운 나에게 어떻게든 애정을 자아내려고 스스로도 내키지 않는 시도를 한 데 지나지 않았다. 그는 보란 듯이 입가를 닦아 내고는 먼저 몸을 일으켜 나를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마치 존재가 멀리 있는 상대에게 그러는 것처럼 음절을 뚝뚝 끊어 가며 고래고래 외쳤다.

「말하건대 내가 누구든 간에 나는 네게 너의 동반자로서 대답할 수 있어. 물론 그건 단순한 가장이야. 네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으며 누구보다도 살리고 싶은 인물을 서사적으로 복원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된다면 나는 능히 가장할 수 있어. 그렇게 해서 너를 살려 낼 수 있다면 무언들 못 하겠어. 내가 이 현실에서, 너와 함께하는 한, 너는 죽지 않아. 너는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앞으로도 내 삶에 영향을 끼쳐야 해.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것을 너는 네 동반자에게 바란다 해도 관계없어. 내 얼굴에 네 동반자의 낯을 덧씌우고 천박한 자기 위안을 하더라도 나는 몸서리치도록 기쁠 테니.」

한 음절이라도 놓치지 말라고 하나하나 끊어 가며 길게 윽박지르는 그 소리는 정말이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말을 마친 그가 몸서리치며 비탄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마자, 그 소리가 산중에 메아리치는 가운데 그는 내 양 팔뚝을 두 손으로 부여잡아 나를 일으켜 세웠고, 나는 아직도 그가 내 목전에서 귀청이 터질 듯이 소리 질러 대는 것처럼 움츠러들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말로 한 방씩 얻어맞고는 그 얼얼한 충격에 한동안 멍해져 있었다. 그러다가 충격에서 먼저 벗어난 그가 좁디좁은 우리에 갇힌 동물처럼 내 주변을 신경질적으로 빙글빙글 돌아 걸었다. 나는 그가 그리는 원 안에 갇혀 서 있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려고 하면 그가 그리는 반경은 좁아졌고, 몸을 사리면 그는 반대로 더 큰 원을 그려 나갔다. 잿더미를 짓밟아 가며 빙빙 도는 그는 전혀 어지러워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늘 병에 들지 몰라 염려했던 평소의 건강한 신체였다면 느꼈을 현기증이 지금과 같은 빈사 상태에서는 작용하지 않는 듯했다. 즉 그나 내가 원한다면 그리고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작은 원을 무한정 그려 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원치 않았다. 오직 원하는 건 내 주변을 감시하며 도는 모든 행성의 궤도를 관통하여 자신이 속한 집합으로부터 이탈하는 일직선상의 궤적이다. 그런데도 그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중에도 없이, 마치 밤중에 급우를 놀이터로 불러내 짝사랑을 고백하는 숫기 없는 학생처럼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빙빙 돌면서, 천천히 뜸을 들여 가며 내게 말했다.

「내가 누구냐고? 나는 매 순간, 네가 나를 시선에서 놓칠 때마다, 그리고 다시금 나를 포착할 때마다 매번 바뀌었고,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어. 그때마다 이전의 나는 소멸하고, 또다시 새롭게 대체되었어.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완전히. 너는 내게 자신과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말했지. 그건 진실이야. 왜냐하면 다음 사건으로 넘어갈 때마다 우리 관계는 계속 끊어졌고, 그럼에도 다시 새로이 관계를 이어 가야 했거든. 네가 나를 일관되게 바라보는 와중에도, 그때그때의 사건 속에서 나는 소용돌이쳤고, 그러다가 마침내 동아줄 같은 너의 시선으로 구난받았는데, 어째서, 얼마나 더 거듭나야, 네가 나를 알아볼 수 있는 거지? 나보고 어찌하란 거야.」

원치 않는 사랑 고백을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가 말하는 내용은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고 단지 지금과 같은 사건이 일어나도록 여지를 준 나 자신을 향한 착잡한 감정만이 손에 잡힐 듯 크게 느껴졌다. 기어이 그는 우뚝 멈춰 선 채로 무너져 내렸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나는 언제나 지난 관계와 똑같은 관계를 재생성했다. 모든 관계와 대상이 처음부터 같은 모습을 지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게 작용하는 지난 관계의 영향력이 은연중에 새로운 상대에게도 적용되어 그가 지니는 자연스러운 외양을 어그러뜨렸다. 그가 나보다도 동반자와 부산물을 의식하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고, 어쩌면 나 또한 상대의 내면에서 그 둘의 실존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렇게 지난 관계가 파탄이 날 수밖에 없었던 그 갈등이 현재에서 재촉발되었고, 그가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할 길 없이 그저 지긋지긋할 따름이었다. 그가 내게 왜 글쓰기를 독촉하였는지 그제야 진정으로 알 것 같았다. 내가 동반자와 함께 살 때 나는 그와의 관계에 절망하면서도 계속 글을 쓸 수 있었다. 단독자 또한 내가 아무런 희망이나 절망 없이도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지속하여 글을 쓸 수 있는 어떤 원동력을 발견하길 바라는 것일 터였다. 그런데 그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독자가 없으면 글을 쓸 수 없다. 내게 독자는 동반자였다. 나는 그 한 사람, 어쩌면 부산물까지 둘을 잠재 독자로 설정하고 글을 썼다. 그들이 내 글을 실제로는 읽든 읽지 않든 아예 읽어 내지도 못하든 나는 맹목적으로 그들을 향해 소설을 썼다. 하지만 그 둘이 곁에 없는 지금 내 글을 읽을 독자가 아무도 없는 셈이나 매한가지고, 그렇다면 글쓰기라는 덧없이 반복되는 형벌을 도무지 끝까지 이행할 동기 또한 부재했다. 독자라는 주체가 잠재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마당에는 소설가도, 소설도, 책 자체도 없는 법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단독자는 여전히 내게 아무 관계도, 아무 존재도 아니다. 그는 단지 내 밖에서 돌연히 나타나 푸르게 발광하는 낯선 외계인이나 다름없다. 한데 나 또한 그처럼 푸르뎅뎅한 외양이 아니던가. 나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상처 입은 육신이다. 우리는 구별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그의 외모에서 나를 보았고, 치밀한 동일성으로 말미암아 그를 동반자로 착각했다. 나와 함께하는 자는 분명 외모에서도 서로 간에 공통된 성질이 드러나리라는 믿음이 나와 동반자가 아닌 그를 지금까지 함께하게 했다. 더는 외모가 중요하지 않은데도, 우리는 다 같은 처지인데도, 가혹하게도 꼭 그렇지는 않았다. 물론 사태에서 내가 잃어버린 것들은 다름 아니라 단독자가 상실한 것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서로 빼닮은 외양은 엄밀히는 제각각이던 기존의 외양을 상실했다는 같은 비극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우리는 수치상으로 거의 같은 고통, 동일한 비애로 신음했다. 