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생활

읽는 사람들의 독서 생활을 함께 나누는 자유게시판, 〈읽는생활〉. 지금 읽고 있는 책, 추천받고 싶은 혹은 추천하고 싶은 책, 마음에 담은 책 속 문장부터 동네서점 추천, 도서전 후기까지! 여러분의 지극히 일상적인 '읽는생활'을 묻고 나눕니다. 이곳에 차곡차곡 쌓이는 이야기들이 모여, 읽는 사람들의 '읽는생활'을 더욱 풍성하게 채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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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전독서단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건 누구의 말

몇 주전 불현듯 마음에 ‘대부’ 원서를 뒤졌다. 걱정대로 내가 즐겨 인용하던 부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즐겨 인용해’ 말한 대상들이 모두 가족인지라 쉽게 Undo할 수 있었기에 문제될 것은 없었지만 마리오푸조 형님 입장에서는 자신이 쓰지도 않은 장면이 전설처럼 남을 뻔한 상황이었다. 이 진땀났던 경험을 상기하며 나는, 이 소설을 추격스릴러로 읽었다. 독특하고 재미있었다. 주인공 도이치는 결혼 25주년 기념 저녁식사에서 디저트인 홍차 티백에서 발견한 문구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를 처음 발견한다. 발화자가 자신이 평생 연구해 온 괴테이기에 그는 그 문구의 원전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도이치는 괴테의 저서들을 되짚기도, 동료 전문가들의 집단 지성에 도움을 청하기도, 나중에는 티백 문구의 Raw material을 쫓기도 하지만 좀처럼 그 위대한 독일 철학자/ 작가의 흔적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과연 괴테가 그 말을 한 적이 있기나 한 건가? 또, 그게 중요한 건가? 언어와 그것을 재료로 하는 창작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스릴러적 구조와 귀엽고 따뜻한 분위기, 한자 유희 속에서 꿈틀댄다. 초반 10%가 넘어가기 전에 괴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님은 알 수 있었지만, 작가의 노고가 느껴지는 수많은 고전의 인용 속에 새삼 서양철학사나 문화사를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쿠타가와 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소설을 한달 내에 쓸 수 있는 사람을 찾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인정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 시가 바이올린이라면 소설은 피아노와 같다는 생각을 해 왔다. 시에 비해 소설에서 어린 나이에 천재성이 발현되기 어렵다는… 그런데 우리 딸과 동갑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생각의 넓이와 깊이를 접하고나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이렇게 젊고 밝고 기운차고 명랑하면서도 진지한 글을 읽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이 소설을 읽는 것이 즐거우셨다면 한국 작가 서한용의 소설들도 강추하고 싶다 (재작년 6월 등단했고 현재까지 네 편의 단편들이 월간 현대문학에 실려 있다.)

