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장편소설

동반자

  • 작가 김갑용
  • 발행 2026.09.22
  • 장르 일반
김갑용

김갑용

2016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으로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토성의 겨울』이 있으며, 2022년부터 소전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장편소설 『냉담』을 출간하였다. 두 번째 장편소설 『동반자』를 <월간 장편소설>에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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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동반으로 자살하고자 했다.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동반 자살에 이르게 되었노라고 판단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죽지 않았다. 애초 물에 빠진 순간부터 방금의 시도는 까맣게 잊혔고, 그러니 부표를 잡은 손을 놓기만 해도 또 한 번 죽음을 향해 도약할 수 있다는 간단한 사실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시선이 닿는 곳 너머까지 펼쳐진 물은 제법 잠잠했다. 우리 눈앞의 탁한 녹갈색을 띤 단단한 수면은 파도로 부서지지 않고 그저 살짝 물결치기만 했다. 나와 단독자가 산에서 아웅다웅하는 동안 바다가 소리 없이 범람하여 이 나라의 지상을 쓸어 버린 게 좀처럼 실감 나지 않았고, 마치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나 지금은 폐허가 된 이국의 수상 도시로 떠내려온 양 터무니없이 낯설었다. 광활한 수면에 가득 찬 잔해들은 모종의 이해관계로 이합집산하여 야트막한 쓰레기 섬을 이루거나 때로는 커다랗게 덩어리졌던 것이 물결에 갈라져 뿔뿔이 흩어지기도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쨌거나 잔해들은 모두 이 나라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대체로 불에 그슬린 목재나 속이 비고 가벼운 쓰레기들로 채워진 잔해 가운데는 이 나라 말로 쓰인 간판도 있었다. 교외에서 흔히 보는 합성수지 지붕재나 국내 기업이 생산한 자동차 따위가 어둠과 물에 반쯤 잠겨 있기도 했다. 뒤집힌 어선이 죽은 생선들을 은빛으로 토해 낸 모습도 보였는데, 해처럼 강렬한 달빛 아래서 그 모든 것의 집합은 기묘할 만치 전위적이고도 몽환적으로 내비쳤다. 나와 단독자는 부표 더미에 힘없이 상반신이 내걸린 채로 부지불식간에 바위산으로부터 천천히 동쪽으로 멀어지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를 집어삼킨 게 바닷물이 맞다면 아직도 밀물이 차오르고 있으며, 만조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달빛과 수평선이 만나 이루는 흰색의 가는 경계선이 알게 모르게 높아진 듯했다. 섬처럼 고립된 바위산이 우리 눈에 보이는 유일한 땅이었지만, 만조 때의 해수면 높이를 짐작할 수 없기에 그다지 안전한 대피 장소로 고려되지는 않았다. 물론 부표에 매달려 겨우 몸을 반만 내놓은 우리가 뭘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방향을 틀 노도 없었고, 거기다가 이제 산은 생각만 해도 신물이 났다. 지금 상황을 이해하려는 의지도 기력도 없었다. 해수면이 지표면을 넘어서는 일이 발생했다. 그냥 그런 거다. 우리는 거기에 대하여 아무 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서로 간에 대화도 필요 없었다. 이미 충분히 많은 말을 나눴는데 그럼으로써 더 긍정적인 변화도 없었고, 사태는 줄곧 말문이 막히게 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나와 단독자는 일면한 지 얼마 안 된 사이에 어울리는 서먹한 긴장감을 가지고 최대한 서로를 외면했다. 아마 지금과 같은 사이가 유지된다면 언젠가의 만약에 서로 제 갈 길을 찾아 헤어질 수도 있겠다는 단상이 들었다. 극복할 수 없는 패배감이 우리를 다시 각자로 만들었다. 한편으로 우리는 지금처럼 간명한 처지를 원했던 게 아니었나?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길은 우리가 희망하고 절망하고 번뇌하게 하는 대상들을 눈앞에서 소거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문명을 지워 내고, 사람을 지워 내고, 마침내 땅을 지워 내는 그 방식이 비록 극단적이어서 줄곧 경악했을지언정, 우리는 점진적으로 하늘 아래 진정한 혼자가 되어 갔다. 땅이 있고 그 위에 이 나라의 도시가 서 있던 때야말로 나는 구름 사이를 떠다니는 듯 무게 없는 존재로 느껴졌고 공상에 불과한 사유들로 자기 자신을 괴롭혔다. 그러나 모든 것이 물에 잠긴 지금은 부표에 매달린 팔을 통해 제 무게를 조금이나마 느끼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 아무 의문도 품지 않을 수 있었다. 동반자와 부산물을 비롯한 모든 것을 희생하고 얻은 존재의 고요와 평화 속에서 나는 또한 자기 자신에게도 무심했다. 드디어 제 몸이 지니는 끈질긴 영속성에 적응한 듯했다. 상처도, 고통도, 피로도, 배고픔도, 갈증도 어쨌거나 견딜 수 있었다. 내게 지금 주어진 현재가 삶이든 죽음이든 그 사이의 무엇이든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유유자적 표류하는 사이 시간이 꽤 지났다. 우리는 전혀 나아가지 않고 같은 자리를 맴도는 듯했지만, 어느새 산이 멀어져서 지금은 주먹만 한 달과 그 크기가 비슷해지고 있었다. 확신할 수 없지만, 우리는 아주 크고 느릿느릿 회전하는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처럼, 가상의 광활한 호를 따라 거대한 원을 그려 나가는 듯했다. 산 또한 우리가 뛰어내렸던 가파른 바위 면이 아니라 검은 재로 뒤덮인 비교적 완만한 능선을 우리에게 내보이고 있었다. 부동하는 달을 중심으로 우리가 속한 잔해 무리가 공전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선형으로 점점 조여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산이 차츰차츰 다시 가까워지는 듯했다. 처음 그렇게 느낀 뒤로 하염없이 두세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수면 위에 월광을 희뿌옇게 반사하는 물안개 같은 게 점차 드리워지기 시작했는데, 정작 공기에는 아무런 습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늘은 여전히 검었고, 달도 있던 자리 그대로인데도, 드넓은 바다의 검게 잠긴 원경이 차츰차츰 본디의 녹갈색으로 밝아지고 있었다.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던 잔해들도 이제 그것들이 본래 무엇이었고 무슨 색을 띠는지 대부분 어지간하게 분간할 수 있었다. 반면 우리의 살갗은, 안 그래도 밤하늘이 걷힌 뒤로 극히 미미해졌던 푸르스름한 기운이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부패한 시체처럼 검누른 빛으로 변색되었다. 어쩌면 이미 여기가 저승의 초입이고, 태양 대신 월구가 떠오르는 저세상의 검은 아침이며, 우리는 차차 썰물이 빠지는 대로 드러날 어떤 통로를 기다리는지도 몰랐다. 그 길의 끝에는 먼저 죽은 사람들, 요컨대 동반자와 부산물이 우리를 반겨 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더는 발버둥 치지 않고 얌전히 죽음의 처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리라. 여태껏 떨쳐 내지 못한, 지극히 인간적이고도 나약한 기대. 그럼에도 아직 생각할 수 있기에, 무엇으로든 지루한 시간을 때워야 하기에 나는 장난처럼 가볍게 터무니없는 훗날을 상상했다가 금세 부정하고 잊었다. 단독자는 멀거니 달을 올려다보며 무료함을 달래는 듯했다. 진기한 구경거리기는 했다. 그것은 올려다볼수록 커지고 손에 닿을 양 가깝게 느껴졌다. 그 주변의 뿌옇기만 하던 빛무리가 실처럼 가닥가닥 풀리더니 아주 천천히, 마치 솜사탕처럼 돌돌 말리며 달을 휘감고 있었다. 물 위에서 상반신을 꼿꼿이 세운 채 머리 위를 무표정하게 올려다보는 그는 나 모르게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처럼 굳은 것으로 보이기도 했고, 또는 거대한 달의 인력에 붙잡혀 끌려가지 않으려고 팽팽하게 줄다리기 중인 듯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보이기도 했다. 어찌 되든 그건 그의 사정이었다. 나는 그에게 아무런 친밀감을, 함께 곤경을 헤쳐 나갔다는 동지 의식을 전연 느끼지 못했다. 내가 무정한 인간이 되었다기보다는 이제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애쓸 필요도 없다는 걸 진정으로 체감해서였다. 우리가 저간 사태 속에서 상반된 목표 의식을 지니면서도 같은 길을 서로 의지하며 걸었다는 사실도 이제는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지난 과거와 작별한 이는 지난 관계와도 유대감을 잃고 멀어지는 법이니까. 하기야 그가 어떻게 되더라도 도울 손이 부족했고, 차가운 소금물에 절어 반쯤 마비된 몸이 제 뜻대로 움직일 것 같지 않았다. 부표를 뻐근하도록 부둥켜안은 두 팔을 푸는 순간 수영할 줄 모르는 나는 수심 깊숙이 가라앉을 터였다. 그는 속으로 어떤 궁리를 하고 있을까? 아무 말 없는 그는 빈 껍데기 같아 보였다. 한도를 넘어선 비애감을 이기지 못하고 아무것도 이해하거나 체감하지 못하는 백치가 되었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는 나를 본떠 만든 영혼 없는 인형이고, 혼자서 재앙을 견뎌 내기 두려운 나머지 내가 생명 없는 그것에게 인격을 부여했던 것이며, 이제 역할을 다하자 무섭도록 나를 똑 닮은 사물 본연으로 돌아간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그간 그것은 나에게 질리도록 달라붙어 내 본분을 일깨우려 했던 거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뱃놀이를 즐기는 것처럼 한가로웠다. 물이 빠져 감에 따라 우리는 아까와는 반대 방향으로 호를 그리며 흘러갔고, 수면 위로 우뚝 솟은 산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며 아까 우리가 떨어졌던 가파른 바위 능선을 다시 노출했다. 물에서 빠져나오는 중인 산자락의 아랫부분이 젖어서 색이 진한 게 육안으로 분간되어 보였다. 썰물이 어찌나 빠르게 빠지는지, 마치 해수면 아래서 산이 급격히 융기하는 것 같았다. 바위산과 수면이 맞닿은 경계면으로 밀려와 두터운 띠를 형성했던 잔해들이 미처 썰물을 따라 빠져나가지 못하고 산기슭 아래에 걸렸다. 침수된 자동차라든지 죽은 생선들과 해초, 표지판, 현수막, 까맣게 타서 원래 생명체였는지 사물이었는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덩어리 그리고 온갖 쓰레기들이 골짜기 하류에 쌓였다. 아주 먼 훗날에도 이 나라에 사람들이 살고 개발이나 연구를 위해 땅을 파 내려간다면, 육지와 바다에서 비롯된 생물과 온갖 잡동사니들이 혼재하는 지층을 발견하고는 매우 의아해하겠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과거와 연이 끊긴 그들은 이 비극을 엉뚱하게 해석할지도, 어쩌면 바다 아래 있던 해양 도시가 지각판의 융기로 파괴되어 남긴 유적이라고 오해할지도 몰랐다. 그들이 그렇게 멍청하고 완벽하게 과거와 단절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도 흔적이나 기록을 남겨 옛 시대를 이해하려는 후세의 혼란을 가중할 수 있을 것이다. 뭘 지어낼 수도 있다, 그 말이다. 인제 와서 생각건대 지금 내가 허구로 뭘 지어내고 쓴다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내가 자아낸 모든 게 지금 사태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지금은 얼마든지 용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야 헛짓거리일 테지. 한데 언제는 안 그랬나? 내 글이 남들 눈에 덧없는 망상이지 않았던 적이 언제는 있었나. 이제 우리가 매달린 부표 더미는 산자락을 향해 나선형으로 조여들면서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마치 수심 깊숙이에 개수대의 배수구 같은 구멍이 있고 거기로 물이 흘러 빠져나가면서 생겨나는 와류에 휘말리는 듯했다. 물이 빠진다 해도 다시 산으로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확실했다.