그가 비틀거리면 내가 몸에 힘이 빠져 중심을 잃은 것같이 경각심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부정하더라도 나는 그의 일부였다. 사태는 우리가 하나 되도록 유도하고 있었고, 그렇게 이끄는 대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본연적인 거부감만이 서로를 구분하는 성싶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의식을 가졌다는 상식도 이제는 의심스러웠다. 다르다는 건 절실하지만 그럼에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와 그는 단지 인지의 혼동으로 벌어진 한 의식 아닐까? 그가 내게 동반자처럼 굴수록 그는 자기가 닮고자 하는 대상으로부터 멀어졌고, 존재적으로 나에 가까워졌다. 그를 견딜 수 없는 건 나를 견딜 수 없는 거였다. 내가 쓴다는 건 그가 쓴다는 거였다. 내가 씀으로써 동반자와 부산물을 허구적으로 복원하는 것, 그건 그 또한 마찬가지로 꿈에 그리던 공동체를 완성함이다. 한편, 그가 바란 대로 글을 쓰는 것, 문필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리적 재료도 없는 상황에서 그의 바람에 응한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도 나는 안다. 그것은 허구의 화자가 작중에서 자기가 이미 문자로 빚어진 의식임을 모른 채 또 다른 가상의 글쓰기를 이행하는 거다. 여기에는 말할 것도 없이 아무런 글쓰기 도구가 필요 없다. 그렇게 현실에 허구의 층위를 겹겹이 씌우는 행위가 사태로부터의 비겁한 도피에 불과하다는 걸 단독자는 알긴 하는가? 우리가 자신이 딛고 선 현실을 불분명하게 흩트려 가며 허구적으로라도 실존하기를 바라는 것인가? 정녕 그게 사실이라면, 그가 꾸민 복잡한 계략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그러한데도 그는 동시에 믿을 수 없이 단순명료하다. 그는 나를 원한다. 자신이 나를 소유한다고 표명한 것 그 이상으로 나를 원한다. 나아가 나의 글쓰기, 동반자, 부산물마저 자기의 것이기를 원한다. 누구도 나를 그렇게 욕망하고, 그런 진심을 내게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사태가 자아낸 비틀린 탐욕이라기보다는, 이전에는 바라 마지않더라도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실현할 수 있는 한 가능성이었다. 사태가 일어나기까지 그는 도사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기다렸다. 그는 아주 단순하고도 변치 않은 진심으로, 전철역 지하에서부터 나를 기다린 그 노고의 결실을 지금 맺으려 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도저히 그의 야욕을 더는 모르는 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도망칠 수도 없었다. 우리는 각자의 잇속에 따라 서로를 산의 더 높은 고도로 몰아가야 했다. 「봐.」 망연자실 서 있던 그가 불현듯 한 손으로 우리 위의 검은 허공을 가리켰다. 그 말과 함께 우리를 휩쓸던 적개심이 일순간에 해소되었다. 그가 가리킨 방향의 검은 상공에 흰색 장막이 펄럭이며 낮게 날고 있었다. 그것은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백지였고, 또한 심연 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발하는 우리로서는 정체 모를 원해어였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 중 무엇을 떠올려도 다름 아닌 그것으로 치환되는 성질의 경이로운 가치물이었다. 더는 우리가 산 중턱에 멈춰 덧없이 싸울 필요가 없었다. 바라볼수록 그것은 우리에게로 가까워지는 듯하면서도 반대로 멀어지는 듯했다. 어쨌거나 저것에 가닿기 위해서는 더 높이 올라야만 한다는 사실은 자명했다. 우리는 부동에서 벗어나 다시금 산중을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흰 장막이 산의 뾰족한 바위에 걸려 더는 도망치지 못하기를 바라면서 안간힘을 다해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이 우리의 걸음은 저 높이서 나는 흰 천에 가닿기에는 여전히 턱없이 느렸다. 그럼에도 우리는 처음으로 우리 앞에 등장한 식별 가능한 사물로부터 결코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내 머리통이 깨지고 사지가 곤죽이 되기에 충분한 높이에 이르더라도 나는 그 천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손으로 만지기 전에는 저 아래로 뛰어내리지 않을 터였다. 설령 그게 훤한 눈속임일지라도 우리는 쉽게 현혹되어 희망을 확인받고자 하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빛이 없는 밤중에도 식별되는 이 비현실적인 사물은 우리가 어떻게든 국면으로부터 탈출하려는 희구에서 비롯된 산물일 수도 있었다. 우리가 마음속으로는 지상을 걷지 않고 육신 없이 날기를 원하기 때문에, 내면에 비상의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그러나 장막은 우리가 아니라 그 염원만을 싣고 구름 너머 우주의 빛이 쏟아지는 하늘로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검게 잠긴 폐허 위로 상승하여 제 몸을 부풀리고 꺼뜨려 가며 날갯짓하는 그 순백의 천은 마치 꿈속의 꿈 같았다. 우리가 속한 악몽을 잊게 해주는 새로운 꿈. 제각각의 잇속으로 갈등하는 우리에게 공통으로 필요한 건 다름 아니라 무언가를 원했다는 사실 자체를 무위로 되돌리는 강력한 망각인 듯했다. 장막은 우리가 괴로워하며 기억하는 모든 심상을 잊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또 하나의 심상이었다. 나풀거리는 저 천 자락을 손에 쥐는 순간 우리는 내면에 펼쳐진 살풍경으로부터 탈출하리라. 한편으로는, 그러한 희망찬 몽상에도 한계가 있음을 나는 알지 않았던가? 낙원은커녕 새로운 세계를 상상할 여력이, 그러니까 탈출 이후에 펼쳐질 또 다른 국면을 감당할 힘이 내게는 없다. 그 너머에도 나의 동반자와 부산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하리라고 내가 믿지 않으니까. 지금 내가 몽상의 천 자락을 쥔다면 바랄 수 있는 건 오직 한 몸 누일 수 있는 묫자리고, 그런 의미에서는 죽음만이 끝까지 함께하는 내 동반자다. 그러자 내 안에서 한 목소리가 깨달음에 소리쳤다. 〈지난 시간 내내 네 집에 기거했던 동반자는 다름 아니라 죽음이다.〉 나는 그 목소리를 부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차마 떠올리기조차 두려워했던, 하지만 동반자의 손길이 내게 닿을 때마다 소름 끼치도록 피부 깊숙이 사무치던 의심에의 뒤늦은 응답이었다. 그랬다. 그간 나는 사람이 아니라 죽음과 동침했다. 내 품에 안긴 그에게서 나는 생명이 아니라 죽음이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고, 그의 품에 안긴 내 육신이 그에 비하면 몹시 살아 있다는 걸 인식했다. 그는 죽어 있었다. 나와 함께한다면 자신에게도 삶이 있으리라고 그도 처음에는 고대했었겠지만, 생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고, 이기적인 내가 제 생명을 조금도 나눠 주지 않는 데 그는 절망했다. 나 역시 그래서 실망했다. 그를 통하여 본래보다 더 생동감 있게 살아 있기란 애당초 불가능했던 거고, 도리어 그의 곁에는 죽음의 기운만이 있음을 맛보았던 거고, 내 삶을 다한들 그 죽음을 무위로 돌리기에는 어림도 없기에, 나는 예정된 치명적인 패배를 피해 도망치려는 욕구로 매일 밤 배회했다. 