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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깥으로 곧게 전진하려다가도 안을 향해 굽이도는 성질이 있었고, 매양 먼 길을 돌아 도로 원점으로 회귀해 가며 방향만 다를 뿐 같은 원을 거듭 그려 냈다. 한 점에 곧장 뻗치지 못하고 주위로 비껴가며 중심을 맴돌기만 하는 선. 그 궤적은 말할 것도 없이 한낱 가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삶 어디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졌는지 생생히 열거할 수 있다. 혼약 없는 동거와 이로 인한 부산물, 한통속 같은 이웃들, 신경 쇠약 그리고 이 모든 요소와 함께 나이 들어 가는 것이다. 지난 행적들이 상상 속 울타리를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반경은 되레 나선처럼 안으로 조여들고 있었다. 때는 새벽 택배를 실은 전기차가 흘리는 몽롱한 신음 같은 가짜 기관 소리가 골목을 배회하는 밤이었다. 동반자는 초저녁에 퇴근하고 나서부터 내내 침대 위에 늘어져 있었다. 그 틈을 타 안방을 나와 부엌 맞은편에 숨어든 나는 상념이 직업인 듯 맹렬히 생각하고 있었다. 디귿 모양으로 패인 벽감 개구부에 휘장을 친 그 자리는 까마득한 옛 공화국 시절 지어진 이 다세대 주택 셋방의 명목상 거실이다. 이렇게 좁아터진 한구석에 내몰리고 책걸상과 종이 더미에 에워싸여 앉아 장막 사이로 엉덩이를 비죽 내밀고 있노라면 이내 부산물이 기어들어 와 발치에 똬리를 틀고 아마도 자신을 봐 달라는지 소리쳐 댔다. 궁리에 몰두한 내게는 그 소리가 멀게 들렸다. 잡념이 잇달리다 보면 현재의 감각만이 아니라 이전에 지각하던 것도 종종 까먹기 마련으로, 가상의 선에 대해서도 그랬다. 사고는 가열했다. 매우 강력하고 파괴적인 생각들로, 심중의 비사가 한 자아에만 머무르지 않게 되는 불온한 깨달음에의 단초였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이 상태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었다. 내 의식이 때때로 바깥을 향하여 기발하고도 엄청난 판단을 내놓더라도 당장의 나는 여전히 울타리 안쪽에 머물러 있다. 미래는 바깥에 있고, 선 안으로는 과거만이다. 현재는 지난날의 지속이다. 머릿속에 그은 금을 내가 계속 상기하든 망각하든, 벗어나려 하든 간에 이 또한 사실로는 아무런 현상도 아니다. 무엇도 발생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오래전에 비참하게 죽은 작가들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었고, 그들처럼 기꺼이 삶의 현장을, 그럴 수 있다면 동반자마저 잃을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그러한들 내 생애 가운데 가치 있는 몇 없는 구석마저 내버리는 정신적 파산 행위에 불과할 따름이다.
우리는 벗어나지 못하는 병에 걸린 비참한 공동체였다. 서로가 천애 고아기를 어찌나 염원하였는지. 그렇지만 언제든 거리낌 없이 작별할 수 있다는 일말 희망이 외려 저간 우리를 붙들어 오지 않았던가. 떠날 수 있다. 그러므로 돌아올 수 있다. 이별과 재회는 말장난처럼 손쉽다. 나는 얼마든지 또 다른 너를 찾아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되지 못하면 너는 나와 함께할 수 없다. 우리는 참으로 비참한 공동체다. 나는 다양한 상대 속에서 새로운 우리를 발견하고자 했다. 시도에도 불구하고 매번 재확인하는 사실은 그 구성원이 누군지 애초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라는 개념은 배타적이다. 새로운 대상을 원치 않는다. 동반자 모르게 애타도록 동경하던 사람이 간혹 있었지. 나를 곤란케 하던 사람. 내가 중요치 않던 자. 그 사람과는 서로 상극인지 친구조차 될 수 없었다. 나는 쩔쩔매면서도 곁눈으로 그를 좇았고, 그자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내 눈을 피했다. 시선 아래서 그는 내가 의식하는 나 자신보다 더 진정하고 극대화된 주체로 포착되었다. 그것은 그가 항시 생각에 잠긴 모습을 지닌 까닭이었다. 내가 거울에 비친 우둔한 제 얼굴에서 아무런 사고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던 것과 달리, 그의 낯에는 사유가 현시하는 듯한 착란을 불러일으키는 눈짓이, 치밀어 오르는 한 전언을 애써 감추는 것 같은 쓰디쓴 표정이 지어졌기 때문이다. 한데 내가 결국 동반하게 된 자는 그런 자가 아니었다. 동반자는 나와 같은 병에 걸렸다. 우리는 하루 중 유일하게 저녁 식사에서만 동석했다. 둘 다 실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굶주림과 슬픔, 추위에 겨운 척, 수저를 든 손을 파르르 떨고, 맛이라는 걸 모르는 듯 음미하지 못하며, 몸에 퍼지는 음식의 온기에 당황하여 몸을 비비 꼬면서 식사 시간의 긴 침묵을 감내하고는 했다. 수저를 내려놓은 뒤로는 한 침대 위에 각자 늘어졌다. 그래야 나의 동반자지. 동반자와의 시간이 지속됨은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음을 매 순간 상기한다는 것이다. 시간은 속박 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그게 우리의 인생이다. 무력감 외에 아무것도 공유하지 못하거늘 어째서 나 하나만의 삶이 아니란 말인가.
내 생을 따로 떼어 낸들, 물론 이 역시 누구도 매혹하지 못하는 삶이다. 타의 모범도 못 되거니와 그렇다고 자타의 인생을 망가뜨릴 만치 추악하지도 않다. 순간순간의 추동과 도망, 망설임으로 여기에 이르렀을 뿐이다. 이 나라의 여타 사람들도 매한가지 아니던가? 나 또한 그들 평균치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치들은 자기네가 지닌 평균값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수없이 남을 기만할지언정 어찌 자기 자신을 그 정도로 속인단 말인가?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인 적이 없으며 도리어 노예에 불과하다. 내게 신분 해방이 도래한다면 스스로 모든 것을 저버렸을 때고, 그건 원치 않는 것을 원함이나 다름 아니다. 내 이름에서도 벗어나지 못했고 육체로부터는 말할 것도 없다. 혹자는 제 외형을 바꾸거나 단지 몇 마디로 쉬이 정리되는 깨달음을 통해 자신이 이전의 자기가 아니라고, 또는 스스로를 초월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리 간단히 나 자신을 눈가림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왜 나는 비루한 내 삶으로 누군가를 매혹하려는 듯 전 생애를 의식하는 걸까? 그것은 내가 글쓰기에서 독자에게 은연중 내비치던 순진한 기대감이 아니던가. 아무렴, 글쓰기는 나만의 또 다른 원이므로 삶과 같은 원주율을 지님은 이상하지 않다. 그 또한 우리가 함께 속한 원이기도 한데, 내가 본문에 쓰여야만 상대를 신뢰할 수 있다는 것처럼 쓺으로써 동반자와의 관계를, 그 말로를 예견하고자 한 탓이다. 한데 글쓰기에서 그려 나가는 원이 우리 삶의 반경을 진정으로 대체한 적이 있기는 하던가. 여태껏 나는 작가였고, 내내 동반자에 관해서만 쉴 새 없이 써 왔는데, 이야말로 평소 경멸을 마지않은 우상 숭배가 아니던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오직 단상만으로 잠들기에 충분한 피로에 도달해 하품하던 참이었다. 누가 내 하잘것없는 이름을 불렀다. 불리는 순간 주변의 모두가 내 낯을 돌아보았다가 이내 무심히 눈길을 내리깔게 만드는 희미한 옛 시절 노예의 이름. 나를 부르는 그 소리에 발아래 엎드려 있던 부산물이 발딱 몸을 일으켜 달음박질쳤다. 그는 이름이 없다. 하여, 모든 음성이 자신을 호출하는 목소리인 줄 아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그에게 이름을 부여할 자격이 없는데, 부산물을 부속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와 동반자 사이에서 난 게 분명하다고 해서 우리 아이이지는 않은 까닭이다. 그는 죽어 간다. 우리가 부산물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시시각각 들이닥쳐 오는 죽음을 향한 어떤 기대감, 비극에 대비하는 다짐 같은 것이 서렸다. 그의 죽음 뒤에도 우리는 서로에게 영원히 동반자일까? 그의 사후에 우리의 죽음이 아니라 단지 서로 간의 이별만이 있다는 투의 어리석은 질문이다. 고개를 불편하게 돌려 가며 장막 틈새로 부산물을 좇던 나의 응시는 그가 방바닥에 윤이 나게 고인 어슬한 서광 위를 지나 암연한 사각지대로 사라짐으로써 중단되었다. 이내 계주봉을 이어받은 감시 카메라가 그의 발길을 따라 건조한 관절을 꺾는 기계음이 들렸다. 그것은 열대야가 끝없이 이어지던 지난해 9월 강박으로부터 비롯된 소산물이다. 기록적인 열대야가 내 지각을 흐렸다. 그날 나는 노트북이 든 가방을 메고서 동반자에게 말없이 집을 나섰다.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잠들었을 것이다. 깨었다면 야음을 틈타 밤도망이라도 치는 줄 알고 나를 불러 세웠을 테니까. 부산물은 조용히 신발을 신는 나를 보았을 테지만 나는 정신이 다른 데 팔려 있었을 것이다. 현관문도 제대로 닫지 않고 나갔으니까. 그러므로 예전처럼 부산물이 나를 찾아 부르짖지 않고 살며시 벌어진 문틈을 제 몸으로 비집고 나와, 내 발걸음이 떠나간 뒤로 이어진 밤중의 적막으로 길을 나섰을 터였다. 나는 비지땀을 흘리면서 산책 아닌 배회를 했다. 산책은 구주의 한가한 근대인이나 누리던 호사라며 항상적으로 경멸했건만, 배회 역시 매한가지 아니었나. 이제라도 집으로 돌아가야 해. 그렇게 되뇌면서 인파와 거리가 밀랍처럼 녹아내리는 듯한 한증막을 지나쳤다. 광해로 옅은 남빛을 띠는 하늘에 먹과 풀을 섞어 바른 색깔의 두루마리구름이 낮게 장막처럼 깔렸고, 구시가지 외곽으로 나와 이른 천변에는 무성한 잡풀과 덩굴이 산책로까지 침범했다. 모종의 생태계와 토양을 배양하고자 빛과 수증기를 가둔 거대한 온실에서 길을 잃은 듯, 나는 사람에게 유독한 대기에 희끈희끈해지는 정신 줄을 간신히 붙안고 있었다. 전화가 와서 걸음을 되돌리지 않았다면 배회 끝에 실신했을 것이다. 이 열대야에 수풀을 짓밟아 길을 내며 산책하는 자는 없었으니 방치된 그대로 죽음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 나라는 근대의 구주가 지니던 온화함이라고는 없이 모든 환경이 사람에게 적대적이다. 그렇기에 표적이 되기 손쉬운 개인으로 자립하기보다는 군중 속에 머무르기를 택하는 거야. 그것은 언뜻 내부에 적이 없는 완전한 아군 진영을 뜻하는 듯하지만, 실은 구성원 모두가 암묵리의 적인 휴전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군중은 상대가 무리로부터 고립되어 취약해지기를, 홀로 무너져 내리기를 기다린다. 그렇지 않다면 방역학적인 구실로 개체에의 불결 공포를 조성하여 끝끝내 축출하지. 범접 못 할 무결성을 지닌 단 1인의 승자가 적대 상태를 종식할 때까지 민중은 제 몸을 떼어 내가면서 적대와 휴전을 오가겠지만, 그날이 이 나라에 도래한 역사는 아직 없다. 한민족에서 떨어져 나간 북녘의 저 나라는 불행히도 약속된 날이 이미 오래전 도래했다. 이 나라는 아직 그래도 요원한 것이, 반세기 넘게 궐위와 정변이 반복됐음이 그 반증이다. 때로는 국민이 결격한 지도자를 끌어내리기까지 한 이 나라의 역사는 민주적 성숙에서 비롯됨이 아니라 단지 저 나라와 같이 압도적 승자의 등극이 근래에 없었다는 요행에 따름이다. 이 피해망상은 근 몇 년 사이의 배회가 병인이었다. 홀로 이리저리 돌아다님은 자신을 만인의 적대 상태로 내몰아 불안에 병들게 하는 물리적 자해고 집 안에서의 정주는 안락한 노예라는 신분 의식을 소태처럼 곱씹는 내적 되새김이다. 그때 걸려 온 전화를 받자, 동반자가 내게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천변의 물소리를 의식하면서, 시치미를 떼고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작업하러 나갔다고 대답했다. 「문이 열려 있었어. 부산물이 제힘으로 나갔나? 이제 놓아주어야만 하는 걸까?」 동반자가 아침에 출근하고 나면 나는 부산물을 안고 부엌 창가에 서서 그가 방금 나선 현관 앞뜰에서부터 구릉 아래 근린공원의 녹음과 그 뒤로 펼쳐진 잿빛 고옥들, 판에 박힌 구시가지 그리고 남쪽 원경에 신기루처럼 걸린 신시가지의 고층 아파트 단지 배후로 큼지막이 솟아올라 판상 절리 형태로 균열 난 바위산과 더불어 산허리를 신비로이 감싼 안갯속에서 피어나는 취람색 소나무 군락을 넘어다보며 덧없는 말을 지껄이고는 했다. 「봐. 이게 세상이야. 집보다 넓지. 세상이란 집보다 넓은 곳, 오로지 바깥만이 세상인 거야. 또한 한집에 사는 가족이 아닌 이들만이 바로 세상 사람이야. 너는 세상과 유리되어 있지만 괜찮아. 우리가 세 든 집에서 함께 살면 돼. 같이 지내다 보면 가족이 될 수 있을 거야. 반대로 함께 살지 않는다면 더는 그렇지 않으므로, 거기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 어느 날 우리가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너는 네 삶을 위하여 이 집으로부터 도망쳐 나와야 해. 그 순간 집도 가족도 아무것도 아니야. 세상으로 나가야 할 때인 거야.」 이 달동네는 공항으로 진입하는 한 길목인지 낮은 고도를 지나는 비행기가 자주 보였다. 어릴 적만 해도 또래 아이들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발견하면 소원을 빌었는데 그것은 틀렸다. 비행기는 소원 자체를 싣고 먼 타국으로 멀어져 간다. 창밖으로 목도하는 모든 비행기는 사람들의 염원이 이 나라로부터 탈출하는 광경이다. 휴대 전화기 너머로 동반자가 잠에서 금방 깼는지 깊은숨을 크게 내는 가운데 내가 머뭇머뭇 대답했다. 「아니야. 내 실수야.」 우리가 사는 다세대 주택으로 돌아왔을 때 부산물은 앞뜰의 은색 불수강제 난간이 세워진 벼랑 앞에 서서 아래로 펼쳐진 녹음을 말없이 마주하고 있었다.