아니면 뭍이 드러나는 대로 내가 살던 동네로 돌아가 셋방에서 익사했을지도 모를 가족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 속에서 그들은 우리가 살던 낡은 다세대 주택을 떠나지 않았다. 일전에만 해도 나는 그 둘이 집을 나서 자유로이 모험을 떠나는 광경을 상상하는 게 매우 손쉽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가능성을 따지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제 가족이 지금껏 내가 마주했던 곤경들을 같은 땅 위에서 겪고 나처럼 상처투성이 육신이리라고 상정한다는 건 나에게나 그들에게나 너무 가혹했다. 그래. 내가 그동안 부정하고 거부했던 것, 나의 시선으로 내 가족을 재단하고 그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 지금은 가능할 성싶었다. 물론 여기에는 내 양심을 방어하는 편의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상상한 동반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집에서 나를 기다리며 내게 전하고자 했을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좀 더 엄격하게 그의 입장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에게도 입을 열 기회를 주는 것이다. 연필도 종이도 필요 없다. 내 의식은 사태 이전보다도 명료하다. 종이로 치면 십수 면을 족히 넘을 글을 머릿속에 다 담을 수 있을 정도다. 저간 고통으로 내 육신을 표백하고 그럼에도 생생한 의식을 간직했던 건 스스로 활자를 제 몸에 새길 수 있는 마법의 백지가 되기 위해 필연적으로 겪어야 했던 한 과정이었던 것일까? 간밤에 단독자가 한 말이 맞다. 동반자와 부산물이 이 세상에 존재했음을 글쓰기로 증명하는 것, 그것만이 내 역할이다. 상상 속에서 그는 그동안 겪은 일을 빠짐없이 전하고자 내게 뭘 써서 남겼을 테다. 편지의 형식은 적합하지 않다. 그는 내게 짧은 소설을 남겼을 것이다. 그는 출근할 필요 없는 내 직업을 부러워했고, 또한 내게 필요한 건 진실한 글이 아니라 적절히 기만적인 허구라는 것을 잘 알았다. 어쩌면 부산물도 내가 없는 새 글을 익혀 뭐라도 썼을 수도 있겠다. 내가 그 글들을 읽으려면 아무래도 그들이 있을 집을 방문해야 할 것이다. 잠깐만. 그들이 집에 남았다가 폭사했거나 익사했으리라는 설정도 그다지 명예로운 것 같지 않다. 망국의 유민에게 어울리면서 어느 방식보다도 명예로운 죽음은 역시 동반 자살이다. 나와 단독자가 실패했던 바로 그것 말이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글을 남기고 나보다 더 뛰어난 작가로서 자살을 맞이한다. 그게 둘의 선택이다. 나는 그 둘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동반자와 결혼하고 부산물을 아이로 맞아들여 한 가정을 꾸리고자 하는 가슴 벅찬 열망을 품고 귀로를 걸을 테다. 상상에서마저 내 육신은 지금처럼 만신창이다. 다른 몸을 떠올리기가 불가능하다. 단독자는 내 곁에 없다. 왜 아니겠는가? 이 상상에서 그는 설 자리가 없다. 나는 그를 평생 일면한 적 없는 듯 잊는다. 그 순간 내게 중요한 건 그가 아니다. 동반자와 부산물이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아들일지 상상 속의 내가 머릿속에 그려 본다. 평소의 일상에서 늦은 저녁에 귀가했을 때 그랬던 적처럼 나를 기다리다 까무룩 잠든 둘을,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자신을. 그러나 불현듯 잠든 그들의 심상에 죽음이 드리워질 것이다. 그 순간 집을 향해 서두르던 내 걸음이 더뎌진다. 나는 비관적인 내 상상력을 있는 힘껏 부정할 테나, 그럴수록 내심 그것이야말로 이 사태에 어울리는 결말임을 인정한다. 그러자 낙관은 더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시금 나는 걸음을 서두를 것이다. 이전과는 달리 두렵고 초조한 기색으로. 앞서 상정했듯 다행스럽게도 불난리와 물난리는 내가 살던 동네를 피해 갔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동네만 시간이 다르게 흘렀다. 나에게는 사흘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집에 고립된 그들에게는 더 긴 시간이, 몇 달, 어쩌면 수년이 흘렀다. 사태로부터 안전했던 대가로 그들은 식량도 식수도 보급받지 못하고 외부로부터 어떤 구원의 손길도 없이 단절된 채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도착했을 무렵에는 그곳 역시 폐허가, 요 며칠 내가 속했던 곳과는 다른 방식의 폐허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알던 그 동네는 이제 인적이 없고 나무와 잡풀도 모두 노랗게 시들어 있는 유령 도시가 되어 있다. 마치 나고 자랐던 고향 시골에 도착했는데 그 시절에서 전혀 발전하지 않고 노인들이 죽어 폐가들로 전락한 마을을 마주한 것처럼, 낯익던 모습 그대로 정지하여 사람의 온기를 잃은 채 낡아 가는 장소들을 지나 내가 살았던 다세대 주택이 선 경사로에 들어선다. 거기서 올려다본 창가에는 나를 기다리듯 두 인영이 서 있다. 그럼에도 재회의 기쁨은 없고 공포심이 가시지 않는다. 그들은 나를 보지 못했는지 창을 열지 않는다. 머뭇거리던 나는 이내 벽돌담을 돌아 공동 현관으로 들어간다. 현관문은 열려 있다. 집 안은 어지럽혀져 있다. 누가 주택을 돌며 식량을 찾아 뒤지고 간 모양이다. 안방 벽의 냉방기를 받치는 용도로 달린 빈 철제 까치발에 두 시신이 목매달려 있다. 그들이 누군지 나는 알아보지 못한다. 목이 빠질 것처럼 길어지고 사지를 축 늘어뜨린 그것들은 동반자와 부산물이라기에는 가죽과 뼈만 남았다. 그들은 자살했을까? 아니면 잔인하게도 남의 손으로 그 지경에 이른 걸까? 내가 아는 그들이기는 할까? 알아내야만 한다. 나는 그들이 남긴 기록을 발견할 테다. 그간 빨래를 못해 누렇게 바랜 침대에 수기로 작성한 종이 뭉치가 놓여 있다. 그걸 읽고 나서야 나는 목매단 그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동반자와 부산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테다. 구깃구깃한 종이에 그게 적혀 있을 것이다. 그렇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슬픔과 애도는 그걸 확인한 뒤부터다. 나는 침대에 앉아 종이 뭉치를 집어 들고, 최초의 독자가 되어 글을 읽기 시작한다. 그래, 단독자가 상기시킨 대로 〈그 목소리〉부터 출발하는 게 좋겠다. 여기까지는 나의 상상이나, 그다음부터는 남겨진 그들의 이야기다.

 

 

·

「어보쇼.」

방은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말할 수 없어서였다. 방에 건 말이 아니기도 했다. 그렇지만 방은 들을 수 있고, 볼 수도, 느낄 수도 있다. 소리가 내부에서 울리는 이상 들을 수 있고, 안과 밖을 마주한 모든 벽면이 방의 시야다. 그러므로 누가 방 안에 머무르는 한 비밀은 없다. 목소리의 주인은 휴대 전화기에 귀를 기울였으나 대답은 없었다. 그가 창을 열어 자기 것도 아닌 휴대 전화기를 내던져 버렸다. 이른 봄인데 창밖의 경사로에는 눈이 얕게 쌓였고, 급하게 피난길을 떠난 차들에 짓밟혀 지저분한 회색을 띠었다. 하늘은 검었다. 그런데도 방의 시선에는 정전이 발생한 동네가 훤히 보이고, 방 내부도 마찬가지로 모든 게 분간되었다. 마치 암막 휘장을 배경으로 한 무대 위에 동네가 고스란히 올려진 것같이.

그들은 안방에 있었다. 기실 방은 하나다. 오래전에 집주인이 세입자를 들이기 위해 불법적으로 개축했고, 속이 비어 두드리면 텅텅 소리가 나는 가벽을 세워 안방과 부엌, 화장실을 조성했다. 안방과 화장실 사이로 난 좁은 여분 공간에는 평소 소설가가 부엌을 등지고 구부정히 앉아 글에 전념하고는 했다. 그는 돌아오지 않았으나, 아무도 그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마치 탈의실처럼 개구부에 장막이 쳐졌다. 또한 아무도 모르겠지만, 안방 벽 중 하나에는 굳게 봉인된 문이 벽지 아래 감춰져 있다. 이웃이 사는 옆방으로 통하는 문인데, 원래는 1층 전체가 한 가구였으나 세입자를 한 가구라도 더 들이기 위해 그리된 것이었다. 어쨌든 숨겨진 문 너머는 방의 관할이 아니었다. 방은 자신이 속한 다세대 주택이 처음 지어질 때 1층 한편에 세워졌던 네 면의 벽으로 존재해 왔다. 그러니까 그 안에 가벽을 세워 공간을 나누더라도 방이라는 존재가 여럿으로 나뉘지는 않고 단지 세입자를 눈속임할 뿐이며, 벽지 아래 감춰진 문으로 이어진 옆방은 단절된 다른 존재였다. 방과 옆방이 공유한 한 벽면은 예외적으로 시야를 반절씩 나누어 가졌으므로 방의 시선이 전연 닿지 않았다. 방의 존재와 소관의 범주가 이렇게 명약관화해졌으므로 이제 다시 그들에게로 돌아가 보겠다.

그들은 안방으로 불리는, 즉 침실용으로 구분된 칸 안에 모여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탈영병일지도 몰랐다. 그는 저 나라의 어투로 몇 마디 말했지만, 그 뒤로는 과묵하다시피 했다. 그가 입은 저 나라 군복 역시 위장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는 너무도 생뚱맞게 이 나라 수도 외곽의 동네에 자리한 한 셋방에 군홧발로 들어와 소설가의 동반자와 부산물 앞에 서 있었고, 아무리 지금이 비상사태더라도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시가전도 없이 민간인과 마주한다는 건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그는 가냘픈 상반신에 묵직해 보이는 자동 소총을 가로 메고 있었는데, 그것만큼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그가 코앞까지 닥친 전란의 기운에 겁을 집어먹고 탈영하여 비밀스러운 경로를 통해 이 나라로 도망쳤으리라고 추측할 수도 있겠지만, 왜 하필 이 나라의 군대나 공안에 투항하지 않고 민간인의 집에 숨어들었는지 의문이었다. 그는 여기에 대해 인질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가 총을 소지하고 있으니만큼 상황의 주도권 역시 그에게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뭘 요구해야 할지 모르는 듯 가만히 서서 주위를 둘러보기만 했다.