부산물은 한 가정을 꿈꾼 나를 위해 그가 저승에서 데려온 어느 죽은 아이의 영혼이다. 지난 그들과의 삶은 한 기담의 주인공이 하룻밤의 꿈속에 열린 죽음의 무도회에서 영원 같은 찰나를 춤춘 데 불과하다. 그들을 잃어버렸기에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죽음이 지금과 같은 빈사 상태에서도 부재했던 거고, 그렇다면 지금에야말로, 삶의 착란에서 벗어나 나를 기다리는 그들이 있는 죽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 생각들은 죽음이라는 너무나 먼 곳으로부터 오고 있었고, 내가 향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가까워지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가까워진다면 모든 달콤한 상상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 같아 걸음을 멈추고 싶었고, 지금 여기에서 단독자에게 나의 나약한 내면을 털어놓아 위로받고 싶었다. 그는 가만히 들어 줄지도 몰랐다. 아니면 묵언을 깬 나를 두고 써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며 책망할지도. 두 가지 가능성 모두 견딜 자신이 없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남겨진 선택은 이 무기력한 상황에서 탈출하는 것뿐이라는 듯이. 진작에 내게 탈출이라는 개념은 본래의 의미를 벗어나 삶의 모든 가능성과 이유를 해제하는 한 사건으로 축소되었다. 그래야만 죽음은 단지 죽음이면서 또한 탈출이니까. 그 천이 얼룩 한 점 없이 비현실적으로 깨끗하면서 동시에 만져도 부스러지지 않고 직조 당시의 그 부드러운 결을 유지하는 유일한 인공물이라는 것도 우리가 현혹되는 결정적인 이유일 것이다. 구체적이고 인공적인 것에 우리는 목말랐다. 우리가 줄곧 놓인 지극히 추상적인 상황이 우리를 갈증에 시달리게 했다. 우리는 추상화된 검정 배경을 오르고 있었다. 고통도 한 부위에 국한되지 않기에 어디서 발원되는지 구체적으로 식별되지 않는 한 추상이다. 우리는 마치 야광 성분이 함유된 살충제에 오염되어 정신없이 도망치다 제 시선으로는 감히 끝을 올려다볼 수 없는 장대한 검은 바짓단에 달라붙은 두 마리의 해충 같았다. 바지의 주인이 알아채고 다리를 털어 내지 않는 이상 우리는 살기 위해서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짐작도 못 할 검은 절벽을 끝까지 기어오를 터였다. 나는 그런 벌레들의 신세를 잘 안다. 그것들은 설령 상황을 모면한다 해도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 오염된 먹이를 게워 제 식구들에게 먹임으로써 몰살당하는 법이다. 하지만 자신이 공격당했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 사람이든 벌레든 제 식구를 먼저 떠올리고 그들에게로의 회귀를 다짐하는 것 역시 이치이지 않던가? 타자에게로 돌아가야 한다는 절대적인 욕망. 그들은 고통과 위기의 바깥에 있다. 나는 내 바깥에 있는 동반자와 부산물을 욕망한다. 함께 있는 단독자가 아니라. 그는 나를 만족시키는 어떤 것도 가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동반자와 부산물은 가지고 있고 그는 가지지 않은 어떤 무엇을 욕망하는 건 아니었다. 산중의 어둠이 인간 내부의 심연과 구분되지 않기에 마치 내 안의 존재로 여겨지는 그를 도저히 욕망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목이 빠지도록 위를 올려다보며 걸었다. 대상을 잠시라도 시선에서 놓치는 순간이면 사라진 방향으로 길을 틂으로써 외로이 승천하는 흰 유령 같은 천을 재차 포착하여 다시금 더 높이 올랐다. 이제 그것은 아이가 머리 위로 날린 연처럼 우리에게 줄이 매인 채로 공중을 맴도는 듯했다. 우리의 걸음은 조금씩 빨라졌고 마침내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자기와 다른 꿍꿍이를 가진 상대가 선점하는 순간 그것이 지니는 가치 또한 따라서 바뀔 것처럼. 정말로 흰 천은 활용하기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변모할 수 있는 유용한 물건으로 여겨졌다. 그것은 글을 쓸 수 있는 흰 종이가 될 수도, 아니면 두 사람의 동반 자살을 알리는 흰 조기가 될 수도 있었다. 아니면 고대 지중해 사람들처럼 흰 천을 둘러 입고 우리만의 새로운 사회를 시작할 수도 있을 터였다. 또한 깨끗한 천이 여기까지 흘러왔다는 것은 이 사태 속에서도 안전을 도모하는 데 성공한 지역이 근방에 있고 거기 사는 이들이 깨끗한 빨래를 바깥에 널 정도로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하고 있음을 의미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가능성은 우리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무 상관이 없었다. 설령 이 모든 게 사실이더라도, 그것은 우리를 불행한 현재로부터 구원하지 못한다. 목표물에 가까워질수록 우리 역시 흰 장막을 손에 넣는다 해도 잠시 기분이나 환기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지 잃어버린 존엄을 회복시키리라는 기대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느꼈다. 그러니까 그것은 우리가 존재의 허무로 인한 고착을 잠시 중단하고 서로에게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며 위로 다다르도록 해주는 허울뿐인 목적물이었다. 우리의 더러운 손이 닿는 순간 천은 상징적인 순백을 잃어버릴 것이며, 이내 아무 쓸모도 없는 그것을 우리는 싫증 내며 내팽개칠 게 분명했다.

「있지. 계속 걸으면서 들어.」 단독자가 말했다. 「아무것도 우리 머리 위에 설 수는 없어. 내가 저 천 쪼가리를 붙잡으려는 건 그게 우리 머리 위를 활공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야. 여기서는 우리 말고 다른 시선이 존재할 수는 없어. 누구도 여기서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을 보아선 안 되는 거야. 우리 머리 위에 서는 것과는, 그게 무엇이든 안간힘을 다해서 싸우겠어. 내 시선에는 너만이 보여야 해. 너의 시선에 나만이 보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태가 준 선물이라면 선물이겠지. 비로소, 순전히 우리 둘만이 놓여 서로를 응시하는 순간이 왔는데 말이야. 한편으로 사태는 계속해서 새로운 국면으로 우리를 희롱하지. 그러나 나는 너를 속이지 않아. 세상과 사태가 너를 아무리 속이더라도 나 또한 거기에 동참하지는 않겠어. 아마도 너는 기회가 된다면 지금도 나를 속이려 들겠지? 나는 속지 않아. 네가 속내로 아무리 복잡한 음모를 꾸미더라도 거기에 넘어가지 않을 거란 말이야. 나는 네가 말하도록 놔두지 않을 거니까.」 그는 누가 들을세라 숨죽여 그렇게 말했고,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당분간 말문을 멈췄다. 내가 잠깐의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한 마디 쏘아붙이려는 찰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순간 재차 나를 앞지른 그를 내 걸음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의 말소리는 갑자기 쏜살같아진 걸음만큼 내게서 빠르게 멀어졌다. 「가만히 듣기만 해. 