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장편소설

동반자

  • 작가 김갑용
  • 발행 2026.06.19
  • 장르 일반
김갑용

김갑용

2016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으로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토성의 겨울』이 있으며, 2022년부터 소전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장편소설 『냉담』을 출간하였다. 두 번째 장편소설 『동반자』를 <월간 장편소설>에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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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떴다. 산책할 만한 날씨거나 아직 그래도 살고 싶은 세상인지를 눈으로 확인하려는 게 아니라 내 시각이 제 기능을 하는지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나는 누워 있는 성싶었다. 잿빛 연기가 불균질하게 드리워진 밤하늘은 지상에서 피워 올린 장대한 불꽃으로 인하여 적갈색으로 물들었고, 남서쪽 한구석에 난 흰 구멍 같은 월구가 언뜻언뜻 드러나 저 아래의 불지옥을 엿보다가 이내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듯 은밀히 모습을 감추었다. 몸이 불살라졌는데도 녹아 버린 코에서 탄내가 맡아지고, 떨어져 나간 귀에서 나뭇가지가 타닥거리며 타는 소리가 들리며, 안구가 납작하게 말라붙었는지 재를 함유한 매운 공기가 갈퀴손으로 눈꺼풀 속 깊숙이까지 할퀴는 게 느껴지는 와중에도 하늘에 자욱한 연기 층 틈바구니로 먹색 구름이 심상찮게 몰려드는 광경이 뚜렷하게 분간되어 보였다. 내가 보이기만 하는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고 아직도 볼 수 있는 주체임이 신기한 현상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다른 부분은 내가 예상한 대로다. 고통스럽다. 무엇이든 능가하고, 부정하고, 불가한 통증이다. 나는 아리다고 생각하나, 실상은 아픔의 범주를 넘어선다. 나는 구워졌다. 살아 있는 고기구이로서 쓰라리게 아프지만 내가 감지하는 통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고통이 나를 산 채로 찢는데도 울부짖지 못한다. 매연으로 목구멍까지 훈연되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고통이 표현을 집어삼킬 정도다. 〈당신은 병약한 사람이군요〉라고 나는 속으로 내게 말을 건넸다. 내 존재를 타자화하려는 얕은 잔꾀인데 전연 통하지 않는다. 〈그는 나다.〉 온몸이 지금을 겪는 건 〈나〉라고 외쳐 댔다. 기이한 일이다. 죽음으로 진작 끝나야 했을 의식을 끝끝내 부여잡고 있다는 게. 아직 내가 목도해야 할 새로운 재난이 남아 있다는 듯이. 이것이 살아남음인가? 아니다. 나는 죽었다. 내가 특별히 살아남은 게 아니라, 죽었다고 끝이 아닌 것이다. 한편으로 극한의 고통 가운데서도 그에 견주었을 때 통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증상들이, 그러니까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뱃멀미나 숙취와 같은 피로감이 동반된다. 내가 눈만 뜨고 움직이지 않는 연유는 그러지 못해서가 아니라 몸살로 인한 권태감 탓이다. 한밤을 넘어선 시각에 소설을 탈고했을 때처럼 모든 것을 소진한 인간 같다. 〈나는 지금까지 글을 썼어.〉 어둠을 더듬거리며 안방으로 돌아간 나는 침대에 잠든 동반자에게 마치 제 본성을 억제하지 못하여 저지른 살인을 고백하듯 속절없이 중얼거린다. 그러면 잠귀가 예민한 그가 깨서 내게 〈고생했어〉라고 중얼중얼 격려하는데, 나에게 한 편의 글을 완성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상상도 못 하기에 그리 쉽게 말하는 거라고 나는 남몰래 분을 삭인다. 말하자면, 오히려 그것은 공허할 만치 무의미하다. 그렇기에 압도적인 절망이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고, 해결된 것도 없다. 나는 육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아무런 무게도 감각도 없이 그의 곁에 눕는다. 머릿속에서는 아까까지 쓰던 문장과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중이다. 아니다. 게으른 나는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지 않았다. 불에 타 육신이 소진되는 한 인간으로서 날개 없이 추락하며 가까워지는 지상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나 본래 내가 있었던 바위산으로 도로 곤두박질치기 전까지 나는 황홀하도록 자유로이 허공을 활강하며 드넓게 내다보는 한 시선이기도 했다. 지상의 누구도 내가 일신으로 하늘 높이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리라는 게 애석할 따름이나, 수도에 펼쳐진 폐허의 정경에 비하면 그깟 잔재주는 아무것도 아니기는 했다. 이 살풍경은 그간 글쓰기에서 어떻게 그 모든 것을 불태우기 위한 거대한 폭발을 마련하고 초토화 속에서 어떤 교훈이 살아남게 할지에 관한 한 방안이다. 또한 이 나라의 수도라는 개념이 행정적인 구획을 넘어서 광의적으로 확산된 드넓은 권역임을 고려하였을 때 불시의 습격을 가한 저 나라에서도 한 번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음이다. 세찬 섬광이 수도의 사방에서 수차례 연이어 번뜩였다. 그때마다 한 시야에 두 시차가 존재하는 듯 한밤중에 지평선만이 대낮처럼 환해졌다가 다시금 어둑해지면서 광원이 사라진 자리를 곧 장대한 불구름이 차지하였다. 폭압으로 인한 와류에 휘말린 불기둥이 철골만 남은 마천루를 대신하여 드높이 솟아올랐고 반파된 건물의 창 칸칸이 열화가 상반신을 내밀고 감방에 갇힌 분노한 죄수같이 소요를 일으켰다. 도심 속의 사람들은 너무 조그마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보지 못했을 뿐 설령 그들이 바깥으로 피신하고 있었더라도 여기저기서 성냥개비처럼 쓰러진 전신주와 가로수 그리고 검게 전소되어 짜부라진 차량들로 이루어진 혼잡 때문에 화마에 길을 양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불이 모든 이의 개성을 앗아 갔다. 이제 사람들은 재산으로 저 자신을 돋보이려 애쓰고 특별히 아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잔해만 남은 주택 터가 그 점을 특히 강조한다. 우리는 거름이 되었고, 이 봄은 잔해 속에서 저간 우리가 못 보았던 새로운 꽃들을 피워 낼 것이다. 이러한 잔학한 상실에 어떠한 슬픔도, 공멸을 유발한 자들과 저 나라에 아무런 유감도 없다. 어쩌면 후세의 사람들은 애통함을 느낄 테다. 그들은 산의 심곡에서 내 유골을 발굴하여 눈물을 글썽이면서 다시는 예외 사태가 없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을 텐데, 나는 누가 동정할 만한 그런 인물이 아니다. 나는 생전 벌어진 이 사태 안에서 다름 아니라 공모자라는 위치와 역할을 차지했다. 그것은 파괴할 수 없이 엄존하는 지위며, 나는 그렇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일상적으로 타자화를 자행하고 오늘날로부터 스스로의 영향력을 거둬들임으로써 국민의 주권을 행사했다. 나는 이 나라의 판윤이고 저 나라의 수령이다. 나는 그다. 그들은 우리다. 서로 간에 더는 비애는 없다. 나에게 오늘은 인과응보다. 〈이것은 엄청난 교훈이다〉라고, 화염 옷을 입은 바위산을 향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가까워지던 나는 강조하여 사고하면서 불붙은 소나무의 우듬지에 잠시 내걸렸다가 떨어져 불판처럼 달궈진 판상 암석에 내팽개쳐졌다.

이 나라 민중의 고통을 향한 내 공감을 저해하는 주요한 원인이 나의 신체적 상태임은 자명하다. 만신창이인 몸은 나 자신밖에 모르고 타인을 지각할 수 없다. 몸의 지속적인 거부에 나는 벌써 익숙해져 자신 이외의 사람들을 망각한 듯하다. 나기로부터 혼자였던 것 같고, 온전히 저 자신이 점유했을 1인분의 생애와 고독마저도 내게 버거웠다는 착각이 든다. 그런데 죽음은 없다고 누가 모두에게 소리치지 않았나? 인제 와 그 말은 진실하게 기억된다. 죽음마저 거부하는 몸이다. 광적인 허기와 갈증이 이는데 육신이 무얼 마시거나 섭취하는 것을 배겨 낼지 자신이 없다. 도처의 화재로 산소가 태워지면서 숨쉬기조차 버겁다. 내 선명한 의식이 증오스러울 지경으로, 정신이 여태껏 소멸하지 않은 이상 움직여서 뭐든지 해야 한다고, 살아 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까닭이다. 그것은 강박을 넘어선, 자신을 향한 생의 강요고, 그런데 그 생명이 내 안에 존재하는지, 아니면, 죽음으로 넘어가는 찰나에 내지른 단말마의 반향을 살아 있음으로 착각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나는 내 모습을 보고 싶다. 살아 있다는 징표가 외양에 박혔는지 확인하고픈 욕망이 인다. 거울이 있다면, 나를 비춰볼 수 있는 물웅덩이라도 있다면, 내 꼴이 어떠한지 진솔하게 털어놔 줄 상대가 있다면 좋겠다고는 바라지 않는다. 지금의 환경에서 그런 걸 바랄 계제가 아니어서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자신을 비추어 본다는 건 나와 구별되는 다른 타인이 있다는 걸 받아들임을 의미하는데, 현재 상태에서는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기도 벅차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모든 것이고 모든 게 나라는 합일화된 자아를 뜻하는 건 아닐 테다. 내 열상 입은 몸에 덕지덕지 묻은 재가, 그게 설령 피부를 연소하여 얻어진 것일지라도 나 자신이 아님을 안다. 재에는 고통이 없으나 나에게는 고통이 있다. 재는 의식하지 않는다. 나는 의식한다. 자신의 신체 상태가 어떠한지 상상할 수 있다. 그게 공상이 아님을 뒷받침해 줄 학습된 지식이 있으며 아직 그것만은 망각하지 않았다. 내 눈동자는 타버렸을 것이다. 검은자위가 흰자보다 더 많은 열을 흡수하는 까닭으로 가까이서 신체가 버텨 낼 수 없는 빛과 폭발을 견뎌 낸 자는 죄다 그러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보고 있다. 어쩌면 내가 의식 속에 갇혀 환시를 겪는지도 모를 일이다. 보이는 건 허상일지라도 다른 감각은 가짜가 아닐 터다. 넝마가 된 천 쪼가리가 피부에 들러붙어 바늘처럼 찔러 대는 게 느껴진다. 피부는 극심한 화상으로 인하여 썩은 나무껍질처럼 세로로 가늘고 길게 벗겨지고 있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그렇고 나쁘다면 피부라는 게 없을 수도 있다. 온전한 피부가 있다 하더라도 피하에 걷잡을 수 없는 반상 출혈이 치명적으로 번져 나가는 중일 테다. 내 짧은 머리카락은 불에 모조리 그슬렸거나, 그게 아니라면 복숭아를 손으로 쓸어 넘길 때 쉬이 솜털이 빠지듯 작은 손길에도 힘없이 뽑혀 나갈 것이다. 시곗줄이 녹아 붙은 왼 손목이 조여 와 끊어질 것만 같다. 입은 헐었고 이는 짓밟힌 옥수수에서 낟알이 튕겨 나가듯 우수수 빠졌을 것이며, 얼마 안 지나 분홍색 종양이 온몸 여기저기서 부풀어 오를 터다. 이 증상들은 내가 살아남았다는 가정에 의거한 것이다. 말할 바도 없이 증상의 단순한 나열에 지나지 않는 그것이 바로 나다. 또한 피폭된 다른 수많은 자와 구별되지 않는 나다.