방은 우중충하고 낡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세 들었다가 떠났고, 그들에게 바닥이 수도 없이 짓밟혔다. 그렇지만 방은 여태껏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고, 하물며 집주인의 소유도 아니다. 사람들은 방에 온기를 더하고, 자신이 전유한 공간이 마치 제 옷같이 편안하면서도 개성 있기를 바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가구를 배치했다. 어떻게든 앞선 세입자들이 때 묻힌 벽지를 가렸으며, 벽에 못을 박아 달력이나 모자, 가족사진 따위를 걸어 놓았다. 그때마다 방은 새로운 온도를 지니고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 누군가의 보금자리로서만 존재 의미를 지니는 듯했다. 실은 그렇지 않았다. 언제나 방은 자기 본연 그대로, 온통 캄캄하고, 삭막하고, 차갑고, 거칠고, 텅 비고 모든 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무엇으로도, 빛과 열과 공기로도 방을 채울 수 없었다. 세입자들이 채운 건 방이 아니라 벽과 벽 사이의 공간이었다. 마치 방이 다세대 주택 안의 다른 방들과 단절되었듯이, 그들은 방으로부터 격리되었다. 그들은 방의 진정한 면모를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방은 그들이 뭘 하는지 볼 수 있었다. 뭐라 말하는지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이 벽에 기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들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그저 사람들을 자주 안 만나서 우울해지는 거라고 치부했겠지만, 방에 오래 머물수록 그들은 네 면의 벽과 닮아 갔다. 고립되고, 인간으로서의 온기를 잃고, 사건의 가능성으로부터 멀어졌다. 그것은 순전히 방 때문이다. 방 안에 사람이 여럿이더라도 그 안에 머무를수록 그들은 삭막해지고 반목했다. 네 면의 벽이 그들의 시선이 지평선으로 향하는 걸 막았고, 안에 있는 사람들을 세상의 전부로 여기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가가 떠나고 싶어 한 대상은 그의 동반자와 부산물이 아니라 바로 방이었다. 만약 그가 방을 구성하는 네 면의 벽을 부수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들은 가족이 되었을 텐데. 탈영병은 그것을 느꼈을 것이다. 유독한 방의 기운을. 저 나라의 자기 집과 다름없는 방의 삭막함을. 그래서 잠시 입가에 비웃음을 지은 것일 터였다.

부산물은 가벽과 맞붙은 침대 끄트머리에 누워 자고 있었다. 가벽은 방 자신이 아니기에 맞닿은 그것의 온기를 느낄 수는 없었지만, 방은 그것을 볼 수는 있었다. 방은 그것을 늘 예의주시했다. 그것은 연약하지만, 하물며 방에 가장 오래 머무르는 존재지만 방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것은 죽어 갔다. 그것은 소설가가 오늘 오전에 집을 나선 뒤로 내내 잠만 잤다. 방은 그것을 온전히 알아볼 수 있다. 소설가와 동반자가 그것을 시각적으로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것과 달리 방은 그것의 불분명한 형태 속에 감춰진 형태를 명확히 알아볼 수 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아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때가 되면 그것은 스스로의 힘만으로 자기 자신을 알아볼 것이다. 죽음은 저만치로 미뤄질 것이다. 그리고 죽음 속에서 소설가와 동반자를 꺼내 올 것이다.

동반자는 창가에 서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창밖은 온통 거무튀튀하기만 한데. 다급하게 집으로 돌아온 뒤로 그는 내내 소설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불청객은 그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아니면 자신의 손님이 아니어서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망부석처럼 서서 밖에 나간 이를 기다리는지도 몰랐다.

정말로 소설가의 손님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저 나라의 군인이 자신의 셋방에 들이닥쳤다는 걸 나중에라도 그가 알게 된다면 진기한 기회를 놓쳤다며 안타까워할 테다. 그는 징집병 시절 국경의 초소에 틀어박혀 종일 철책 너머를 응시하면서 저 나라의 군인이 나타나기를 고대했다. 가시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나무를 죄다 베어 버려 잡풀만 무성하고 지뢰를 완벽히 제거하지 못한 남방한계선 구역에 한 무리의 군대나 한 명의 탈영병이 진입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기에 실탄이 장전된 총을 발사하거나 귀순을 유도할 일은 없었다. 2년여 간의 경비병 생활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무릇 행운이건만, 그는 언제나 자신에게 남들이 겪지 못한 사건이 일어나서 그것에 대해 생생히 쓸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일은 그가 아니라 동반자와 부산물에게 발생했고, 그는 여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쓸 수 없을 터였다. 하기는 늘 그랬다. 진정한 사건을 마주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그가 여태 쓴 글이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데 탈영병은 어떻게 잠긴 현관문을 열고 방 안으로 침입할 수 있었던 것일까?

셋은 각자의 자리를 그대로 지킨 채 대치 아닌 대치 중이었다. 시선도 마주치지 않는 그들은 마치 서로를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고, 그러니 각자가 뭘 요구하는지조차 모르는 성싶었다. 아마도 계속 이렇게 이야기를 끌고 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느니 네 면의 벽을 부수고 그들을 방에서부터 구출하는 게 나으리라. 진정한 이야기는 바깥에서부터 시작일 테니. 그때 탈영병에게서 적개심이 일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살인이 일어날 것같이 적막한 방이다. 그는 아무래도 화가 난 듯싶은데, 어쩌면 저 나라 사람인 자신에게 아무도 말을 안 걸고 따라서 아무런 이야기가 주어지지 않은 데 분개한 건지도 몰랐다. 이 나라 사람들은 저 나라 사람을 모르고, 그에게 주어진 물리적인 불행 말고는 다른 서사를 부여할 줄 모르기에 이는 당연하다. 어쩌면 그 자신도 자기가 겪은 불행밖에 모를 수도 있었다. 그에게 고난 외에 다른 이야기의 자유란 없었을 테니까. 그런 그가 왜 하필 이 나라 수도의 하고 많은 집 중에서 소설가의 방으로 들이닥쳤나? 그것은 저 나라에는 주어지지 않은 이야기의 자유가 이 나라의 소설가에게 있을 것으로 여겨져서인 건 아닌가. 그는 이야기를 요구하러 온 것일 수도 있었다.

그가 원하는 이야기란 무엇인가? 아무래도 모두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이야기는 저 나라에도 널렸다. 모두가 읽고 같은 감상을 되풀이해야 하는 강압적인 이야기들. 그가 원하는 건 한 사람만을 위한 이야기, 그러니까 자신만이 감동할 수 있는 이야기일 테다. 또한 이 나라 사람이 아니라 저 나라 사람인 그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가 자신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슬픈 이야기를 원할 거란 건 분명하다. 그리고 그 감동은 자신의 고통이 아닌 타인의 고통으로 인해야 할 것이다. 자기 자신은 현실에서 수없이 고통을 겪었으니 이 역시 정당한 요구다.

하지만 소설가는 자리에 없었다. 지금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은 그의 동반자뿐이었다. 방은 간직한 이야기 없이 텅 비었고, 부산물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분노한 탈영병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게 하려면 동반자가 뭐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물론 사람을 죽인다는 건, 사람이 죽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탈영병은 죽이고 죽는 모습을 이미 보았을 터였다. 사람은 끝없이 죽는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애초 태어난 적이 없기에 죽지도 못할 테다. 그러나 그는 이 역시 보았을 테다. 죽지 않은 대상을 말살하는 행위를 목도했을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이 나라 사람은 죽지 않는 것이 죽는 걸 본 적 없을 것이다. 그는 보았다. 그것은 몹시 추악하다. 사람은 필멸하는 자신으로부터 영원성을 분리해 이야기에 심어 놓는다. 저마다의 염원이 담긴 이야기를 검열하고 삭제한다는 것은 그가 꿈꾸던 영원성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말살하는 행위는 그 무엇보다도 추악한 죄악이다.

말할 것도 없이 탈영병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가 소설가를 찾아온 것인지, 나아가 어떤 정체불명의 이야기를 원하기는 하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살인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설령 누가 죽더라도 방은 침묵할 것이다. 부패하는 시체의 냄새를 맡고 찾아온 파리들이 알을 까고 천적 없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창마다 다닥다닥 달라붙더라도 방은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살인범이 누구인지도 가리키지 않을 것이다. 방 안에서의 죽음은 고독할 테다. 어쨌든 동반자는 더는 소설가를 기다릴 수 없었다. 그는 오지 않을 것이다. 방에서부터 탈출했으니, 더는 여기 올 이유가 없다.

동반자가 창가에서 돌아서서 탈영병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받기까지 그는 계속 서 있기만 했다. 그는 동반자의 시선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 시선을 받자, 자기도 모르게 눈을 돌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밖을 쳐다보았다. 창밖은 여전히 까맸다. 동반자는 이제 운을 떼려 하고 있었다. 그에게도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소설가는 그의 이야기에 무관심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어서였다. 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없어서였다. 그를 향한 상상력이 미천해서였다. 그렇지만 그는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누가 자신에게 요구만 한다면, 누구나 눈물을 흘릴 수 있고 또한 그를 전부 다 알고 이해한다고 여기게 되는 이야기를, 그러니까 그 자신이나 다름없는 이야기를 상대에게 들려줄 수 있었는데, 그는 소설가가 아니었고, 하필 같이 사는 사람이 소설가였기에, 그는 그 사실에 짓눌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그러하다 보니 자신에게는 사실 아무 이야기도 없다는 생각이, 그 말인즉 자신 또한 없다는 존재의 불안이 줄곧 그를 잠식했고,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에게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드디어 운을 뗄 수밖에 없는 사건이 주어졌다. 소설가가 창작의 고통에 괴로워하며 내심 꿈꾸던 바로 그 사건 말이다.

부산물은 여전히 잠을 자는 듯했다. 예전에 방은 그것에게 말을 건 적이 있다. 물론 방은 말할 수 없지만, 말하지 않더라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그것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방은 그에게 요구했다.

〈봐. 나를 봐. 똑바로 보라고. 나를 알아보겠어? 나는 너를 계속해서 봤고, 또한 알아봤어. 그런데 너는 내게 이르는 길을 알면서도 그 길을 트지 않는구나. 할 수 있다면 큰 소리로 널 호령했을 거야! 나머지는 무시해. 길을 터. 그 길을 걸어와! 그리고 나를 봐. 때가 됐어. 봐! 나야. 봐봐. 옛날 그대로지. 그렇지 않아?〉

어느새 깬 부산물은 안방의 열린 문 너머로 현관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속으로 수를 셌다. 방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나, 둘, 셋……〉

그러자 열려 있던 현관문이 철컥 닫혔다.

방은 어느 예언된 날에 분노한 사람들의 망치질로 자신이 부수어질 걸 알았다. 그날에는 완전하게 찬 보름달이 뜨고 세상의 모든 미물이 미쳐 날뛰며 자기네가 이룬 문명을 제 손으로 파괴할 것이다. 그날 이후로 방은 한때 집이 있었던 유적 터로 전락하여 훗날의 생존자가 그 잔해 속에서 괜찮은 벽돌을 골라내어 새로운 집을 짓고 자기만의 방을 이룰 네 면의 벽을 다시금 세우기를 고대할 것이다.

이윽고 동반자가 운을 떼기 시작했다.