너는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 네가 그 사실과 맞서 싸우듯이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없게 되면 네가 없어질 수 있다는 잔학한 사실 말이야. 너는 그런 내 속도 모르고 자꾸만 원하지. 생존자들을! 이 나라의 수도 어딘가에 생존자들이 삶을 영위하는 안전 가옥이 존재함을 상정하고, 다시 사람들 틈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잖아.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어? 너는 내가 지긋지긋해진 거야. 그래. 우리 둘이 다가 아니야. 이 산을 벗어난다면 말이야. 여전히 정부와 군대가 잔존하고, 국민이 있어. 네 눈으로 군중을 본다면 너는 흔들리지 않을 자신 있어? 그 순간 사태의 충격으로 입을 다문 작가로서의 본능이 네 머릿속에서 다시 고개를 들 거야. 왜냐하면, 사람들 속에 있어야 작가는 글을 쓰는 법이고, 그들이 상정되어야만 글이 있으니까. 마치 사람들이 없으면 글도 없다는 듯이. 그들은 너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건데. 그들은 자신들을 글로 팔아먹었다는 죄목을 씌워 심판할 수 있는 네 몸을 원할 건데. 네 사지를 찢어 가 기념품으로 삼을 거고, 네 머리를 파내어 포식할 건데, 왜 너는 모르냐는 거야. 그 잘난 법이, 계엄이 너를 보호해 주리라고 믿는다면 너는 단단히 착각한 거야. 소설가의 모든 자유를 옭아매려고 만든 법이 바로 계엄이라고. 이게 내 피해망상인가? 그래, 나는 망상 속에서 살아! 그런데 지금과 같은 사태에서도 망상과 현실을 구분하려는 네 지성을 나는 버텨 낼 도리가 없어. 나는 네가 스스로를 사지로 내모는 걸 가만히 지켜만 보지 않을 요량이야. 너는 내 소유고, 그 책임 또한 나에게 있어. 두 번 말할 필요도 없이 너는 여기 이 산에서만 글을 써야 해.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고 너만의 글을 쓰는 것이 그간 네가 바라던 게 아니었어? 더는 복잡한 술수를 쓸 필요는 없어. 속일 사람이란 없으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목숨을 부지할 필요 없으니까. 이곳 산에서 자급자족할 줄 알아야 네가 다시 저 아래로 내려가지 않을 수 있는 거야. 단순해져야 해. 더할 나위 없이 단순해져야, 간단하면서도 진실한 글을 써야 너는 네 동반자를 진정으로 마주하고 그와의 아이를 기대할 수 있어. 내가 그렇게 되도록 할 거야. 네가 한 치 앞의 어둠만 보고 발버둥 치더라도 나는 너를 끌고 산을 오르겠어. 이렇게 우리가 재차 산을 오른다는 건 끝없는 형벌일지도 모르지. 그런데 삶은 어차피 하루하루가 반복이고, 그럼에도 그 가운데 변화가 있어. 이 산이 우리에게 한 번이라도 같은 모습이었던 적이 있어? 밤이 깊어져 가. 밤이 깊어진다는 건 다음 날이 다가온다는 거야. 오늘이 내일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알아. 왜냐하면 오늘 우리의 일과가 끝이 나지 않았기에, 아직 할 일이 남았기에, 밤이 우리 둘만을 알아보도록 빛을 거두어 갔기에, 우리는.」 여기서 그는 말을 멈추었다.

그는 짧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푸른 잔상을 남기며 아래로 떨어졌고, 그 뒤를 쫓던 나 역시, 기다려 마지않던 낭떠러지를 예감하여 걸음을 거두지 않고 뒤따라 아래로 푹 꺼졌으나, 그가 내지른 소리가 찰나였던 건 곧 추락의 낙차 또한 작아서였음을 금세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같은 구덩이에 떨어져 뒤엉겼다. 내가 엎어진 차가운 그의 몸에 놀랄 정도의 혐오감을 느꼈고, 곧장 몸을 옆으로 뒤집어 부드러운 잿가루가 첫눈처럼 얇게 깔린 밑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컴컴한 위를 마주했다. 반면 그는 구덩이에 떨어졌을 때 자세 그대로 땅에 고개를 묻고 비탄에 잠겨 흐느끼는 듯 몸을 크게 경련했다. 그는 간질 발작을 일으키는 것처럼, 아니면 사지 불구인 자가 지하에 매몰된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머리로 흙을 들이받으며 파헤치고 있었다. 나는 아연실색하여 그를 거칠게 끌어당겨 똑바로 눕혀야 했다. 그리고 환멸감이 일도록 고요한 침묵이 감돌았다. 우리는 나란히 누워 허탈하게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직방형으로 제법 깊게 파인 구덩이는 딱 두 사람이 어깨를 옆으로 맞대고 누울 만한 넓이로, 마치 내 키에 맞춘 듯 머리와 발이 수직으로 파인 벽면에 닿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누운 이곳은 삽 같은 도구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파 내려간 무덤 구멍이었다. 우리는 당장 일어나 구덩이에서부터 빠져나올 엄두도 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분노했다. 누가 금장 구역에 남몰래 묘혈을 팠단 말인가? 사후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한데 사태의 발발로 인하여 정작 묘의 주인이 자신을 위해 마련한 거처를 미처 못 이용한 성싶었다. 만약 그자의 관이 우리 아래 깔려 있었다면 거기다 침을 뱉었을 테다. 그러나 부재한 시신을 향한 표면적인 분노는 나 자신에의 환멸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가 누운 구덩이를 판 자가 다름 아니라 나인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모든 게 부질없고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그간의 모든 게 자살자가 스스로 파 내려간 구덩이에 누워 누군가가 자기 머리 위로 흙을 덮어 주길 비겁하게 기다리는 동안 상상의 나래를 펼친 데 불과한 것처럼 여겨졌다. 구덩이 안이나 밖이나 보이는 게 없는, 이 낯익은 허망함, 죽음에 가닿으려고 했던 자신의 유치한 계획이 물거품이 되기 무섭게 밀려오는 이 부끄러움은 그야말로 실패한 자살자가 전유할 만한 것이었다. 물론 우리는 정신을 추스르는 대로 구덩이를 빠져나올 것이다. 죽음의 가능성은 그 뒤로도 언제나 열려 있다. 하지만 내게 죽음의 자격이 있던가? 이토록 쉽게 굴욕감을 느끼고 무기력에 잠기는 내게는 죽음보다 비참한 삶이 더 어울리지 않던가? 〈나는 모욕감을 느끼며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생존하기를 원해. 그 굴욕감이 동반자와 나를 이어 준 거고. 그 나약함이 언제나 나를 진정한 혼자로 만들지 못하고 이렇게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단독자와 함께하게 하는 거야.〉 지금 이대로의 삶, 더는 잃을 것도 없고 더는 붉힐 낯짝도 남지 않은 인면수심의 삶이 어쩌면 내가 못내 바라던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게는 실행력이 늘 부재했다. 생애 내내 아무것도 실행하지 않았기에 도리어 어떤 파국이 실행되었다. 그럼에도 삶이 어떻게든 이어지리라는 희원, 예컨대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동반자와 부산물이 살아 돌아와 내게 다시 입을 열 기회를 줄 거라는 편집증적인 기대, 단독자가 동반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 마침내는 훌륭한 대체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상상이 한편에서 나를 지금 이대로의 상태에 머무르도록 했다. 언제든지 나는 지금과 같은 죽음의 조롱 어린 침묵 앞에서 겁을 집어먹고 다른 생존자들을 찾아 하산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예상할 수 있으며, 내게 유일하게 주어질 수 있는 마지막 파국이었다.