그런 내게도 삶이 있었다. 나에게는 동반자가 있었다. 나는 동반자를 회억하는데, 그리 소중한 추억은 아니다. 우리는 함께 살았다. 우리에게는 부산물이 있었다. 함께한 생활이 먼 삶처럼 여겨진다. 오늘은 언제인가? 마치 여러 날 동안 의식이 없었던 것 같지만 사태가 이어지는 형세를 보아서는 오늘은 기껏해야 내일, 그러니까 사태가 발생한 그다음 날밖에 되지 않을 테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있었는데, 그는 출근하고, 부산물은 집에 남고, 마지막으로 내가 보잘것없는 글재주로 돈을 벌고자 밖으로 나섰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는 후회가 든다. 왜 하필 이런 날에 우리는 부산물을 두고 집 밖으로 나섰던 걸까? 그다음 기억에서 나는 누군가를, 그의 양 발목을 두 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놓치면 안 된다는 듯이, 불티가 따갑도록 내게 쇄도하는 허공 가운데서 강박적으로 그를 붙잡았다. 나는 감히 그를 올려다볼 수 없었으나,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는 내가 함께 살았던 동반자였을 것이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것은 이치상 틀리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살리려고, 혹은 따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붙든 이가 동반자가 아닐 리 없다. 우리는 잠시 떨어졌지만 다시금 재회하여 함께 최후를 맞이한 걸 테다. 부산물은? 아무도 데려가지 않았으니까 집에 있겠지. 우리가 살던 다세대 주택은 세찬 바람에도 낡은 신음을 흘리는 고택이니 지금쯤이면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잔해 신세일 것이다. 부산물은 어찌 되었을까? 나는 집에서 멀리 나섰기에 부산물을 구하러 돌아갈 새가 나지 않았다. 어쩌면 동반자는 집에 들렀을 수도 있으니, 그에게 물어야 할 일이다. 한데 지금 내 손에 무얼 쥔 느낌이 없는 걸 보아 아무래도 나는 그를 놓쳤다. 산으로 곤두박질치는 와중에 외따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함께해야 하는 사람을 상실했다는 사실에도 아무런 슬픔은 없다. 벌어질 수 있는 일이 발생했을 뿐이다. 내가 무얼 바랄 수 있는 처지도 아니거니와, 선택지도 몇 없다. 움직이거나. 이대로 의식이 흐려지기를 기다리거나. 선택지가 하나로 줄어드는 데는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고생했어.〉 아까 떠올린 그의 말이다. 다시 생각해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런 말은 내게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는다. 고생이라는 건 별 의미 없다. 고생해 가며 죽도록 매달린 그것이 끝나거나 해결되는 것, 그런 게 중요한 거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고, 해결된 것도 없다! 내게 그런 말밖에 건넬 수 없는 그가 어떤 심정일지 나는 짐작도 못 하나, 이번에야말로 모든 게 끝남으로써 해결이 된다면 납득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의 잘못된 말에 가두어진 인질이다.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으므로 어떻게든 움직여서 그를 찾아야 한다. 그를 찾아내서, 함께, 코앞에서 아른거리는 것만 같은 마지막 순간을 붙안아야 한다. 그때에서야 서로에게 격려의 말 한마디가 허락된다. 그것이 내가 계획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종 해결책이다. 이 지경에서도 앞이 보이고 무엇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현재의 신체 상태를 초월했다는 것이므로, 의지만 있으면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화마로 물든 하늘이 차츰차츰 어둑해졌다. 미지근한 빗방울이 낯에 뚝뚝 떨어졌다. 우박처럼 굵고, 재처럼 검은 비다. 나는 점차 세차게 쏟아지는 빗방울을 삼키기 위해 입을 벌렸는데, 없던 입을 억지로 찢어서 만든 듯 날카로운 통증이 하관을 횡단했다. 해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몸에 새로운 화학 작용을 일으키고자 낙진과 미지의 성분이 담긴 검은 물을 들이켰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나는 이 나라에 일어난 사태의 실험물이다. 정신이 소멸하지 않고 오염된 육신에 여태껏 붙어 있다는 것은 지금 내게 벌어진 현상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의미이며, 이전과는 다르고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는 걸 방증한다. 내가 계속해서 사고하고 감각하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어떤 임상 실험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모종의 회복을 기다렸다. 더는 불에 타지 않고 이동하려면 검은 비가 화재를 잠재워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하늘 높이 일렁이던 붉은 기가 폭우로 자아낸 음울한 검회색 빗살에 밀려 차차 자신이 비롯된 지상 방향으로 사그라지면서 연기와 먹구름이 구별 안 되게 혼재된 밤하늘과 만곡한 경계를 지어 역 태극 형상을 이루었다. 하늘이 이 나라를 조롱하며 거꾸로 내건 조기를 본 나는 산책 중에 귀여운 애완동물을 마주친 것처럼 남몰래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래전부터 국가에 대하여 가졌던 모욕감 전체를 안에서 완전히 끌어내어 글에 투사하고 그것이 어떻게 심연 바깥으로 나와서 세상으로 퍼져 나가는지를 관찰하는 일, 그리하여 일어난 세계의 반향을 다시 온전히 내 안으로 회수하는 과정을 그제야 완료한 듯 나는 예술적인 면모라고는 없이 희화화 자체에서 오는 유아적인 만족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에 힘입은 나는 경악스럽게 되살아난 시신처럼 비명을 지르면서 상반신을 벌떡 일으켰는데, 실은 기름칠이 벗겨진 기계 관절처럼 거칠고 뚝뚝 끊기는 동작이었고, 소리를 지른 건 곧 일어날 통증에의 선제적인 대비에서였다. 그러나 고통은 도리어 신음을 삼키게 하였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단지 화상을 입은 몸 전체의 표면이 벌레들로부터 갉아 먹히는 듯 화끈거리고 욱신거릴 뿐 통증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최심부의 신경 중추까지 먹통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나는 내 맑은 정신이 온전한 제 육신에서 까맣게 탄 변사체에 이식된 양 잔뜩 긴장하고 낯선 시선으로 노릇노릇한 몸을 내려보다가 이내 적응을 마치고, 천천히 마저 일어나 연기가 여기저기 피어오르는 잿더미 위를, 망자를 위령하고자 꽂은 수많은 향이 다 타고 재가 막대기 형상 그대로 남은 듯한 새까만 나무 기둥들 사이로 걸음을 떼 봄의 기운이라고는 없는 불탄 산중을 헤매기 시작했다. 쓸모없는 몸이 아무런 노력도 들이지 않고 손쉽게, 다만 더디게 움직여지는 것이 전자오락에서 제삼 인칭의 가상 인물이 벌칙을 부여받아 느려진 것처럼 답답하면서도 우스꽝스럽게 여겨져 이런 몸을 가지고 의식이 다하기까지 움직여야 한다는 데 우울하기는커녕 다소 유쾌한 심경이었다. 여기는 내가 하늘로 상승했던 산척이 아니라 아마도 중턱의 어느 비탈이었다. 벌거벗은 바위산은 자신의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불거진 뼈를 흉측하게 드러냈다. 나는 자주 넘어졌고, 때로는 굴러떨어지다 쓰러진 나무 숯덩이에 부딪혀 멈추기도 했다. 녹아내린 피부에 묻은 검댕이 빗물에 씻겨 나가면서 울긋불긋한 핏덩이가 된 나는 허정허정 돌아다니다 욕지기가 일어 토하고 아무 저항 없이 설사를 밑으로 쏟아 냈다. 나는 내게 가해진 전대미문의 폭력에 취하고 열에 들떠 원래의 목적을 잊은 채 바다로 떠밀려 가는 물살처럼 비탈을 따라 내려갔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야 하나? 주위를 둘러본들 길이란 없었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동반자가 지금 나와 신체 상태가 같다면 등산로가 아니라 하늘에서 뚝 떨어진 그대로 쓰러져 있거나 똑같이 천애 고아 신세로 산중을 배회하는 중일 터였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외쳐야, 그를 지명해야 마땅하다. 오직 그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하고 대체할 수 없는 이름을 특별히 불러야 한다. 나는 알 수 없는 단말마를 토해 냈고, 망설인 끝에 다시금 말을 모르는 익명의 바보가 할 법한 옹알이를 구역질하듯 부르짖어 댔다. 마치 부산물처럼. 그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했던 것은 그에게 이름이 없었던 탓이다. 그만이 아니다. 나도, 동반자도 이름이 없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에게는 형편없는 부모가 지어 준 하잘것없는 이름이, 행정적으로 공식 등록된 성명이 있었다. 그렇지만 중요하거나 화나는 일이 있지 않고서는 그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지 않았는데, 우리는 각자의 이름을, 서로의 명칭을 혐오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대를 호명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상황이다. 한데 재난이 우리를 익명으로 만든 듯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누구의 이름도. 평상시라면 이름 없는 삶이 편리한 측면도 있었겠으나 현재는 명명을 향한 나의 근본적인 무능력과 불운을 상기시킬 따름이다. 나는 익명의 몸이고, 사태이자, 재난이며, 얼굴 없는 시신이다. 그리고 내가 헤매는 이곳은 이정표 삼을 데 없이 텅 비고 검은 경사면이다. 지평선의 불바다가 잦아들면서 사위가 점차 검게 조여들어 왔다. 가까이서 빗소리와 불씨가 꺼지면서 내는 한숨이, 산내에서 전소한 나무가 우지끈 부러지거나 뒤로 넘어가는 충격음이, 산 밖에서 건물이 허물어져 내리는 굉음이 아득하게 들리는데도 암중은 그저 고요하게 고여 있었다. 밤은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불꽃의 마지막 발악을 참을성 있게 버텨 가며 스산한 어둠을 폐허에 드리우고서, 언제나 그러하듯이 아침이 밝기 전까지 모든 피조물이 잠들기를 침착하게 기다리는 듯했다. 이제 동반자가 기척을 내지 않는다면 설령 코앞에 있더라도 알아볼 자신이 없다. 나는 무력하다. 불행한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처럼 사고하고 움직이는 것과 달리 그는 요행히도 영원한 안식을 맞아 산중의 잿더미에 파묻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위구심은 지금 정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살아 있는 그를,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시신이라도 수습해야 한다. 내 눈으로 그를, 그였던 것을 응시해야만 한다. 육신이 스러져 감에도 내 일상의 타성은, 한 대상에 지독히도 맹목적으로 매달리며 모든 가치를 거기에다 거는 관성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성싶다. 그를 찾지 못하는 한 나는 죽지 않는 시체로서 이 산중을 영원히 헤맬 것 같은 기분이다. 말해야 한다. 그가 내 부름을 듣고 응답하도록 해야 한다. 아무리 이름을 잃어버린 그일지라도 그 부재 속에서도 고개를 들 수 있는 명증한 징표를 내 목소리에 내걸어야 한다. 내가 부르는 그가 자기 자신임을 깨닫게 하는, 원치 않더라도 차마 부정하지 못하고 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강제적이고 권위 있는, 그가 바로 그이고 그를 찾는 내가 곧 나임을 그의 단절된 의식에 주입하는 특별하고도 강력한 호명을 나는 상기해야만 한다.

