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장편소설

분신

  • 작가 양선형
  • 발행 2026.10.21
  • 장르 일반
양선형

양선형

1990년 광주 출생. 2014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감상 소설』, 『클로이의 무지개』, 『말과 꿈』, 중편소설 『V섬의 검은 짐승』, 산 문집 『미시마의 도쿄』가 있다. 소전문화재단 문학과 친구들 3기 작가로 선정되어 활동했다. 김현문학패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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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세팔은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은 뒤 불을 붙였다. 그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영상을 찾는 과정은 맥이 빠질 정도로 간단했다. 접근을 불허하는 웹 페이지들 사이를 헤매거나 잡히지 않는 실마리들 사이를 방황할 필요도 없었다. 구글 메인에 사건을 연상시키는 몇몇 단어들을 검색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가. 너는 생각했다. 아세팔의 분신 영상은 처음 유튜브에 올라왔으나 하루가 지나 규정 위반으로 삭제되었다. 한나절 동안 불가사의한 경로로 복제되어 링크와 링크를 타고 여러 온라인 플랫폼과 소셜 네트워크 계정으로 퍼져 있었다. 링크Link. 분리된 것들을 연결하는 사슬이라는 뜻이다. 불이 번지는 길들.

네가 몇 번 지나치기도 했던 대학로 주변의 번화가를 배경으로 불길이 네모난 화면을 뒤덮었다. 일렁이는 화염과 구불텅하게 치솟는 연기 사이의 경계가 뭉개져 있었다. 재생 버튼이 불타는 아세팔의 몸을 가렸다. 너는 정지된 화면을 놓아둔 채 책상에서 일어났다.

영상을 열람하지 못했던 까닭이 두려움 때문인지 죄의식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누군가의 죽음, 게다가 실제로 인연이 있었던 이의 참혹한 죽음이 담긴 영상 앞에서 이런 종류의 불안감이 특별한 감정은 아니었다. 아세팔은 자신의 죽음을 공연하길 원했다. 네가 아세팔과 친구라고 할 수 있었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이었다. 그럼에도 너는 지금껏 은밀하게, 네가 다른 누구보다 아세팔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아세팔을 잊을 수 있겠는가? 너는 오래도록 아무에게도, 심지어 아세팔에게도 들키지 않을 만큼 교묘한 방식으로, 네 책상에서 분열하는 상상력의 명령에 따라 무수한 언어의 조각으로 나누어진 아세팔을 만났지 않은가.

그것은 공개된 영상이었다. 기억은 가물가물했으나 너는 피드를 내리고 몽롱하게 웹사이트를 떠돌다 너도 모르게 그 끔찍한 영상을 스쳐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영상 속의 불타는 그림자가 아세팔이라고는 도무지 인식하지 못한 채. 영상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네가 더 어려운 조건들을 충족해야 했다면 어땠을까. 예컨대 그 영상이 단서 같은 것이어서 네가 적극적으로 아세팔의 죽음에 관련된 진실을 추적한 결과였다면? 너는 진실의 조각을 훔쳐보기 위해 망설이지 않고 재생 버튼을 눌렀을지도 몰랐다. 따라서 너는 어떤 노력도 회한도 없이 아세팔의 노골적인 절규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너무 뒤늦게.

 

감기지 않는 눈동자 속으로 사나운 불길이 얼어붙어 있는 듯했다. 불길이 시간 저편에 갇혀 있었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마자 네 눈동자로 침입할 불길은 모니터 화면 속에서 낱장의 동결된 사진이 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 불길은 그대로 갇혀 있는 편이 나았다. 마음이 동요했으며 너는 미미한 공포를 느꼈다. 영상의 내용을 확인하는 일 자체가 아세팔의 몸을 잠식한 불길이 다시 타오르도록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일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너는 어머니가 기르던 늙은 개를 잃어버렸다. 못쓰의 실종은 대낮에, 네가 사는 어머니의 집에서 벌어졌던 돌연한 사건이었다. 그때에도 너는 까마득하게 패인 허방 앞에 서 있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그때의 감정은 분명 슬픔이나 당혹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으스스하면서도 종잡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대문을 잠가 두었는데 집 안 어디에서도 못쓰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너는 못쓰를 부르며 안방에서 거실까지, 작은방에서 욕실까지를 얼빠진 채로 서성거렸다. 감쪽같이 사라진 못쓰의 행방을 수색했다. 잠깐 어머니의 침대에서 잠들었다는 사실을 못쓰의 실종과 동시에 깨달았다. 누군가가 집에 남몰래 들어와 못쓰를 납치한 것이 아니라면 대체 못쓰가 어디로 자취를 감췄다는 말인가?