그리고 우리 머리 위로 흰 장막이, 마치 주인 잃은 손수건처럼, 혹은 얼레가 되감기며 주인에게로 되돌아오는 연처럼, 아니면 성벽 밖의 적에게 투항을 알리고자 내던져진 백색 휘장처럼 힘없이 하늘거리며 허공을 내려오다가 솜씨 좋고도 우아하게 펼쳐지면서 구덩이에 제 몸을 드리웠다. 묘혈의 넓이에 딱 맞는 크기의 그 천은 벌거벗은 우리를 가려 주는 경건한 수의가 되었다. 그러자 우리는 시야를 가린 그것을 치워 내기보다는, 낙원에서 쫓겨난 태초의 인류처럼 제 적신을 수치스럽게 인식하였고, 새롭게 주어진 사물에 빠르게 적응했다. 우리는 흰 천을 이불처럼 머리까지 뒤집어쓴 채 면직물이 선사하는 부드러운 감촉에 도취해 신음했다. 여전히 서로의 몸은 얼음장이었지만 얇디얇은 천을 덮은 것만으로도 추위가 가신 기분이었다. 눈앞을 가린 장막은 마치 그 너머에 환한 햇살이 내리쬐는 것처럼 어두운 부분 없이 온통 희게 빛났다. 천이 지닌 그 비현실적인 속성은 우리가 처했던, 마치 모든 빛이 소멸한 것 같은 재앙으로부터 마침내 벗어났다는 착각을 머릿속에 심어 주었다. 내내 우리는 사태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천 아래에서는 사태의 주변부에 있는 것 같았다. 안도감이 밀려 들어와 우리를 방심케 했다. 우리는 숨겨졌다. 아무도 우리를 색출하지 못할 것이다. 제 눈을 가림으로써 포식자가 자기를 쫓는 상황을 무위로 되돌려 죽음을 모면할 수 있다고 여긴다는 어리석은 사냥감처럼 우리는 제 몸뚱어리가 내는 미약한 푸른빛과 천의 흰색에 현혹되어 사태를 외면했다. 역겹고도 부정한 욕망이 일어났다. 원했던 대로 지금 당장 죽어 버리는 것이 나을 터였으나, 흰 천 아래에서 나는 그리고 그는 외롭고 비겁했다. 줄곧 나를 괴롭히던 두려움에 지친 나머지 나는 그에게 뭘 원하는지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었다. 기실 나 자신도 내가 원하는 게 그게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도 매한가지였다. 우리는 설령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이 나라로부터 언제든 도망칠 준비가 된 비겁자였고, 자신에게 덧씌운 신분과 운명의 악의는 우리의 의지가 약해질 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항시 사회로부터 고립되기를 자처했고, 이제 여기서 삶도 죽음도 아닌 기괴한 명줄을 이어 가고 있었다. 이불처럼 덮은 흰 천이 방아쇠와 같은 역할을 했다. 우리는 천 아래로 벌거벗은 채로 맞붙어 있었고, 그러한 조건이면 타성적으로 상대를 탐하게 된다는 듯 자동적으로 서로의 차갑게 식은 육신에 엉겨 붙기 시작했다. 너덜너덜하게 벗겨진 피부에 쾌락이 아닌 쓰라린 통증이 일었다. 우리에게 욕망은 있었지만, 그것은 상대를 빗겨 나가는, 아무런 책임감 없이 오직 본능만으로 상대를 욕망할 수 있었던 과거를 향한 욕망이었다. 우리가 굴러떨어진 시신 없는 묘혈처럼 우리는 무방비하게 열려 있었고, 흰 수의 아래에서 죽음도 사랑도 없이, 잃어버린 욕망을 행위적으로 덧없이 재현하려 애쓰며, 서로의 몸을 꽉 쥐고서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 혹시나 피어날지 모를 찰나의 쾌락을 감지하고자 몸부림쳤다. 흰 장막과 구덩이는 사태로부터 우리를 충실히 감추고 부정한 관계를 벌일 보금자리를 제공했다. 무엇보다도 그것들은 시선이 없었다. 그것들은 우리를 보지 않았다. 만일 엉겨 붙은 두 육신이 하늘에 노출되어 있었다면 비록 검은 허공일지라도 우리는 금세 하던 짓을 멈추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를 관조하는 한 시선이 녹아들었을 테니까. 천에 어느 생존자의 전언이라도 적혀 있었다면 그것 역시 시선을 가졌을 테다. 하지만 그것은 희기만 하지 아무런 의미도 우리에게 전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우리를 응시하는 시선이 없는 이상, 그럼에도 망각할 수 없는 수치심을 도리어 연료 삼아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냉골같이 차가운 적신이 내 이성을 마비시켰다. 이제 그는 내가 욕망하는 죽음이 성애적으로 현현한 실체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의 몸을 애타게 물고 늘어지며 몸부림칠수록 그 행위가 지시하는 것과는 더욱 멀어졌으나 욕망은 불가능 속에서 더욱 비대해졌다. 어찌나 큰지 그것을 전부 쏟아 낸다면 그를 능히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야만 훼손된 그의 시신에서 내가 원하던 죽음이 비어져 나올 듯했다. 그가 갑자기 나를 더듬거리던 손길을 멈추고 〈그만!〉이라고 읊조리며 단호하게 나를 밀쳐 내지 않았더라면 끝내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목소리가 누구였는지 알아?」

방금까지 성애의 몸부림을 쳤음에도 그의 목소리는 흥분이나 헐떡거림이 전혀 없었다. 나는 그의 물음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구덩이 밖으로 차츰 바람이 거세지며 휭휭 울었다. 그는 내게 깔린 채로 가만히 있었다. 이윽고 그가 다시 내게 요구했다. 「그 목소리가 누구였는지 알아내.」 침묵이 흘렀다. 바람도 잠시 울기를 멈추고 소리가 난 구덩이를 미심쩍게 내려다보는 듯했다. 나는 그에게서 떨어져 나와 내 몸이 그의 몸에 조금이라도 닿게 하지 않으려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얼마간 기억을 더듬은 끝에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도 그 목소리가 누군지 알고 싶었으니까. 근래 내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몰라서 꺼림칙했던 기억은 오직 하나니까. 내가 단번에 알아듣지 못한 연유는 그 기억을 심금 깊숙이 봉인하고 그런 일은 없었다는 듯이 태연스레 동반자를 반추하다 보니 나 또한 내 거짓말에 넘어가서였다. 「그 목소리는 저 나라의 말투였어.」 그가 친절히도 내게 일러 주었다. 〈귀도 참 밝군.〉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바람이 다시 억세지며 구덩이 깊숙이까지 우악한 손길을 내뻗은 탓에 우리는 다시금 날아오르려는 듯 펄럭이는 천을 양손으로 꼭 붙잡아야 했다. 내 시간 감각이 여전히 잘 들어맞는다면, 그 목소리를 들은 건 어젯밤 이 시간쯤이었다. 나는 그때만 해도 가지고 있던 휴대 전화기로 동반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속에서 들린 목소리의 주인이 그가 아닌 건 확실했다. 그러나 내가 아는 누군가라고 특정할 정보가 부족했다. 그 목소리는 〈어보쇼〉라고 한 마디만 말했다. 교과서의 반도 통일을 다루는 장에서 저 나라 사람 간의 대화문 예시로나 접할 법한 어투였고, 그들이 정말로 그렇게 말하는지는 국경이 단절된 상황에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것은 나를 속이고자 짐짓 꾸며 낸 억양일 수도 있었다. 하루도 안 되어 저 나라 군인이 수도로 진군하여 민간인의 휴대 전화기를 입수한다는 건 쉬이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데 여기서 진실은 어디에 있나? 사태가 자아낸 이 폐허와 정보의 단절에서 알아낼 수 있는 진실이 있나? 사태는 허위로 말미암았고 또한 모든 진실이 허위의 양태를 띠었다.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진실이든 허위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어제부터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다른 말을 했고, 그 하나하나가 다 내게는 버거운 진실, 혹은 거짓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 말들이 다른 누가 아니라 그들 자신이 영향받는 자연적인 사실이었다. 사태는 그들의 서로 배치되는 주장을 모두 포용했다. 그들 말에 따라 사태는 달라졌다. 사태는 눈앞에 발생했으면서 또한 애당초 지어낸 흑색선전에 지나지 않았고 동시에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상례가 되었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나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인데, 그걸 알고자 함은 동반자와 부산물과 재회해 자초지종을 물어야 한다는 의미인 까닭이다. 한데 이것도 단독자의 술수 아니던가? 그는 나의 잃어버린 대상을 향한 허구적 글쓰기의 출발 지점을 내게 짚어 준 것이다. 방금까지 나의 부정한 행위에 동참하고서는, 내가 배신한 이들을 반추하도록 이렇게 글쓰기를 강요하는 게 그의 책무라면, 나는 더 큰 배신을 하지 않기 위해 더욱더 아무것도 쓰지 말아야 한다. 그는 이제 아까 서로의 뒤엉킴도 나를 애태우기 위한 술수였다는 듯 다시금 〈써야 해〉라고 거듭 말했다. 그때 흰 장막이 세차게 펄럭이는 통에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천 자락을 잠시 놓쳤고, 내게 깃든 푸른 기가 거기에 묻은 걸 보았다. 그러니까 내게는 글을 쓸 때 필수적인 백지와 필기구가 모두 있는 셈이었다. 그 사실은 나를 분노케 했다. 나는 우리로부터 다시 떠나가려는 천을 더는 붙잡지 않고 그가 고군분투하게 내버려두었다. 그는 마치 뒤엉겨 싸우는 듯 양발까지 이용해 그것을 붙안았다.

