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장편소설
분신
〈너〉라고 불리는 한 소설가가 20여 년 전 인연을 맺었던 〈아세팔〉의 분신焚身 영상을 뒤늦게 마주한다. 사라진 것은 아세팔의 몸만이 아니다. 그는 죽기 직전, 단 두 명에게만 공개했던 블로그 〈블렘미에스〉의 글을 모두 지웠다. 그 글들을 몰래 빌려 가공된 〈너〉의 소설은 이제 원본 없는 사본, 누구도 입증할 수 없는 면책된 표절의 흔적으로 남는다. 〈너〉는 아세팔을 다시 만나기 위해 스스로를 기소하듯 자신의 문장을 참고인처럼 취조하며 사본에서 원본을 되살리려 노력한다. 그러나 복원이 거듭될수록 드러나는 것은 아세팔에 관한 진실이 아니라, 그를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소설로 써 온 〈너〉 자신의 얼굴이다. 〈너〉라는 호명을 함께 듣는 독자 역시 어느새 그 표절의 공범이 된다. 『분신』은 2014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데뷔한 이후 〈소설〉이라는 형식을 의심하고, 파훼하고, 끝내 오작동시키며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해 온 작가 양선형의 첫 장편소설이다. 그의 치밀한 실험은 이제 예술의 가장 큰 금기인 〈표절〉을 정면으로 겨눈다. 타인의 삶을 빌려 쓰지 않는 소설은 과연 가능한가. 〈소설의 한계〉를 묻는 이 질문은 역설적으로 〈소설의 가능성〉을 향해 열린다. 타인의 슬픔 곁에 설 자격, 타인의 죽음을 쓸 자격은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양선형은 쓰는 자가 설 수 있는 가장 막다른 자리에 스스로를 세우고, 그 자리에서만 가능한 애도를 분화한다. 그리고 이제, 그 불은 책장을 펼친 당신에게로 옮겨붙는다.
2026.10
동반자
『동반자』는 〈소설 쓰기〉와 〈쓰는 삶〉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해 온 작가 김갑용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전작인 『냉담』에서 꿈이라는 장치를 통해 구축했던 김갑용의 메타적 사유는 〈전염병 이후〉 시대의 꿈이 소거된 〈현실〉에서 오히려 더 강력한 환상성으로 무장되었다. 소설은 오발령된 경계경보를 시작으로 72시간 동안 소설가인 〈나〉의 동선과 경로를 추적하며 진행된다. 오발령된, 즉 허구인 경계경보가 이후 다시 진실로 발현되며 우리가 현실로부터 아득히 멀다고 생각했던 〈초현실적〉 사건이 소설 전체를 뒤덮고 장악한다. 전작에서 〈전염병〉으로 대표되는, 현실에서 우리를 관통했던 사건을 극화하며 소설 속 세계와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김갑용의 방식은 『동반자』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 독자는 뚜렷한 시간과 공간의 흐름 속에서 철저하게 인물의 시선과 감각으로만 세계를 추체험하게 된다. 〈소설가 화자〉를 활용한 형식과 구성의 강력한 통제는 독자를 순식간에 작가와 동일한 위치에 배치되게 한다. 그리하여 기나긴 서사를 뚫고 책장을 덮었을 때, 독자는 온전히 작가가 기다리고 있는 목적지로 선형적인 이동을 마치게 된다. 다른 무엇도 아닌 〈소설을 쓰는(보는) 삶〉은 지금 여기, 우리의 시대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김갑용은 이 소설의 목적지에 서서 그렇게 묻고, 스스로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