고개를 돌리니 산들바람이 불어와 살구색 리넨 커튼이 살랑거렸다. 베란다에 면한 미닫이 통창이 반쯤 열려 있었다. 너는 불시에 단정적인 직감을 느끼며 대문 밖의 복도로 뛰쳐나갔다. 네가 사는 어머니의 집은 아파트 8층에 있었다. 머릿속이 저절로 새하얘졌다. 너는 발을 동동거리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얼룩덜룩한 솜뭉치처럼 생긴 못쓰가 베란다 난간 너머로 실족했으리라는 비현실적인 가정이 머릿속을 둔중하게 울렸다. 심장 소리를 따라 맹목적으로 진화하는 확신이 강박관념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종을 쳤다. 너는 안절부절못했다. 자신이 어디로 낙하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뭉툭한 네 개의 다리로 허공을 휘젓다 결국 숨을 거뒀을 가여운 못쓰.

너는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관목 덤불이 심긴 아파트 화단의 울타리 안쪽으로 들어갔다. 앓는 소리를 내고 있을지도 모를, 그러나 높은 확률로 축 늘어져 살릴 수 없게 되었을 못쓰의 주검을 찾고 있었다. 뒤뚱거리는 동작 때문에 화단이 더러워졌다. 못쓰는 그곳에 없었다. 맨발이 축축한 진흙에 물들었다. 너는 숨을 몰아쉬며 경비실까지 내달렸다. 굳게 닫힌 녹슨 경비실 창문을 열어젖힐 때 금속성으로 고막을 할퀴는 시끄러운 마찰음이 들렸다. 경비실 노인이 너를 빤히 쳐다보았다. 너는 경비실 노인에게 다급한 말투로 죽은 개를 치운 적이 있냐고 물었다. 죽은 개를 치웠냐고요? 황당한 표정으로 되묻는 경비실 노인에게 너는 죽은 개를 줍는 사람을 목격한 적이 있냐고 물었다. 네, 죽은 개가 맞아요. 경비실 노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금시초문이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너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무언가 거대한 파도 같은 것이 가슴 속으로 밀려왔다가 홀연히 빠져나간 듯했다. 너는 천천히 시간을 되짚었다. 어머니가 급성 심근 경색으로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 네가 못쓰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본가에서 서울에 있는 원룸으로 이사를 나온 뒤 어머니는 못쓰를 혼자 키웠다. 너는 사료나 개껌 같은 것을 사서 본가에 방문한 적도 있었지만 평소에는 못쓰에 관해 신경을 끄고 있었다. 다시 본가로 돌아온 뒤에는 어땠나. 너는 잠들기 직전,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어뜨리고 촐랑거리는 걸음걸이로 안방 문 저편으로 멀어지던 늙은 개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는 듯했다. 그러나 다시 회상하자 그 이미지 자체가 모호한 신기루처럼 느껴졌는데, 못쓰는 처음부터 집에 없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원래 없었던 못쓰를 너는 왜 잃어버렸다고 착각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었던 걸까. 혹은 잃어버린 못쓰를 왜 원래부터 없었는지도 모르겠다며 의심하고 있는 걸까?