나는 그 말을 궁리하는 한편으로 혹시 파묻혀 있을지 모를 그를 찾아 빗물에 젖어 곤죽이 된 잿더미를 그러모으고 헤집었다. 상황이 여의찮다면 진흙으로 동반자를 빚어내고 싶은 심정이다. 그거면 된다. 충분하다. 그것이 가짜라도, 내가 기억을 불어넣을 수만 있다면. 그런데 여기에는 그렇게 대신하여 의지하고 애도할 수 있는 사물조차 없다. 하물며 내가 동반자를, 그가 나를 특정할 수 있도록 해주는 특별한 기억마저 뚜렷이 선별되지 않는 도중이다. 나는 그를 보아야만 한다. 그를 봐야 무언가가 떠오를 것이다. 그가 내 목소리를 알아들으려면 어떤 기억이 필요한데, 그걸 환기하려면 그가 내 앞에 현시해야만 한다. 엉망진창이다. 내게는 물론 역사적 기억이 있다. 이 나라의 역사기도, 영토에 예속된 우리의 역사기도 한 기억이. 〈우리는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기에 만났지. 그 시절은 자못 쾌적하고도 위생적이었어. 사람들이 모일 수 없었기 때문이야. 한창일 때는 다섯 이상 무리 짓기가 허락되지 않았지만 둘은 언제 어디서나 허가되었거든. 역사적으로 항상 둘은 공인된 한 짝이니까. 한때는 어디든 텅 비어 있어서 세상이 오직 우리만을 위해 통째로 빌린 놀이동산 같았지. 수만 명이 죽었는데도 거리에서 시체를 목도한 일은 없었어. 죽음은 비위생적이기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숫자로만 공시되었던 거야. 감염자도 매한가지 취급이었지. 그들은 죽음에 이르거나 그것을 퍼뜨릴 확률이 있기에 유폐되어야만 했거든. 많은 사람이 음압 병동에서 가까운 이의 면회도 허락되지 않고 홀로 죽어 갔건만, 우리는 면역력이 강했는지 병에 걸리지는 않았어. 생애 내내 우리는 비정상인이었는데, 그 시절 우리에게는 정상성이, 그러니까 통행증이 발급되었던 거야. 그것을 놓치지 말자.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정상성을 섣불리 내어주지 말자. 사망자와 감염자를 이르는 큰 수에 포함되지 말자. 우리의 동선을 추적당하지 말자. 그 시절 우리는 이 나라에서 집계되지 않은 가장 큰 민중에 속해 있었고, 한 측면으로는, 상대적으로는, 통치가 뼛속 깊숙이까지 파고들지 않아 자유가 일부분 허락된 군중이었던 거야. 그게 우리를 미치게 만든 거야. 우리는 그 일부분의 자유를 누리기보다는 서서히 외출을 줄였고, 끝내는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유폐하기에 이르렀어. 왜냐하면 그게 우리가 지닌 더없이 소중한 정상성을 지킬 유일한 방법이니까. 우리는 가정집에 방치되어 아무도 관람하지 않는 인기 없는 전시물이 되었고,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났어. 부산물은 그때 부차적으로 생겨난 산물이지. 두문불출하던 우리에게도 책임지고 통제할 어떤 아랫사람이, 대상이 필요했던 거야. 이 나라에서 모든 건 수적 우위, 즉 권력의 크기 문제이지. 부산물은 이 나라의 수효에 관한 명약관화한 관점이 가장 작은 공동체인 둘에게 전이되었을 때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단 한 명의 소수자야. 둘보다 작은 자연수는 하나밖에 없으므로. 말할 것도 없이 하나는 아래에 그 무엇도 두지 못하지. 그게 우리가 꾸린 가정의 진실이야.〉 이것은 집단적 기억이다. 우리 둘이 특별히 점유하는 구간이 아니다. 이 나라의 모두에게 잠재되어 굳이 드러나지 않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발설되지 않는다.

마치 다음 광경을 위해 황급히 막이 내려지듯, 모두를 태운 불은 금세 꺼져 자취를 감추었다. 내가 위태로이 걷는 비탈면을 검은 비가 칠흑으로 칠했다. 역할을 다 마친 비도 차차 잦아들면서 내가 선 무대는 아무런 장치나 막도, 관객도 없는 태곳적의 일인극으로 되돌아갔다. 오늘날의 사태에 다다라 봤을 때 최초의 인간이 태초 이전의 신을 상상하여 자신과 같은 형질을 지닌 짝을 그가 점지한다는 인류의 신화를 꾸며 낸 일은 이루 말할 바도 없이 개연적으로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한 핍진성의 관점으로는 신이나 인류에 앞서 사유하고 이야기를 꾸며 낸 한 개인이 선제적으로 존재했음이, 바꿔 말하면 무대 기법과 관객에 앞서 한 배우가 먼저 등장하였음이, 소설로 말하자면 소설가와 독자에 앞서 한 화자가 백지 너머의 어둠 속에서 자신이 쓰이기를 기다렸음이 더 그럴듯하다. 아무것도 분별되지 않는 밤이 지속됨은 삶이 죽음으로 향하는 일방통행로라는 데 지나지 않음이고, 그 말인즉 나는 지금 죽음 속에 있는 셈이다. 아니면 내가 드디어 소경이 된 건 아닐까? 별안간 나는 의미 없이 우짖었다. 외롭고 심심한 아이처럼.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산물처럼. 나 말고는 아무것도 부스럭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움직임을 멈추고서 주저앉아 내가 밀착감을 가지고 응시하여 마침내는 나 자신을 투사할 수 있는 대상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거리를 알 수 없는 어느 암중에서 노란 불빛이 둥실둥실 신기루처럼 떠올랐다. 그것은 상하좌우로 빠르게 움직이고 시시로 휘청거렸다. 자연의 방식을 거스르는 움직임을 보아 인공조명이 분명한 그 불빛은 이내 허공 높이서 나를 내려다보았는데, 빛이 눈부시게 방사형으로 퍼지는 것이 그다지 멀리 있지는 않은 듯했다. 불빛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쇠약해지고 멀미가 일었으며 졸음에 겨운 듯 비틀거렸다. 투광기에서 비롯된 둥근 조명이 두리번거리는 무대 위로 뒤늦게 비트적거리며 올라서는 술 취한 배우처럼, 나는 몸을 일으켜 빛을 향하여 어둠길에 발을 내디뎠다. 발걸음 가운데 내 넝마 같은 몸에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피어났다. 하나는 그리운 동반자와 부산물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에 노랗게 밝혀진 가로등을 발견한 듯한 눈물겨운 그리움, 다른 하나는 내 몸을 지탱하는 남은 의식을 뺏어 가려고 위협적으로 일렁이는 지옥 불을 마주한 듯한 차가운 공포심이다. 이성으로는 그 두 감정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안다. 본능적으로 그것이 구조의 불빛이 아님을 또한 안다. 불빛도, 향수도, 두려움도 극단적인 피로가 안긴 섬망에 불과하다. 만약 착시가 아니라면, 그건 저 나라의 신무기일 테다. 공상 과학 소설에서나 다루던 네발로 걷는 거대한 전쟁 기계가 이 나라의 패잔병을 색출하여 소탕하고자 탐조등을 비추는 모습이 쉬이 상상된다. 어둠 가운데 빛에 익숙해질수록 광원이 달린 몸체가 차츰차츰 분간이 되는 듯도 하다. 마침내 조명이 앙상한 철골로 이루어진 사각 망루 위에 달렸다는 걸 알았을 때 여태 뛰는 줄도 몰랐던 내 심장이 철렁였다. 검은 허공에 걸린 망루가 내가 징집병 시절에 경계 근무를 섰던 초소와 판박이로 흡사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불빛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어두운 사위를 둘러쌌다. 나는 지금 기억 속에 사는 것일까? 아니면 기억이 현실에 전이된 것일까? 불빛들은 곧 일직선으로 빛줄기를 내뿜는 광선이 되어 지상의 폐허를 샅샅이 톺기 시작했다. 〈저 빛줄기에 닿으면 나는 또 한 번 불살라질 거야.〉 그렇게 여기면서도 나는 계속 가장 가까워 보이는 망루에서 발하는 광선을 향해 홀린 듯이 걷고 있었다.