기타

나는야 하이에나

파이 이야기 20년쯤 전에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가졌다. 당시에 이 책은 읽기 어려운 책이었다. 많은 기억들이 희미해졌고 20년이 지난 지금은 나에게 다시 어떻게 읽힐지 궁금했다. 이전의 기억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과거보다 잘 읽혔다. 1부에서는 작가의 종교와 동물원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의 동물권에 대해 나는 무관심한 사람이다. 한 번도 강아지나 고양이를 가깝게 곁에 둔 적이 없기에 그들에 대한 정보가 없을 뿐 아니라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던 기억은 없다. 하지만 동물원의 동물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그들의 동물권을 박탈하고 있다던가, 사자나 호랑이를 아프리카 초원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게 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는 뭐랄까 꿈같은 소리 하고 있네. 라든가 그래서 어쩌라고 같은 느낌을 주는 이야기들 뿐이다. 물론 좁고 쾌적하지 않은 환경의 동물원에 갔을 때 움직임이 적은 늘어진 동물을 만날 때면 이게 최선인가 하는 생각은 했지만,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동물을 그들의 원래 환경으로 보내주는 게 과연 최선일까라는 의문도 품었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동물의 생태를 생각하면 동물원도 그럴듯한 그들의 삶을 보장할 것 같지만 다시 읽어보니, ‘원래’ 라는 것, 서열이 존재하고 먹이가 부족한 환경이 그들에게 맞는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결국 동물이 스스로 선택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들에게 선택하게 한다는 것도 인간적인 사고이다. 서열문제나 먹이부족처럼 인간의 사고에서 불쾌한 것들이 어쩌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종교에 대해서는 애초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비관적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를 어리석은 자들이 도망가는 쉘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파이는 모든 종교의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고 각각의 종교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인다. 맞는 말이다. 모든 종교에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내가 종교를 비난했던 점은 그들이 뭉쳐서 그룹을 만들고 배타적인 성향을 가졌을 때 나타나는 폐해였다. 그런데 집단이 된 인간들은 모두 비슷한 폐해를 가지고 있다. 그 나쁜 점들의 원인이 종교가 아니라 집단성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를 가진 개인들은 어쩌면 오히려 홀리하다. 그들이 뭉쳐 집단으로 활동할 때 그들은 나와 너를 구별하고 배타성이 확대된다. 결국 파이는 신 자체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신을 믿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2부에서는 같이 표류하는 느낌이었다. 대체로 힘들었다 하지만 문득 고독하고 고요한 밤하늘을 바라보던 파이의 감정에 공감되기도 했다. 내가 쉬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프랑스인을 파커가 발로 쳤을 때 그 숨이 끊어지는 느낌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스스로가 무척 나약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에베레스트든 망망대해든 고립된다면 나는 인간성을 아주 쉽게 버릴 거라고 예전부터 생각해 왔다. 목숨이 걸린 상황이기에라기보다는 우선 두려움과 공포에 잠식당해 버렸을 때 나는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 망설임을 가질까. 아니, 나는 아마 하이에나처럼 아주 쉽게 인간성을 버릴 거다. 그건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두려움과 공포에 잠식된 동물의 행동일 것이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인간성을 회복했을 때 바로 하이에나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아마 나는 소설 속 프랑스인 요리사에 가장 가까운 멘털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 살아남는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파이는 계속해서 죽음을 두려워한다. 아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극한의 공포를 계속 느끼는 상황에서는 차라리 빨리 죽어버리겠다고 이야기해 온 사람이다. 좀비 영화를 보며, 어떻게든 살려고 가 아니라 빨리 물려서 좀비가 되어버리는 걸 선택하는 부류인 거다. 물론 정신없이 도망칠 때는 우선 도망이 목적이겠지만 정신 차리고 인간으로 돌아왔을 때 선택을 해야 한다면 무조건 이런 좀비행이다. 파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계속해서 삶을 선택한다. 아니 삶을 선택한 것일까 그저 살 수밖에 없었던 것 일까는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파이는 살아남는다. 삶은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2부에서의 많은 이야기들은 환상 같았다. 아름답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고 두렵고 더럽기도 했다. 3부에서 그 이야기는 결국 파이가 만들어낸 동화라는 걸 알게 된다. 결국 살아남은 인간들의 선택이다. 곧 죽을 부상을 당한 인간, 그 인간을 이용한 겁 많은 인간 그리고 비인간성에 분노하고 용서하지 못한 인간, 마지막으로 그 모든 상황에서도 결국 삶을 이어가는 선택을 한 인간. 어떤 인간도 나쁘지 않다. 그저 각자의 삶을 대하는 태도이거나 선택이다. 나는 왜 쉽게 삶을 버리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판단하고 있을까. 삶의 의지가 부족한가. 왜 이렇게 자랐을까.