내가 목격한 장면은 그가 드디어 한 개체로서 세계를 마주한 찰나였을까? 그의 자유를 내가 감시 기계로 앙갚음한 것일까. 그는 나와 동반자의 곁을 비활성 기체로 채워진 풍선처럼 부유하며 오갔다. 또한 시들어 가고 죽어 가면서 자신의 존엄을 우리에게 한없이 암시하기만 하는 존재였다. 이는 우리가 놓쳐 포기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외면하려 안간힘을 쓴 가능성, 즉 정상 가정을 꿈꾸었던 시절에의 미련이자 회억이기도 했다. 어쩌면. 부산물이 우리의 아이가 될 수 있지도 않을까? 나와 동반자가 아닌 이 방면의 전문가에게서 희망의 선고를 이끌어낼 수도 있겠다고 우리는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의 관점에서 그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의 희망은 진작에 좌절된 셈이었다. 별수 없이 우리가 부산물에게 목줄을 채우고 간 곳은 동네의 오래된 동물병원이었는데, 대기실을 돌아다니거나 보호자의 무릎에 놓인 반려동물들은 모두 그를 알아보는 아무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만이 알아보고 이해하여 그를 존재하게 한 운명에 분노했다. 그의 희미한 존재감이 외려 개중에 돋보이는 바람에 보다 더 존재가 위태로운 생명으로 다가온 것이다. 「어떻게!」 그 반응은 어쩌면 수의사에게도 측은지심을 끌어낼 수 있으리라는 작은 소망을 우리에게 심어 주었으나, 마주한 그는 냉담하리만치 사무적이었다. 그가 부산물을 들어 체중계에 올려 보고 부질없게도 맥을 찾아 몸을 구석구석 뒤적이는 동안 동반자는 반웃음을 치면서 얼어 있었다. 나는 그것이 자식의 목숨을 구걸하는 부모의 비굴함을 흉내 내는 거로 착각했다. 부산물은 낯선 자의 차갑고 폭력적인 손길에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얌전한 것이 우리에게는 의젓해 보이기까지 했다. 「다음에 오세요. 아직은 정보가 부족합니다. 그때는 이것에 관한 정보를 더 들려주세요. 이야기가 아니라요. 셀 수 있는 것이면 더 좋습니다.」 수많은 생명을 짊어진 직업인다운 근심이 낯빛에 서린 수의사는 방문하는 매번 같은 대답과 함께 우리와 부산물을 돌려보냈고, 지난달이었던 정월 망일, 병원 문을 닫기 직전인 늦저녁에야 나만을 조용히 불러 부산물에의 시한부 판정을 내렸다.
「두 분의 부산물은 아이가 아니지요. 물려받은 형질이라고는 전무하니까요. 애완동물도 아닙니다. 저는 이것을 형체로 그려 내기조차 힘이 듭니다. 우리에게 드러났다고 믿어지는 부분은 짐작건대 부산물에 대한 형이상학적 관념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소리치지요. 걷고. 달리고. 어디에 닿을 때마다 맞부딪히는 소리가 납니다. 부산물이 인간의 모양을 한 실체로 존재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당혹스러운 지점입니다. 우리가 보는 외양은 정형적이지 않으며, 부산물이 지닌 실체에 드리워진 그림자, 원래 목소리에 대한 반향으로 돌아오는 어렴풋한 메아리입니다. 빛에 대고 양 손바닥을 교차해 팔랑이며 그림자 장난을 친다고 해서 실제로 팔 끝에 날개를 퍼덕이는 새가 달린 것은 아니지요. 우리가 부산물에 대해서 감각하는 것들은 추측되는 본연보다 더 단순화되었고 왜곡되었습니다. 분명한 건 겉으로 관측되는 부산물의 활성 신호가 나날이 쇠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속도를 넘어서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이것이 예전보다 움직임이 알게 모르게 굼떠지거나 정체하는 횟수가 정량 분석적인 면에서 일정하고 유의미하게 줄었음을 꾸준히 보고하였습니다. 매일 세어 보고 이를 비교하지 않고서는 모를 변화지요. 노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운이 좋다면 난 지로부터 10여 년 후 사망에 이를 것입니다. 존엄하게 처리하시겠습니까, 지금과 같이 비존엄하게 유폐하시겠습니까? 망단한 가정에 부산물은 축복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에게는 아닙니다. 이것은 당신보다 더 순수한 존재예요. 당신은 무언가를 이해했다고 믿어서 그걸 글로 써내는 작가 아닙니까? 이것은 그보다 한 단계 더 위에 있어요.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음을 이미 뼛속 깊이 안단 말입니다. 부산물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해요.」
「선생님은 다른 게 아니라 죽음을 판정하고자 지금까지 기다린 거로군요. 온당치 못해요. 댁은 지금 부산물 자체보다는 나와 동반자가 그에게 기울이는 관심을 정성 평가한 거예요. 오늘 보름달을 보았나요? 필시 그것이 그쪽에게 영향을 끼쳤어요. 이제부터 달이 쇠할 테고 우리 같은 미물들한테 그 작용을 미칠 테니까요. 태곳적부터 그랬듯이요.」
「당신은 지금 스스로의 선택에 관해서는 함구함으로써 유보를, 사실상 유폐의 지속을 택하였습니다. 저는 수의사입니다. 제 관점은 의학적일 뿐 아니라 사람의 도덕을 넘어서는 생물의 윤리를 지향합니다.」
내 항변에 수의사는 명철히 반박했지만 곧 피로한 기색으로 말을 바꾸었다.
「하지만 그럴지도요. 저는 항시 제가 맡은 모든 생명의 죽음을 유예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생의 고통을 초래하더라도 말입니다. 오늘에 이르러 그 죽음들이 제게 닥쳐와 유예의 대가를 요구하는 듯싶습니다. 이제 와서 말하자면, 쇠하는 걸 막을 도리는 없지요.」
「달이 다시금 완전히 차오르기 전에 부산물을 데리고 방문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자정 부로 금요일, 다음 망일이 되기 전 마지막 평일이었다. 오늘 낮에 창업자의 자서전 대필 건으로 기업체의 선전부장과의 만남이 예정되었으며, 생계에 보탬이 될 일을 성사하고 돌아오는 대로 곧장 부산물에게 목줄을 채울 터였다. 저간 달이 위상에 따라 기울고 차는 데 관계없이 내 일상의 곤두박질은 오로지 배회와 정주에서 비롯되었고 흥망 없이 내내 심화하였다. 더는 추하게 퇴락하지 않는 방법을 나는 안다. 오늘 집을 나서는 대로 약속된 만남이 아니라 미지의 목적지를 설정하여 거기로 가는 것이다. 나의 본성을 배반하는 금기가 아님에도 그간 망설였음이 기이할 지경이다. 내 흉금에 울리는 전언은 떠나야 한다, 정도가 아니다. 가상의 관성력이 실제로 작용하는 듯, 우리가 그려 내는 원 밖으로 나만을 튕겨 내려 한다. 집에 남은 둘은 배회하는 나를 줄곧 기다렸다. 동반자는 매상 내게 물어 댔다. 언제 들어오느냐고. 얼마나 지나야 침대에 눕느냐고. 지금도 그가 누운 침대의 다른 한편은 온기 없이 식어 있을 터였다. 내가 그에게 소원하느냐면 그렇지가 않다. 도리어 삶은 동반자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에만 존재하는데, 그전까지 그를 기다리며 빌빌거리기만 하던 내가 그제야 명료한 이성으로 떠남의 전언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그는 호시탐탐 나 자신이 되려는 타자, 반대로 내가 그 자신이 되리라는 역전 가능성을 차단하는 현존재다. 그의 현전으로 말미암아 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리라는 위기감, 그렇게 된다는 건 내게 육신만이 남음을, 극단적으로는 육체마저 나의 몸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통증에 불과하게 됨을 의미한다.
바로 뒤에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또다시 불렀다. 동반자였다. 의식하지 못한 새 나는 배후의 그에게서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기시감이 들만치 이미 많이 들은 예사로운 얘기로, 자신이 일하는 공중 도서관의 심약한 상사와 최근에 그를 통해 채용된 의뭉스러운 신입 사원에 대한 불평이었다. 업무를 가중하고 심적 부담감을 부과하는 둘을 향한 비난은 대체로 금세 어그러지기 마련이었는데, 남 탓의 연유가 정당치 못해서가 아니라 동반자가 양심에 찔린 나머지 둘의 결함에서 연민할 부분을 애써 찾아 석연찮게 끝맺기 때문이었다. 「……신입을 감싸고돌고 주인처럼 모시는 건 사랑받은 기억이 핍진한 까닭이야. 그는 자신이 상상 속에서 그리던 사랑받지 못한 자의 원형이 되기를 택했고, 자기를 모르는 자가 현현할 때마다 그 저주가 풀리기를 희원하며 새로이 실타래를 풀어 나가고 있어. 나야말로 그를 향한 애덕에 이르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비극은 그럼에도 그가 누구도 사랑하려 들지 않는다는 거야.」 이러나저러나 내게는 마치 꿈결 같은 일이었다. 지난 생각대로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드문드문 상실하기 시작한 것일까? 내 뒤로 친 휘장 너머에 아마 서 있을 그를 돌아보기에는 피곤하고 힘이 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의사가 부산물의 몸을 만지는데 내가 간지러웠어. 내가 만져지는 대상 자신인 것처럼. 모멸감을 견디려고 나는 웃었어. 너는 그런 나를 경멸의 눈빛으로 쳐다봤지.」 느닷없이 추체험을 고백하는 그의 말에 반대로 내가 설핏 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러지 않았어. 네가 그렇게 느낄지 걱정은 했지.」 꿈은 내가 그토록 의식하던 타인의 머릿속이다. 내가 지어낸 타인의 나를 향한 생각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벽감에서 어떤 자세로 어디를 보는 거지? 그가 불러 내 곁을 떠난 부산물은 어디로 갔나? 돌연 나는 불안감에 잠겨 꼼짝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때마침 동반자가 그동안 지켜보기로는 한 번도 경우가 없었던 모든 상황을 뒤집는 파격적인 선언을 자행했다. 「떠나야 해. 우리 모두.」 그 말로 인해 우리의 육신은 집으로부터 추방되고 유령처럼 목소리로만 남은 듯했다. 내가 모든 게 수포가 되었다는 원망을 품고 반문했다. 「정말로 이곳을? 그러기를 바라는 거야?」 「나의 원은 없어. 그것은 너의 본원이야. 여기에 온 게 잘못이라고 너는 생각하고 있었겠지.」 오호라, 내가 알게 모르게 이 낡아 빠진 셋집과 비루한 동네, 무례한 이웃들에게 품어 온 반가역적인 혐오가 종국적으로 우리를 집으로부터 쫓아낸 것이로군. 나는 낭패감에 젖어 할 말을 잃었다. 목소리마저 입을 다문 고요 가운데 몸 없는 나의 의식은 당혹감에 빠져 눅눅한 걸레처럼 축 처졌다. 동반자의 목소리가 나를 아이 대하듯 찬찬히 타일렀다.