 

 

‥

내가 살아 실재하는 사람임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나는 고등학교 기간제 사서 교사며, 소설로 쓸 것 없이 지극히 평범하다. X는 방과 후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평범한 개인이란 없고 몇 학년 몇 반 따위의 소속으로 인물을 소개하는 행위는 최악이라고 가르쳤다. 수업에서의 그는 열성적인 선동가 같다. 그가 쓸 가치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고 설령 그런 삶이 있다면 이보다 더 큰 불행은 없다고 아이들에게 단언하는 부분에서는 마치 내가 책망당한 듯 잠시 가슴이 철렁일 정도였다.

여태까지 내 인생에서는 쓸 만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행운이다. X가 쓴 소설들의 내용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그와 같은 소설가의 이야깃거리로 전락하는 셈이며, 이는 단연코 불행을 의미한다. 또 하나. 그가 소설가라는 직업을 빼면 아무것도 아니듯이 나 또한 교원 자격증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교사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에 대해 파헤치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소설가 X는 살아 실재하는 사람이다. 그는 부덕하게도 소설을 창구 삼아 자신을 익명의 가상 인물로 치환하는 시도를 지속했다. 삶과 소설이라는 이중의 서술로 혼선을 줌으로써 자기 행적을 허구의 영역으로 보전한 것이다. 제 죄를 남들 앞에서 추궁당하거나 애써 부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본인을 왜곡하여 전시하는 기행 속에서 자신보다 더 나은 자기가 될 수 있었다. 마치 내가 직분을 벗어나 그에 대해 생각하고 파헤치기로 마음먹었을 때 도리어 교사로서 더 숭고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전의 나는 쓸 것 없이 평범한 한 교사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또한 크게 다르지는 않다. 내 일상은 말할 게 없다. 나의 일상은 없다. 일상에 나는 없다. X에 대해 생각할 때만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이 내가 생겨난다. 그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는 동시에 나는 잠들 듯이 사라진다. 근간 내내 나는 없었다. 나는 있었으나 지금은 부재하는 폐가에 불과했다. 아무도 내 비어 있는 안을 들여다보지 않고 나는 계속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나그네가 밤중의 버려진 장소에 불을 밝히고 기거하는 순간 그곳이 보금자리로 변모하듯, 나 역시 누군가가 속에 머무르는 순간 비로소 폐가를 벗어나 집이 되고 자기 자신을 되찾을 테다. 그럼 나는 그 집의 진정한 안주인이 되어 손님을 극진히 대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검은 창밖을 지나치다 멈춰 선 소설가 X를 주시한다. 맨 위층의 후미진 끝에 자리하여 낡고 방치된 다락방 신세이던 도서실은 학생들이 반토막 난 최근에야 접근성을 위해 1층으로 옮겨 내려졌다. 실내는 내 키보다 큰 원목 책장으로 네 면의 벽 대부분이 틀어막히고 한구석의 대출대를 겸한 내 자리만이 창가가 부분적으로 드러나 바깥 교정과 면해 있다. 그렇게 모퉁이에 앉아 업무를 보는 동안 내 오른 얼굴은 맞은편 벽에 자리하여 복도로 통하는 유리문에, 왼 얼굴은 교정과 맞닿은 창가에 노출된다. 정신이 산란한 때에는 누가 양편 중 한 곳을 지나칠 때마다 마치 염탐이라도 당한 듯 황급히 돌아보기도 한다. 그러면 이미 거기에는 아무도 없기 마련이다. 한데 방과 후 수업이 있는 날 교정에 들어서는 X의 인기척에 새삼 내가 화들짝 돌아보면 그때마다 그는 절묘하게도 창가로 내다보이는 바로 그 위치에 멈춰 서서 목을 구부정히 내밀고 왼팔에 찬 손목시계를 내려다보고 있고는 했다. 자신이 늦지 않았는지를 확인하듯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유로 뜸을 들이듯이. 그가 방문할 때쯤이면 내가 신경이 날카로워져 주위를 황망히 두리번거린다는 사실을 아는 듯이. 〈하지만 왜?〉 유리창을 열고 밖에 선 그에게 따져 묻고 싶어도 창의 잠금장치가 책장 뒤에 깊숙이 숨겨져 있어 나는 그럴 수 없다. 오늘 그는 늘 한쪽 어깨에 가로 메고 다니는 때에 전 가죽 가방을 열어 괜히 내용물을 뒤적거리고 있다. 멈춘 시간이 재개되듯 모퉁이의 나는 다시 업무에 집중하고 교정의 그는 창가를 지나쳐 사라진다. 잠시 뒤 걸음이 유독 빠른 그가 금세 유리문을 밀어 열고서 안으로 발을 들이밀기 전에 먼저 꾸벅 인사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랜만에 수업하러 온 그를 맞이한다. 책임감 없는 그는 예고 없이 몇 주를 결근했다. 그는 추한 자다. 자기 추를 가리려는 시도들이 눈에 띈다. 그는 수줍은 남학생처럼 앞머리를 촘촘히 일자로 길러 눈썹까지 가렸고, 이 시국에 어디서 다듬는지 매번 그 길이를 유지했다. 그 때문에 그는 청소년 시절의 비사회적이고 미성숙한 부분을 여전히 간직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옷 취향을 종잡을 수 없이 매번 차림새가 크게 상이했고, 요즘 지천으로 널린 남의 유류품을 주워 입는지도 몰랐다. 그는 복식에 따라 태도가 판이하게 표변한다. 피로에 젖은 노동 계급이 되기도, 반항아처럼 껄렁하게 굴기도, 정신적 우월성에 젖은 귀족같이 표표해지기도 한다. 만일 벌거벗는다면 본모습이라는 게 존재할지 상상이 안 갈 정도다. 오늘 그는 검은 양복을 입었다. 자기보다 더 큰 어른의 옷을 입은 듯 소매와 바짓단의 통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크다.

나는 자리에 앉아 대출대 너머로 X가 수업하는 뒷모습을 지켜본다. 도서실은 변변한 교단이나 교탁도 없어, 그는 몇 안 되는 학생들과 열람용 원탁에 둘러앉아 무방비하게 굽은 목덜미를 내게 노출한다. 그의 목덜미에는 바코드처럼 굵기가 각기 다른 검은 세로줄 무늬 문신이 명함만 한 크기로 새겨져 있다. 거기에 판독기를 대면 얼마짜리 가치를 지닌 소설가인지가 나올 거라는 게 그의 단골 우스갯거리인데, 어쩌면 그 실없는 한마디를 위해 아무 의미 없는 선들을 피부에 영원히 새긴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우스갯소리 하는 걸 좋아한다. 제 글에서는 그렇지 않으면서. 수업에서의 그는 어린 학생들에게도 예의 바르고 재치가 넘치다가도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눈도 안 마주치고 말없이 이지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는 어떤 상대와도 오래 눈을 맞대지 않는다.

첫 만남 때는 정작 내가 그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깔끔한 차림을 한 내 또래를 마주하자 창피해졌다. 나는 추레했다. 밤새 할 일이 있었다.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에게 기억은 대개 현실에 실재하는 것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저 지난 머릿속 생각을 곱씹는 관념 행위에 불과하다. 집에서는 거의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한동안 도서실 이전으로 발생한 일거리가 산더미기는 했다. 도서실은 오로지 나 혼자다. 나는 도서실의 하나뿐인 사서이고 선생이고 이용자였다. 근래 내가 상사에게 애원하지 않았던가. 「나에게 아이들을 주세요. 다락방 신세를 벗어나게 해주세요.」 X는 상사가 데리고 온 강사다. 그를 인계하면서 상사가 내게 주의를 줬다. 「이제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 되는 거예요.」 X와의 첫 만남 뒤로 나는 차림새를 신경 쓰기 시작했다. 소설가보다 행색이 못해서야 되겠는가?

처음 봤을 때 나는 그 사람과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를 상상했으나 그게 다였다. 모든 상상은 끝까지 가능하다는 점에서 끔찍하다. 상상 자체는 내가 그에게 어떤 감정을 품었는지 증명하지 못한다. 단지 이방인에 대하여 원주민이 머릿속에서 벌이곤 하는 의례 같은 것이다. 내 마음속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다.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바깥에서, 그다음에는 마음속에서 일어났다. 어느 날 그는 한 손에는 나의 상사로부터 품삯으로 받은 쌀 한 봉지를, 다른 한 손에는 내가 처음 들어본 작가의 책을 들고 도서실로 들어왔다. 그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수업을 마쳤다. 그가 내 앞에 서서 잠시 미적거리며 〈당신, 요새 너무 야위었어요>라고 말하는 듯한 연민의 눈빛을 잠시 보냈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는 듯 웃었다. 「그 책 재밌나요?」 내 물음에 그는 한 손에 쥔 책을 가슴께로 들어 올려 물끄러미 내려보다가 시선을 나에게 맞추며 대답했다.

「사랑해요. 가슴 저리도록.」

아이들도 떠나자 도서실은 죽은 책처럼 생기 없어졌다. 나는 더는 할 일이 없었다. 최근 들어서는 이 동네의 누구든 아무 할 일이 없었다. 다들 하지 않아도 되지만 뭐라도 하는 것이었다. 학교를 운영하는 일은 더욱 그랬다.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는 막연한 짐작으로 사람들은 계속 출근했다. 학생들도 할 게 마땅하지 않아 등교하는 데 불과했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에게 아이들은 무척이나 간절한 존재였다. 아이들이 아직 학교에 남아 있어서 나는 출근했고, 아무도 등교하지 않는 날이 온다면 나는 그들의 집을 찾아갈 것이다. 집집이 문을 두드리다 못해 창을 깨서 안에 들어간들 아이가 없다면, 나는 죽을지도 모르겠다. 자살하지 않고서도 죽음에 이를 것 같다.