길인지 혹은 산짐승이나 다니는 어느 산면인지 모를 비탈을 계속 내려가던 나는 이유 없이 멈춰 섰다. 그러자 불현듯 다음 한 걸음이 하나의 단계를 지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다음은 끝이다. 내가 지금까지 체험한 지속되는 죽음이 아니라 진짜 마지막이다. 내가 망설이는 동안 저 아래 애먼 데를 비추던 노란 빛줄기가 내 쪽으로 고개를 틀어 마치 자신이 밝힌 이 지름길을 따라오라는 듯 천천히 굴곡진 산면을 타고 올라왔다. 전신을 엄습하는 피로와 통증에 가만히 서 있지를 못하는 내게 저 빛을 따라 한 걸음만 내디디면 약속된 끝이 곧 찾아오리라는 한 유혹까지 가세한다. 멈추든가, 내딛든가. 이것은 선택의 문제다. 나는 모든 선택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면 둘 중 하나가 최선의 답이리라는 건 미천한 사람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갈림길에서 어느 한 길을 택해야 한다는 건 사태가 내게 폭력을 가한다는 정황적 사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화자에게 일생일대의 택일을 강요하는 소설은 틀렸다고 나는 주장해 왔다. 선택지 가운데 답이 있다는 전제에서부터 잘못되었다. 답이 아니다. 공평한 두 갈림길 중 하나에 유력하다는 인상을 심기는 데 불과하다. 한 걸음 더 내디디는 것, 가만히 있거나 물러서는 것. 모두 틀렸다. 그럼에도 나는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선 곳 앞은 아마도 구덩이고, 나는 그 안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그 안이 검은 심연이라 보이는 게 없더라도 나는 이미 응시하고 있다. 아니다. 모든 걸 소설적으로 변환하는 망상을 걷어 내야 한다. 내가 응시하는 것은 없다. 선택하는 것도 없다. 모든 건 이미 벌어졌다. 앞에 놓인 건 내가 과거에 선택해야 했으나 하지 않은 한 가능성이다. 지금처럼 나에게 아무것도 없다고 여겨졌을 때 말이다. 일전에, 어쩌면 어제 나는 어떤 사람에게서 그 가능성을 보았다. 나는 그 사람을 일견 경멸한 듯한데, 내가 진작 피한 갈림길 앞에서 그가 고민해서일 따름일 테다. 앞에 구덩이가 놓인 사람을 보면 우리는 그자를 구하려 하기보다는 피해서 멀찍이 돌아 제 갈 길을 간다. 어차피 그자 눈에는 구덩이 말고는 보이는 거라고는 없으므로 구조의 손길조차 부질없다. 그러나 그자에게도 동반자라는 게 있다면, 구덩이 앞에 선 그를 짝이 발견한다면, 그러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동반자가 있다. 그는 산중 어딘가의 구덩이 앞에 버려져 있을 것이다. 그를 구할 사람은 나 말고는 없다. 그 끝이 무엇이든 동반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는 선택지 바깥에 있다. 내가 선 기로는 나의 운명이 아니라 그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다. 그를 알아볼 사람은 나뿐이므로, 나를 알아볼 사람은 그뿐이므로 우리는 서로에게 묶인 것이다. 내 모든 선택은 그의 동반자로서다. 나는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자 내 선택을 기다리던 노란 불빛이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나를 응시했다. 그렇게 밝혀진 전방은, 내가 물러남으로써 두 걸음 떨어진 앞은 벼랑 끄트머리였다.

나를 응시하는 노란빛에 나는 새하얗게 질렸다. 시야도 온통 눈부신 백색으로 물들었다. 빛 속에 백린이 함유된 듯 내 벗겨진 피부가 다시금 타들어 갔다. 나는 쓰러지지 못하고 빛에 붙들려 선 채로 발작을 일으켰다. 광선이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통했다. 내가 찢어발겨졌다. 체내에 지녔던 미량의 수분이 죄다 끓어오르면서 숯처럼 졸아붙었다. 이 적개심 가득한 불빛은 내가 한 사람의 동반자로서 할 일을 채 마치지 못하도록 나를 소진시키고 있다. 나는 비명을 질렀으나 소리는 허용되지 않았다. 타버린 폐가 더는 제 기능을 하지 않는다. 시간이 정지하고 고통만이 영원히 회귀하는 형벌에 처해진 듯하다. 내가 빛에 용해되거나 산산이 분해될지도 모른다는 전에 없는 공포심에 나는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여기서 자신을 놓아 버리면 나는 없다. 최종적으로는,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결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감전된 사람처럼 뻣뻣하게 발걸음을 뗐다. 광선도 내가 도망친 한 걸음만큼 나를 따라잡았다.