「그것 때문이 아니야. 우리가 원하고 원하지 않는 게 당장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야. 단지 우리 같이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는 거야. 너와 나는 많은 걸 이야기 나누지 않았고, 부산물은 바로 공동이 자아낸 암묵의 소산이야. 원한다는 건 상상한다는 것이고 연약하고 결여되었다는 거야. 왜 안 그렇겠어? 서로에게 해야 했던 귓속말이 많아. 서로 간 답하지 않은 부분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어. 나가자. 나와서 해야 할 얘기야. 지금 집 안에서 내가 이야기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고 그저 사실 전달을 위한 자초지종일 따름이야. 그런데 사실은 뭣도 아냐. 나는 꿈을 꿨어. 우리는 네가 살았던 옛 동네에 있었지. 네가 살고 내가 종종 놀러 갔던, 돈 없는 자와 고시생들이 사대문 외곽까지 떠밀려 내려와 살던 강변의 쇠락한 동네 말이야. 부산물은 어딨는지 보이지 않았는데, 머릿속에 떠올리지도 않았지. 왜냐하면 그는 우리가 아니어서야. 우리는 서로만을 염려할 수 있어. 꿈속은 아까 전처럼 밤이었어. 우리는 황폐했어. 원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들이었어. 이것이 내가 꿈꾼 사실이야. 하지만 꿈은 꿈일 뿐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너처럼 거론하는 무엇이든지 아니라고 부정하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어. 떠올리지도 못하는 것들, 그게 현실이지. 나는 너를, 네 직업과 사명 의식을 존경해. 그게 너의 상상력에 외경심을 품었다는 건 아니야. 내가 아니더라도, 공히 누구든 너를 공경할 거야. 여기서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게 아니야. 판결을 내리자는 건 더더욱 그러하지 않아. 그러나 너의 문제는 자신에게 던져지는 모든 화두를 자기가 품은 소명으로 환원한다는 데 있어. 현실은 그럴 새 없이 닥쳐오는 것이야. 함께 나가서 이야기 나누자는 건 그 부분이야. 우리는 서로를 이다지도 기다렸지. 우리에게는 제각각 기다리던 장소가 있었는데, 한집에서 재회하는 순간 저마다 간직하던 개인적인 장소가 소멸함으로써, 기다림은 끝이 났어. 이제 기다림은 실외에 있어. 그거 알아? 모른다고 즉답하지 말고 내 말을 들어 봐. 나는 네 재능을 애도에 써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는 탈출한 자들의 후손이지. 남아서 최후를 맞이한 이들은 멸족됐지 않았겠어? 생전 아무것도 잃은 적 없는 네가 떠남으로써 추후 상실하게 될 것을 앞서서 애도해야 해.」
내가 움직이고 말할 수 있었으면 그만하라고 거듭 광포하게 외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주먹을 제 머리에 서너 번 쥐어박으면서 통증으로 괴로움을 잊었을 테다. 동반자의 말은 내가 감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부산물을 우리에서 제하고 심지어 잃게 될 거라는 불길한 암시를 한 데에 이성을 잃고 책망하고 싶은 욕망이 잉걸불처럼 일었을 뿐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문학적인 것을 이용해 말 몇 마디에 교묘하게 변죽울림 하여 나를 공격한 것이라는 생각에 몽니가 단단히 났다. 이때 단단한 물체가 내부에서부터 터져 산산조각 나는 파열음이 멀지 않은 곳에서 생생히 들렸다. 「옆 호실 모리배들일 거야.」 가정집에서 낼 수 있는 수준의 소리가 아님에도 나도 모르게 타성적으로 이를 갈 듯 낮게 중얼거렸고, 그다음에야 문득 정신을 차리고 침대에서 상반신을 일으켜 헐레벌떡이며 푸른 여명에 잠긴 안방을 두리번거렸다. 소리에 화들짝 놀란 부산물이 침대 이불 속에서 튀어나와 자유를 갈망하는 새처럼 안방의 벽들에 부닥치며 이리저리 튕겨 올랐다. 나는 침대에 앉아 그가 날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잽싸게 낚아채 다시 이불 속에 집어넣었다. 여과성 미생물에 감염된 세포처럼 터질 듯이 날뛰던 그것은 부족한 산소로 나른해졌는지 이내 잠잠해졌다. 「그런 것이 아니야.」 아마도 내가 깨기 전부터 침대 뒤 창가에 서서 휘장을 조금 들춰 밖을 넘어다보던 동반자의 검은 윤곽이 대답했다. 때마침 휴대 전화기가 전파 끊긴 통신 기기에서나 날 법한 가늘고 높은 파상음을 내며 강하게 진동했다. 평소 재난에의 염려에 진력이 난 내가 설정을 꺼두었는데도 강제로 울린 것이었다. 잠에서 막 깨어 피로하고 경황이 없을 때 그러하듯, 꿈과 실제의 기억이 뒤섞인 나는 조금 전 동반자의 선언에 뒤늦게 호응했다. 「네 말이 맞아. 얼른 떠나자.」 내 손이 느슨해진 틈을 타 이불을 빠져나온 부산물이 동반자의 어깨를 타고 창가로 넘어가 장막을 붙잡아 매달리다가 홱 제쳐지는 바람에 그물에 걸린 먹잇감처럼 암막용 검은 천에 돌돌 말렸다. 그렇게 드러난 창 너머에서, 빠르게 끔벅이는 경광등 조명이, 색으로 짐작건대 의무차에서 비롯되었을 불빛이 틈입해 천장과 바닥에 온통 불온한 붉은 그을음을 남겼다.
「꿈이 아니야. 그런 건 이제 존재하지 않아.」
내 심중을 읽어 낸 동반자의 말은 오히려 지금이 꿈인지 실재하는지 혼란하게 하는 일면이 있었다. 휴대 전화기 화면에 띄워진, 경계경보 발령으로 모든 국민이 대피해야 한다는 수도 판윤부의 다소 피상적인 지령도 꿈이 자아내는 본질적인 공포인 애매성으로 여겨졌다. 무엇으로부터의 경계경보란 말인가? 어디로 대피해야 할지, 집 밖이라는 점 말고는 어떤 식으로도 유추가 가능하지 않다. 반대로 그것은 사생활에서 내가 느끼던 도망 욕구, 나아가 아까 동반자가 선언했던 함께 떠나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지 않은가. 사삿사람의 사적 대피는 각 개개인이 개별적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휴대 전화기의 지령은 공중에의 선포가 아닌 내 흉금의 반영일 터였다. 한데 집요하게 지금이 사실인지 그것을 반영한 허구인지를 분간하는 건 동반자의 앞선 지적과 같이 나의 더없이 연약한 속살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이기만 하지 현실과는 하등 관계없을지도 몰랐다. 현실에서 내가 잘못 판단할 때면 어떻게든 이를 면책해야 한다는 방어 기제가 발동하여 정황을 오로지 문학적으로 허구화함으로써 그 책임을 조각하려 들었기 때문에 실제의 인과 관계를 파악하길 도리어 소홀히 하기 마련이었다. 예컨대 나는 침대에서 상반신을 일으킨 자세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진지하게 상황을 이해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벽 너머로 불쾌한 이웃들의 호들갑이 어수선하게 들리자 그들을 흠잡을 기세로 분연히 일어나 성큼성큼 창가로 다가섰는데, 뒤늦게서야 매캐하게 코를 찌르는 유독한 탄내를 맡고 서둘러 부산물을 장막에서 떼어 내 침대로 집어 던졌다.
소란의 발생원은 이미 전소하여 소화 분말과 재로 뒤덮여 회백색을 띤 경상용차였다. 세든 다세대 주택은 지하층이 지상으로 반쯤 솟아 있고 움푹 꺼진 가파른 경사로에 얹혀 지대가 높은 편으로, 우리가 사는 1층의 창가에서도 사건의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의무차가 낮은 벽돌담에 바짝 붙어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가운데 의무대원 둘이 들것을 혼응토 바닥에 둔 채 길 한가운데서 타버린 차의 뒷문을 쇠 지렛대로 열어젖히고 있었다. 소방차는 기척 없이 불을 끄고 이미 사라진 뒤였고, 오르막 끝에 태만하게도 경광등을 끈 순찰차가 조용히 사건을 주시했다. 마주한 신축 빌라의 현관 자동문 앞에 아이를 재우고 나온 신혼부부들이 옹기종기 서서 구경 중이었다. 익히 면면을 알아볼 수 있는 나와 같은 집 추한 이웃들은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경상용차 뒷문이 열리고 뒤이어 좌석 시트가 녹아 드러난 열가소성 수지 덩어리처럼 생긴 싯누런 물체가 들것에 실렸다. 고운 흰 천이, 휴가철이 지난 별장의 목제 가구에 그러하듯 그 위에 드리워졌다. 그러자 겨우 사람 반토막만 한 그것은 기담 속 우아한 서양 유령으로 변모했다. 아마 생애 처음 본 불에 탄 시신이었다.
나와 동반자가 선 창가 뒤로 아까 전부터 부산물이 고래고래 떠나가라 우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정한 주기에 따라 점멸하는 장단이 빨라졌다가 느려지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경광등 불빛과 심취한 부산물의 줄곧 고조되는 울음소리가 이루는 부조화는 우리 내면의 불안감을 키웠다. 그가 나약한 존재가 아니었다면 뺨을 후려쳐서라도 입 닥치게 하였을 것이다. 나는 곁에 선 동반자에게서 서로 의지하고 연결될 수 있는 어떤 온기를 찾아, 그러나 실망스러울 정도로 차디차기만 한 그의 손을 꼭 쥐었다. 그의 손목에 피처럼 얼룩진 불빛이, 생체 신호를 탐색하는 의료 기계의 평행 광선인 양 미약하게 떠는 맥박을 더듬거리며 건강을 향한 미지의 공포심을 조성하고 있었다. 나는 생명이라고는 없이 창밖을 향해 망부석처럼 굳어 버린 그를 불안에 젖어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낯은 내 시선을 알아채지 못하고 돌아보지 않았다.
창 바깥에서는 또 하나의 들것을 꺼내 사다리처럼 함께 옆으로 멘 의무대원들이 길을 따라 올라가 다세대 주택의 현관과 앞뜰이 있는 방향으로 꺾어 시야에서 사라졌다. 건너편 빌라 사람들마저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는 청색에서 차츰차츰 납빛으로 변색해 가며 터오는 음울한 동이 덩그러니 방치된 상반된 모습의 자동차 두 대를 감쌌다. 마치 현장의 부패를 막고자 청회색 용액에 장소 전부를 담가 놓은 것 같았다. 그 정경은 관람객이 침범할 수 없도록 보존된 전시 구역처럼 신비롭고 고상한 느낌을 자아냈다. 침노가 금기된 폐허는 무엇이든 평화롭게 보이는 법이라 고무가 녹아 철제 살만 남은 바퀴 중에서 뒷바퀴 하나가 빠져 사라진 것도 자연의 섭리가 사람에게 겸허를 요구하는 한 예시인 듯했다. 경사로 한가운데서 제동 장치를 건 채로 불에 탄 차의 뒷좌석에서 시신이 수습된 것마저 꿈의 비의적인 상징으로 느껴졌다. 꿈과 현실은 안방과 밖을 가르는 두 겹의 유리창으로 구분되었고, 염불을 외듯 일정하고 높은 소리로 외쳐 대는 부산물의 우짖음이 그 경계를 넘나들었다. 한참 창밖을 경외심 어린 눈빛으로 응시하던 동반자도 〈부산물이 무엇인가를 음송하는 것이 틀림없어!〉라고 감탄할 정도였다. 꿈같은 정황은 계속 이어졌다. 시야에서 사라진 뒤로 자는 사람들을 깨우기라도 할 것처럼 계단을 쾅쾅 구르며 올라간 의무대원들은 내 머리 위에서 이웃의 문을 두드리고 몇 차례 아우성 끝에 임무를 마친 뒤 조심스럽게 기우뚱거리는 발걸음으로 내려와 흰 천으로 덮은 들것을 길가로 날라 아까 수습한 시신과 함께 의무차에 실었다. 그들은 떠났다. 창가에서는 보이지 않는 내리막 끝자락에서 대기 중이던 이동식 기중기가 폐차의 앞코를 큼지막한 무쇠 갈고리에 꿰어 험악하게 끌고 나갔고, 오르막 먼발치서 지켜보던 순찰차가 뒤늦게 붉고 푸른 경광등을 번쩍이고 사이렌을 휘파람처럼 불면서 철수하고 나자, 이사한 이래 아직 냉방기를 설치하지 않아 비어 있는 창가 실외기 선반에 별안간 묵직한 검은 비닐봉지가 떨어져 튕기면서 우리를 놀라게 한 뒤 길바닥에 철퍼덕 엎어져 점성을 가진 묽고 검붉은 풀 같은 것을 비탈 아래로 흘려보냄으로써 꿈같은 현실은 마무리되고 비루한 일상이 복귀했다. 그것은 아무래도 위층의 이웃이 자기네 방에 두기 역하다는 이유로 창 선반에 부주의하게 올려 둔 음식물 쓰레기일 터였다.