너는 집에 도착해 대문을 열었다. 부엌에 놓인 못쓰의 사료 케이스가 비어 있었다. 너는 거기 사료를 부었던 시점을 정확하게 떠올릴 수 없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나도록 사료 케이스는 그대로였다. 너는 간혹 거실에 우두커니 서서 희미한 목소리로 어머니가 기르던 늙은 개의 이름을 웅얼거렸다. 동네 병원의 입원실 주방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막 출산한 개를 키우던 일터의 동료로부터 처음 받아 입양했을 때 못쓰는 손바닥 위에 웅크려 앉을 수 있을 만큼 작았다. 푹신한 방석 위에서 파르르 떨고 있었는데, 슬며시 등을 쓰다듬자 연한 몸에서 박동하는 심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행방불명된 어머니의 개. 그보다 더욱 선명한 공포의 원인은 네가 어긋난 시간의 틈새에 생긴 망각을 수선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너는 못쓰가 실종된 시점이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본가로 돌아오기 전이었는지, 그다음이었는지를 명확히 분별할 수 없었다. 못쓰가 어머니보다 먼저 불상의 이유로 죽고, 못쓰의 죽음이 네게 전해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었다. 못쓰는 열다섯 살이 넘은 노견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는 못쓰가 침대에 드러누운 네 곁으로 다가와, 매트리스 바깥으로 비죽 널브러진 네 손등을 핥거나 낑낑거리며 너를 보챘다고 하는 불분명하게 편집된 기억을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때 너는 처음으로 네가 멀쩡한 상태가 아님을 깨달았다. 너는 네 집에서 벌어지는 일들마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만큼 병들어 있었던 것이다. 시간과 시간 사이에 공백이 있었다. 못쓰는 그 불길한 공백 속으로 자취를 감춘 셈이었다.

노트북 화면 속에 불타는 아세팔을 촬영한 영상이 있었다. 절전 기능 때문에 노트북 화면이 암전되었다. 너는 안방에 있는 어머니의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벽 쪽으로 돌아누워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속으로 푸르스름한 잔상이 아른거렸다. 너는 맥동하는 잔상이 휘발되어 주변의 어둠 속으로 흐려질 때까지 그 신기한 모양의 잔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울렁거리던 잔상이 반점 크기로 줄어들었다. 너는 지금 대체 뭘 느끼고 있는 거야. 무엇을 느껴야 하는 거지? 너는 생각했다. 머릿속이 둔하고 무거웠다. 거울이 앞에 있었다면 여러 표정을 연습한 뒤 네 감정에 어울리는 알맞은 가면을 골라 거기 이름표를 부착할 수 있었을 텐데. 너는 벽을 바라보며 웃거나 얼굴을 찡그리는 몇몇 표정을 지었으나 허사였다. 나풀거리는 그림자. 뺨에 맞닿은 벽이 차가웠다. 아주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었던 것 같았고 눈을 뜨면 단지 몇 분이 지나 있을 뿐이었다.

영상은 아세팔이 자살했던 악몽 같은 현장을 전송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누르더라도 근육과 비계를 태우는 고약한 냄새를 맡거나 싸늘한 방이 열기로 달아오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매캐한 연기 때문에 훌쩍거리거나 재채기를 하지도 않을 것이고, 작열하는 불길이 아세팔의 목숨을 앗아 갈 때에도 이곳에서 영상을 시청하는 너는, 그때 거기서 아세팔이 불타 죽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여기서 불타 죽는 아세팔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따위의 현실감 없는 덜떨어진 의문을 품는 일이 고작일 것이다. 너는 과거에 개입할 수 없으며 노트북 화면 속으로 기세등등하게 번지는 그 영원한 불길을 진정시키기 위해 허둥지둥할 수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 영상은 수많은 장소에서 수만 번이나 반복해서 재생되었다. 네가 그 영상을 처음 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 절박한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지나간 사건일 뿐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영상은 네게로 최초로 당도한 불길, 너로부터 격리된 그 분신 현장에서 녹화된 아세팔의 노골적인 절규가 아닌가. 돌이킬 수 없는 장면이 돌이켜질 때마다 너는 따귀를 맞는 팽이처럼 어지럽게 맴도는 집 천장을 올려다보며 입을 막고 비명을 지를 것인가.