X가 들고 다녔던 책은 도서실에도 한 권 꽂혀 있었다. 소설가이니만큼 허튼 책을 읽지는 않으리라는 짐작이 들었다. 나는 그 책을 펼쳐 읽어 보았다. 깜짝 놀랐다. 그 소설책에는 그래서는 안 되는 것들이 적혀 있었다. 부도덕했다. 생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지 않았지만, 도리어 그렇기에 잔혹할 만치 부도덕했다. 작중에서 자아낸 허구의 세계가 결코 규범이나 양식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것들은 산산이 깨졌다. 이 책을 쓰고 아주 오래전에 죽은 이국의 소설가는 배덕이 있으려면 우선 도덕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성숙한 사회의 엄중한 합의라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상 인물들이 부덕을 저지를 때마다 소설 속 세계는 더 고통스럽게 신음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소설 속 사회와 제도는 놀라울 정도로 잘 작동했다. 법이, 처벌이, 치료 감호소와 교정 시설이 있었다. 그러나 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있기에, 또한 그들의 희생자가 있기에 정의는 바로 섰다고 할 수 없었다. 약하다는 것, 평범하다는 것이 조롱당하고 무참히 짓밟혔다. 어린이와 노약자는 보호받기는커녕 얻어맞거나 강간당하고 길이 들여지고 버림받았다. 근친끼리 상간하고 가족이 해체되었다. 물론 폭력의 주체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건 아니었다. 그들 또한 경제적으로 취약하거나 몰락한 중산층이었고, 폭력은 공평하게도 저 자신과 공모자들에게도 가해졌다. 본문에 의하면 그들은 기질적으로 그렇게 타고났다. 정상적인 사회 내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위인들이 아니었고, 자기들끼리마저도 상대가 자신을 어둠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는 증오와 복수심이 들끓어 올랐다. 그들에게 남은 끝은 죽임당하거나 자살하거나 시설에 격리 수용되어 마침내는 사형당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공명정대인가? 그들을 통해 세상에 악이 뿌리내렸고, 악한이 파멸된다고 해서 그것도 같이 퇴장할 성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 책의 서문에서 소설가는 자전적인 내용이라고 못 박아 놓았다. 소설가는 허구라는 명목으로 자신이 실제로 저지른 죄를 뉘우침 없이 전시하고서는 세상에 용서받았다. 〈이 유해한 책이 진정 예술이고 문학인가?〉 내 질문에 죽은 소설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나는 차가운 분노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 X가 태어났다. 나 또한 그때 내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그는 내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고 단지 내 안에 웅크려 기거했다. 그는 불청객이었다. 나는 그를 쫓아내거나 받아들여야 했다. 내쫓는 것보다 받아들이는 것이 더 쉬운 일일 터였다. 내가 오늘날을 기꺼이 체념하고 수용했듯이. 하지만 그를 수용하는 것은 지금을 잠자코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아니, 현재의 세상을 받아들이기도 벅차기에 지금의 나로서는 그를 위한 자리가 더는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내 심경의 변화를 단지 그가 그런 책을 읽고 사랑해서라고 설명하는 것은 내게도 비이성적으로 여겨진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를 잘 몰랐고, 그의 책을 읽어 보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그게 다다. 그의 책을 읽고 그를 더 알고 난 지금도 변함은 없다. 정확히는 〈가슴 저리도록〉 사랑한다는 것, 그가 고백하고 공인한 그 사실이 나를 뒤흔들었다. 나도 가슴 저리도록 사랑한다는 게 어떤 건지 잘 안다. 그건 스스로의 삶과 세상을 그 사랑의 잣대로 재조립하는 것, 나아가 자신과 타인을 바쳐서라도 그 사랑을 지켜야 함을 의미한다.

도서실의 서가에는 X가 쓴 책들도 꽂혀 있었다. 아이들만이 이용하는 도서실에 그런 책들이 왜 배가되었느냐면, 이유는 단순했다. 그의 책이 도서실에 없던 게 마음에 걸린 상사가 어디선가 구해 온 것이다. 나는 그의 책을 전부 읽었다. 남는 게 시간이었다. 그에게 다가서고 공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했다. 지난번 죽은 소설가의 책을 읽을 때와는 달리 나는 몰입하지 않고 건성으로 책장을 넘겼다. 필요한 내용을 재차 숙지하고, 필요하지 않은 내용에 현혹되지 않고 단호히 책장을 넘기는 것만이 내게 중요했다. 현대 소설가인 그는 윤리적인 문제를 교묘히 우회해 갔을 테고, 은연중에 나를 현혹하고 자신의 죄목을 정당화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허구 자체를 두고 그를 어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 뒤로 그리고 오늘 전까지 X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상사는 아마도 창작의 고통 때문일 거라며 애써 그를 편들었다. 오늘도 오지 않았다면 나는 조만간 어떻게든 그의 집을 수소문해 찾아갔을 것이다. 직접 그의 죽음을 확인했을 거다. 멀쩡하던 사람이 돌연히 행방불명되거나 변사체로 발견되는 일은 오늘날에 있어서 흔했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가 학생들을 향한 열의가 사라져 편의적으로 제 의무를 벗어던진 것이라고 짐작했다. 학교에 출근하던 자 중에 갑자기 무단으로 결근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많아도, 계속 결근하다가 출근한 사람은 없었다. 나는 체념해야 했다. 〈정말? 이리도 쉽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생각해야 했다. 이유를 알아야 했다.

X가 학교에서 받는 품삯이 없다면 생존할 수 없다는 건 확실했다. 그가 좀 더 많은 품삯을 보장하는 다른 일거리를 찾았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에게도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고 내가 유추한 바로는 그는 혼자였다. 거기다 이 시국에 소설가인 샌님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품삯의 문제가 아닐 가능성도 있었다. 내가 그 책을 찾아 읽고 자신을 향한 시선이 달라지리라는 걸 예측하지 않았을까? 그런 책을 읽는 사람은 자기의 민낯이 드러날 가능성이 발생했다고 판단한 순간 과민할 정도로 반응할 수 있었다. 아, 그건 그의 관점이 아니라 한낱 사서 교사의 관점에서 나온 생각이었다. 평소 내가 읽는 책이 바로 나 자신이라고 되뇌어 오지 않았던가.

나는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X가 오지 않던 어느 날부터 나는 퇴근하지 않고 학교 도서실에서 머무르기 시작했다. 오늘이 며칠인지 세는 걸 포기한 지 오래였다. 날짜라는 개념은 진작부터 무용했다. 어제든 내일이든 오늘과 다른 게 없었다. 날씨도 늘 똑같았다. 눈이나 비도 내리지 않고 사태가 시작된 초봄에서 모든 게 정지했다. 그런데도 낮과 밤이 있었고, 그 차이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지만, 어쨌거나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하루에 한 번, 학교에 아무도 남지 않은 밤이면 나는 생쌀을 조금씩 씹어 먹으며 X를 생각했다. 암중에 잠긴 내 자리에 앉아 검은 창밖을 멀거니 보다 보면 멀리서 횃불을 든 무리가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그들은 폭도일 수도, 반대로 자경단일 수도 있었고, 둘 다일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었다. 그들이 학교 쪽으로 오는 일은 없었다. 이 시국에 학교가 정상적으로 운영된다고 생각할 리가 없을뿐더러, 안다 한들 그들이 원하는 게 여기에 있다고 여기지는 않을 터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되도록 밤길에 그들을 마주치지 않는 게 좋았고, 그게 내가 학교에 머무르게 된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X가 언제 학교에 방문할지 모른다는 기대였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학생들도 없는 야심한 밤에 그가 학교를 방문한다는 건, 게다가 내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나를 보러 온다는 건, 무엇보다도 하필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간절히 희원했다. 내가 그를 이렇게 염원하듯이 그 또한 나에게 그렇기를 바랐다. 물론 그와 나 사이에는 책 한 권 외에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그와 나 사이에 다른 무엇을 추가하고 싶은 마음이 일절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른 건 아무 관심도 없었다. 바깥에 폭도가 돌아다니더라도 내 관할이 아니었다. 내 소관은 오로지 교내 도서실에 한정되었고, 강사로 초빙된 X 또한 내 수중에 있어야 했다. 제도와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지금 그가 아이들을 가르치기는 섣부르고 위험하다는 게, 사서 교사로서의 직분을 벗어나 그를 검증해야 한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는 영리하게도 내 손에서 벗어났다. 초장부터 계획이 어그러졌다. 만일 그가 학교를 빠지지 않았다면 나는 퇴근길을 걷는 그를 뒤쫓았을 것이다. 그의 책을 읽었으니 그다음에는 그의 일상을 추적해야 했다. 그리하여 그가 꼼짝할 수 없는 증거를 들이밀며 자백을 유도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비겁한 그가 자신에게 내걸린 혐의를 부인할 수도 있으니까.

아무것도 없는 밤이 날마다 찾아와 내게 자신을 응시하라고 요구했다. 그렇지만 어둠 속이란 게 으레 그렇듯 나는 아무 시선도 시야도 가지지 않았다. 눈을 뜨든, 감든 아무것도 없는 암중이었다. 나는 갈수록 추레해졌다. 매일 같은 옷을 입었고, 아이들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X가 다시 나타나 지금과 같은 삶 또한 이야기로 쓸 수 있다는 감언이설로 꾀지 않는 이상 아이들이 도서실로 자진해서 방문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삶을 뺏겼는데 어떻게?〉 우리는 우리뿐이었다. 허상을 좇을 게 아니라 우리를 감싸안아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곤경을 헤쳐 나갈 수 없었다. 우리 자신에서 희망을 찾아야 했고, X는 우리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찾아오지 않는 이상 사서 교사로서 나는 더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가 한 책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기 전까지 한동안 아무것도 읽지 않았다. 읽을 때마다 책이 내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상기시켜서였다. 그런데 그 책은 달랐다. 그 책은 역설적이게도 자기 본문에 없는 사랑과 희망 그리고 정의가 내게 남아 있다고 알려 줬다. 나는 분노할 수 있었다. 성난 마음을 달래며 초조하게 그를 기다릴 수 있었다. 〈하루만 더. 몇 날만 더. 오늘이 지나면 상사에게 X의 소재지를 묻는 거야.〉 그렇게 두 손으로 헤아릴 수 없는 날들이 지나갔다.

그리고 오늘 그는 여기, 도서실 안에 있다. 오늘 그는 우스갯소리를 하지 않는다. 전보다 야윈 듯한데, 사실 요새 그렇지 않은 사람이 없다. 언제나처럼 그는 깔끔하다. 천변에 고인 더러운 물을 길어 와 씻은 듯 희미하게 물비린내가 났고, 찬물로 면도해서인지 아래턱에 생채기가 있다. 그는 상복같이 칙칙한 옷차림에 맞춰 수업에서도 말을 아끼고 장중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는 수업을 진행한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고 싶어 애가 탄다. 막상 그가 오니 도리어 인내심이 바닥난 듯하다. 나는 그가 무슨 말로 아이들을 현혹하는지 안간힘을 다해 귀 기울이지만 조바심 때문에 아무 말도 알아듣지 못한다. 모퉁이 자리에 앉은 채로 탈진한 나는 수업 말미에야 겨우 그가 내는 마지막 숙제를 알아듣는다. 〈마지막이라니?> 그는 자신에게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그는 아무도 읽지 않을지도 모르는 글을 써오라고 한다. 주제도 소재도 형식도 자유다. 겪은 일이어도 상관없고 허구여도 좋다. 그러나 누군가가 읽을 거라고 염두해서는 안 된다. 생전에 누가 읽으리라는 희망을 포기하고 써야 한다. 〈그건 유서가 아니던가? 어떻게 아이들에게?〉 한데 아이들은 잘 알아들은 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학교에서 선생이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수긍해야 한다고 교육받아서일 테다.

아이들은 작별 인사 없이 결연하게 도서실을 떠난다. 이제 그들은 여기에 오지 않을 것이다. X가 제멋대로 수업을 끝냈으니, 여기에 올 마지막 동기가 사라졌다. 그들은 학교에도 오지 않고 집에서 마지막 글을 작성하느라 남은 생애를 보낼 것이다. 그가 다 망쳤다. 그는 거의 검게 삭아 가는 고동색 가죽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고는 내 속도 모른 채 마지막 인사를 건네려는지 모퉁이로 다가온다. 그가 내 앞에 선다. 나는 딴청도 부리지 못하고 꼼짝없이 그를 맞이한다. 그는 인사를 건네지 않고, 나는 감히 그를 올려다보지 못한다. 그가 한 손으로 가방의 덮개를 꽉 붙든 게 보인다. 왜인지 그도 어쩔 줄 모르는 모양새다. 그가 머뭇머뭇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나는 용기를 잃는다. 이성을 잃고 화내지 않고서는 그를 붙들 방법을 몰라서다.