그리고 불현듯 그들 또한 평소 낡은 흰색 경상용차 한 대를 부려 왔다는 생각이 미쳤을 때, 침대에 널브러진 휴대 전화기 화면에는 경계경보가 오발령이었다는 국가 내무부의 전언이 전과 달리 무음으로 전달되어 있었다. 나는 상황을 온전히 파악하기 전까지 집에 머무는 게 자명하다고 보았으나, 동반자는 이미 출근 준비를 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그가 다니는 직장이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공중 도서관이니 설령 무슨 일이 있다면 금방 돌아올 수 있을 터였다. 동산의 비탈면에 고대의 대형 석제 무덤처럼 계단식으로 지어진 그 도서관은 언뜻 사방 시설이나 총안구가 빼곡한 난공불락의 요새로 보일만치 기능주의적인 삭막한 면모를 지녀 믿음이 가기도 했다. 거기다가 비상시일수록 돈은 벌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러한 생각이 오히려 내 자격지심에의 반감을 일으켜 그를 붙잡게 했다. 「오늘은 나랑 있자.」 이유는 무엇이든 붙일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떨어져 있으면 아니 되는 연유고, 오늘은 우리를 동요케 하는 사건들이 새벽 첫머리부터 잦았다. 그는 출근 준비하느라 실내를 이리저리 바삐 오가면서도 나와 동반자가 종종 동선을 가로막을 때마다 잠시 멈춰 서서 우리를 안심시키는 말을 띄엄띄엄 이어 갔다. 「오늘은 날이 따듯해 보여. 뒤뜰에 개나리와 매화가 화창해. 부산물을 안고 한 바퀴 도는 것은 어때?」 화장실에서 얼굴을 매만지고 나온 동반자가 그 앞을 지키고 선 나를 피해 옷을 갈아입으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오늘 너에게 이곳을 떠나는 문제에 대해 드디어 터놓고 얘기했어. 너도 동의했고. 하지만 그 순간은 돌연한 사건들로 인해 뒷자리로 밀려났어. 그러니 퇴근 뒤에 다시 더 여유를 가지고 상의할 수 있는 거야. 어쩌면 오늘 창가에서 지켜본 일들에 관해서도 자초지종을 알 때까지 기다려 볼 수 있을 거야.」 다시 방에서 나온 그가 발치로 달려드는 부산물을 위태로운 발걸음으로 피해 부엌 찬장 손잡이에 매인 사원증을 꺼내 풀어 목에 걸었다. 「무엇보다도 부산물을 어찌 처분할지만큼은 채 정리가 되지 않았어. 너는 자신이 우리 곁에 없을 때를 마치 원하기라도 하는 듯 지속하여 상상하고 나에게도 상기시켰지만, 정작 나의 부재, 혹은 부산물이 존재하지 않는 때로 되돌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어. 그렇지 않아? 바깥은 냉혹하지. 나에게든. 부산물에게든. 그게 너라고 달라지지는 않아.」 그렇게 집 안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마지막으로 현관문을 열기 전에 그가 울상인 낯에 섬찟하게도 억지 미소를 지었다. 「나도 너처럼 직장을 때려치우고 작가나 될까 싶어. 어찌 되었든 걱정하지 말아. 우리에게는 계획이 있잖아.」 그가 언질한 계획은 일전에 내가 지정한 대피소를 이르는 것일 테다. 긴급히 대피해야 하는 유사시에 나는 그가 집으로 즉시 귀가하는 대로 함께 부산물을 데리고 한 정거장 거리의 바위산 인근 지하 깊숙이 자리 잡은 전철역으로 도망하기로 되어 있었다. 한데 오늘 나 역시 외출 일정이, 그것도 약속 장소가 바위산 남쪽 사대문 안에 자리한다는 것을 상기했을 때 이미 그는 떠난 상태였다.
이제 부산물은 부엌의 열린 창으로 내다보이는 전깃줄에 앉은 때까치가 때때거리며 지저귀는 데 정신이 팔려 창가를 연신 맴돌아서, 나는 소홀한 부모가 한때의 측은지심을 가지고 혼자 노는 아이의 동심을 이해하려고 그 눈높이로 쭈그리는 것과 일치하는 태도로 부엌세간 사이에 앉아 있었다. 바깥의 미물이 우짖는 〈때〉라는 게 언제인지를 그가 내게 설명해 주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마음은 기실 나 자신을 향한 연민과 위기감에 불과하다. 무릇 언제의 지금이건 그 당시가 어느 때인지를 아는 것이 나에게는 동반자 사이에서 난 부수적 존재보다 항시 더 중요한 듯했다. 가령 지금 내 머릿속 한편에서는 아까 있었던 판윤부와 내무부의 제각각 다른 전언에 문자주의적 음모론을 덧씌우던 참이었다. 오발령은 경계경보 발령이라는 오기의 정정에 지나지 않는다. 내무부는 판윤부가 애당초 잘못된 지령을 내려야 했던 정황에 관해서 소상히 해명은커녕 함구하고 있다. 그것은 극과 극의 두 문장으로 1막의 처음과 끝이 맺어진 하나의 활자극이다. 두 부처의 소인들이 획책한 이 소극은 군더더기 없이 1막을 내린 상태다. 활자화된 공공의 언중에 부여된 권한을 소진시키는 것, 그게 양극단이 아무런 소통 없이 합의한 소기의 목적일 것이다. 오늘만큼은 경계경보의 발령 혹은 오발령에 준하는 사태가 다시금 벌어져도 민중 대다수가 비웃음으로 넘길 터였다. 정부를 향한 조롱은 아무리 촌철살인이라도 이런 때에는 예외적 사태에의 무반응이나 다름없다. 비상사태는 조소할 새 없이 찾아올 테다. 나는 동반자와 부산물에게서 멀리 떨어져 고립될 것이다. 중차대한 사건은 사대문 안에서 벌어지는 법이니까. 경계경보가 이 나라에서 원유한 내전이 아니라 흔히들 넘겨짚듯 저 나라로부터의 전면전 가능성에서 비롯되었더라도 매한가지로, 사대문은 이 나라가 방어하고 저 나라가 돌파해야 할 최후의 종심일 따름이다. 부산물이 창틀을 향해 팔짝팔짝 뛰는 통에 나는 안전을 위해 창을 닫았고, 그러자 그가 소리쳤다.
「때― 때때때― 때때때― 때때때― 때― 때―!」
복합 자모를 음감 없이 정직하고 적확하게 발음한 그 소리는 새의 음률적인 지저귐을 흉내 낸 거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짐작건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만의 음운적인 체계를 지녔다는 생각이 언뜻 든 찰나, 나는 치미는 거부감에 외출할 준비를 하러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닫힌 문 너머로 자기가 그렇게 말해 나를 곤혹스럽게 한 데 괴로워하듯 쥐어짜는 우짖음이 마치 기러기 소리 같은 음률로 반복되었다. 나는 화장실 벽을 주먹으로 있는 힘껏 내갈겼는데, 화가 나서라기보다는 그저 고통을 느껴 보고 가늠하려는 이유에서였다. 통증은 얼어 있던 손이 녹을 때 얼얼한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하다기에는 방금 부산물의 언행으로 나 자신이 내부에서부터 으스러지는 듯했다. 인제 와서 그가 한 아이로 변양하고자 옹알이를 시작하는 연원을 나는 헤아릴 수 있을까? 유년의 기억이 부재하고 평생 가족이 없었던 거로 여기고 살아온 내게 그것은 당연지사 낯선 통증이다. 가족은 온전히 고통이라는 증세 발현이다. 나 홀로 이렇게 발가벗고, 양치를 하고, 안전 면도날로 수염을 깎고, 체온에 가까운 따듯한 물로 씻는 행위를 영위한다는 건 생애 내내 겪어 마땅한 불편과 아픔에의 망각이다. 화장실의 김 서린 거울로 오롯이 나 자신만을 들여다보는 건 고개 숙여 바닥의 깨진 타일을 발견하는 것보다도 덜 고통스럽다. 치명상 없는 삶은 전시가 아닌 일상에서 태어난 편의 장치다. 아무렴, 전시가 아닌 바가 더 평화롭지. 만일 전쟁이 벌어져야 한다면, 패전보다는 승전이 덜 고통스럽고. 그러나 승전보에는 배울 것이 없다. 죽음이 헛된 줄도 모르고, 숭고한 승리의 제물인 줄로 안다. 패전 속에서 자라는 허무주의는 그 죽음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만인의 죽음이 한 사람의 거듭된 사망 선고임을, 그러니까 부조리임을 잘 안다. 거짓 평화에 취한 사람들은 어찌나 어리석은가. 그들은 일상을 귀한 도자기처럼 다루고 부주의로 깨진 사기 조각이 있으면 혹시나 발이 베일까 서둘러 비로 쓸어 내다 버리는 게 옳은 줄로 아는데, 사실상 평화는 깨진 조각을 복원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미처 조각 나지 않은 도자기, 그것은 언젠가 깨지기를 기다려야 하는 신세이지, 유예 속에서 사람들은 그 점을 잊는다. 이리하여 어느 순간 사기그릇이 수류탄 파편처럼 산산이 터져 나갈 때 거기에 경악해 묻는다. 「어째서?」 사태를 수습하러 출동한 군인이 물음을 차단한다. 「어째서라고는 없다.」 거기서부터 모든 질문은 여지없이 그 권리를 박탈당한다. 귀한 도자기가 언젠가 깨질 때를 대비하지 않음은 제 성질을 못 이겨 스스로 바닥을 가시밭길로 만드는 자해 행위만치 어리석다. 삶의 터전이 전쟁터가 되는 그날에도 우리는 땅바닥에 쭈그려 앉아 조각난 파편을 이어 붙일 각오를 해야 한다.
한데 우리는 자해한다. 시시로 부산물이 울어 재끼는 데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 뺨이라는 게 그것에게 달려 있다면 호되게 올려붙이고 싶을 때, 사실적으로는 그가 나에게 그런 폭력을 가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일상이 귀한 골동품처럼 애지중지해졌을 때, 하지만 정작 하루하루가 길가에 널린 흙먼지처럼 흔하고 무용할 때 우리는 그 참을 수 없는 간극에서 누군가를, 실은 저 자신을 혐오하고 적대한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거나 몸단장하다 문득 거울 속의 나 자신을 내리쳐 유리를 박살 냄으로써 자기 거울상을 과감히 타자들로 분열시키고 피로 물들이고자 하는 폭력성을 발현한다. 뚜렷한 불만과 분노가 없음에도 단지 존재의 과잉된 긴장감으로 새로이 생겨난 개개인이 회집하여 민중이 되는 순간 혼자만의 은밀한 자해 행위는 타인을 지속하여 솎아 내는 숙청이라는 공모로 변모한다. 나는 그들이 아니라 혼자이고 싶다. 낯선 이들의 지린내가 진동하는 공중화장실이 아니라 나만의 변소를 쓰고 싶다. 물론 그것이 특혜에 다름 아니더라도 그렇다. 반대로 고통을 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통증을 지어내는 가족이라는 최소 공동체는 사고에 불편토록 내 육신을 무겁고 짐스럽게 했다. 추측건대 부산물이 일찍 죽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나와 동반자가 감히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그는 이름이 없고 아이가 되지 못한다. 일원이 되지 못한 부차적인 존재는 집안이 이루는 면역 반응에 서서히 목 졸려 죽어 갈 것이다. 그런 그가 불현듯이 홀로 아이로 자라려고 한다…….