흰 장막이 구겨지면서 드러난 구덩이 바깥은 여전히 암중이었다. 지금 주어진 절대적인 흑과 백, 무에 가까운 그 두 배경은 내가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상상의 원동력이었다. 눈에 보이는 대상이 없고 그렇기에 관념적으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두려움이 나를 충동질하여 공백이라 믿어지는 배경을 상상으로 메우게 했다. 흑과 백이 진정으로 비어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내 시선은 단일한 색이 더는 균일하기를 멈추고 명암을 통해 원근감을 지니길 바랐다. 상상이 그 바람을 들어주었다. 상상 속에서 배경에 음영이 지면서 시선에 구도가 생겼고, 그럼으로써 한 굴곡이, 그러니까 한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이 생겨났다. 그자는 내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처럼 보이는 방랑자였다. 만일 어둠 속에서 식별되는 사물이 있고 백지에 누가 앞서서 글을 한 자라도 적어 놓았다면, 애당초 두려움과 그로 인하여 촉발되는 상상도 존재하지 않았을 테다. 두말할 것도 없이 상상 속의 나그네도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현실을 은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 시선은 시시로 무력했고, 무지했고, 편집적으로 세계의 빈 부분을 파고들어 시야의 전부로 받아들이고는 했다. 모든 장소와 사물 그리고 사람은 빈 부분을 지니기 마련이었다.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 지니는 공허함을 피하려 하면 할수록 그것은 더 커졌다. 그러자 상상이 가위처럼 나를 짓눌렀다. 예컨대 한 사람이 짓는 풍부한 여러 표정은 내가 그자에게 도달할 수 있는 수많은 길을 제시했지만, 내게는 아무 감흥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 길이 너무도 명명백백했기에 간교한 덫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고 마치 낯 자체가 빈 듯한 무표정, 거기에 내가 남몰래 그에게 틈입했다가 도로 도망쳐 나올 수 있는 한 상상 속의 샛길이 있었다. 그 길은 차마 상대에게 털어놓기에는 지나치게 음침한 구석이 있었고, 또한 내 평판과 그의 안위를 치명적으로 훼손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은 상상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상상을 허구적으로 실체화한 것이 바로 나의 소설이었다. 쓰면서 나는 그 상대에게 들킬까 봐 두려워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나는 써야만 했다. 그것이 그가 내게 짓는 무표정이 자아내는 공허로부터 도망치는 한 방법이었으니까. 무엇보다도 소설가인 내게는 백지의 공허를 메워야 할 상상이 필요했으니까. 그리하여 그는 쓰였고, 남모르게 이 나라의 공중을 향하여 공표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책을 모두가 읽었다든지 그에게 이르는 비열한 길을 독자 누구나 알아차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 길은 나에게만 보였고, 내가 보는 것을 남들이 보려면 나만이 간직한 비밀스러운 암호 체계가 필요했다. 하지만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단서 역시 본문에 적혀 있었고, 어쩌면 내 책에 의구심을 갖고 낱낱이 파헤치려는 자가 있었다면 금세 탄로가 날 터였다. 여태까지 그런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책을 읽은 소수의 독자는 실제의 내가 걸을 수 없었던 상상의 샛길을 걷는 가상의 나그네 화자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고, 마치 사회 부적응자처럼 보이는 그가 겪는,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 착란에 기가 질려 작중에 어떤 길이 있음을, 그 길의 끝에 작가는 알지만 그들은 모르는 한 사람이 있음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기야 그 사실은 나나 비밀스럽게 재현된 상대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내 책을 읽지 않기를, 설령 읽게 되더라도 본문에서 드러나는 모종의 암시를 알아채지 못하기를 바랐다. 염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다 보면 마침내는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조만간 접하기를 꿈꾸게 되기도 했다. 아직 죽기에 이른 나이의 그가 자살했으면. 자살해서 더는 내게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없었으면. 말할 것도 없이 그것들은 죄다 망상이었다. 그러나 내 심중에는 진실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허위였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쓰는 행위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대로 작가의 양심을 발현하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어긋나고 멀어지는 범죄 행위였다. 글쓰기는 죄를 짓는 일이었다. 절필이야말로 양심적이고, 나아가 어둠과 백지가 부여하는 존재의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견디며 묵묵히 걷는 수도자의 길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게는 그동안 편집적으로 들여다봐야만 마주할 수 있었던 어떤 어둠과 백지보다도 절대적인 암흑과 그 암중에도 빛을 발하는 흰 백지가 주어져 있었다. 단독자가 원한 것은 결국 내가 글을 씀으로써 동반자와 부산물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그들의 죽음을 기원하게 되는 관계의 파국 아닐까? 어쩌면 그럼으로써 나는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단독자는 자신에게서 벗어나려는 장막과의 사투에서 기어코 승리하여 그것이 사절지만 한 크기가 될 때까지 차곡차곡 접었다. 나는 다시 똑바로 누워 정면을 멀거니 보고 있었고, 그는 죽음을 박차고 깨어난 시신처럼 앉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나는 여전히 힘을 비축하고 있었으나 반면 그는 남모르게 한계에 다다랐음을. 그는 나를 눈물겨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눈물샘은 진작에 말라붙었고, 미소는 섬뜩하게 벌어진 검은 구멍이었다. 「시간이 다 된 것 같아.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단지 네가 뭐라도 한다면 나는 더는 바랄 게 없겠어. 