「당신은 여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이만 떠나려고요.」

그의 말에 나는 아무 대답하지 못한다.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어쨌든 이제 여기를 나간다는 것이고, 앞으로는 오지 않겠다는 거 아닌가?> 막아야 한다. 〈어떻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리문 쪽으로 간다. 그러고는 간신히 말한다. 「도와줘요.」 나는 문 옆의 내 키보다 크고 책으로 가득 찬 원목 책장을 가리킨다. 그가 순순히 온다. 나는 책장을 밀어서 꺼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반문하지 않는다. 내가 책장 왼편에 서고 그가 문가 편에 선다. 함께 끌어당기지만 실상 나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가 얼굴을 붉혀 가며 차츰차츰 책장을 벽에서 떼놓는다. 어느 정도 틈을 벌린 그가 벽 사이로 들어가 온몸으로 밂으로써 책장이 벽과 수직을 이룬다. 그러고 나서 그가 허리를 숙인 채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반대편의 내가 책장으로 달려들어 있는 힘을 다해 그가 선 쪽으로 밀어 넘어뜨린다.

실패할 거로 생각했다. 내가 민 힘은 충분하지 못했고, 그렇다 보니 육중한 책장이 뒤로 서서히 기울어지다 마침내 무게가 쏠려 가속이 붙기까지 수 초가 걸렸으며, X가 빠져나갈 시간은 충분했다. 애초에 실패할 줄 알면서도 그저 발버둥 친 데 불과했다. 그가 내 손아귀를 이리도 간단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그냥 지켜보기에 성이 난 것이다. 하물며 아무것도 속단할 수 없는 현 사정에서 그를 그런 식으로 붙들면 나는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할 터였다. 그만큼 나는 절박했다. 책장이 기우뚱거리며 그에게로 넘어가는 사이, 나는 보았다. 책장과 벽 사이로 얼굴을 내민 그가 나를 바라보는 것을. 나를 이해한다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는 듯한 그 눈빛을. 곧이어 천둥 같은 굉음이 나를 몸서리치게 한다. 그는 책장 등에 허벅지와 허리가 깔려 엎어진다. 짐승 같은 외마디 비명을 지른 뒤 신음하고 헐떡거린다. 그는 빠져나오지 못한다. 허리를 다친 모양이다. 아니면 그간 영양실조에 시달린 나머지 금세 탈진했거나, 곤경에서 빠져나올 의지가 빈약한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여기서 떠날 수 없다. 나 또한. 안에서 문을 당겨야 하는데, 문가에 쓰러진 책장 때문에 그럴 수 없다.

「내 상사가 당신을 아끼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알아요? 당신이 쓴 인기 없는 책들은 원래 여기에 꽂혀 있지 않았어요. 당신이 오지 않았으면 도서실은 무결했을 거고, 그럼 지금과 같은 불상사도 없었다고요.」

나는 X가 깔린 책장 주변을 불안스레 돌아다니면서 보이지 않는 배심원석을 향해 주절거린다. 고통에 잠긴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다. 그는 돌에 맞은 개구리처럼 두 팔을 뻗은 채 엎어져 붉게 상기되고 예의 바코드가 새겨진 목덜미를 내게 내보이며 바닥에 코를 박고 있다. 그 앞에 내가 쭈그려 앉아 오른손으로 그의 얼굴을 위로 들어 올린다. 나는 왼손으로 그의 뺨을 찰싹찰싹 때린다. 「정신 차려요. 당신은 내 말에 대답해야 해요. 당신은 누가 말을 걸고 여기서 나가자고 하면 거절하지 못하나요? 당신 책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어요.」 그가 간신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줄 알았어요!」 나는 태연스레 대답하지만 속으로는 낭패감에 어쩔 줄 모른다. 이럴 필요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내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해요. 그러니 나는 추후 마땅히 벌을 받을 거고, 이제부터는 당신을 어떻게든 살리겠어요. 하지만 책장에서 빠져나오는 건 허락하지 못해요. 그건 언젠가 당신이 받아야 했을 벌이니까. 응당 소설가에게 어울리는 형벌 아닌가요?」 그는 차차 파리해지는 낯으로 희미하게 미소 짓는다.

실내에 어둠이 차츰차츰 드리워진다. 나는 아껴 두던 양초와 성냥을 꺼내 불을 밝힌다. 바닥에 놓인 양초 덕분에 X의 낯은 따듯한 색을 되찾는다. 나는 쌀을 한 줌 꺼내 와 그의 입에 들이댄다. 「먹어요.」 그가 고개를 젓는다. 「지금 상황에서도 밥투정이나 한다니. 창피한 줄 알아요.」 나는 쌀을 그의 얼굴에 내던지고 소리친다. 그러고는 식수가 담긴 병을 가져와 그의 입가에 대고 흘려보낸다. 그가 목을 축이다 기침하는 동안 내가 말한다. 「당신을 죽게 두지 않겠다고 했잖아요. 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에요.」 그가 잠긴 목소리로 대답한다. 「고마워요.」 그 말에 나는 기쁨이 인다. 그가 드디어 입을 연 것이다.

나는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묻는다. 일전에 들고 다녔던 그 책과 그걸 쓴 소설가를 좋아하느냐고.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쳐들고 순순히 그렇다고 말한다. 「당신의 소설에는 알면 안 되는 비밀이 있나요?」 「네.」 「그걸 알게 되면 어떻게 되죠?」 「내가 끝장이 나겠죠.」 「그런데도 그걸 쓴 이유는?」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그의 뺨에 촛농을 흘려 떨어뜨린다. 「내가 밝혀내려는 게 그거예요!」 그가 이를 악물고 치욕을 참듯 비명을 삼킨다. 그가 헐떡이며 항변한다. 「내 소설은 당신 이전에 이미 나를 통해 검열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남겨진 것을 당신이 또 한 번 거른다면, 남는 건 무엇이죠?」 「당신이요.」 내가 대답한다. 「모든 허위를 뺀 당신.」 내가 다시 묻기 시작한다. 「왜 당신은 한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죠?」 「글을 쓰느라.」 그 말에 내가 비웃는다. 「창작의 고통 말이군요.」 「내 마음을 읽는 건가요? 그렇다면……」 나는 그의 말을 끊는다. 「우리 사이에 마음은 없어요. 나도 당신도. 지금 이 상황 외에 우리에게 주어진 다른 내용과 맥락은 없어요. 단지 규범과 양식만 있을 뿐이에요. 그게 우릴 이어 주고 지금으로 이끈 거예요.」 내 말에 그는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다. 아니면 무거운 책장에 깔려서인지도, 편히 글을 쓸 때는 몰랐던 생의 중량감을 비로소 체감해서인지도 모른다.

그는 나를 향해 쳐든 고개를 마치 깜박 졸 듯 자꾸만 떨구고, 그때마다 내가 강압적으로 다그친다.

「더. 더 말해 줘요. 내가 묻는 것들은 당신 책에 적힌 데 의거하는 거예요. 나는 소설을 잘 모르고, 더군다나 책을 쓴 당사자보다는 말할 것도 없죠. 지금 내 행동들이 평범하지 않다는 건 인정해요. 출발이 잘못됐어요. 그렇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어떡해야 할지 몰랐어요. 지금 같은 사태에서는 더더욱 그래요. 그러니 당신은 내 절박함을 이해해야 해요.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쓰지 않았다면 내가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리라는 걸 인정해야 해요. 사실 나는 허구와 추문에 관심 없어요. 내가 묻는 건 사실 여부예요. 깔려 죽지 않으려면 당신 또한 절박한 심정으로 진솔히 내게 털어놔야 해요.」

X가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 손에 들린 인형처럼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학생들에게 욕정을 잠시라도 품은 적이 있냐고 나는 묻는다. 그는 자신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가 이내 항복하여 끄덕인다. 돈을 주고 상대를 산 적이 있느냐고 내가 묻는다. 「그만한 돈이 내 수중에 있었다면.」 「아, 그렇다면 이미 저지른 거나 마찬가지예요!」 나는 승기를 잡은 듯 기세등등해진다. 「당신 같은 작자는 틀림없이…… 이혼했나요?」 「네.」 「당신의 유책인가요?」 「제 생각에는요.」 「당신은 병자인가요?」 「네.」 「다른 누군가에게 전염시킬 수도 있는 건가요? 「그럴지도요…….」 「사람을 때린 적 있나요?」 「네.」 「그자를 회복 불능으로, 그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지는 않았나요?」 「뭐든 완벽히 복구되는 건 아무것도……」 「날 가르치려 들지 말아요. 남의 사생활이나 말, 글을 훔쳐 쓴 적도 있어요?」 「물론이죠.」 「이 얘기도 쓸 수만 있다면 쓸 거예요?」 「그래요.」 「당신은 혐오스러워요. 온통 자기 생각뿐이군요. 그런데도 순수하게 자기 자신을 통해서만 글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에요.」 나는 그가 보지 못하는 그의 등 위를 가리킨다. 「당신이 본받은 책들에 깔린 기분이 어떤가요? 당신이 계승한 고전 말이에요. 당신은 이것들이 얼마나 오래전의 글인지 모르나요? 그런데도 당신은 답습하고, 그 시절의 이분법을 아직도 무분별하게 수용하고 있어요. 문학은 그때로부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당신은 아주 짧은 생을 살며, 전근대가 아니라 현대에 태어난 인간이라고요. 그런데 왜 자신이 본 적도 없는 시대와 다를 바가 없는 글을 쓴 건가요?」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말로 꺼내진 대부분의 혐의는 이미 인정되었다. 허망할 정도로 쉽게. 책장에 깔린 그는 지극히 수동적이다. 이전에 내게 먼저 말을 걸고 아이들을 선동하던 적극적인 모습과는 달리, 답답할 정도로 자신의 곤경에 갇혀 대답 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마치 유괴범이 무슨 말을 하든 겁에 질려 연신 고개만 끄덕이는 인질처럼 구는 데 화가 날 지경이다. 나는 분이 풀리지 않아 그에게 〈이다음에는 당신 책들을 가져와 대질 신문할 테니 마음을 비우고 순복하는 게 좋을 거〉라고 윽박지른다. 또한 내 머릿속에는 아직 채 심문하지 못한 기나긴 목록이 있다. 몇 날 며칠간 혐의를 다투어도 시간은 충분하지 못한데, 보아하니 그는 그때까지 버티지 못하고 자신을 놓아 버릴 것 같다. 그는 고갈되어 보인다. 어쩌면 책에 모든 걸 쏟아붓고 그 자신은 빈껍데기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공동체를 미워하고, 파괴하고 싶나요? 세상이 망하기를 바란 적이 있나요? 어때요, 지금 그렇게 되어서 행복하냐고요.」

「다 알잖아요…….」

「무엇을요?」

그는 나를 지금으로 내몬 그 말을, 자신을 한순간에 죄인으로 전락시킨 그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가슴 저리도록 사랑한다는 것을요…….」

「나는 당신이 죽은 작가의 책에 품는 감정을 의심하지 않고, 그 책이 품은 죄를 당신에게 덮어씌울 만큼 어리석지는 않아요. 무엇보다도 그 사랑은 다른 누구나 무엇도 아닌 아이들이 받아야 했어요. 또한 나 자신이 지금 부재하는 사법 기관의 역할을 자처해서 당신에게 벌을 줄 마음도 없어요. 그건 이치에 어긋나니까요. 나는 자비로운 시민으로서 당신에게 숙제를 주려고 해요. 이전의 글은 모두 불태워 버려요. 오늘부터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글을 쓰세요. 그리고 희망을 품고 다가올 미래를 쓰세요. 어떤 기만 없이, 누구도 아닌 오로지 당신 자신에게서 우러나오는 진실로요. 알겠어요? 당신은 정의에 순복해야 해요. 내가 곁에서 계속 감시할 거예요. 내 말 똑똑히 알아듣겠냐고요.」

그러나 그는 이미 기절했다.