거울에 비친 젖은 나를 보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내 거위영장 육신은 보잘것없다. 일원을 지켜 낼 힘도 없이 야위었다. 그 몸으로도 용케 생존한 건 이 나라가 내게 보인 유일한 관용, 곧 묵인 덕이다. 살아남음은 존재가 세계에 용인되었다는 슬픔이다. 근래에 나는 건강에의 염려로부터 달아나 피와 살이 지닌 무게를 던 끝에 제 몸의 자결권을 잃고 이성만이 과잉된 듯하다. 성찰을 위한 고통 외에 모든 것이 불필요하다는 듯 육적 기능을 거세해 오지 않았던가. 육신밖에 없다는 간명한 사실은 아직 잃을 게 남았다는 점을 내게 상기시킨다. 육적인 자신을 잃으리라는 고대와 두려움, 그 두 요소는 우연한 결정을 위해 공중으로 날아오른 동전의 휙휙 뒤집히는 양면같이 시시때때로 서로에게서 주도권을 뺏고 빼앗긴다. 내가 던져 올린 주화를 낚아채는 이는 동반자다. 그는 손을 펴서 무엇이 앞면인지 내게 보이지 않고 그것을 쥔 그대로 매일 공중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그가 집을 나서기 전 말한 대로 날이 따듯해 보였다. 작다란 환기창에 걸린 격자무늬 방충망 너머 잿빛 벽돌 가옥들은 아침 햇살에 예전의 붉은 기운을 조금이나마 회복했고, 그 사이로 조각조각 내비치는 하늘은 아까의 희끄무레한 낯에서 부지불식간에 여름인 양 선명한 청색으로 무르익어 뭉실뭉실한 쌘구름이 느슨한 대열을 이루어 낮게 유영했다. 본래 화장실에서 날씨를 느낄 정도로 시야가 트인 적이 드물었는데, 평소 이웃들이 주차한 경상용차의 흰 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차체로 창 앞이 가로막혀 있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은 동틀 녘에 나 모르는 새 벌어진 같은 차종의 전소와 서로 다른 곳에서 수습된 두 구의 시신, 순찰차에 숨어 관망만 하던 공안 그리고 항시 주택가를 어슬렁거리던 이웃들이 깨어 있었음에도 나와 보지 않은 것에 대한 위구심을 일으켰다. 나와 동반자를 제외한 다세대 주택의 이웃들은 단순히 한통속이 아니었다. 중키에 짙은 쌍꺼풀이 지고 탁하며 처진 눈매와 자라다 만 듯 조그만 코와 입술, 분열식을 거행하는 군인처럼 사지가 한 마디로 이루어진 양 관절을 티 나지 않게 굽히지 않고 움직이는 등 공통의 형질을 물려받은 듯한 외양으로 보건대 그들은 가족이었다. 한 다세대 주택에 3대가 각기 다른 호실에서 세 들어 사는 것도 그렇지만 그들 사이가 오직 혈연으로만 이루어진 공동체처럼 여겨지는 점이야말로 내게는 기이한 일이었다. 위층 옥탑방에 기거하는 영감과 노파, 같은 층 건너 호실의 중년 첨지와 마누라쟁이가 부부라기에는 남매처럼 똑 닮았기 때문이다. 경상용차는 지하방의 젊은 사내가 몰던 것이었다. 그는 새벽마다 현관문을 부주의하게 쾅 닫고 나와 다른 가족이 사는 방들을 소란스레 오가며 사람들을 깨워 다 함께 차에 태워 떠났다가 아침에 돌아오고는 했다. 아직 잠에 들지 못해 벽감에 틀어박혀 있노라면 그들이 무어라 떠들고 층계를 오르내리는 소리가 천장과 바닥, 벽들을 종횡무진하기 마련으로, 마치 내가 그들의 생활하는 집 벽장에 숨어듦을 자초하여 사면초가에 처한 듯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저장 강박 장애가 있는지 층계마다 온갖 잡동사니와 쓰레기들을 쌓아 두어 악취로 골머리였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분명 짙은 색안경이 씌워져 있을 터였다. 그들이 가진 친연성을 향한 나의 부박한 지각은 실은 그들과 내가 닮았으리라는 가능성에서 오는 그악한 자기 부정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었다. 한 집에 더불어 주거하는 동일 계층이 서로 표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상식을 외면하고 동일시를 거부하는 태도는 필시 스스로를 계층의 전형성으로 구속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반동 의식일 따름이었다. 내 진심이 그러하다면 나 역시 그들에게 계급성을 몰아 주지 않고 도리어 사랑을 베풀어야 마땅했을 테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 모두가 혈연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파악한 것보다도 이웃의 수는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들을 한정 지은 건 그저 나의 미약하고 판에 박힌 상상력 덕택이지 않던가. 그들 가운데 한 명이 누락되어도 나는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나의 이웃인지 아닌지는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부재를 깨달을 자신은 나에게 없었다.
동족 혐오는 상궤라고, 올이 너덜너덜 풀린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훔치면서 나는 계속 생각했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한 이유로 내 소설에서 나와 동일 계층인 자들은 언제나 간략화되고 기호화되지. 계산대에 서서 화자 일행을 언뜻 흘겨본다든지, 인파라고 뭉뚱그려진다든지, 말하더라도 목소리로만 존재했다. 나는 여느 훌륭한 죽은 소설가처럼 한 문장으로 민중에서 저마다의 서사를 끄집어낼 만한 관찰력을 지니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그들 역시 내게 소설로 쓸 수 있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보여 주지 않는다. 서로 간 불능의 연유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한 사람임이 강조되며 개개인의 개성이랍시고 몰개성한 공동체의 의복을 정보망에 공유하는 시대에 앞서 진작 개인이라는 개념의 종말이 도래해서다. 이제 군중은 특별한 한 인간을 위한 얼굴 없는 배경으로 기능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자애와 긍정은 그 온기를 잃었고, 진정성을 잃지 않은 것은 혐오뿐이기에, 나는 그것을 관찰하기로 선택했다. 죽은 이의 작품에서 혐오를 문학적으로 관철하여 상대를 업신여김이라는 현상 그 이상의 실존을 끌어내는 소설가를 발견했을 때 나는 감탄하지 않았던가. 나 역시 한 측면으로는 내가 혐오하는 대상을 문학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는데, 그자는 다름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고, 나아가 스스로의 역한 일면을 타인에게 전이하려고 했다. 이는 내게 애덕이 부재하기 때문이고, 경멸하는 대상에게 사랑을 전하는 법을 모르는 까닭으로, 한데 문학은 나 자신이 그러하다는 깨달음에서 비로소 출발하는 법이거늘, 내 소설은 언제나 거기서 끝이 났다. 사명의 결핍에서 오는 치명적인 대가가 나를 엄습할 날이 올 것이다. 타자의 죽음을 알지 못함으로써 내 죽음이 올 것이다. 오늘 죽은 두 명이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사람인지도 모른다. 문밖에서 자지러지게 울던 부산물은 이제 잠잠해졌다. 적요는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여태 서서 창밖만 보는 것은 위층의 영감을 구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여태 내 단상에 포착되지 않았고 무의식만이 그의 피곤한 노동을 조용히 응시했다. 여태껏 의식이 포착하지 못했던 연유는 흙과 잡초뿐인 화단에 선 그가 배경의 잿빛 벽돌담과 같이 칙칙한 피부색을 하고서 최소한으로 사부작사부작 숨죽여 작업하고 있어서였다. 삽을 든 그는 양철로 만들어진 나무꾼처럼 경직된 동작으로 그나마 눈길을 둘 만 했던 꽃이 맺힌 매화나무를 찍어 내 베고 공들여 뿌리째 뽑은 뒤 용도를 파악할 길 없는 구덩이를 쉼 없이 파는 중이었다. 자신을 누일 묫자리를 파는 것일까? 내 바로 곁에서 난데없이 을씨년스럽게 가래 끓는 기침이 들렸다. 영감과 동거하는 노파가 마치 상처 입은 고양잇과 짐승이 낮게 이를 가는 듯한 소리를 내며 폐지 더미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넝마주이다. 그들이라고 자신의 소일거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직 움직일 수 있을 때, 돈 한 푼 쥘 수 있으니 하는 것이다. 둘이 곧 작업을 마치고 폐지로 몸을 감싸 구덩이에 나란히 눕는 결정적인 매장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한동안 벗은 그대로 한기에 떨며 눈을 떼지 못하고 서 있었다. 그건 그렇고 위층에서 죽은 자는 도대체 누구지?
부산물은 울다 지쳐 침대 위에 몸을 말고 잠들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속으면 안 되는데 그를 사랑받지 못한 애완동물로 바람직한 내 심경이 그에게 투영된 것이다. 나는 그에게 수많은 속엣말을 들려주었으나 정작 아무것도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가령, 〈넌 무슨 존재니?〉라든지 〈사람이 아니면 무엇이지?〉라고 운을 띄울 수도 있었겠으나, 그 질문들이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대답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게 두렵기 짝이 없다. 나는 그를 사람으로 대하고자 물음을 던지기보다는 단지 그가 지금처럼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기를 기대한다. 사람을 한 인간으로 대하지 못한 대가를 이미 그라는 존재로 치르는 것일까? 그것은 나에게는 응당하나 그에게는 그렇지 않다. 나는 살금살금 옷을 갈아입었다. 그가 깨면 또 그를 지진아 대하듯 아무 소리나 지껄일 걸 알아서였다. 〈오늘 입을 옷이 무언지 아니? 미주에서나 입는 간편하고 통 넓은 양복이야. 내가 더 격식에 맞게 입지 않는 이유는 자유로운 예술가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함인데 기실 눈속임에 불과해. 봐봐. 여기 두 개의 시계가 있어. 한 시계는 시침이 두 개야. 그것은 한 번에 두 시간대를 가리키기 위함이거든. 한 공간에 두 가지 시간이 흐를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야. 이 역시 속임수지. 이제 시간은 하나로 맞춰졌어. 꿈은 없고 현실만이 존재해. 내가 오늘 찰 시계는 잠수부들이나 쓰는 시계야. 생존을 향한 인내와 제한된 시간을 상징하지. 원형 테두리를 시계 역방향으로 돌려 분 단위로 시각을 설정하고, 분침이 그 지점으로 가닿을 때까지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면 그것은 죽음을 의미해. 간단하지. 오늘 만날 담당자에게 내가 목숨을 걸고 마감을 준수할 거라는 믿음을 주고자 차는 거야. 이 또한 말장난이지만.〉 내 부주의로 부산물이 밖으로 나와 녹음 앞에 선 뒤로 그와 나는 달라졌다. 그때 노란 가로등 불빛에 기대 올려다본 다세대 주택 윗집 검은 창 안쪽에는 파리들이 수박씨처럼 다닥다닥 붙어 기어다니고 있었다. 사람이 수시로 오가고 거주하는 가운데 썩어 가는 무엇이 있었던 것일까? 그날 이후로 내가 아니라 부산물이 윗집 창을 응시한 듯 나의 눈에 비친 그에게는 부패한 죽음이 어른거렸다. 반면 그가 아닌 내가 근린공원의 나무들을 내려다본 것처럼 도망과 해방의 설렘이 그날부로 속에서 꿈틀거렸다.
집 밖은 따사로운 날과는 별개로 매서운 서풍이 불어와 양복 품이 허허벌판에 선 허수아비처럼 펄럭였다. 봄철에 우리가 기대할 법한 적절한 날씨는 주마등을 앞둔 병든 환자같이 나를 열에 들뜨게 했다. 나는 경사지고 굽이진 골목길들을 걸었다. 걷는 내게 길의 풍경은 보이지 않았다. 부단히 놀리는 구둣발만이 짓밟히는 경로의 굴곡이 변화하는 과정을 질감으로 어렴풋이 느낄 뿐이었다. 사유로 비대해진 머릿속으로 인하여 그걸 담은 머리통만이 몸 없이 바람의 저항을 이겨 내며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는 듯했다. 대기가 맑아서 가야 할 목적지가 남쪽 바위산 뒤로 빼꼼히 희끄무레한 고개를 내민 모습이 보였다. 낮달이 지상에 내리박힌 듯한 은색 반원형의 드높은 탑이 그에게 창업자의 자서전 대필을 의뢰한 기업체의 사옥이었다. 고령인 창업자의 숙원 사업으로 근래 완공된 탑은 사대문 안의 다른 마천루 사이에서도 홀로 지극히 높이 솟아올라 먼 거리에서도 거대한 은백색 몸체로 사람들에게 경원시하는 마음을 품게 했다. 저 탑이 건축 허가를 받는 데 수도의 판윤과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풍문으로, 오늘의 소동에도 선전부장과의 약속이 취소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내게 심적인 안정감을 주었다. 이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오늘은 아니다. 나는 돌아와서 부산물을 데리고 동물병원에 갈 것이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어림하건대 보름달이 뜨기 사나흘 전이었다.