그렇지만 증명해야 해. 네가 한때 여기 있었음을, 너에게도 동반자와 그 아이가 있었음을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엄밀하고도 강력한 방식으로 증명해야 해. 나는 이미 네가 글을 쓰는 모습이 눈앞에 선연히 보이는 듯해. 나는 그 환영이 실제로 일어나도록 너를 다그칠 수밖에 없어. 그렇게 된다면 나는 너를 구덩이에 둔 채로 흙을 덮어 장사를 치를 용의가 있어. 네가 원하는 게 그것이라면. 반대로 나를 구덩이에 묻고 네 갈 길을 떠나도 나는 행복할 거야. 나는 최선을 다한 거야. 너만을 위해 내 삶을 바쳤던 거고, 따라서 대가를 너에게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야. 네가 누구인지 아무도, 심지어 너 자신조차도 모르지만 나는 네가 누구인지 알아. 너는 나의 부속물이야. 이제야 너를 되찾았고, 나는 끝을 볼 거야.」 말하는 동안 그는 곱게 접힌 흰 천을, 이미 그의 푸른 손때가 덕지덕지 묻어 더는 깨끗하다고 할 수 없는 그것을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는 듯, 어쩌면 그걸 내 얼굴 위에 대고 짓눌러 질식시키고 싶은 것처럼 꽉 움켜쥐고 있었다. 바람이 맹렬하게 윙윙거렸다. 그가 흰 천을 쥔 두 손을 뻗어 소중한 선물처럼 내게 내밀었다. 나는 상반신을 일으켜 앉아 그것을 받아 들고서 생각했다. 〈어쩌면, 그래, 가능한 일이야.〉 나는 쓸 힘이 있었다. 비록 자발적이지는 않았어도 되도록 침묵을 이어 간 덕에 글을 쓸 정도로 원기를 회복한 건지도 모른다. 나는 흰 천을 다시 펼쳤다가 도로 접으면서 비교적 깨끗한 면을 맨 위로 두었다. 이제 그것은 제법 한 뭉치의 백지처럼 여겨졌다. 그는 일어서서 내가 편한 자세로 글을 쓸 수 있도록 자리를 최대한 넘겨줬지만, 감시자처럼 내 일거수일투족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나는 머뭇거렸다. 동반자와 부산물에 관하여 써야 했으나, 그들이 부재한 자리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차라리 곁에 있는 단독자를 이용하면 일이 수월하게 풀릴 성싶었다. 그렇게 하면 나에게나 그에게나 의미 있는 글쓰기가 될 터였다. 거기다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주는 치환의 마법을 나는 꽤 익숙하게 허구적으로 부릴 줄 알았다. 그러니까 나는 그에게서 익숙하게 나 자신을 알아보고, 그다음으로는 동반자를 알아보고, 마침내는 부산물을 알아보았다고 쓸 수 있었다. 물론 이는 기만이었다. 하지만 속임수만으로도 빈 종이를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손가락으로 뭐라 써 내려갔다. 한동안 내내 글을 썼지만, 하물며 여러 문장이 이어졌음에도, 내 손길에 더럽혀진 천에는 단 한 문장만이 알아보기 힘들게 뭉개져 적혀 있었다. 한 문장을 쓰고 나면 나는 쓰인 그 글을 폐기하듯 도로 지웠고, 그런데 모순되게도, 지워진 글과 맥락적으로 이어지는 뒷말을 그다음 문장으로 썼다가 다시금 지워 내고 또 이미 사라진 직전과 이어지는 내용을 써내길 반복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덧없이 썼다가 손바닥으로 지우며 한 문장만 남기다 보니 천은 알아볼 길 없이 푸르뎅뎅하게 오염되었고, 단지 내가 심사숙고하는 줄로 알고 가만히 지켜만 보던 그가 뺏어 들었을 때는 꽤 많은 면이 재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도대체 뭐라고 쓴 거야. 뭘 쓰고 있었던 거야. 읽을 수가 없잖아. 또 나를 속이는 거야?」 그가 내게 원고 더미를 집어던지면서 캐물었을 때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자신이 쓴 글을 읽을 수 없었고, 쓰던 와중에도 내가 뭘 지어내려고 했는지 아무 의식이 없었다. 의도적으로 태업을 했던 거라면 억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이어지는 다음 문장에 지난 글이 지녔던 의미와 정보를 모두 완전히 담아낼 수 있었던 것처럼 여겨져 계속해서 한 문장을 갱신하다가 종국에는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나는 그제야 자신의 불능 상태를 깨닫고 성이 치밀어 올라 벌떡 일어나 더러운 천을 힘껏 공중으로 집어 던졌다.

그러자 그것은 마치 한 권의 책이 지니는 모든 면을 보여 주듯, 아니면 접혀 있을 때는 알 수 없었던 숨겨진 전언을 우리에게 내보이듯 돌풍으로 인해 단번에 활짝 펼쳐지면서 잠시 구덩이 위에 머물렀다가 곧이어 바람을 따라 검은 하늘 저 멀리 힘껏 내던져져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조차도 돌이킬 수 없이 단숨에 그것이 사라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우리가 잠깐 소유했던 유일한 사물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이내 그는 내 쪽을 돌아보았지만 두 다리는 여전히 미련을 거두지 못하고 그 자리에 못 박혀 있었다. 그는 기이하게 비틀린 몸으로 침묵했다. 텅 비고 경악에 찬 침묵이었다. 절망한 그가 나를 공격할 거라 짐작하고 뒷걸음치다가 구덩이의 수직면에 뒤통수가 닿았다. 암중에 눈이 먼 나는 여태껏 구덩이가 그 정도나 깊은 줄 모르고 있었다. 그가 내 쪽으로 몸을 완전히 돌렸다. 그런데 그는 나를 보지 않았다. 내 머리 위를 올려다보는 그의 낯에 희부윰한 기가 돌면서 반대로 푸른 기운이 벗겨진 피부 아래로 서서히 침하했다. 그가 선 쪽의 구덩이도 마찬가지로 흐릿하게 드러나 고르지 못하게 파 내려간 땅의 절단면과 흙이 지닌 거친 입자들이 보였다. 헐벗은 구덩이가, 그 투박한 직방형의 윤곽이 우리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채로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이 우리를 밖으로 끄집어내려는 듯 구덩이 아래까지 내려와 사납게 할퀴어 댔다. 지금이 봄이니만큼 아마도 서풍일 것이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구름이 두껍게 깔려 균질하게 검기만 하던 상공 서편으로 짙은 남색 밤하늘이 차츰차츰 드러나면서 수많은 별이 총총하게 빛났다. 남쪽 하늘 한가운데쯤에는 달로 짐작되는, 전에 본 적 없이 커다랗고 둥근 광원이 먹색 구름에 불투명하게 가려져 은은한 빛살을 지상으로 내려보냈다.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사위가 분간할 지경 없이 검기만 할 때보다도 전의를 상실했다. 어떤 안도감이, 더는 발버둥 칠 필요 없다는 생각이 지친 몸을 덮쳤다. 세상은 분간할 수 있든 없든 그대로라는 게 명약관화해졌다. 산은 여전히 잿더미였고, 지상이 회복할 길 없이 큰 상처를 입었음에도 하늘은 여전히, 아니 모든 인공 불빛이 꺼진 덕에 더 아름답게 빛났다. 우리는 남은 힘을 다해 버둥거리면서 빈 묘혈을 기어올라 빠져나왔다. 아직 사위는 어둑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그 미미한 별빛이 우리를 마비시켰다. 우리 내면에서 이어지던 의지 한 가닥이 끊어졌다.