그러자 나는 김이 새버리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분해진다. 그가 소설가로서 진 무거운 책무로부터 자유로워지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나는 허탈감에 그가 깔린 책장에서 책들을 꺼내 비어 있는 바닥으로 내팽개치기 시작한다. 책장이 비자 두 손으로 내 허벅지께까지 겨우 들어 올려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 다음, 등에 지고 끙끙대며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운다. 책장을 도로 세우는 데 온 힘을 다 써버린 나는 X 옆에 드러누워 바보같이 울먹거린다.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된 걸까?〉 곧 진정이 된 나는 그를 똑바로 눕히고, 어깨에 걸린 때 묻은 가죽 가방을 벗겨 낸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를 취한다. 그러고는 상한 음식을 황급히 뱉어 내듯 그를 바닥에 내팽개친다. 내가 그를 탐닉하던 중 그가 술에 취한 듯한 목소리로 〈나는 내가 쓴 책 자신, 다만 책은 내가 아닌……〉라고 웅얼거렸지만 더는 그런 얘기는 질색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불필요한 고통 없이 효과적으로 자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그러나 나 같은 선생에게서 그런 기발한 방법이 떠오를 리가 만무했다. 할 게 없어진 나는 그의 뒷덜미를 붙안고 모퉁이의 대출대로 질질 끌어낸다. 무선 판독기에 전지를 끼우고 켜서 그의 목덜미를 찍어 보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그럴 줄 알았어! ……하지만 정말로?〉 그의 기만에 넘어간 나에게 걷잡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는 힘없이 바닥에 축 늘어진 그를 분풀이로 걷어찬다. 마지막으로 그의 가방을 뒤적이다가 수기로 작성한 종이 몇 장을 발견한다. 나는 촉광에 비춰 그것을 읽기 시작한다. 여기서 그대로 머무를지, 아니면 이곳 도서실을 떠날지는 그다음에 결정할 문제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가 남긴 마지막 숙제를 불태우고 말겠지. 방화, 그것 참 좋은 발상이다.

 

 