네가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살았던 원룸 근처에는 새벽까지 조명을 밝히고 취객들로 소란스럽게 붐비는 먹자골목이 있었다. 가끔 고성과 함께 싸우는 소리가 났다. 술에 취한 남자가 반지하 창문으로 침대에 드러누운 너를 들여다보며 히죽거렸다. 너는 취객의 비릿한 웃음을 향해 베개를 던지며 욕을 퍼부었다. 어느 날은 신원이 불분명한 누군가의 수척한 흐느낌이 창틀을 타고 내려와 원룸 안에 고였다. 휑뎅그렁한 적막이 흐느낌 때문에 스산하게 떨렸다. 그때에도 너는 아세팔의 노골적인 절규를 담은 영상 앞에서처럼 수수께끼 같은 공포를 느꼈다. 너는 그 조마조마한 흐느낌에 감염된 채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였고, 낯선 흐느낌은 차양의 고드름이 녹아 네 목덜미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섬찟하면서도 서글픈 느낌이었다. 네가 동굴에 숨어 누군가의 비밀을 도청하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그 흐느낌은 차갑고 뾰족한 바늘 같았고 그 가느다란 바늘이 너의 세계를 깨뜨렸다.

너는 늘 네가 타인의 슬픔에 공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거기에 유혹된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너는 이러한 꺼림칙한 진실을 부인하거나 외면할 수 없었다. 그것이 네 글쓰기가 최근 끝없이 자신을 변명하는 일에 소모되는 참된 이유인지도 몰랐다. 너는 공포에 지친 개처럼 같은 자리에 묶인 채 너를 묶은 이들에 이끌렸다. 너는 책상머리에 앉아 백지 안의 허허벌판을 표류했다. 무언가를 갈겨써야 하는 글쓰기의 의무를 네게 맞세우며 늘 성실하게, 연민과 몽상의 고름을 짜내는 방식으로 네 은근하고 비밀스러운 탐닉을 변호하기를 꿈꿨다. 고통스러운 이의 얼굴을 떠올린 다음 그 얼굴을 언어로 꼼꼼하게 박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는데, 그것은 너를 닮아 있을 뿐이었고, 공들여 묘사했던 타인의 괴로움과 수치심을 또한 몇몇 기이하고 쓸모없는 문장들로 위로할 때 너는 기분이 좋았던가? 우스꽝스럽게도 마음이 아팠던가.

네게 아세팔의 자살은 여전히 막연한 이미지였다. 검붉은 태양처럼 불길했고, 아스팔트 위로 너울거리며 솟아오르는 불기둥을 연상시켰을 뿐이다. 아세팔은 그 불기둥 속의 지워진 얼굴이었다. 이즈음 너는 밤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꿈을 꿨다. 아세팔에 대한 꿈은 아니었으나, 꿈이 사위는 동안 잔열처럼 가슴 속에 머물다 증발하는 찰나의 쓰라림이 있었다. 너는 쓰라림이 사그라질 때까지 어머니의 침대에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2

 

아세팔에 관한 공적인 서술은 2년 전쯤 게재된 어느 신문사의 단신 기사에 등장했다: 신원 미상의 분장한 남성, 삶을 비관하며 H공원 앞 사거리에서 분신. 그것은 네게 아세팔의 죽음에 대한 간결한 요약, 혹은 단호한 판결처럼 느껴졌다. 따라서 네가 아세팔의 죽음을 서술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모든 요약이나 판결은 부조리한 것이 되었다.

너는 아세팔을 사랑했다. 몹시 황홀하면서도 창피한 기억이었다. 아세팔과의 만남을 회상할 때마다 검고 찐득찐득한 꿀 속에 잠긴 벌집 안의 애벌레가 된 기분이었으니까. 너는 사랑의 시효가 지난 다음에도 그때의 감정에 집착하며 소설을 썼다. 그것은 가식적인 문장들로 위장된 자위행위에 지나지 않았고, 좋게 이야기하면 과거의 사랑을 현재로 연장하는 행위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제 그 사랑은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볼 수 있는 시체 보관소 서랍 속의 창백한 나신일 수는 없게 되었다. 작열하는 불길이 네 사랑의 주검을 휩쓸었다. 너는 아세팔에게 다가서지 못했다.