빛살이 뒤에서 나를 겨냥했다. 나는 빛의 과녁이다. 계속해서 꿰뚫리고 채찍질 당한다. 빛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채찍질로 채근당하는 죄수인 양 별도로 마련된 형장을 향하여 노정을 이어 나가라는 것인가? 아니면 임계치를 넘어선 고통에 기어이 백치가 되기를 원하나? 내가 사고함으로써, 움직임으로써 잠시나마 경감할 수 있었던 고통은 불 비친 영역 안에서 활성화되어 치명적으로 완전해진다.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에의 답은 내가 그만한 통증을 수반하는 상처를 입어서다. 내가 나여서다. 나인 게 이 핍박의 모든 이유다. 그래서 나는 억울하다고 소리칠 수 없다. 무고당했다고 억지를 부릴 수도 없다. 나를 잘못 봤다고,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것이라고 하소연해 봤자다. 나는 나다. 이 상처 입은 육신이 나다. 나는 계곡을 건너다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뒤쫓던 광선이 잠시 나를 시야에서 놓쳤다. 그사이에 나는 골짜기로 모인 잿더미가 이룬 늪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빛이 통하지 않는 틈바구니를 좋아하는 벌레처럼 어느 바위 아래에 몸을 숨겼다. 한데 이렇게 숨어 있다가는 동반자를 찾아낼 수 없다. 그렇지만 나에게 적대적인 불빛이 도사리는 산중을 어찌 활보한단 말인가? 어느새 나는 고통으로부터 도주하는 심리에 지배당했다. 이미 이렇게 쓰라리면서도 더 아플까 봐 무서워 벌벌 떨며 숨어 있다. 빛줄기가 내가 숨은 바위를 찾아내서 환하게 내리쬐었다. 나는 몸을 웅크려 빛에 닿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바위마저 빛살에 삭는지 굵은소금 같은 돌가루가 후드득 떨어졌는데, 그러나 삽시간에 나를 끄집어내기에는 여의찮다고 판단했는지, 빛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빛이다. 네가 없다고 우기면서도 한편의 속내로는 간원하던 신이다. 너의 부름에 내가 답했다. 왜 도망쳐 숨느냐? 이리 나와 너도 내 호령에 응하라. 나는 모든 것이다. 너조차도 나의 극히 일부다. 내가 바로 전체다. 너 따위가 감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절대자다. 완전무흠한 자로서 내 너에게 이른다. 너는 내 뜻을 흐려 신 없이 홀로 지각하는 자로 행세하려 했다. 너는 스스로를 단독자로 여기지만, 내가 보기에 소설가라는 직업을 이용하여 신으로 가장하려 했음이다. 좋다. 저간 네가 자행한, 세간에의 부정을 긍정하겠노라. 네가 바라던 대로 세상을 불태웠다. 너뿐만 아니라 나는 모든 음모론자의 기도에 답했다. 그리고 그들이 빈 대로 자기네가 믿는 모든 거짓이 진실이게 해주었다. 그것이 덫이었음을 너는 아느냐? 나는 모든 추문을 말소하고자 그것들을 전부 사실로 화한 것이다. 이제 허구는 없다. 바꿔 말하여, 작금의 모든 진실은 허위로 말미암았다. 이제야 만족하느냐? 이것이 네가 꿈꾸던 진실이 아니던가? 어디 네 모든 말이 맞았다고 큰소리쳐 보거라. 하지만 너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진실은 예전과는 다르게 하잘것없는 거짓만큼의 가치도 지니지 못하는 까닭이다. 거기에 일조한 게 너다. 아느냐? 새로 세워질 나라에 너를 위한 자리는 없다. 새 나라의 백성들은 신실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허위적인 추문이 있을 수 없다. 소설이라는 허구도 없다. 모든 게 진실이기에 따름이다. 모든 사실이 낱낱이 공표될 것이고 누구도 이를 모를 수는 없다. 아무도 숨기지도, 속지도 않는다. 지상에 낙원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나 너를 위한 장소는 아니다. 너 같은 거짓말쟁이는 사라져야 한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 강림했다. 나는 네가 너 스스로이게 하는 모든 것을 일소하고자 한다. 네 육신과 정신은 해체되어 자연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리하여 네가 평상 바라던 대로 너는 더는 생각할 필요도 없고, 움직일 필요도 없다. 등에 진 모든 의무를 내려놓아라. 너의 진정한 동반자는 내가 아니더냐? 너는 지금 네 동반자를 마주한 것이다. 그러므로 네 과업은 완수되었다. 그뿐만 아니다. 나는 너와의 동반을 파기한다. 이제부터 너는 비인간이다. 그러므로 삶도 죽음도 부재한다. 너라는 존재가 부재하니까. 신이 없는 인간이라 주장하던 너에게 비인칭이라는 한 격을 수여한다. 어디 이리 나와 보거라. 나는 네가 바라던 걸 가져왔다.〉 이조차도 내가 상상으로 지어낸 거짓이다. 진실이라는 게 거짓 없이 내내 진실하듯이, 거짓 또한 끝없이 이어지며 또 다른 거짓을 낳는 법이다. 여전히 나는 진정으로 나고, 허위로는 내가 아니다. 어쩌면 그 둘은 한낱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새하얗게 질렸던 사위가 차츰차츰 어두워지면서, 적대적인 노란 빛줄기가 내게서 거두어졌음을 깨달았다. 겁에 질려 바위 바깥으로 낯을 빼꼼히 내밀어 내다본 밤하늘에는 이제는 온순하게까지 여겨지는 노란 불빛들이 마치 샛별처럼, 얌전히 제자리에 고여 있는 듯하면서 실상은 조금씩 멀어지고 미약해졌다. 거멓기만 하던 시야가 먼동이 터오면서 푸른빛이 아주 조금 섞인 진회색 하늘과 아직은 칙칙하기만 한 산중으로 나뉘었다. 점차 어두워지는 불빛들의 심기를 괜히 거슬러 또다시 내가 색출되는 걸 피하려고 나는 아까 내린 비로 발목까지 잠기는 진창이 된 잿더미 위를 되도록 굼뜨게 철벅철벅 걸었다. 새벽 박명으로 드러난 불빛의 몸체는 아까처럼 앙상한 철골을 지닌 망루로 보이지 않고 전에 없이 솟아나 내가 헤매는 바위산을 둘러싼 장대한 산맥 같은 윤곽을 지니었다. 그 꼭대기에서 나는 미미한 빛은 그러니까 일종의 봉화인 셈이었다. 그것들은 내가 알 수 없는 신호를 서로에게 보내는지 간헐적으로 깜박였고, 어쩌면 생존자들이 보내는 조난 신호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째서 그 빛들이 간밤에 나를 그렇게 위태롭게 몰아세웠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시신경이 손상된 내가 빛에 매우 취약해져서일 수도, 아니면 공포에 질려 자아낸 환상통일 수도 있다. 나는 다시금 내키는 대로, 무신경하게 산중을 헤맸다. 점점 내가 지닌 육신의 불행과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듯하다. 내게 들러붙는 귀찮은 날파리같이 화끈거리는 통증들을 손사래로 쳐낼 기운도 없다. 그저 논 위를 천천히 걸으며 모를 심는 농부처럼 질퍽거리는 진창 위를 남이 보기에는 수심에 잠기거나 사려 깊어 보인다고 할 정도의 속도로 구부정히 헤맬 뿐이다. 동반자가 어느 진창에 처박혀 있을지는 여전히 미궁이라 나는 산의 굴곡을 따라 오르기 편하면 오르고 그렇지 않으면 비탈을 따라 내려갔다. 수색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제 몸이 편한 대로 걷기만 한다는 의식이 들면 이제까지와는 정반대로 험한 산면을 끙끙거리며 오르내렸다. 그런들 동반자를 찾을 마땅한 활로가 생겨나는 건 아니고, 내 알량한 체력이 뒷받침하지 못하기에 부지불식간에 다시금 편한 길을 찾다 보니 점점 산을 빙빙 돌며 나선형으로 하산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는 또 쫓기는 중이다. 마치 지금이 전란이고, 재난이고, 예외적인 사태임을 잊지 말라는 듯이, 위협적으로 예초기 날이 도는 것 같은 윙윙대는 기계음이 내가 터덜터덜 내려가는 심곡 너머에서 가까워져 오는 것이다. 나는 전력을 다해 두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가며 달리려고 애쓰는데, 그래봤자 이전에 걷던 속도를 딱히 넘어서지는 않는다. 그렇게 허우적대다가 뒤돌아보자 네 개의 회전익을 가진 기형적으로 커다란 소금쟁이처럼 생긴 무인 항공기가 바위 위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기계는 간밤에 나를 지독히도 못살게 굴던 빛줄기보다 더 날쌔고 판단력도 훌륭하다. 무인 항공기가 나를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윙윙대는 날개 소리를 고조시키며 빠르게 미끄러지듯이 강하하는데, 나는 다시금 몸을 날려 굴러떨어지기를 택했다. 그때 내 몸통만 한 그것이 머리 위 공중에서 자폭하면서, 둔탁한 폭발음과 함께 나는 충격파와 날카로운 금속 파편을 등에 얻어맞고 골짜기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그리하여 어느 산면의 잿더미에 머리를 처박은 채 한동안 폭발로 찢긴 몸을 추스르느라 꼼짝도 하지 못한다. 이제 끝이다. 이미 한 사람이 연이어 여러 번은 죽고도 남을 타격을 받지 않았던가. 그러나 탈진한 내 몸은 여전히 움직일 수 있다. 끈질기게도 팔과 다리가 몸통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없으면 내가 움직이는 데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상처와 그로 인한 통증만큼은 없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나를 구성하는 가장 주요한 요소고, 또한 내가 잊지 말아야 할 의미이자 교훈이며, 마땅히 끝까지 함께해야 할 동반자다. 내가 짐작하기로는 그렇다. 그렇게 여길 수밖에 없는 초자연적인 고문이 내게 가해지고 있다. 나는 고통 그 자체다. 무엇이든지 이 치밀어오르는 아픔 속에서 깨닫고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고난은 시험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이 가능해지려면…… 그렇다. 생과 사가 점유하는 무의미의 영역을 벗어나기에, 이 재앙은 어떤 의미와 체계를 지녀야 한다.

나는 기진맥진하였으면서도 무의식중에 일어나 다시 걷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서 봉화 불빛과 함께 사방의 지평선을 가리던 산맥의 검은 윤곽들이 희끄무레 사라져 갔다. 밤이 전유하던 환상이 소멸했을 때, 생사의 형상이 숨겨졌던 검게 응달진 산세가 회백색으로 전소된 숲으로 드러났을 때, 수많은 생명 중 유달리 특별한 것 없는 인류가 생성한 지옥에서는 오직 사람만 숨이 끊기지 않고 쉼 없이 배회하는 신세라는 결론에 나는 도달한다. 우리가 삶을 늘려 영원에게서 뺏어 간 시간은 죽음이 지워진 자리에 보충된다. 아무래도 이 시간을 어디에 활용하느냐가 관건인 듯싶은데, 나는 불탄 숲이 남긴 무수히 많은 시꺼먼 꼬챙이 사이를 헤매는 데 허송세월하고 있었다. 숯이 된 밑동들은 이제 휘청거리며 걷는 나를 중심으로 빙빙 돌며 끝없이 원을 그리는 듯했고, 어쩐지 자꾸만 시야가 까무룩 흐려지며 위로 향했다. 그렇게 올려다본 옅은 청회색으로 밝혀진 하늘에는 둥글게 무리 진 물안개같이 희뿌연 태양이 스산하게 떠올랐다. 내가 산중에 매어진 어떤 원환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무한정 빙글빙글 도는 중이라는 생각이 왜인지 내면의 아련한 향수가 되었다. 그 상실감을 온전히 다 느끼기에는 너무도 피곤하고 목말랐다. 나는 산책하는 것처럼 그저 거닐다가 이따금 멈춰 서서 감회에 젖어 먼 곳을 바라보거나 까진 발바닥을 따갑게 찔러대는 솔방울 파편이 섞인 잿더미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그러다 시선을 거두어 생명이라고는 없는 봄의 기운에 사로잡힌 듯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여유를 부리는 내가 사무치도록 한심스럽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이 폐허의 공간에서 동반자가 나를 기다리리라는 희망이, 한 공간을 원으로 가둘 수 있다면 어디든 간에 그 중심에 그가 있으리라는 허황한 믿음이 피로에 취한 내 머릿속에서 솟아 나는 미소 짓고 재차 발걸음을 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사랑이야.〉 예전과는 다르게 망집을 부리거나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나는 사랑이라는 꽤 이상적인 답을 도출할 수 있었다. 이는 더는 안간힘을 쓸 수 없이 지쳐서기도 했다. 내게 아무것도 없어서였다. 혼자만의 망상에 회의할 기력이 바닥나서였다. 그런데도 그를 간절히 염원해서였다. 나를 엄습하지 않고 주변을 맴돌기만 하는 죽음이 나를 미치게 한 것이다. 감미로운 착각 속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듯했다. 그것은 환청일까? 희망찬 상황에 다소 야박한 평소의 나로 돌아와 의심스럽게 귀를 기울였음에도 새소리가 이어지며 전에 없이 황홀한 생명의 지저귐으로 다가왔다. 소리는 위쪽에서 들렸고 이미 내 손과 발은 자연히, 그러나 힘겹게 비탈을 매달려 오르고 있었다. 산의 개성을 앗아 간 대화재로 인하여 헤매는 그동안 어디를 둘러봐도 똑같게 느껴지는 폐허의 풍경이었는데 이번에는 못 보던 기암괴석 지대가 재들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바위 표면에 그림자가 져서 생긴 인자한 표정으로 나를 반겼다. 〈필경 내가 죽음의 주마등에 이르러 정신을 놓아 버렸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이유는 어느새 내가 바위를 오르다 떨어지고 다시 매달려 가면서 계속 헤실헤실 웃고 있었던 까닭이다. 새소리는 암석 지대 너머에서 꽤 뚜렷이 들렸고, 그래서 내가 이성을 잃고 성급히 만신창이 몸으로 바위를 오르려고 시도하였던 거다. 인제 와서 들어보니 때까치 여러 마리가 때때거리며 우짖는 소리였다. 지저귐으로 새의 종류를 구별한 순간 여러 마리 중 하나의 소리가 어제 내가 집을 나서기 전에 부산물이 흉내 내던 음감 없는 옹알이로 변주되었다. 나는 그가 살아 있다는 기쁨과 대견함에 몸서리를 치며 다시 바위에서 떨어졌고, 이번에는 내향적인 아이가 새로운 무리와 친구를 맺어 노는 광경을 방해하지 않고 숨어 지켜보려는 부모처럼 최대한 소리 내지 않고 살금살금 암석 지대를 빙 둘러 통과하기 시작했다.