사대문으로 향하는 전철을 타기 전에 나는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를 자르러 이발관에 가기로 했는데, 그건 마찬가지로 자신을 사회적으로 뒤떨어지는 인간으로 보이지 않으려는 얕은 눈속임이면서, 고향에서 보안 요원으로 일하던 청년기에 겪었던 환대의 추억을 되살리려는 감상적인 의식이기도 했다. 오늘과 같이 오전 늦게 밤샘 근무를 마친 후 모자에 눌리고 기름진 머리칼을 손질하러 간 적 있었다. 그 이발사는 좋은 사람이었다. 막 문을 열어 준비가 덜 된 참에 방문한 피로에 전 불청객이 필요로 하는 게 무언지 알아챈 그는 내게 따듯한 커피를 대접하고 대기석에서 잠시 졸게 놔두었고, 머리를 자를 때도 여느 이발사처럼 나의 형편없던 생계나 행색에 대해 캐묻기보다는 대학생일 나이를 짐작하여 무슨 공부를 하는지를 물었다. 내가 남미주 선사 부족의 멸족에 관한 기행기를 다룬 어느 비평을 무단으로 가로채서 제 생각인 양 떠들어 대는 동안 그는 머리를 부드러운 손길로 감기고 더러운 두피를 꽤 오래 주물러 주었다. 이제 오래된 일인데 그날 아침 한기에 언 몸을 녹여 주었던 이발관의 훈기와 창가에서 눈부시게 비쳐 와 흐린 정신의 나를 더 몽롱하게 하였던 햇살을 나는 기억 속에서 애틋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시간은 여유 있었다. 그런데도 대로로 나와 금요일 치고 유달리 한적한 인파를 지나자니 눈에 띄는 소동들이 내 걸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보행 신호가 켜진 건널목에서 차에 치일 뻔하고 노인과 스쳐 지나가다 그가 튕긴 담뱃불에 겉옷 소매에 작은 그을음이 났건만, 오히려 나를 잘 안다는 듯 조소 어린 흘김과 함께 사과하지 않고 멀어지는 치들을 무력하게 쳐다만 봐야 했던 거였다. 낭패감이 든 나는 잰걸음으로 사람들을 추월하였는데, 우연히도 나처럼 유난 떨듯이 마주 오는 사람들을 갈지자로 피하며 걸음을 재촉하는 자와 나란히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게 되었다. 그는 친밀한 웃음을 띠면서 차차 내 쪽으로 붙어 걸었다. 흘깃 본 그는 동반자의 상사였다.
동반자의 상사라는 걸 알아보지 못할 도리가 없을 만큼 그가 말한 대로 생긴 자였다. 남들보다 왜소한 몸집에 때 이른 얇은 옷을 여러 겹 껴입고 목도리까지 둘러 강보에 싸인 아기처럼 옷더미 사이로 미숙해 보이는 얼굴을 쏙 내밀고서 상대를 곁눈질하다가 고개 돌려 소리 내어 의뭉스러운 웃음을 흘리는 그 중년은 동반자가 말한 심약한 상사의 외양과 지나치도록 일치해 도리어 꺼림칙할 지경이었다. 그는 내 미심쩍은 눈길에 더 확신을 얻은 것처럼 나와 걸음 속도를 맞추었으며, 이내 반가움을 참지 못하고 나를 알아보았다고 털어놓았다. 「당신의 동거인이 댁이 작가라는 걸 예전에 말했어요. 작가들이란 자신의 예리한 글에 비하여 제 얼굴의 이목구비는 저마다 범상하거나 추하고 매력 없는, 그러니까 둔한 부위가 하나씩 있기 마련이지요. 당신 입꼬리가 그래요. 아무것도 못 느끼고 웃을 줄도 모르는 듯, 자기 나이에 비해서도 아둔하게 처져 있어요. 작가는 자신한테 침잠하느라 정작 자기가 무슨 표정을 짓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되는 거거든요.」 내가 작가임을 알고도 외모를 지적한 걸 처음 들어 본 나로서는 기분 나쁘다기보다는 자못 신선하기까지 했다. 「오늘은 출근 안 하나요? 당신도 사서가 아니던가요.」 「내가 사서라는 게 직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죽은 책, 그러니까 더는 누구에게도 내용을 전하지 못하게 된 쓸모없는 글 자신이라는 사실을 동거인이 말하지 않던가요? 저는 그 책들을 돌보는 관리자랍니다.」 황당한 농담에 때맞춰 나도 입꼬리를 올리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애써 미소 지었는데, 뒤늦게도 그의 겉옷 가슴팍에 매달린 조그맣고 진중한 검은 리본 모양 금속 장신구가 눈에 띄었다. 「제 책도 아무도 읽지 않으니 그쪽 소관이겠군요.」 상사가 걸음을 멈췄다가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나를 따라잡았다. 「당신의 동거인이 읽잖아요. 저도 읽었고요. 저는 말 그대로 시대적으로 내용을 해독할 수 없게 된 책을 말하는 거예요. 유감스럽게도 당신 책은 그렇지 않아요. 본문에서 댁과 제 부하 직원을 읽어 낼 수 있었던걸요.」 나는 그가 멈칫한 게 내 질문이 못마땅해서라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막 재래시장 입구를 지나게 되자 그가 인도까지 침범한 좌판과 장사꾼들을 피해 내 뒤를 밟으면서 꼭뒤를 향해 속삭였다.
「사랑받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그런 나 자신을 전제로 이야기하고, 사랑받지 않은 사람은 그런 자신을 전제로 이야기해요. 나는 사람들이 두려워요. 모여 있는 자들이요. 사람들이 죄다 같은 눈빛으로 댁을 쳐다본 적이 있나요? 그게 적개심이라면 당신은 저를 이해해야 해요. 사랑받지 못함은 해침 당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사랑받는 자가 상대를 마주하기만 해도 자신이 사랑받게 되리라는 걸 이미 깨닫듯, 저는 미움받기 전에 거대한 적개심이 범람하리라는 걸 깨달아요.」
그 말을 듣자 나는 몹시 피곤해졌다. 그가 내게 사랑을 갈구하는 거로 여겨져서였고, 실상 그것이 수용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생각에 외려 퉁명스럽게 굴었다. 「그러는 그쪽은 왜 내 동반자에게 먼저 사랑을 베풀 수 없었던 거요?」 「당신이 그의 배우자라도 되나요?」 「뭐라고요? 그쪽이 내 책을 정말로 읽었다면, 그는 내 작품의 일부기도 해요. 내 책을 존중하듯이 그에게도 그래야 한다는 겁니다. 나는 그쪽을 악독하게 쓸 수도 있어요.」 「저도 당신 작품의 일부가 되는 건가요.」 그가 숨김없이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다소 연극적으로 벙어리장갑 낀 손을 입에 갖다 대 나를 당황케 했다. 「설령 쓰인들 그게 진실로 그쪽이 되지는 않겠지요.」 나는 한 발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고, 평정심을 가장하려고 굳건하게 내려간 내 입꼬리를 의식했다. 「하지만 작가님은 지금 제 모습을 바라보며 다른 누가 아니라 저를 생각하고 있고, 만약 정말로 쓸 거라면 그때도 그러할 거예요. 그러한데 그게 왜 진실로 제가 아니라는 거죠? 저에 대해 동거인에게 들어서 알 테죠. 제가 얼마나 저열하고 우유부단한지, 관리자로서 책임을 지기 두려워 선택과 그로 인한 대가를 하급자에게 부가하는지.」 「제 동반자가 과장한 걸 테지요. 그쪽의 결점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겁니다.」 동반자의 상사는 왜인지 내 말에 큰 상처를 받은 듯 한동안 입을 다물고 코를 훌쩍이며 잠자코 걷기만 했다. 곧 전철역으로 통하는 지하 출입구가 나왔고, 어째서인지 그가 전철을 타리라 생각한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는 몇 걸음 더 걸어 출입구 문턱에 이르러서야 가만히 서 있는 나를 뒤늦게 황망히 돌아봤다. 동반자가 그를 오해하고 있거나 나쁜 마음을 품고 음해한다는 의심이 설핏 들었다. 보아하니 심약하다기보다는 섬세한 사람이고 동정심을 자극하는 진솔하고 연약한 일면이 있어서였다.
「그렇지만 그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해요. 그게 나의 특질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지요? 나는 평범한 사람이에요. 특별한 사람을 돋보이는 용도로 살아 있는 범용한 군상 중 하나이지요. 튀어 보이는 나의 행색도 나를 열등하게 보이는 데 일조할 뿐 특별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아요. 당신의 동거인은 못마땅해요. 마땅히 평범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척 굴어요. 자신이 작가나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하지만 그건 당신이잖아요.」
그리고 그는 오른 장갑을 벗고서 내게 느닷없이 공모의 손길을 내밀었다. 소설이 머릿속에 심은 정언 명령이 하나 있다. 초면의 누가 나에게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면 맞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소설의 도덕이다. 나는 지각없이 내 동반자를 부당하게 말한 자의 온기 어린 손을 잡았다. 그다음은 생각지도 않았다. 상사가 거보란 듯이 웃으며 손을 놓았다.
「저는 당신과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고 봐요. 이를테면 동반자 문학적인 것이지요. 길은 달라도 추구하는 정향은 같으니 우리는 조만간 교차할 거예요. 그러고 나서는 다시 엇갈리겠지만요.」
나는 건널목을 건너 이발관을 향해 가던 길을 재촉했다. 뒤를 보니 동반자의 상사는 전철역으로 내려가지 않고 왔던 길을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엉거주춤 돌아선 자세 그대로 서서, 그가 옆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 잠시 사라졌다가 달동네 맨 위에 걸린 삭막한 회색 제단 형상의 공중 도서관으로 통하는 가파른 오르막길 초입에서 조그맣게 모습을 드러내 종종걸음으로 등반하는 걸 한참 응시했다. 내가 그와의 관계 마지막까지를 순간 떠올리지 않았다고 하면은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 말로란 그의 말대로 갈림길에 서는 것이리라. 어쩌면 둘 중 한 사람이 상대가 다른 길로 가는 걸 고분고분히 내버려두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는 위구심이 내 미련을 잠재우고 다시 나를 예정된 노정에 앞장세웠다.
전에도 몇 번 가본 이발관은 상가 건물 현관이 아니라 외부 계단을 올라 별도의 출입구에 들어서야 했다. 임대 면적을 가벽으로 분할해 여러 업자에게 싼값으로 세놓느라 그렇게 되었을 터였다. 그곳의 이발사는 벗어진 이마를 숱이 적은 머리칼로 부자연스럽게 가리고 잠에 취한 듯 웅얼거리는 말투를 가진 환대라고는 기대할 수 없는 음울한 기색의 청년이었다. 또다시 환대를 겪을 수 있다면 웃돈을 조금 얹을 각오가 되어 있었으나 값이 매겨지지 않은 재화에 가격을 흥정하는 행위가 자칫 오해를 살 수 있음을 나는 잘 알았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했다. 이발사는 보이지 않았고 처음 보는 조수가 시종처럼 나를 깍듯이 모셔 세면대에 등을 대고 앉게 하고는, 이미 감고 온 머리를 한 번 더 감겼다. 그러면서 장난스레 〈사람이 시간을 어기는 건 다 이유가 있으며, 상대야말로 이를 기다릴 동기는 없으니 자기였으면 진작 도망치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손길은 자못 신중했으나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거꾸로 치든 내 머리를 서툴게 들어 올려 이리저리 꺾어 댔다. 조수가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대충 훔친 뒤 나를 흰 천으로 둘러 거울 앞에 앉힌 다음 계산대로 돌아가 딴청을 피우는 동안, 보통과는 달리 노래도 틀지 않은 적막한 실내에서 누군가의 밭은기침이 울렸다. 그 소리는 내 앞의 전면 거울이 달린 가벽 너머에서 들리는 것이었다. 곧이어 홀연히 나타나 내 뒤로 선 이발사는 벗어진 이마를 가린 앞머리가 흐트러지고 경황이 없는 모양새였다.