이때 사랑은 기이하게 반복되는 속성을 갖고 있는 듯했다. 첫 번째에는 삶을 태우는 불길이었던 것이 두 번째에는 사랑의 주검을 태우는 불길로서 다시 점화되었던 것이다. 첫 번째의 불꽃 속에는 사랑이 있었고 두 번째의 불꽃 속에는 사랑의 죽음이 있었다. 최근에 너는 네가 아세팔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아세팔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 네게서 일어난 변화였다. 그 소식에 무지했다면 너는 자신이 아세팔을 사랑한 적이 있었으며 그것이 완료되었다고 하는 내면의 결말을 여전히 믿고 있었을 것이다. 이때 두 번째의 사랑은 아세팔이 아니라 아세팔의 죽음을 향한 수상하게 오염된 사랑일 수밖에 없었다. 완료를 거부하며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 완료 자체를 불사르는.

깨달음은 대개 깨달음을 적용해야만 하는 사건과의 시차를 동반한다.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 그것이 뒤늦은 깨달음이라는 씁쓸한 자각이 즉시 따라붙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가시지 않았다. 이때의 우울한 조바심은 초조하게 달뜬 무력감과 닮아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잠시 날씨가 풀렸던 늦겨울 오후, 너는 산책을 나갔다가 눈에 덮인 화단의 흙이 녹아 지상으로 올라온 지렁이 한 마리를 보았다. 그날 밤 기온이 혹한까지 떨어졌으므로, 너는 진흙 속을 꿈틀거리며 필사적으로 뒤척이던 지렁이가 심한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치지 않았다. 서둘러야 했다. 그러나 무엇을?

구체적인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는 내면의 명령을 쫓아다니는 일은 게걸스러운 불안의 표현에 불과하다. 아세팔의 축축하고 단단한 성기를 입으로 애무하던 밤, 눈을 치켜뜨니 턱이 깡마른 아세팔이 상기된 채 글썽거리는 눈빛으로 너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달궈진 필라멘트를 물고 있는 듯했다. 청바지를 무릎까지 내린 아세팔이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아세팔은 웃고 있었다. 호텔 통창의 반사광 저편으로 폭설이 쏟아졌다. 당시 너는 열여덟 살이었다. 단조로운 신음, 무릎 아래에 깔린 이불이 뒤척일 때 나는 자박거리는 소리를 제외하면 객실은 조용했다. 통창 바깥은 냉랭한 눈의 나라였다. 혀가 뻐근하게 저렸고 입꼬리에서 침이 흘렀다. 아세팔과 너는 그날 종일 객실에 있었다. 폭설 때문에 모든 견학 일정이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히터가 켜진 실내는 갑갑하며 후덥지근했다. 아세팔의 오른손이 무릎을 꿇고 있는 네 뺨을 상냥하게 어루만졌다. 통창에 등을 기댄 아세팔이 흥분한 듯 나직하게 탄식할 때마다 창문 쪽으로 쳐들린 왼손이 경련하듯 뒤틀렸다. 아세팔의 왼손이 유리창을 만지작거리며 표면에 어린 뿌연 습기를 지웠다.

눈발이 퍼붓는 창문 표면으로 투명한 물기에 젖은 신비로운 궤적이 자라났다. 너는 전율하는 아세팔의 손바닥으로 전해질 찬기를 상상했다. 혓바닥의 사소한 움직임, 섬세한 촉감에 따라 팽팽하게 조율되는 악기와도 같은 쾌락을, 아세팔의 거세되지 않은 과도함과 목이 졸린 풍선처럼 불그죽죽하게 억제된 희열을 상상했다. 네가 그 뜨거움을 향해 주문을 외우고 있는 듯했다. 네가 되풀이해 빨고 있었던 것은 나선형의, 장식 없이 매끈하게 외부로 솟아난 돌탑이었다. 완강했던 돌탑이 어느 순간 물고기처럼 퍼덕거리며 네 목구멍 안으로 헤엄쳐 들어왔던 것이다. 처음에는 은은한 악취와 불쾌한 짠맛이 있었다. 곧 그 팽창한 물체는 네 입술 안쪽으로 부드럽게 휘감겼고, 아무런 맛도 냄새도 나지 않는, 네 구강 속에서 여리게 고동치며 서서히 용해되는 동그란 물방울로 변했다.

너는 그 물방울을 아프지 않을 만큼만 살짝 깨물었다. 이렇게 하면 더 좋아? 아니면 이렇게? 네가 말했다. 무더운 육체, 창문 표면을 미끄덩하게 기어가는 헐벗은 뱀, 순도 높은 감각의 밀림, 악화된 염증처럼 질척거리는 관능과 실내에 얼얼하게 맴도는 어지럼증.