인내심을 가지고 바위 아래를 돈 끝에 이른 곡지에는 간밤에 내린 비가 모여 이룬 검은 구정물이 흘렀고, 내 건너편으로 크고 작은 판판한 자연석들을 놓아 설치한 등산로가 있었는데, 부산물과 그와 친분을 맺은 때까치 떼는 보이지 않고 그새 자리를 옮겨 갔는지 새소리는 좀 더 멀리서 들렸다. 그리고 화마에 휩쓸려 죽은 피난민들이 있었다. 나는 졸졸거리며 흐르는 검은 물살을 헤쳐 등산로로 건너갔다. 마치 앞으로 있을지 모를 등산객을 배려하듯 그들은 대체로 등산로가 아니라 그 양편에 길이 폭우에 휩쓸리지 않도록 파놓은 배수로에 정연히 포개어져 있었다. 그들은 고통에 발버둥 치다 죽었다기보다는 단체로 소풍을 왔다가 낮잠 시간을 가진 것처럼 평화롭게 사지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맨 위에 얹어진 시신들은 불에 까맣게 탔지만, 그 아래에서 유독한 매연에 질식해 죽었을 이들의 피부는 검댕이 덕지덕지 묻은 사이로 탁한 우윳빛을 띠어 모든 게 잿빛인 세상에서 유다르게 분간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고착된 검정과 회색이 뒤섞인 배경 가운데 어쩐지 초점이 흐릿하다는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피사체로, 또한 이 폐허 속의 유일하게 분간되는 사물로 보였다. 이 송장 더미는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나 경악에 질리도록 하는 게 아니라 죽은 몸에 대한 존중심을 가지고 조용히 제 갈 길을 가도록 하는 숙연한 일면을 지닌다. 그들은 잠들었는데 내가 깨어 움직인다는 물리적 현상이 마치 조의에 어긋나는 무례한 언동을 벌인 것처럼 부끄럽게 느껴진다. 다른 한편으로 공통의 꿈을 꾸느라 눈을 감고 깊이 잠든 그들은 내 발치에 누워 있음에도 모든 면에서 나와 멀리 떨어져 있다. 그들의 잔치에 이번에도 끼지 못한 나는 동반자와 부산물에의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번뇌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래 놓인 시신들과 다를 바 없는 내가 그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산 자의 이해관계로 골머리를 썩인다는 게 희한하다. 포개어진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오롯이 선 내게 불현듯 한 가지 번민이 떠오른다. 그들 중에 내 동반자가 있는 건 아닐까? 그의 낯을 이루는 피부가 모두 벗겨졌어도 나는 그를 알아볼 수 있을까? 나는 그의 낯을 기억하고, 알고 있나? 그때 건조하고 재가 섞여 눈이 매운 계곡풍이 산꼭대기를 향하여 불자, 시체들이 추썩대는 듯 불에 탄 옷가지가 헐렁거렸다. 그리고 나는 그들 중 하나로부터 떨어져 나가 바위에 내걸린 손 하나가 주인을 찾는지 굼뜨게 꾸물거리는 걸 본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이 나처럼 눈 뜨고 일어나 움직이기 전에 새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다시 떠났다.

아니다. 다시 죽은 사람들이 배수로를 틀어막은 산길로 돌아가야 한다. 그중에 동반자가 있을 것이다. 아니, 있다. 내가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따름이다. 나는 그의 낯을 기억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지닌 면모의 유별난 점을 평소 눈에 담아 두지 않았던 까닭이리라. 어쩌면 동반자라는 피상적인 개념에 가려져 내가 그를 여태껏 제대로 응시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나는 새소리를 따라 강박적으로 길도 아닌 산면을 오르는 중이다. 내가 그를 지근에 두고도 재회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벽은 그 밖에도 많다. 얼굴의 부재 같은 극단적인 신체 훼손의 가능성이 있고, 나무나 바위, 잿더미에 깔려 있을 수도, 정작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부정할 수도 있다. 시신이라도 건져야 한다는 기존의 다짐은 지금 와서 따져 보면 우스운 것이다. 이 사태 속에서 나는 육신만 훼손된 것이 아니다. 내 판단력은 흐려졌다. 오히려 내가 진정으로 헷갈리지 않고 아는 건 불이 꺼진 지금도 타들어 가는 것만 같은 제 육신뿐이다. 불에 까맣게 탄 사람들 사이에서 어느 한 사람에게 밀착감을 가지고 〈그가 내 동반자〉라고 넘겨짚어 선언하더라도 그것이 나의 혼동이나 자기 속임이 아니라고 판단할 근거가 내게 있나? 공증할 문서도 전소되고 정보망에 접속할 길도 없는 현재다. 훗날에라도 감식할 수 있도록 산 자든 죽은 자든 보이는 족족 손가락에서 지문을 뜯어 가야 할까? 나에게 그런 훗날이 도래하지 않으리라는 걸 내가 모를 리 없다. 나에게는 지금뿐이다. 이성은 현 상황에서 내가 동반자를 찾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를 구출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탈출한다는 건 사람이 자기가 속한 현재라는 시간성을 벗어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과 진배없다. 나는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찰나의 지속, 과거로 돌이켜지거나 미래로 흐르지 않고 절대적으로 부동하는 현재의 작품이다.

이어서 나는 수십 마리에 이르는 때까치 떼로부터 공격당하고 있다. 내 비트적거리는 걸음이 그들을 따라잡지 못하자,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그들이 직접 나를 엄습한 것이다. 평소라면 무리 짓지 않고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그들도 지금과 같은 열악한 정황에서는 기존의 습성을 버리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음이다. 군집을 이룬 그들은 불완전한 합일화로 계속해서 모습을 흐트러뜨리는 한 단일체로 보인다. 이 새들은 여태 어디에 숨어서 참변을 피하고 어쩌다가 이 황폐한 산중에 모인 것일까? 그들은 단지 약간의 검댕을 뒤집어썼을 뿐 깃털이 불에 타지도 않고 온전하다. 나는 그들이 왜 산으로 모여들었는지 알 것 같다. 내 조심성 없는 움직임이, 치통을 머금은 듯 내내 흘리던 신음이 지상에 넘쳐 나는 시체에 질려하던 그들을 불러들였다. 아무래도 시체보다는 아무리 만신창이더라도 어쨌든 살아 있다고 믿어지는 대상이 더 신선하고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법이니까. 팔뚝만 한 그들은 퍼덕이는 날갯짓으로 앞길을 막으며 내 취약한 얼굴을, 특히 눈가를 집중적으로 쪼아 댔다. 작고 날카로운 부리가 공격할 때마다 맛있게 익은 살점이 한 점씩 떨어져 나갔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꾸만 〈때〉가 도래했다고 반복해서 우짖는다. 도대체 어느 때가 왔다는 것인가? 오늘은 과거의 나에게는 감히 짐작만 할 뿐 피상적일 수밖에 없던 어떤 한 시기인데, 이 새대가리들에게는 무력해진 인간에게 봉기를 일으킬 매우 구체적인 날이었던 것 같다. 내가 팔을 내젓고 우악스럽게 그들을 움켜쥐려고 손을 뻗은들 그들이 어찌나 날쌘지 깃털에도 닿지 못한다. 나는 매우 인간적인 습성으로 그들의 눈을 마주치고 표정을 읽어 내려고, 그러니까 심중을 읽힐 수 있는 낯을 가진 한 무리의 사람들로 대하려고 하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들의 새까만 눈과 윤이 나는 검은 부리, 입을 벌렸을 때 드러나는 빨간 속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내게 아무것도 전달하지 않는다. 그들은 저항하는 내가 짓는 찡그린 표정을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몰려 비탈면을 몇 번이고 넘어져 가면서 황급히 내려갔다. 새들이 자기가 원하는 장소로 나를 몰아갔다는 사실을 안 건 내가 양손으로 얼굴을 보호하며 부주의하게 도망치다 어느 굵직한 소나무 그루터기에 맞부딪혔을 때였다. 나무는 번개라도 내리꽂혀 갈라진 듯 윗부분이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때까치들이 이 비인권적인 처형대에 나를 꿰어 전시함으로써 자기네만의 특이한 식이 행위를, 즉 포식자로서의 의식을 선보이려던 참인 것이다. 원래도 가뜩이나 가볍고 가냘프던 나는 지난 불길에 바싹 졸여져 미물들 눈에도 익히 제압하기 수월해 보였으리라. 곧이어 수십 마리의 새 떼에게 뒤덮이고 그들의 조그만 발들에 붙들려 가볍게 들어 올려졌다. 나는 어미에게 목덜미를 물린 새끼 짐승처럼 더는 저항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축 늘어졌다. 등에 그루터기의 뾰족한 끝이 닿았을 때였다. 나는 기지를 발휘해 쇳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때때때― 때때때― 때― 때―!」 그 소리는 부산물이 어제 창밖의 때까치를 따라 하던 옹알이를 흉내 낸 것이다. 그러자 새 떼는 화들짝 나를 놓쳐 떨어뜨렸고, 그루터기의 모서리가 지난 무인 항공기의 습격으로 이미 피투성이가 된 내 등을 세로로 칼처럼 날카롭게 그었다. 그러나 그들이 본래 원했던 것처럼 꼬챙이에 꿰이는 신세가 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부산물이 새로 사귄 친구고 내가 말한 그의 언어를 알아들어 나를 더는 적으로 여기지 않은 것일까? 내가 바닥에 널브러져 손이 닿지 않는 등 한복판에 칼이 꽂힌 것처럼 두 팔을 뒤로 꺾어 가며 신음하는 동안 새들은 요란하게 푸드덕 날아올라 흐린 하늘로 멀어져 갔다. 나는 이제 쓰라린 등이 잿더미에 닿는 걸 피해 가슴을 바닥에 대고 엎드려 때까치들이 떠나간 방향의 지평선에 펼쳐진 폐허의 도시를 아무 의미 없이, 눈길이 닿는 대로 그저 쳐다보았다. 산을 꽤 내려와 제법 멀지 않게 느껴지고 아직도 군데군데 연기가 피어오르는 그곳은 이제 너무도 흔하고 무관심하게 다가와서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곧 아무런 용기도 낼 필요 없이 무의식적으로 다시 일어섰다. 산중에는 내가 마저 헤맬 장소들이 아직 남았을 것이다. 모든 곳을 톺기 전에는 맘 편히 누워만 있을 수 없다.