「이 양복에 걸맞은 머리로 만들면 되는 것이지요.」
뒤통수에 닿는 입김에서 술 냄새가 나고 평소보다 무뚝뚝하다는 것 외에 그는 예전과 다를 바 없이 거두절미하고 바로 가위와 빗을 집어 들었다. 나는 눈을 감고 그에게 머리를 맡겼다. 눈을 감은 손님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건 굴욕적인 것이라는 단상이 문득 들었다. 일상의 우리는 한 치도 방심하지 못하여 눈을 감지 않는데, 여기서만큼은 마음 편하게 눈을 감는다. 상대가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아는 것이다. 가장 연약한 부분을 무방비하게 드러내 보이면서도 신경 쓸 가치가 없다는 건 상대에게 굴욕이고, 그것은 매춘과 비슷한 속성을 지닌다. 「더, 더.」 이발사의 요구에 따라 나는 마치 참수형을 기다리는 수인처럼 점점 목을 쭉 빼서 숙여 내밀었다. 그러고 머리를 자르는 내내 낯에 닿는 그의 안정적인 날숨은 양조장 부근에서 부는 산들바람같이 취기가 돌면서도 기분 좋게 선선하였다. 사각사각 머리를 자르다 잠시 멈출 때마다 그의 손에서 가위와 빗이 찰칵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동영식 정원의 못에서 낙숫물을 이용해 주기적으로 대통이 바닥을 텅텅 때릴 때처럼 일정하게 반복되며 더없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제 그는 밭은기침도 하지 않고 눈감은 나에게 몽롱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오늘은 제가 늦었습니다. 꼴이 말이 아니지요? 휴대 전화기를 곁에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를 깨우는 기계음이 듣기가 싫었습니다. 거기다가 오늘 울린 그 소름 끼치는 경보는 전원을 끄지 않고는 막을 수가 없었지요. 기계음이 저를 미치게 합니다. 아시나요. 본디 저는 가위질의 명수입니다. 제 가위가 어찌나 일정하게 사각거리는지 사람들은 매번 졸기 마련입니다. 저는 애무하듯이 가위질하거든요. 그러나 그리 천천히 자르다가는 그만큼 손님을 덜 받게 되어서 제 망집을 꺾고 자주 이발기를 들어야만 했지요. 오늘만큼은 가위질만으로 손님을 대하는 걸 허락해 주십시오. 제 가위는 어떤 이발기보다도 정교하고 일률적입니다. 그런데 손님에게만 말하는 건데, 저 사람은 사실 제 보조가 아닙니다. 계산대에 선 사람이요. 제 감시인입니다. 그러니 저보다 여기에 먼저 와서 저를 기다린 거죠. 제가 여기서 돌발 행동을 한다면 전적으로 저자 때문임을 양해 바랍니다. 저자는 제가 자신의 위치에서 그 자리에 맞서 항거하기를 바라는데, 보십시오.」
나는 눈을 떠 거울을 보았는데 지나치게 짧아진 내 머리보다도 시야 모서리에 걸린 계산대에서 내 쪽을 향해 키득대는 조수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제 그만 자르세요.」 내가 자리를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도 이발사는 가위질을 멈추지 않았고, 날카로운 날 끝에 목이 찔릴까 봐 겁먹은 나는 그만 포기하고 속절없이 민머리가 되어 가는 꼴을 거울로 지켜봐야 했다. 울퉁불퉁한 두상이 드러나고 잘려 나간 짧은 머리카락들을 덮어쓴 내 모습은 그야말로 수인의 형상이었다. 핏기 어린 내 눈은 태연함을 가장하려고 애쓰는 한편 공포에 질려 축축하게 젖어 가고 있었고, 귓전에서 반복되는 찰칵 소리는 내 숨통을 베어 내려는 망나니가 칼을 가는 것처럼 섬뜩하게 들렸다.
「방금 얘기는 농담입니다. 저 사람은 보조가 맞아요. 오늘 제가 왜 이러냐면 저만의 개인적이고 삿된 일로 인한 것입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저만이 변했습니다. 저 역시 언제나처럼 똑같이 일상의 쳇바퀴를 굴리려고 했건만 이렇게 어그러지네요. 지각을 하고, 당신의 머리를 자르고, 또 자릅니다. 더는 자를 수가 없을 때까지요. ……자, 다 되었습니다.」
가위가 내려놓아지기 무섭게 나는 벌떡 일어나 몸에 두른 흰 천을 벗어 던지려고 했는데, 그게 장막처럼 잠시 눈을 가리는 순간 이발사의 주먹이 내 턱에 적중했다.
「손님이 나 같은 이발사는 기껏해야 고졸에 기술 하나 배운 양아치라고 생각하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나같이 인생이 망가지고 불만뿐인 양아치들에게 당신이 기대하는 것을 드렸습니다.」
그것은 오랜만의 고통이었다. 한 깨달음이 욱신거리는 아래턱에서 솟아올랐다. 나는 차마 타인의 신음을 통해서는 그 고통의 정도를 체감할 수 없는 거야. 나의 통증만이 깨달음이다. 나는 훼손되어야 마땅해. 구경은 끝이 났다. 나는 언제든지 파괴될 것이다. 내가 갇혀 살던 비눗방울이 터졌고, 이제 세상의 고통은 나와 격리된 안전한 전시물이 아니다.
「작년에 손님이 처음 방문하였을 때 나는 물었었지요. 여기 사냐고.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다고 당신은 대답했습니다. 머리를 너무 길게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고요. 손님 말로는 새로운 이발관에 정착할 때마다 자신이 단골이 된 순간부터 이발사가 차츰차츰 머리의 기장을 더 길게 남기더라는 겁니다. 내 머리를 은연중에 조금씩 더 길러서 다른 비싼 시술을 권하는 건 아닐까? 그게 당신의 의심이었습니다. 바로 내가 답하자면, 아니에요. 나는 요구대로만 자릅니다. 돈이라니요. 당신은 수도에서 나고 자란 게 아니라 지방 출신이라고 했지요. 행색은 저보다 특별히 낫진 않으나 팔자는 매상 좋아 보였습니다. 늘 평일에 왔으니까. 그게 당신을 견딜 수 없게 하는 건 아니지만 오늘이 되자 그 사실 또한 못 버티겠어요. 당신처럼 내가 수전노로 보입니까? 나는 머리를 잘라요. 그에 걸맞은 수임을 받고요. 가맹료를 손님에게 부담시키지 않고 저렴한 가격에 머리를 잘라요. 나는 당신 머리를 자르지 그 알량한 재산을 도려내지는 않는단 말입니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평일 아침에 양복을 입고 왔군요. 감히!」
미용사가 일장 연설하는 사이 뒤에서 지켜보던 조수가 비틀거리는 나를 세면대에 앉혀 또 한 번 머리를 감겨 주었다. 이제 민머리나 다름없건만 그는 마치 벌레를 골라내듯 내 두피 구석구석을 손톱으로 꼬집고 할퀴어 댔다. 어느새 다시 가벽 안으로 칩거했는지 벽 안에서 이발사가 밭은기침을 내는 소리가 거꾸로 치켜들린 내 머릿속을 왕왕 울렸다. 일을 끝마치고 조수는 어떤 우려할 사태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듯 범상한 태도로 다시 계산대에 섰다. 나는 방금의 폭력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이성적인 의지의 표현으로서 계산을 마친 다음 턱을 움켜쥐고 도망치듯 나왔고, 내 뒤로 가벽 내부로 통하는 비밀 문이 딸깍 열리고 숨죽이고 있던 무뢰배들이 왁자지껄 상스럽게 웃으며 욕설을 내뱉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하여 머리털을 잃은 나는 머릿속 지각 능력도 상실하였는지 그저 경악에 휩싸여, 도깨비바늘처럼 낯과 상반신에 들러붙은 잘린 머리카락들에 불이라도 붙은 양 정신없이 털어대며 전철역으로 향했다. 여기를 벗어나야지만 끔찍한 동족들을 더는 마주치지 않으리라는 절망감이 사대문 안으로 향하는 열망으로 변질되었다. 다행히도 나는 거기서도 최고의 부자에게 이미 의뢰를 받았다. 남의 글을 대신하여 쓴다는 것은 내게 전연 속물적이지 않다. 그것은 이상적인 형태의 글쓰기다. 내가 쓰지만 나 자신이 저자가 아니고, 제일 인칭이지만 실은 타자의 인생이다. 소설가로서 내가 항상 괴롭도록 혼동하던 것들이었거늘, 여기서는 간명하기 짝이 없다. 그동안 받아 온 모든 글 삯을 한참 상회하는 보수도 물론이다. 나는 전철역으로 통하는 층계를 쿵쾅거리며 내려가 개찰구를 가로질러 승강장으로 뛰어가 철로를 가로막은 유리 안전문 앞에 서고 나서야 멈춰서 숨넘어가도록 헐떡거렸다. 그러자 마치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 안내 방송 없이 안전문이 열리면서 유리에 비치던 까까머리의 나도 갈라졌고 이미 도착해 있던 열차 문도 바로 이어 열렸다. 열차 내부는 모든 불이 꺼져 있었는데, 승강장의 조명을 통해 몇 없는 승객들의 암연한 윤곽이 겨우 분간되었다. 때마침 차량 점검이라도 마쳤는지 불들이 켜지고 천장에 달린 전광판 화면이 적·녹·청의 순서로 물들었다가 화면 조정을 마치고 열차 내에서의 정숙과 공중도덕을 강조하는 안내 문구를 띄웠다. 그러고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열차가 출발했다. 앉아 있는 승객들은 그저 이 동네를 지나칠 뿐인 외지인으로 나를 향해 고개 들지 않고 무심히 휴대 전화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자리가 많이 났지만, 나는 한동안 손잡이 기둥을 부여잡고 차량들이 연결된 문 없는 통로로 언뜻 끝없이 이어져 보이는 열차의 종심 깊숙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숨을 골랐다. 열차가 주기적으로 덜커덩거리면서 내가 느끼기에는 미미하게 출렁일 때마다 실상 결속 차량들은 구불구불한 궤도를 따라 극적으로 이리저리 요동치고 있었다. 마치 작년부로 순환선 행로를 사대문 안을 아우르는 원 형태로 바꿔 표시한 전철 노선도대로 열차가 거대한 호를 따라 차량을 들쭉날쭉하게 틀며 운행하는 듯했다. 물론 정말로 그런 게 아니라 전철 노선이 기술적인 문제로 사대문 밖과 안을 경계 짓는 바위산의 아래를 관통하지 못하고 단단한 화강암 지대를 빙 돌아 개통되어서일 터였다. 움직이는 뱀의 뱃속같이 울렁이는 내부를 가만히 들여다보자니, 내가 속한 차량과 외양이 똑같은 칸마다 매한가지로 드문드문 승객들이 고요하게 앉아 있는 게 흡사 승강기의 벽마다 설치된 거울을 바라볼 때 무한히 증식하는 내 모습을 응시할 때처럼 섬찟한 현기증이 일었다. 시야의 끄트머리에는 나처럼 손잡이 기둥을 잡고 내 쪽으로부터 뒤돌아선 거뭇한 윤곽이 서 있었다. 그쪽이 유달리 어둡다기보다는 단지 낯선 상대가 검은 옷을 입어서였고, 어쩐지 열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내가 나의 뒷모습을 마주한 거라는 해괴한 상상이 들었다. 차량마다 달린 전광판이 일사불란하게 행선지를 가리키고 곧 열차가 천천히 멈춰 서서 그가 승강장으로 내렸을 때는 거울 속 내 환영이 나를 떠난 듯한 존재론적 허허로움이 찾아왔다. 하필 그가 내린 역이 동반자와 대피하기로 약속한 장소라서 내가 둘로 나뉘어 다른 선택을 하는 나를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열차는 다시 출발했다. 얼마 후 내가 내린 역은 목적지인 사옥보다 한 정거장 떨어진 곳으로, 전광판에 〈차고지행〉이라는 문구가 몇 번 깜박이더니 더는 가지 않고 불이 꺼진 것이었다. 이런 일이 상례라는 듯 차분히 내리는 사람들을 따라 나온 나는 얼마간 어수선한 기분으로, 내가 살다가 버티지 못하고 사대문 밖으로 튕겨 나간 뒤로는 들를 일이 없던 옛 동네의 신축 역사를 낯설게 둘러보았다. 버스를 타면 금방이지만 지금처럼 차량이 멈추거나 더는 피할 수 없는 공간에서 사람들과 마주하기 두려워 첩경으로 걸어갈 요량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상에 세워진 구역사에서 이어지는 육교를 통하여 대로의 회전 교차로를 가로지르는 것이 건널목에서 느려 터진 보행 신호를 기다리는 거보다 나은데, 그쪽으로 가는 통로가 못 쓰게 된 대합실 좌석들과 구형 표 판매기 따위로 얼기설기 쌓은 방벽으로 가로막혀 가까운 다른 출구로 나와야 했다. 회전 교차로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육교는 비계에 둘러싸여 황색 방수포로 싸매어져 있었고, 마치 철교를 염하는 듯했다. 그 아래 차도에 육교를 대신할 건널목이 새로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내게 상징적으로 다가왔는데, 사대문 외곽의 구시가지도 이제 새로운 신시가지로 거듭나고자 대표성을 띠는 흉물을 먼저 제물로 바치는 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것은 그대로로, 내가 출발했던 동네와 다를 바 없이 검게 착색되어 가는 고옥들이 이룬 우울한 잿빛 지평선 위로 곧 이르고자 하는 반월형 탑이 청명한 하늘 높이까지 치올라 있었다.