기타

기대에 비해 아쉬웠던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

개인적으로 같은 작가의 초창기 작품인 드래곤 라자나 눈물을 마시는 새를 상당히 재밌게 읽은 독자랍니다. 부연 설명 없이 책을 따라 읽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독특한 세계관을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번 작품은 앞서 나온 단편집들을 안읽어서 그런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세계관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더군요. 특히 인물이 여러명이 나오는데다가 호칭이 실시간으로 바뀌어 가며 불러가다 보니 누가 누구에게 이 말을 하고 있는건지 이해가 안되 읽다 말고 되돌아가 다시 읽어야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답니다. 읽기 힘든걸 떠나서 소설 자체의 재미가 있었냐면 그것도 잘 모르겠었던 작품. 읽는 책이 아닌 오디오북 용도로 나온 책이 아닌가 싶은 느낌이 강한 책.

이달의 소설

우리는 우리 땅의 운명과 함께한다

사람의 삶은, 그 일생은 자신이 태어난 땅, 그 나라와 동떨어질 수 없다. 그 삶은 어머니의 태로부터 시작되기에 우리는 이 나라를 모국, 조국이라 부른다. 홍콩의 중국 반환과 민주화 운동의 그 격변을 온 몸으로 부딪치는 두 남매에게서 피와 눈물과 촛불로 이뤄낸 현재 진행형인 우리의 민주화 과정이 겹쳐진다.

이달의 고전

네 이놈! 프랑켄 슈타인

무엇이 떠오르는가. 녹색얼굴의 괴물이 떠오른다면 나와 비슷한 정도의 정보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이미 너무 많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되어 버린 책 ‘프랑켄슈타인’을 읽었다. 유튜브에서 유난히 프랑켄슈타인과 관련된 콘텐츠들이 제작되고 나의 알고리즘에도 파고들었다 생각했는데 역시, 유명한 감독 기예르모 델토로에 의해서 새롭게 만들어진 영화 프랑켄슈타인의 홍보차 제작되는 영상들도 적지 않은 듯했다. 괴물이 등장하고 그 괴물이 누군가를 죽이는 이야기로만 알고 있는 책이었다. 고전이라는 걸 알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고전에는 지루해서 도무지 읽을 수 없는 부류와 가독성이 좋고 이야기에서 시대성이 느껴지지 않는 잘 읽히는 부류의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잘 읽히는 고전에 속했지만 취향적인 측면에서는 수사가 많아서 오히려 집중을 깨기도 했다. 하지만 잘 읽힌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고전이다. 고전 특유의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에 대한 문장들도 좋았지만 임팩트는 약한 느낌이었다. 그건 번역가의 능력여부에 따르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크리쳐는 얼마나 흉측하게 생긴 놈이었을까. 그가 아무리 괴물같이 생겼어도 사람은 결국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한번 두 번 보다 보면 그래도 익숙해져 귀여운 부분을 한 군데라도 찾을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생각을 바꿔 내가 싫어하는 인상을 가진 사람을 상상해 보자 못생기고 무섭고 그런 형태를 떠나서 취향에 맞지 않다면 증오하기는 더 쉽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모에서 공포를 유발하거나 불쾌감을 준다면 결국 그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조차 얻지 못할 확률이 높다. 인간성이나 측은지심 같은 마음도 결국 교육을 통해 길러졌다고 생각한다. 먼 과거의 이야기나 책에서 밝혀지는 당시 인간들의 인간을 향한 냉혹함이나 이기심을 생각하면 (아이를 낳자마자 돌보지 않고 시설에 넣어버리는 귀족이나 아이에게 장애가 있으면 쉽게 죽이거나 버렸다는 유럽의 이야기들 많은 유명한 철학자나 작가들이 그들의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았다는 이야기에서 나는 우리가 가진 좋은 인간성의 부분은 결국 교육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크리쳐는 더 힘들었을 거다. 크리쳐는 동반자를 원한다. 그런데 다른 한편 크리쳐 같은 성격은 동반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 애정결핍이 심한 사람들은 스토커가 되기 쉽다. 갈구하던 관심과 사랑이 채워지는 순간 그다음을 욕심내기 마련이고 상대가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면 크리쳐는 잔인한 스토커가 되었을 수도 있다. 애초에 너무 격한 결핍은 겪지 않는 게 좋다. 크리쳐의 행복을 향한 추구는 그 방법이 오직 ‘외롭지 않기 위한 동반자’라는 한 가지에 국한되었다는 점도 위험해 보였다. 물론 그에겐 인간사회에서의 교육이 부족하기에 본인이 알고 있는 행복만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본인의 행복을 향한 희망을 오로지 빅터에게만 의지해서 얻어내려고 하는 건 안타까운 점이었다. 천천히 공부하고 더 많은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면 혼자서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을 텐데. 그의 본성의 아름다움을 발할 기회를 만들어 주지 않은 창조자 빅터는 정말 나쁜 놈이다. 책을 읽으며 내내 영화 케빈을 위하여가 떠올랐다. 결국 결여된 애정이 분노를 폭발시키면 괴물이 되는 건 아닐까.