여기는 또 산중의 어딘가지? 이쯤에서 인생이 멈춘다면 얼마나 좋을지 상상한다. 나는 또다시 걷고 있었다. 이 어지러운 걷기 행위는 배회가 아니라 나름의 산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용적인 목적이 없는 산책을 혐오하던 나였는데, 지금 마음 한편으로는 동반자라는 종착지를 피해 이렇게 산중에서 허송세월 중이라는 의심이 피어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산책을 부정하고자 그를 존재론적 숙원의 대상으로 격상한 건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 걸음을 한 발짝 더 나아간다면, 이것이 인생이라면, 남은 생애는 참으로 피곤해지리라. 그렇게 여기면서 푹푹 꺼지는 듯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제 나는 산면에 돌출된 반질반질한 편마암의 테두리에 발을 디딜 수 있도록 홈을 낸 바윗길을 건너며 산중의 또 다른 어딘가로 통하는 벼랑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아래로 떨어지든 길을 마저 건너든 나의 고행에 끝이 없으리라는 점은 명백하다. 바위 너머에는 또 다른 길이 있을 것이며 어쩌면 거기에 나의 동반자가 있을 것이다. 날이 다 밝도록 헤매고 다녔으니 확률은 이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높을 테다. 그러나 그를 찾는다고 끝이 아님을, 도리어 시작임을 이제는 안다. 재회로 막을 내리지 않고 함께 사태의 덫을 마저 헤쳐 나가야 한다. 소설은 끝이라는 편의 장치가 있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왜 항상 인생은 의식이 말소되기 직전까지 행복을 장담하지 못하는 그다음으로 넘어가야 하는 걸까? 나는 슬픔에 잠겨 눈물일지 상처에서 나오는 진물일지 모를 체액을 글썽였다. 바윗길을 돌아 나오자 못이 있는 한 빈터가 나왔고, 거기 고인 물이 아래의 바위 계곡으로 흘러 이루는 보잘것없는 폭포가 등장했다. 나는 그곳을 향해 바보 같은 미소를 띠고, 곁에 아무도 없건만 화해한 연인처럼, 의식적으로 누그러진 기색을 띠고 걸었다. 그것은 죽음에게 건네는 화해의 요청이고, 동반자에게 용서를 비는 표정이다. 여기쯤에서 나는 동반자를 단념하기로 한다. 더는 노력할 수 없다. 못을 둘러싼 경계에 흙더미가 쌓인 것으로 볼 때, 오래전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오늘을 지배하는 모종의 사태 속에서 폭발물이 낙탄해 파인 큰 구덩이에 간밤의 검은 빗물이 아래로 흘러 고인 거로 여겨진다. 못의 수면 아래로 기이한 푸른 빛무리가 일렁였다. 내 왼 손목에 녹아 붙은 잠수부용 시계의 멈춘 바늘들이 청록색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못 앞에 이른 순간부터 속에서 욕지기가 일고 다시금 피부가 잉걸불을 뒤집어쓴 듯 이글거리는 통증이 전신을 에워쌌다. 한데 그것들은 나를 더는 굴복시키지 못한다. 이곳이 내 마지막을 장식할 외딴 매장지라는 확신으로 고통은 외려 쾌락처럼 나를 각성시킨다. 못에는 크고 작은 나무 잔해가 떠다니고 까맣게 그슬린 시신 한 구가 부유하며 수면 밖으로 낯과 상반신 일부를 내밀고 하늘을 멀거니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그는 나의 동반자가 아니고 나보다 먼저 최종 해결책을 발견하여 뛰어든 운 좋은 한 명일 테다. 그는 모두에게 감춰진 비밀스러운 못에서 한가로이 수욕을 즐기며 콧노래를 부르다가 까무룩 익사한 듯 평화로워 보였다. 반면 눈꺼풀이 힘없이 벌어져 드러난 그의 눈은 눈부신 폭발을 가까이서 정면으로 마주 보았던 것인지 검은 눈동자가 타서 구멍이 나 있었다. 내 쪽을 향하지도 않고 어디로 시선을 향한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그의 두 눈을 응시하던 나는, 문득 손으로 내 얼굴을 더듬어 내 푹 꺼진 안와에 거리낌없이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이번에는 못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수면을 탁하게 만드는 잔해들을 손으로 밀어내 나의 얼굴 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는 동안 못에서 발산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강한 기운으로 인해 내 몸에 난 모든 구멍에서 우윳빛을 띠는 반투명한 체액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나는 그 체액을 돌연 주체할 수 없는 눈물로 받아들인다. 비애를 못 이겨 추하게 우는 거로 착각한다. 나와 못 위를 부유하는 그의 처참한 꼴은 판에 박힌 듯 똑같다. 폭발에 휩쓸렸을 때 기억이 불분명하지만, 나는 아마도 동반자였을 이의 두 발목을 양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지점에서 섬광에 눈이 불탔다. 우리는 같은 재앙을 견뎠다. 그러고는 우리는 서로를 잃어버렸는데, 이 자는 나와 같은 상흔을 지녔다. 마치 거울을 마주한 듯이 그와 나는 외양적으로 같다. 그는 나다. 나는 그의 동반자다. 나는 그를 알아보았다.