내가 부산물을 두고 너무 멀리 나왔다는 염려가, 내 신분에 걸맞지 않게 참람히 거대한 초고층 탑에 홀로 들어가 높으신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잠시간 그 자리에 못 박았다. 나는 겨우 힘을 내어 인근의 옛 시대에 죽은 충신들이 참시에 처해져 매장된 공원에 가서 사당 주위를 배회했다. 사당을 둘러싼 돌담에는 당시 그들의 시신이 고통스러운 표정 그대로 강직된 채로 피부가 벗겨져 거리에 내걸린 벽화가 인각되어 있었고, 이는 사자를 추모한다기보다는 단지 고통으로 극대화된 살아 있는 사자를 형상화한 것 같았다. 조금 더 머뭇거리다가 출발해도 아직 시간이 있을 거야.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거리다. 모든 건 마음 먹기에 달렸는데, 왜 나는 그게 참 힘이 들지? 손으로 얼굴을 쓸어 올리자 고르게 잘리지 않아 군데군데 구둣솔처럼 까끌까끌한 머리가 느껴졌다. 서풍이 그칠 줄 몰랐으나, 여전히 날씨는 좋았다. 하늘에서는 광고풍선으로 보이는 기구 하나가 바위산을 넘어 휘청휘청 고도를 낮추며 드높은 탑을 지나는 중이었다. 공원 가까이서 비죽이 솟은 언론사 사옥에 달린 옥외 광고판 화면에는 담화를 생중계하려는 모양인지 이 나라 수도의 표치인 노란 달과 초록 산, 파란 강이 사람 형상으로 어우러진 배경에 빈 연단이 놓여 있었다. 그 순간 바지 주머니의 휴대 전화기에서 다시금 소름 끼치는 파상음이 틀어지고 공원의 우거진 나무들 너머로 차들이 급제동하는 마찰음과 여기저기 들이받는 굉음이 연이어졌다. 허둥대며 휴대 전화기를 꺼내 경보를 껐을 때는 곧 만나기로 한 선전부장에게서 전화가 걸려 오고 있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가히 예상이 가서 잠깐 전화 받기를 망설였는데, 의외의 소식이 내게 전해졌다.
「왜 오지 않는 것입니까? 혹여 작금의 사태에 대한 염려로 피난을 가는 건 아니십니까? 앞선 내무부의 정정이 맞습니다. 그것은 거짓 경보이고 정치 공작입니다. 판윤께서 지금 사옥에 계십니다. 사옥 내에 마련된 방송 장비를 통하여 근래의 정치적 위기를 뒤집고자 이제 막 생중계로 담화에 임하신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건 선대 회장님과의 인연으로 제공된 편의이지, 우리와는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선대 회장님께서 사거하셨습니다. 오늘로써 소천하신 지 사흘째입니다. 작가님은 모르셨겠지만 일종의 시차가 있었다고 넘기면 되겠습니다.」 「그것은 의뢰인께서 사전에 허락한 내용입니까? 제가 쓴들 의뢰인이 공인하지 못하면 자서전으로서 무슨 의미겠나요?」 「작가님은 이 업계에 대해서 모르시나 본데, 오히려 더 좋은 일입니다. 문학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죽음은 책의 의의와 완성도에 찍히는 더할 나위 없는 방점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앞으로 집필될 자서전은 생전 선대 회장님의 유지와는 맞지 않을 터이나 상속인이신 회장님의 뜻에 맞게 새롭게 개편될 것입니다. 망자의 권력은 상속인에게 이양되며, 물려받은 그 힘이야말로 자서전의 내용을 좌지우지할 권리를 부여하는 본질 자체입니다. 내용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단지 해석이 달라질 뿐. 그게 우리가 만나 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건 문학이 아닙니다.」 아연실색한 내 말에 선전부장이 마지막으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나는 차마 확답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시가지의 소란 너머로 아까의 풍선이 맥없이 터지면서 검고 하늘거리는 물체들이 쏟아져 나와 역병을 전하는 검은 전령들처럼 일대로 흩어져 내려앉고 있었다. 동반자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새 휴대 전화기는 먹통이 되었고 정보망에도 접속할 수 없었다. 언론사 사옥에 걸린 옥외 광고판에서 여전히 방송이 송출되고 있다는데, 그렇다면 그 주변에서는 전파가 통할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광고판 화면의 연단은 전과 같이 비어 있었지만, 자막으로 앞선 경보와 방송 내용은 판윤부와 무관하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접선 및 담합하여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한 폭력주의적 흑색선전을 자행한다는 내용을 반복 송출하고 있었다. 서둘러 달음박질하여 공원을 나오다가 자전거를 타고 마주 도망 오는 남색 정장 차림의 외국인 선교사를 얼떨결에 밀치는 바람에 그가 길바닥을 나뒹굴었고, 내가 미처 부축할 새 없이 바닥에 내려앉아 있던 반질반질한 검은색 비닐이 바람을 타고 쓱 밀려와 그의 낯에 달라붙었다. 그는 유창한 이 나라 말로 도와 달라고, 숨을 못 쉬겠고, 자기 죽음에 아무도 울지 말라고 아우성치면서, 내가 비닐을 얼굴에서 떼어 내도록 다가가지 못할 정도로 거칠게 허우적대다가 그만 축 늘어졌다. 그러자 비닐은 얼굴에서 떨어져 어느 귀족이 마차에서 내리다 놓친 섬세한 손수건처럼 곱게 땅바닥에 내려앉았다.
내 앞에 놓인 자는 이제 시신이 되었다. 죽은 육체는 영화에서의 창백하거나, 혹은 신선한 붉은 피에 젖어 있거나, 생명을 불태운 뒤 남은 회색 재 같은 피부가 아니라 누렇고 고무 같은 물성이 느껴졌다. 마치 푸줏간에 걸려 있는 가축의 오래된 다리같이. 이것이 실제의 시신이 정말 맞나?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이리도 금방 핏기가 빠지고 상한 음식 같은 색감을 띤단 말인가. 이 죽음과 시신은 어쩐지 연출된 듯하다. 마치 세상이 죽음을 연출하기 위한 무대라는 듯, 그리고 죽음 뒤에 더 크고 장엄한 절정이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다. 나는 검은 비닐에 흰색으로 적힌 글씨들을 조심스레 다가가 허리 숙여 읽어 보았다. 그것은 저 나라의 군인들이 필멸을 무릅쓰고 국가를 향한 맹세를 적은 유서였고, 판에 박힌 내용 하단에는 과거 구주의 폭력주의 혁명에서 혁명군 소속 분자였는지 정부군 장군이었는지 모를 인물이 남긴 어색한 번역 투의 문장이 인용되어 있었다.
〈내일 내가 희생자 수를 완성할 것이다.〉
퍼뜩 정신 차린 나는 다시 광고판이 있는 가도를 향해 달려 나갔다. 이 나라가 지니는 극도의 두려움. 집단적인 유혈과 죽음의 발생에 대한 기피. 모든 것이 개개인 간의 사적 원한으로 환원되거나 또는 만인의 일인에의 박해로 귀결됨으로써 한 사람 한 사람씩 죽어 나가는 것에는 눈 하나 깜짝 않던 그 냉담함. 한편으로는 공동체가 누리는 일상성과 평화를 영속되는 신화로 숭배하려는 기묘하고도 위태로운 관점. 모두 끝이다. 집단적인 죽음이 선행되어야만 그 실체가 드러날 수 있는 공포 시대가 비로소 시작되려고 한다. 나는 여기에 관해 아무것도 써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이것을 겪는 데에 어떤 말도 덧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순진한 경악, 볼썽사나운 낙관, 느닷없는 인류애를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지금 거리에 산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나는 왜 그런지를 알지 못한다. 그들이 어딨는지 모르겠다. 나를 방기한 거대한 공동체를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앞서 내가 겪어야 하는 것이 남아 있으며 거기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이 재난을 바깥에서 바라볼 수 없고 안에서 겪어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데,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생존 확률이 높아지는 건 아니다. 아무 연유 없이 공격당해 죽을 수 있다. 살아 있어야 비로소 말할 수 있는 법인데, 실상 죽음이야말로 이 재난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명료한 대단원이다. 저간 나는 무의식중에 그걸 알고 그리도 죽음을 얘기한 것일까? 이 재난보다 앞서 내가 먼저 죽음의 경지를 통과하겠다는 탈출의 의지. 그것은 망명자가 안전한 망명지에서 느닷없이 자살하는 것과 같다. 재난에 속한 순간 사람은 벗어날 수 없다. 재난 지역에서 벗어나더라도 매한가지다. 우리는 여태 재난 바깥에서 거주한다고 믿었는데, 이제 화해에 예속되었다. 그 시기의 항구적인 끝이 도래하더라도 우리는 영원히 그때를 망각하지 못할 것이다.
회전 교차로는 사람 없이 버려진 차들뿐이고 신호등은 붉은색으로 점멸하는 가운데, 교통섬의 방첨탑이 시침같이 짧은 본영을 북쪽으로 가리키며 외롭게 서 있었다. 나는 서로 들이받아 식식 연기를 내뿜는 차들 사이를 가로질러 가 언론사 사옥 앞에서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헛일이었다. 그제야 집에 설치한 감시 카메라를 상기하고는 휴대 전화기로 전송된 녹화 화면을 재생하였는데, 가장 최근 영상에서 부산물이 부엌에서 유소년처럼 똑바로 서서 카메라를 응시하며 또렷이 말하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해. 왜 집에 나 혼자 있는지. 왜 너희가 돌아오지 않는지. 그건 내가 집에서 맞이할 죽음이 코앞까지 닥쳐와서야. 나의 죽음을 보지 않겠다는 너희를 이해해. 네가 말한 대로 내가 떠나야 할 때가, 모험의 시기가 왔음이야. 네 걱정과는 달리 내가 어떤 형상을 이룰지 두려운 마음은 들지 않아. 나는 스스로의 이름을 짓는 첫 아이가 되겠어. 하지만 종국적인 모양을 갖추는 건 다음으로 늦출 참이야. 참 여행을 떠나기 알맞은 날이야.」 통고를 마치기가 무섭게 그의 뒤에서 동반자가 신기루처럼 솟아났고, 둘이 손을 맞잡고 현관문 쪽으로 나가는 모습과 함께 재생이 중지되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옥외 광고판도 송출이 중단되어 검은 화면이었다.
나는 바닥에 널린 검은 비닐들을 피해 걸으며 내가 이르러야 했던 드높은 탑을 지나 북쪽 지평선 끝에 걸린 바위산으로 향했다. 그들은 같은 민족이지만 전락했고, 이 나라 사람들은 산봉의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오지의 그들이 굶주림에 신음하고 죽어 가는 모습을 구경거리 삼고는 했다. 또한 옛적부터 험준한 바위투성이 형세에 숨을 곳이 많다 보니 역모를 모의하던 자가 은거했다는 야사가 전해지는 산이었다. 많은 이가 죽음 이후의 영화를 꿈꾸며 수도의 진산이자 금장 구역인 그곳에 남몰래 시신을 매장했고, 태곳적부터 전략적 요충지로서 이전 세기까지 수많은 젊은이가 참호에서 죽음을 맞이했으며, 근래까지 실족사하거나 자살하고 살해당한 신원 미상의 백골이 발견된, 이름 없는 이들의 집단 매장지였다. 내가 가는 곳은 바위산 남쪽 방면 산기슭 동네의 전철역이었다. 동반자와 대피하기로 한 역과는 산을 두고 반대편에 자리했다. 산의 우람한 밑자락을 돌아 그에게 닿기까지는 내 체력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긴 시간이 소요될 터였다. 분명 운행이 중단되었을 전철이 다시 정상적으로 출발할 때까지 가장 안전하면서도 걸어서 가기 가까운 그곳으로 대피하여 상황을 도모할 요량이었다. 산기슭 동네에는 노인들과 가난한 부부와 어린 자식, 이주 노동자들, 무명 예술가가 모여 살았다. 많은 이가 자기네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대대로 거기서 살았으며 지금도 그러할 것이다.
* 프란츠 카프카,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 「1922년 7월 5일 막스 브로트 앞」, 서용좌 옮김(서울: 솔출판사, 2017)
** 앙리 보스코, 『이아생트』, 최애리 옮김(서울: 워크룸프레스, 2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