이달의 소설

제임스

고전을 다시 쓴다는것.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하지만 제임스는 이 염려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가뿐히 뛰어넘어 독자적인 한 편의 이야기로 우뚝 선다. 재미있고 스릴넘치는 이야기 속에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가 새겨져있어 끝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다.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좋았던 책.

이달의 고전

왜 이제야 읽은걸까요

진짜 올해 읽은 책들 중에 손에 꼽을 수 있는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흥미로운 서사 예측불허한 전개 매력적인 캐릭터들 같은 소설적 재미를 위한 요소는 물론이고 과거랑 현재, 소설과 현실을 왔다 갔다 하는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묘하게 이것들이 서로 섞여있는 소설의 구조하며 적절한 은유와 상징들을 활용하는 기법적인 부분과 독자와 사회를 향한 메시지도 그렇고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약간은 좀 올드하단 느낌도 드는 러시아 고전들의 그 특유의 긴~ 문체가 저한텐 쬐끔 흠이라면 흠이지만 이것도 솔직히 읽을 때 매력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어서 불만도 아니네요. 암튼 정말..좋습니다. 안 읽으신 분들한테 강추!

기타

달밤 정말 좋은 글이네요

교과서로만 접하다가 이렇게 다 읽는건 처음이었어요 진짜 정말 좋은 글이고 오랜만에 가슴이 뛰어요 제가 같은 한글을 쓰는 사람인게 너무 뿌듯합니다 고전의 참된 맛을 느낀거같아요 매년 다시 읽고싶어졌어요 진짜 두꺼워서 부담됐었는데 이렇게 다 읽을거라고 생각도 못했어요 10월에 딱 어울리는 고전이었던거같아요!!

기타

올해의 마지막은...

10월도 저물어가고 이제 연말이 다가오네요. 날씨가 쌀쌀해지니까 한 해를 시작하는 책을 나름 신중히 선택하는 만큼, 올해는 연말에 읽는 책들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책을 읽고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놓은 벽돌 책이나 노벨상을 수상한 크라스너호르카이 라슬로의 [헤르쉬트 07769]를 읽어볼까 하는 생각도 들다가 뭔가 더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책을 읽어보고 싶기도 해요. 여러분들은 연말에 읽을 책을 계획해 두신 것이 있나요?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읽으면 좋은 책, 혹은 읽어보고 싶으신 책이 있으신가요?

기타

이태준의 수연산방

오늘 이달의 고전 “달밤”을 다시 읽으러 수연산방에 다녀왔습니다. 상허가 월북 전까지 지냈던 거처인데, 지금은 조카 따님께서 찻집으로 운영하고 계신다고 책 말미에 수연산방 사진과 함께 소개된 걸 보고 바로 찾아갔습니다. 단편 “장마”를 실제 배경인 장소에서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차를 다 마신 뒤에는 고즈넉한 성북동의 분위기를 천천히 걸으며 둘러봤는데, 근처에 근대문학관을 비롯해 여러 예술가의 생가도 있어 정말 좋았어요. 문학 산책으로 성북동 한 번 다녀오시길 추천드립니다! (사진이 한장 밖에 안올라가서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