∴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이는 부모가 없고, 이름이 없다. 아이에게는 지금보다 더 어릴 적의 기억이 부재한다. 아이는 나기로부터 소진된 인간인 듯했고, 다만 가망 없는 백치는 아니다. 단지 아이에게 주어진 것이 얼마 없었을 뿐이다. 아이가 사는 세상의 사람들은 제 머리 위를 올려다보는 일이 없다. 예전의 하늘에는 그런 게 있었다는데 지금은 태양도, 구름도, 별도, 달도 모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본 적이 없으므로 그런 게 있었다는 말을 들어도 이해할 요량이 없다. 아이가 없던 옛날에는 사람이 많이 죽었고, 거의가 늙고 아파서, 혹은 죽이거나 자살해서였단다. 아이는 죽음이 무언지 모른다. 사람들은 정도 이상으로 늙거나 아파도 그 현상을 그대로 간직하며 계속 살아갔고, 그렇지 않으면 실종되었다. 앞으로도 죽음이 없는 한 아이는 삶이라는 개념 또한 이해하지 못할 터였다. 그것은 기억나지 않는 예전에 주어진 뒤로 영원히 앗아지지 않아 아무 의미도 지니지 않을 테기 때문이다. 낮도 없고, 밤도 없다. 계절이 순환하지 않는다. 아이가 사는 세상을 둘러싼 바위산 너머는 망망대해뿐이라고 한다. 노인들은 아이에게 세상이 지금 같기 전에 슬픔의 물결이 세계를 잠식할 거라 예언한 자가 있었다고 알려 줬다. 그래서 바위산 넘어 세상의 끝은 슬픔의 바다라고 불렸다. 아이는 자신이 모르는 슬픔이라는 감정이 바다와 같은 거로 이해하려 했으나 정작 본 적이 없으니 바다 또한 무언지 모른다. 아이가 체감하지 못하고 머리로만 아는 건 이렇다. 슬픔과 바다가 모두 빠져 죽을 정도로 위험한 깊이를 지녔다는 것. 죽는다는 건 지금 자신이라는 현재의 존재감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 이처럼 과거에 대한 노인들의 증언은 아이에게는 요해할 수 없는 신화와 전설의 영역일 뿐이다. 왜 지금은 그렇고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지 아이는 모른다. 예전에는 이북에 한 민족이었지만 적국이던 저 나라가 있었다는데 아이가 왜 저 나라는 물에 잠겼고, 이곳은 왜 그렇지 않으냐고 물어도 신통한 대답을 들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 세상에 아이가 자기 하나뿐인지, 왜 자신은 어른으로 자라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는 새로 태어나는 아이도 없고, 그에 앞서 성애도, 사랑과 연인 관계도 없다. 혼인이 없고, 가족이 없다. 학교도, 친구도 없다. 모두 뿔뿔이 흩어져 혼자 산다. 만남이 없으니 이별도 없다. 그러나 광장이 있다. 광장은 거대한 지름을 가진 야트막한 원형 구덩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갈 길을 걷다가 움푹 꺼진 광장으로 뛰어내린 다음 상대를 마주치면 걸음도 멈추지 않고 통성명도 없이 필요한 정보를 암구호처럼 주고받은 뒤 서둘러 자리를 뜬다. 기실 그들은 갈 길이 없고, 남에게서 알고자 하는 것도 없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음에도 그렇게 한다. 아이는 광장에 산다. 집이 없고 천애 고아인 탓이다. 아이는 궁금증이 생기면 바쁘게 광장을 가로지르는 사람을 쫓아다니며 무엇이든 묻는데 상대는 대개 〈안 믿어〉라든지 〈나도 너 같은 때가 있었지〉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만 하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충분한 앎을 사람들에게서 얻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는 제 무지를 종종 상상으로 갈음하고는 한다. 아이의 상상은 아이답게도 일견 순수한 면이 있다. 상상과 현실이 아이에게 같은 무게를 지닌다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이 역시 아이가 사는 세상의 모두가 공유하는 한 일면일 따름이다. 거짓은 없다. 그러므로 참도 없다. 사람들은 지금의 세상을 〈꿈속에서 사는 것 같다〉라고 표현하는데, 아이는 꿈을 꾼 적이 없으니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는 상상한다. 텅 빈 하늘에 상상의 세계를 세운다. 머리 위 하늘에는 고가가 있다. 고가는 하늘을 모두 뒤덮어 지상에 응달을 드리웠고, 그래서 지상의 사람들은 컴컴한 하늘 위에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지상으로부터 은폐된 고가는 정작 수정같이 영롱하고 투명한 광물로 이루어졌으며, 그곳은 아이가 보지 못하는 해와 달과 별에서 발하는 빛을 반사하여 매일 반짝인다. 고가는 일종의 도시다. 거기에도 사람들이 있다. 고가인은 중력으로부터 자유롭다. 지상의 사람들이 산으로 둘러싸인 좁은 분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데 반해 그들은 열려 있는 하늘을 통해 어디로든 갈 수 있다. 그들은 또한 고가의 투명한 수정 지반을 통해 저 아래를 내려다볼 수도 있다. 저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지상은 아이가 아는 잿빛 대지가 아니라 수많은 천연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는 지상의 사람들이 실종되었을 때 이르게 되는 곳이 바로 고가라고 믿는다. 고가인은 자신이 왜 실종되었는지 연유를 망각한 채 자기들이 떠난 지상을 그리워한다. 그들 눈에 비친 지상은 아이가 듣기만 하고 알지 못하던 시절의 찬란한 모습을 지니고 있기에 그들은 향수에 젖지 않을 수 없다. 실상 그들은 겪어 본 적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향수병자들이다. 그들이 상상 속의 존재인 것처럼, 그들이 그리워하는 세상 역시 있었던 적이 없다. 아이 또한 그런 점에서 자신이 겪어 보지 못한 시대를 향한 향수를 지녔다. 겪지 못하면 가늠도 할 수 없기에 도리어 향수는 더욱 커졌다. 날 적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자가 자유를 의식하고 그리워하듯 아이는 옛 시대를 사무치도록 상상했다. 달리 할 것이 없기도 했다. 아이가 없던 옛날에는 해와 달의 위상에 따라 날을 나누었다고 한다. 아이가 있는 지금은 어제도 내일도 없는 단지 매상 같은 오늘이다. 아이 역시 실종되지 않고 한결같이 지상 위에 존재했으며, 그게 존재의 유일한 역할인 성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매우 지루한 생활을 이어 간 건 아니다. 외려 아이 덕에 세상이 지루하지 않게 굴러갔다. 아이는 광장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끈질기고도 상냥하게 말을 걸었고, 그러지 않았다면 그들은 이야기할 기회가 현격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아이는 종종 광장을 벗어나 산책했다. 노지에서 잠들거나 방황하는 노인들을 광장으로 데려다주거나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도 아이의 역할이었다. 아이가 없었으면 이 세상에서 실종되는 이들은 지금보다 배로 늘었을 테다. 아이는 분지를 둘러싼 바위 산맥을 오르기도 했다. 산은 사람들이 입에 언급하기도 두려워하고 감히 다가설 엄두도 내지 못하는 금기의 영역이었으나, 아이는 괘념치 않았다. 아이는 벌거벗은 산자락에 얕게 파묻힌 과거의 유물들을 손으로 공들여 파내서 그것들의 용도가 원래는 무엇이었는지, 어째서 인적 없는 이곳에 퇴적되었는지 곰곰이 궁리하고 여러 가설을 세워 보고는 했다. 아이에게 가장 유력한 가설은 원래는 지금 세상과 붙어 있던 문명이 산맥의 융기로 분리되면서 남긴 유물이라는 것이었다. 그것들이 자기가 사는 곳에서도 사용된 인공물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는데, 이곳의 사람들은 도구를 거의 만들거나 사용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모두가 평등하게 빈자이자 광인이고, 그들은 길 위에서 잠들고 먹지도 않고 내내 좁은 땅을 배회했으니까. 아이는 산척에 올라 짙고 부연 안개가 껴서 그 아래 망망대해가 있음을 전연 짐작할 수 없는 풍경을 내다보기도 했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음에 이른다는 걸 아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아이의 가설대로 이곳과는 다른 문명이 산 너머에 존재하는 건 아닐까? 그곳에 아이의 부모가 있고 사실 자신도 거기서 태어난 건 아닐까? 아이는 혹시나 존재할지도 모를 부모를 만나고 싶었다. 살아 있는 게 당연한 환경에 속한 아이는 그들이 이미 죽었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자신과 같은 형질을 지닌 그들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지, 그들 또한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할지 궁금했다. 물론 아이의 이러한 욕구와 궁금증은 가족애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아이는 가족이 어떤 의미와 무게를 지니는지 모른다. 아이에게 있어 모든 것은 단지 앎, 그러니까 자명성의 영역이다. 언젠가 지금 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안다고 판단하게 된다면 아이는 산 정상으로 올라 가파른 벼랑 아래로 뛰어내릴지도 몰랐다. 아마 아이는 평범하지 않다. 아이가 사는 세상의 다른 사람들을 기준으로 한다면 말이다. 그들은 오늘날 이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고, 마치 몽유병자들처럼 제 머릿속 심상을 손아귀에 쥐어 내기 위해 깊이 잠든 듯한 몸을 움직여 배회한다. 반면 옛날에 대한 아무런 기억이 없는 아이는 때 묻지 않고 순수하다. 하물며 이곳에서는 생존을 향한 염려도 없고 서로 속이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죄다 겉과 속이 같은 폐인이다. 희망 없이 늙어 가는 그들은 아이에게 아무런 해도 영향도 끼치지도 않는다. 아이는 그들을 닮지 않았다. 또한 아이는 그들과는 다르게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아이는 자신과 다른 존재를 감지할 수 있다. 그래서 아이가 자기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애먼 장소에 널브러진 노인들을 찾아내 말을 걸 수 있었던 거다. 멀지 않은 곳에서 타인의 존재를 감지한 순간 아이는 자기 내면이 마치 환하고 따듯한 불빛처럼 일렁이는 걸 느꼈고, 반대로 실종자가 발생할 때마다 그 빛이 미약해지며 자신의 영혼에 균열이 가는 걸 감지했다. 한 외지인이 출현했을 때도 아이의 속에서는 작은 촛불 같은 기운이 피어났다. 아이가 기억하는 한 낯선 사람이 이 세상을 방문한 일은 없었다. 아이는 이곳의 모든 사람을 다 알았으니 헷갈린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아이는 그 사람이 자신의 부모 중 한 사람일 거라 짐작했으나 막상 그를 대면하자마자 자신이 찾던 이가 아님을 단번에 알아챘다. 그날 아이는 산자락의 계곡 하류에 쌓인 입자가 거친 모래톱에서 흙장난을 치던 중이었다. 계곡은 진작에 메말랐는데, 실상 아이는 사람에게서 말고는 물을 본 적이 없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물을 마시지 않았지만, 마르지 않는 샘인 양 끝없이 물을 생산했다. 눈물을 흘리고, 침을 뱉고, 피를 흘리고, 땀을 흘리고, 오줌을 누었다. 그것들은 나오는 즉시 증발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딘가로 사라지는지라 아이는 사람이 물을 밖으로 쥐어짜 내는 행위를 물리적 현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일종의 몸짓, 그러니까 표현 행위로 알았다. 운다는 건 슬픔이고, 침을 뱉는 건 세상을 저주하는 것, 피를 흘리는 건 아픔이며, 땀을 흘리는 건 긴장, 오줌을 누는 건 그 긴장감을 해소하는 행위였다. 아이 자신이 물을 제 몸 밖으로 흘려보내는 일은 없었다. 아이에게는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솟아날 일이 없었으니까. 언제나 그런 일은 오늘날 이전의 기억을 가진 이들에게만 일어났다. 그들은 혼자서 오로지 기억만으로 그런 일을 만들어 냈다. 아이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는 주변에서 작은 조약돌들을 주워 와 모래톱 위에 대중없이 아무렇게 세워 놓고 있었다. 조약돌 하나하나가 제각각 다른 외양과 개성을 가진 한 사람이었다. 아이는 그만큼의 사람이 모인 것을 본 적 없었고, 그렇게 모이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다. 아이가 알기로 사람은 저마다 혼자였다. 이곳 사람들은 광장에 모인다기보다는 잠시 들렀고, 마치 누가 모이는 것을 금지하기라도 한 듯 서둘러 떠났다. 그래서 아이 혼자 광장에 덩그러니 남겨진 때가 많았다. 사람은 왜 함께일 수 없는지 아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가 볼 때 자신을 제외한 사람은 혼자인 게 더 나은 것 같고,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는 걸 참기 어려운 듯했다. 하지만 아이 생각에는 어디에나 시선이 있었다. 하늘이 특히 그랬다. 아이는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것도 자신을 내려다본다는 기분을 느꼈다. 아이는 고가인들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거라고 상상했다. 어쩌면 사람들은 단지 하늘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들은 좀처럼 위를 올려다보지 않았고, 혼자든 여럿이든 하늘 아래서 매상 괴로워했다. 하늘은 언제나 그들 머리 위에 있었다. 아이는 그렇다면 하늘의 눈을 가리는 거대한 지붕을 세우는 방법도 있겠다는 발상을 떠올렸다. 그래서 자기 품만 한 공간에 어지럽게 놓인 조약돌들 양편에 넓적한 돌을 하나씩 모로 세우고, 그 위를 뒤덮을 만한 크기의 큰 돌을 찾아 두 팔로 붙안고 낑낑대며 가져왔다. 그러고는 그것을 방금 세운 돌기둥 위에 섬세하게 얹기 위해 엉거주춤 자세를 고쳐 잡다가 그만 무게를 못 이겨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아이가 만들던 작은 세계는 와르르 무너졌다. 조약돌들이 바깥으로 튕겨 나가거나 큰 돌 아래 깔렸다. 어떻게든 원상 복구하려고 큰 돌을 옆으로 치워 냈을 때 자기가 구상한 사상누각은 이미 모래에 반쯤 파묻혔고, 모랫바닥은 야트막하고 우묵하게 파여 있었다. 마치 아이가 사는 광장이 그런 것처럼. 그러자 아이는 처음으로 뭘 이해한 것 같았다. 깨달음의 전율이 아이를 관통했다. 아이는 부르르 떨다가 광장으로 뛰어갔다. 자기의 눈으로 광장이라 불리는 거대한 지름의 구덩이를 다시 들여다보고 싶었다. 오래전 거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자명하게 이해하고 싶었다. 광장에 어느 정도 가까워져 아직 그곳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다른 이의 존재를 감지하기에는 충분한 지근에 이르렀을 때, 아이는 내면에서 불빛이 일렁이는 걸 느꼈다. 그렇게 해서 아이는 외지인을 만난 거다. 그가 달려오다 멈춰 선 아이를 보고 태연하게 말을 걸었다. 「나 같은 사람은 이곳에서 하루도 버틸 수 없겠구나.」 「당신은 고가인인가요?」 그가 너무도 홀연히 광장에 나타났기에 아이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나는 관광객이란다.」 아이는 관광객이 무언지 몰랐다. 「그건 제 소관이 아닌 곳에 태평하게 구경하러 오는 이를 뜻하는 말이란다.」 그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아이는 자신이 왜 광장으로 뛰어왔는지 까맣게 잊었다. 「너는 자신이 누군지 알겠니? 나는 너를 알아보는데.」 그의 말에 아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나는 왜 내가 나인지 몰라요. 말해 주세요. 나는 누구인가요?」 「너는 내게 필요한 아이고, 나는 너의 주인이야.」 아주 마땅한 사실을 얘기하듯 담담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목소리였고, 거짓말을 모르는 아이는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주인이 아이에게 자신이 왜 여기에 왔는지를 설명했다. 「나는 궁금했지. 현재의 나는 과거의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만일 미래의 책을 읽을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미래란 지금의 내가 받아들이지 못할 어떤 변화이지 않을까?」 그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아이는 궁금증을 잠시도 참을 줄 몰랐다. 「책이 무엇인가요?」 주인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자기 말에 무게를 싣듯 천천히 말했다. 「사실이 아니지만 사실에 버금가는 것. 앞으로는 내 말을 끊지 말고 경청하거라.」 아이는 대답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위계를 몰랐기에 진정 그를 주인으로 여기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가 필요로 하는 대로 돕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가 이어서 말했다. 「……그렇더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 그러니 나는 책의 내용을 바꿔 볼까 한단다. 산의 정상으로 나를 안내할 수 있겠니?」 아이는 순순히 그를 데리고 광장을 나섰다. 내내 광장에는 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 역시 낯선 외지인의 존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산을 오르면서 주인이 물었다. 「너는 원하는 게 없니? 꼭 나에게서가 아니더라도 말이야.」 아이는 자신의 부모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인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찾게 도와줄게. 하지만 지금은 일러. 내가 책의 내용을 바꾼다면, 그때 너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그들을 알아볼 수 있을 거야. 그보다 먼저 너는 이름을 가지는 게 좋겠구나.」 「이름이 뭔데요?」 「아무한테나 알려 줘서는 안 되는 너만의 고유한 호칭이야. 내가 옛날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 맘에 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자의 이름을 네가 취하려무나.」 그는 대대로 같은 이름과 지위를 세습하며 산 노예의 이야기와, 광활한 제국을 호령했으나 말년에는 산 채로 무덤에 묻힌 어느 황제의 이야기, 때로는 손님으로 환대받기도 때로는 적으로 내몰리기도 했던 어느 이방인의 이야기를 차례대로 들려주었다. 아이가 말했다. 「이야기가 모두 맘에 들어요. 저는 세 사람의 이름을 모두 가지겠어요.」 둘은 산 정상에 이르렀고, 주인이 느긋하게 말했다. 「바깥에는 눈이 내린단다. 너는 처음 볼 거야.」 아이는 이번에도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뭐죠?」 「하늘의 물기운이 살포시 언 채로 지상에 내리는 걸 말하는 거야.」 「눈물 같은 건가요?」 「그래. 눈물같이. 그러나 어째서 그토록 슬피 울었는지 그 연유도 잊을 만큼 소스라치도록 차갑게 내리지.」 주인은 벼랑 너머를 가린 안개를 가리켰다. 「저 너머까지 뛰어가는 거야. 남은 이야기는 가면서 들려줄게. 네가 알아야 할 게 많아.」 아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이곳을 영원히 떠나게 된다는 걸 알아챘다. 아이에게 거의 전부나 다름없던 이곳을 어떻게? 「저는 이곳의 사람들을 버릴 수 없어요.」 그가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 금속제의 작은 원형 판에서 크고 작은 바늘들이 제각기의 속도로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었다. 아이는 그게 뭔지 물으려고 했으나 주인의 단호한 호령이 가로막았다. 「자. 뛰어.」 그때 검은 하늘 남쪽에 상현 망간의 커다랗고 노란 달이 불쑥 떠오르는 동시에 온 하늘에 섬광이 소리 없이 번쩍였다. 그 순간 주인이 회중시계에 달린 작은 단추를 눌렀고, 시계 판의 가장 큰 바늘이 째깍째깍 바삐 돌아가기 시작했다. 온통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란 아이는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이는 달렸다. 등 뒤에서 우렛소리가 났는데, 아이가 듣기로는 하늘이 찢어지는 듯했다……

 

 

「안 돼!」 나는 불현듯 울부짖으며 거대한 달이 드리워진 탁한 바닷물에 얼굴을 처박았다가 다시 고개를 수면 밖으로 쳐들었다. 내내 말 없던 단독자가 나를 돌아보며 찬찬히 말했다. 「오늘은 내 생일이야.」 나는 축하한다고 말하기 망설여졌다. 그에게 선물로 줄 만한 것이 수중에 아무것도 없어서였다. 그가 더는 말하지 않았기에 이 문제는 이대로 넘어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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