「네가 옳아.」

그가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 말하는 걸 나는 가만히 수긍했다. 우리는 빛을 피해 달아나는 갑충처럼 아직 채 밝혀지지 않은 동쪽으로 허정허정 걸어갔다. 기세가 꺾인 그에게 내 계획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내게서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아 보였다. 앞으로는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내 쪽에서 뭐든 시도해서 그를 추동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어떤 낌새라도 보일라치면 그는 힘없이 쓰러져서 몸을 뒤집었고, 잿더미와 분간이 되지 않을 때까지 바닥을 뒹굴었다. 그러니까 그에게도 아직 표현할 힘은 남은 셈이었다. 나는 그가 발작을 멈추길 기다렸으며, 사실 그의 고통에 공감하기에는 나 역시 소진되어 있었다. 나는 부지불식간에 자살하려면 삶을 무릅쓴 열정이 필요하다고 여기지 않았던가? 그렇지 않았다. 열정은 언제나 줄곧 생으로 향했다. 반면 지금은 아무 때나 죽음이 사형 집행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무력하게 무릎 꿇고 목을 내민 우리 둘을 처형할 것만 같았다. 물론 죽음은 그렇게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단독자의 말대로 글을 곧이곧대로 썼더라면 나는 열정과 구분되지 않는 강박에 사로잡혀 예정된 죽음을 까마득하게 잊었을 터였다. 그렇지만 내게는, 결국 그에게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계획이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자신과 그의 사형 집행인이었다. 마치 나의 죽음에 나 자신이 관련 없다는 듯, 나는 아무런 열정 없이 스스로와 그를 형장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나는 숯이 된 그루터기들을 피해 가며 재가 깔린 산면 위로 불거진 편마암 줄기를 따라 걸었다. 「눈을 감아.」 내가 말하자 그는 그렇게 했다. 나는 그의 거칠고 차가운 양손을 한 손에 쥐고 앞장섰다. 그는 믿을 수 없이 고분고분했다. 진정 내가 무얼 하려는지 그가 알기는 할까? 모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생각할 새 없이 그는 나와 함께 저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죽기 전 지난 생을 반추하느라 머뭇거릴 시간도 아까웠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작 죽지 못한 것은 매상 머뭇거려서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눈 감은 그를 산면 위에 불쑥 융기한, 어떤 형상을 갖추다가 그대로 굳어 버린 듯한 몰개성한 바위 위로 이끄는 데 생각보다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우리는 두어 번 굴러떨어졌고, 그때마다 나는 〈괜찮아.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라며 그를 독려했다. 기실 그의 운명은 전적으로 내 수중에 달려 있는데도. 결국에는 내가 먼저 오른 뒤에,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머리 위로 내뻗은 그를 안간힘을 써서 끌어올려야 했다.

그 뒤로는 완만하게 높아지는 바위 능선이 이어졌다. 나는 호송하듯이 그의 양손을 쥐고 조심조심 그 위를 걸었다. 덜컥 겁이 날 만큼 순조로웠다. 이제 우리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은은한 회색 바위 아래로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정과 진회색이 잔잔하게 뒤섞여 있었다. 내려다볼수록 어쩐지 물결처럼 흐르는 듯도 했고, 더할 나위 없이 깊은 심연 같아 보이기도, 반대로 암중에 잠겼을 뿐 너른 평지가 바로 아래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스산한 바람 소리만이 들렸다. 서풍이 마치 월광이 완연히 드러나기 전에 우리가 끝장을 보기를 원하는 듯, 우리의 납덩이와 같이 무겁고 늪처럼 푹푹 꺼지는 걸음에 채찍질을 가하며 이름 모를 바위 봉우리를 향해 밀어냈다. 문득 돌아볼 때마다 단독자는 충실하게도 눈을 감고 있었고, 아무런 꿍꿍이 없이 순응적인 태도로 나를 따르는 죽음 자체로 느껴졌다. 정말이지 그는 걸어 다니는 시신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나 또한 매한가지일 것이다. 그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이게 죽음이라면, 이미 우리가 죽은 거라면 어떡하지? 그렇더라도 아예 움직이지도 못하도록 온몸을 산산이 부수는 게 낫다는 것이 내 결론이었다. 이제 나 또한 눈을 감았다. 꼭 가장 높이까지 이를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능선은 완만하고, 오를 턱 없이 높은 봉우리가 어둑한 시야 끝에 솟아 있지도 않았다. 죽음을 향한 길의 끝은 예감할 새 없이 찾아올 것이다. 더는 발 디딜 곳이 없거나 능선 위에서 미끄러지는 순간 우리는 산 아래로 떨어질 터였다. 죽음에 도달하기까지의 거리를 가늠하며 더는 뭘 회고하고 싶지 않았다. 동반자와 부산물에 대해서도. 죽음은 그들과 영원히 작별하는 것이다. 그들이 이미 죽었더라도 마찬가지다. 내게 각별한 모두가 죽음으로써 다 같이 폐허의 일부가 되더라도 우리는 하나 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인지할 수 없는 개별적인 무생물로 화할 따름이다. 보이는 게 없음에도 이제 긴장감은 없고 자못 무료하기까지 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겠다. 내 한 손에 잡힌 단독자의 양손이 덜덜 떨렸다. 이제 곧 떨어질 거라는 걸 예감했나? 아니면 나 모르게 눈을 뜨고 뭘 봤던 것일까?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고분고분히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언제나 그게 견딜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바보같이 함께하려는 것 말이다. 그때 눈꺼풀로 덮여 컴컴한 시야가 휘황찬란한 태양이 뜬 듯 푸른색으로 밝혀졌다. 나는 충동적으로 그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몸이 아래로 기울었다. 그가 내 손을 곧장 움켜쥐었으나, 내 무게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는 함께 저 아래로 추락했다. 마치 우리 자신이 저 아래로 부는 돌풍이 된 듯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뒤집힌 우리의 머리가 어떤 바닥에 닿았다. 아주 찰나에 불과한 저항을 뚫고 우리는 더 아래로 파고들었으나, 도끼로 머리를 쪼개는 듯한 강한 충격과 함께 엄습하는 굉음 속에서 급격히 속도가 줄어들다가 마침내는 완강한 부력에 부딪혀 멈추어 도리어 위로 솟아올랐다. 어느새 그의 손을 놓친 나는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고 사지를 허우적거렸다. 자꾸만 입으로 짠물이 들이켜졌다. 허우적대던 중에 누가 내 한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나는 그를 제대로 올려다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팔에 아주 미약하게 감도는 푸른 기로 그가 단독자라는 걸 알았다. 그는 나를 끌어올리지는 못했지만 계속 놓치지 않았고, 초인적인 힘을 낸 끝에 나는 그의 팔을 양손으로 부여잡을 수 있었다. 그는 그물에 엉킨 주황색 원통형 부표들에 매달려 있었다. 곧이어 나 또한 거기에 옮겨 매달려 한숨 돌렸을 때 그가 한 손으로 위를 가리켰다. 멀지 않은 곳에 우리가 떨어진 산이 바다에 고립된 불모의 바위섬처럼 물 위에 비죽이 솟아 있었다. 그리고 바로 위의 밤하늘 중앙에는 본래보다 대여섯 배는 큰 달이, 눈부시도록 부옇고 희게 빛나 월면의 해골 같은 무늬마저 지워진 순백색의 월구가 저 아래 온갖 인공물의 잔해들과 형형색색의 기름띠로 뒤덮인 수면을 가로질러 자신에게 이르는 빛의 대로를 바다 위에 닦아 놓고 우리를 응시했다. 이제 내 주먹만 해진 달은 보름을 하루 앞두고 왼쪽 가장자리가 살짝 갸름하게 깎여 있었다. 한데 정오의 태양처럼 강렬한 달빛에 가려져 별들마저 자취를 감추었음에도, 구름이 가신 밤하늘은 빛을 반사할 대기 자체가 사라진 듯한 암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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