지금은 끝이 아니다. 비로소 시작이다. 다만 그를 깨어나게 할 주문을 내가 모를 뿐이다. 살면서 나는 잠든 그를 자주 깨웠다. 그의 출근 시간이나, 중요한 약속 시간이 다가왔을 때였다. 밤을 지새운 내가 그에게 말하고는 했다. 〈일어나야 할 시간이야.〉 그의 사회적 역할이나 평판을 일깨우고자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가 일어나 비운 아직 온기가 남은 잠자리에 누워 아침 햇살에 짜증스럽게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덮고는 했다. 그런 때가 아니면 자게 놔두었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그는 늘 잠이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부르면 그는 잠에서 깬다. 이리도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이와 같은 관성은 그대로 작용할 거로 여겨진다. 그것은 지금이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이 아니라 오히려 죽었어야 하는 자가 깨어 일어나 제 짝을 찾아 헤매는 예외적인 상황이라서 그렇다. 나는 주저하고 망설였다. 그가 눈 뜬 채로 영원히 자게 놔두고 곁에 내 쇠잔한 육신을 뉘여야 할지, 아니면 그의 정신을 들게 하여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음을 일깨워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자 그 순간부터 새로운 시험이 시작되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도리어 죄인이고 수인이거늘 누가 왜 나를 시험한단 말인가? 이것은 시험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시간적 절묘함과 과시적인 비극의 혼연일체다. 시험은 이전까지의 고민은 하찮은 것이라고 말하는 성질이 있다.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소한 고민을 일소하여 네가 더 큰 문제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정황을 심화하겠다.〉 그리하여 메마른 돌풍이 불었다. 못의 수면에 파문이 일고 어떤 위험한 성분이 내 쪽으로 쇄도해 오자, 무릎 꿇고 있던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던져 못 앞에 바짝 엎드려 누웠다. 내 뺨에 묻은 젖은 재와 진흙이 순식간에 말라붙어 떨어져 나가더니 가루가 되어 바람에 휩쓸려 사라졌다. 그리고 영원히 잠든 것처럼 보이던 동반자가 깨어나 부자연스럽게 갈라지고 높은 어조로 생의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두 팔 두 다리를 허우적대고 첨벙대면서 〈내가 불에 타고 있어〉라고 반복하여 소리쳤다. 그게 무슨 느낌인지, 진창에 바짝 엎드린 나도 잘 알 것 같다. 바람에 노출된 상처투성이 등 표면이 산화하는 듯하다. 대패질하듯이 등가죽이 벗겨져 나중에는 우묵하게 패일 것이다. 현상의 진원지인 푸른 기운이 감도는 수심에 잠긴 그가 느끼는 고통의 크기가 얼마일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는다. 몸부림치는 그가 날 발견하기를 원하지 않아서다. 그가 나를 보고 희망을 느낄지 경악할지는 모르지만 둘 다 상황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나는 그를 구해야 한다. 어떻게? 일어서는 순간 나는 분해된다. 돌풍을 타고 덮쳐드는 유독한 기운은 마치 무거운 짐을 덜어주듯이 내 등피를 원자 단위로 분해하고 있다. 종국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지, 그의 목전에서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얘기를 나눠야 한다. 재회한 순간 서로 나눠야 할 이야기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건 지난 과거에 대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겪은 재앙에 대한 위로의 말도 아니다. 고통과 증상의 공유도 아니다. 그간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나는 그를 모른다. 그도 나를 모른다. 우리는 서로 알아야 할 것이 많다. 내가 나이고, 그가 그이고, 왜 서로가 각자에게 동반자인지 우리는 충분히 납득해야 한다. 또다시 서로를 망실하더라도, 각자가 얼굴을 잃어버리더라도 나와 그를 식별할 수 있는 고유한 것을 찾아내서 기억으로 간직해야 한다. 최종적인 결말에 앞서 우리가 동반해야 하는 대화는 그것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그럴 힘이 내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나에게 있지 않고 우리를 내려다보는 저들에게 있다. 나는 시험을 주재한 주체가 우리를 지켜본다고 확신한다. 모든 시험은 공공을 향한 교훈이다. 그러므로 이를 지켜보는 다수의 관중이 있다고도 확언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때맞춰 재난들이 나와 동반자에게 덮쳐들 수는 없는 법이다. 연출된 비극이 아니고서야 짧은 시간 동안 이리도 집약적으로 사건이 일어날 수는 없다. 우리의 고통은 이 나라라는 공동체에 선보이는 한 본보기다. 어쩌면 그들은 도래하는 미래의 생존자들이다. 그렇다면 이 살풍경은 기록될 것이다. 나는 시험의 주재자와 독자에게 고한다. 이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이 시험에는 답이 없다. 통과한들 보상도 없다. 그러나 먼 미래까지 전해질 한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내게, 그에게 동반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보아라. 우리가 발버둥 치는 꼴을.〉 나는 이를 갈면서 두 손으로 진흙을 끌어모았다. 나를 채찍질하는 매서운 바람을 피해 안전한 구덩이를 파려는 것인데, 두더지처럼 진창을 파 내려갈수록 하필 못의 물이 거기에 고였다. 우선 내 한 몸을 안전하게 대피하려던 내 시도는 초장부터 실패다. 물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건 아닌데도 추진 내 손은 감각이 거의 사라졌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진흙을 퍼 올렸다. 물길을 만들어 동반자가 내 쪽으로 흘러오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세수하기에도 부족한 작은 물웅덩이다. 쇠진한 내가 초인적인 힘을 내지 못함은 당연지사다. 나는 이 광경을 내려다보는 이들이 원하는 답을 안다. 그것이 답이기에 그들이 원하지 않는 방식을 나는 궁구했다. 그들은 한 가지 답밖에 없는 외길로 나를 성공적으로 내몰았고, 내가 그럴 수밖에 없음을 뻔히 안다. 그것 말고는 다른 답은 교훈이 될 수 없는 까닭이다. 〈못으로 들어가라.〉 내가 수영할 줄 모른다는 것은 그들에게 상관없다. 도리어 일종의 가산점이 부여될 것이다. 그들은 나를 안다. 그가 내 앞에서 소멸하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지 않을 걸 알고 함정을 팠다. 〈당신들은 그럴 권리가 없다. 이 비명이 들리는가? 이렇게 내 동반자를 유독한 늪에 잠겨 들게 할 수는 없다고. 신이 아닌 바에야 사람에게 죽음을 허락하지 않고 고통을 배가하는 능력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오늘날에는 짐승에게조차 그럴 수는 없다. 그럼에도 당신들이 그럴 수 있다는 건, 우리가 짐승보다 못한 존재라는 것, 그러니까 진실한 존재가 아니라 거짓된 존재라는 거다. 그래, 보다시피 나는 가짜다. 왜 아니 그렇겠나? 언제나 그런 위구심을 버리지 못했지. 누구는 진실보다 더 진짜 같고 나는 거짓보다 더 가짜 같은지 말이다. 나는 태생에도 불구하고, 아니, 태생이 그래서 항시 진실해지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런 노력이 더 촘촘한 거짓을 낳았지만, 그게 뭐 어때서? 허구가 복잡하듯이 사실 또한 복잡다단하다. 현대에서 단순함은 더는 진실의 미덕이 아니다. 하물며 나의 진실은 내 밖에 있다. 나의 동반자에게. 그러니 너희들이 그를 인질로 잡은 것 아니겠나? 내가 그를 구하지는 못하겠지. 그저 우리에게 함께 새롭고 더 복잡한 곤경으로 나아갈 기회를 부여할 거라는 걸 안다. 설령 구한다고 한들 끝이 아니라는 것도. 두고 보라. 우리가 당신들이 기대하는 모든 교훈을 파기할 테니.〉 그들에게 마지막 으름장을 놓은 뒤, 나는 시험을 가장한 덫에 응하기로 한다.

나는 짐승처럼 낮게 엎드려 기어서 푸른 서광이 갇힌 못의 물속에 머리부터 집어넣었다. 내 가벼운 육신은 알 수 없는 기체로 찬 것처럼 수면 위를 부유했다. 수심에 잠긴 동반자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자꾸만 썩어서 팽창한 시체인 양 몸이 뒤집혀 배가 위로 향하려고 해서, 팔다리를 물방개처럼 휘저으며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그저 몸만 맡기면 될 줄 알았는데, 걸어서 겨우 몇 발짝 거리를 첨벙거리며 맴돌고 있었다. 못의 물길이 아래의 계곡으로 이어지며 자그마한 폭포를 이루는데 나와 동반자가 제자리에 떠 있다는 것은 기이한 현상이다. 나는 청백색의 용액에 잠겨 용해되어 갔다. 몸에 걸쳐진 찢긴 넝마 조각이 삭아서 떨어져 나갔고, 이내 내 손목을 고통스럽게 옥죄던 시곗줄도 문드러지며 나는 훌훌 적신으로 해방되었다. 그것은 내가 자신의 생존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더는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식인 물고기들이 산 채로 내 몸을 야금야금 뜯어 먹는 듯한 체감 속에서, 육체를 구성하는 성분들이 분해되고 마침내 생명의 신비가 무위로 돌아간다는 벅찬 희망으로 나는 잠시간 물장구를 멈추고 정신이 희미해졌다. 그러나 그가 눈앞에 있는 이상, 그만이 진실로 존재하며, 내게 발생하는 모든 현상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새 온몸에서 새어 나온 물풀 같은 모종의 점액질이 물에 씻겨 떨어지지 않고 내게 끈적끈적하게 엉겨 붙었다. 무력감에 숨마저 턱 막혀왔지만, 나는 다시금 두 손으로 호를 커다랗게 그리고, 수면 아래로 발버둥 치며 동반자에게로 나아갔다.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는 자기를 향해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는 정체 모를 물체를 감지하자 숨이 넘어가도록 헐떡거리며 지르던 비명을 멈추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동공이 빈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가 나를 알아보는 데 익숙한 내게 매우 낯선 그 눈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나를 알아보기는커녕 지금 놓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백치의 눈이었다. 그는 다시금 온몸의 관절을 꺾어 가며 몸부림쳤다. 그는 물에 잠겨 있는데도 전신 화상같이 타들어 가는 통증으로 인하여 자기가 불에 타고 있다고 착각했고, 그게 그가 인지한다고 믿는 정황의 전부인 듯싶다. 나는 수면 위를 부유하는 나뭇가지 따위를 주워서 그에게 던져 나의 존재를 환기시키려 하지만, 그는 그걸 맞고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부산물처럼. 마침내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형체를 잃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도 좋은 방편이다. 육신을 잃고 백치 같은 의식만이 살아남을 테다. 내가 꿈꾼 죽음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책임져야 했을 존재에 가까워지는 건 기꺼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사고하는 의식이 남은 이상 나는 최선을 다해 자아를, 동반자라는 타자를 붙들어 간직하고 반추해야 한다. 푸르른 못은 물풀로 가득 찬 것같이 육중하여, 물살을 가르는 내 손과 다리가 점점 힘을 잃고 정체되었다. 그가 몸부림을 멈추고 내 쪽으로 조금이라도 마주 건너온다면 서로에게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다. 나는 그를 일깨워야 한다. 「이리로 와. 내가 너의 동반자야.」 그렇게 말하고 나는 끈적한 푸른 액체를 한 움큼 들이켜야 했다. 그가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소리에 반응할 뿐,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다. 지금 그에게 동반자는 너무 어려운 개념인 것일까?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을 도출한다. 「나는 너야.」

나는 무력감과 절망감에 등과 뒷머리를 수면에 기대어 발라당 누워 버렸다. 하늘은 푸르게 빛나는 못에 자신의 청명함을 뺏긴 듯 흐리고 높게 떠오른 해는 멀겋게 흔적만 남아 있었다. 그 희끄무레한 원은 못에서 피어오른 기이한 아지랑이로 현기증 나게 일렁였다. 내 쪽으로 헤엄쳐 온 그가 수면에 반쯤 잠긴 내 발목을 붙잡는 게 느껴졌다. 「그래. 이제야 너를 알아보겠어. 우리는 똑같아. 너는 나야. 우리는 서로를 잃어버렸다가 이제야 재회한 거야. 바깥에서.」 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또렷이 말했다. 모든 힘을 다 쓴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신비로운 푸른빛이 감도는 못 위에 한참을 둥실둥실 떠 있었다. 아마도 우리 육신 일부는 끈적한 점액질로 녹아, 다른 일부는 기화하여 서로를 분간할 수 없이 융해될 것이고, 새로운 사태가 자아낸 초자연의 한 부분이 될 테다. 아니면 부산물처럼 온전한 형체 없이 아무것도 요해하지 못하는 백치 같은 의식으로 이승을 떠돌겠지. 어쩌면 우리는 진정한 하나가 될 것이다. 아직은 그런 이야깃거리라고는 없는 미래가 멀게 느껴진다. 자아가 남은 한 우리는 계속 내일을 의심할 거고, 그러든 말든 시간은 지나갈 거다. 그러나 서로를 구별하면서 동시에 동일시하는 한 우리는 함께하는 순간을 놓칠 수 없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것이 남았다는 의미다. 나는 그를 내 쪽으로 바싹 끌어당겼다. 내 신호를 이해한 그가 내 팔을 꼭 붙안았다. 우리는 한 몸인 것처럼 함께 무게 중심을 기울여 물이 떨어져 내리는 계곡으로 방향을 조정했고, 천천히 물길을 따라 흘러가다 별안간 급물살을 타고 폭포 아래로 머리부터 추락했다.

 

* 윌리엄 워즈워스, 『서곡』, 김승희 옮김(서울: 문학과지성사, 2009)

** 앙리 보스코, 『이아생트』, 최애리 옮김(서울: 워크룸프레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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