 

네 머릿속에서 그날의 기억은 한없이 더디게 되풀이할 수 있는 슬로 모션 영상이 되어 있었다. 아세팔Acephale은 프랑스어로 〈머리 없는 인간〉을 뜻한다. 그것은 팔로워가 두 명밖에 없는 개인 블로그에서 그가 쓰던 닉네임이었다. 아세팔은 정기적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직접 쓴 일기와 잡문을 올렸다. 알쏭달쏭한 상념이나 맥락이 불분명한 몽상을 빼곡하게 기록한 글이었다. 몇 년 전부터 게시물은 드물어져 그가 자살하기 1년 전부터는 아무런 글도 올라오지 않았다. 블로그의 이름은 네가 아세팔의 유일한 팔로워였던 시절에는 〈Acephale님의 블로그〉였고, 몇 년 뒤 팔로워 목록에 한 명이 추가된 다음에는 〈블렘미에스Blemmyes〉로 바뀌었다.

아세팔의 설명에 따르면 블렘미에스는 중세 유럽의 괴물학 문헌이나 민담 속에 등장하는 괴물 부족의 명칭이다. 이른바 머리 없는 자들의 공동체. 블렘미에스는 유럽 세계의 오지인 북아프리카 이남의 열대 우림에 거주하는 머리 없는 종족을 광범위하게 통칭하는 이름으로 쓰였다. 이 괴물 종족은 머리가 부재하고 이목구비가 가슴에 붙어 있다. 상반신을 알록달록한 형광 안료로 치장한 아프리카 부족이나 털로 뒤덮인 유인원에 대한 목격담이 미지에 대한 두려움 내지는 혐오와 결합해 머리 없는 부족에 대한 설화를 낳았을 것이라고 아세팔은 썼다. 아세팔은 자신을 포함해 블렘미에스를 열람하는 세 명의 사람에게 공동체로서의 성격을 부여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블렘미에스를 열람하는 순간 너는 머리 없는 자들의 공동체에 속해 있었던 셈이다.

아세팔이 블렘미에스에 일기와 잡문을 올렸던 기간은 헤아려 보면 기나긴 세월이었다. 아세팔에게는 삶의 절반이 넘는 기간. 네가 아세팔과 만났던 열여덟 살의 겨울 방학이 아득하게 연속되는 기억의 사슬에서 맨 처음을 차지한다. 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한 예술 대학의 문예창작과에 입학한다. 자주 핸드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던 적도 있었지만 네가 군대를 제대할 무렵이면 아세팔과의 연락이 완전히 끊긴다. 너는 블렘미에스에 접속해 아세팔이 게재한 글을 틈틈이 훔쳐본다. 그러나 아세팔이 작성했던 난삽하고 해괴한 일기들 밑에 더는 댓글을 달지 않게 된다. 너는 아세팔을 염려하지만 그에게 왠지 모를 부담감을 느낀다. 너는 아세팔을 〈회고적 과거〉라고 적힌 상자 속에 넣는다. 뚜껑을 닫는다.

아세팔과 같은 플랫폼에서 블로그를 개설했던 적도 있었으나 너는 대학 시절 그 블로그를 그만둔다. 너는 일기나 주제 없는 토막글 대신 일정한 형식을 갖춘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대학을 졸업한 뒤 너는 조그만 건강식품 회사의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한다. 너는 아세팔의 이모가 시집을 냈던 출판사가 운영하는 문학 계간지의 신인 문학상에 당선된다. 이후 너는 네 소설과 에세이에 번잡하고 구질구질한 방식으로 서술되었던 생활고와 낭패감에 직면한다. 문학에 속았으며 간절히 원하던 독립과 자립에 실패했다는 느낌, 잦아들지 않고 끈적끈적한 배앓이처럼 부글거리는 르상티망, 신경질적인 망상과 대상을 특정할 수 없는 적의에 사로잡힌다. 그렇게 속절없이 몇 년이 흘러간다. 너는 너를 지배하던 미성숙한 내적 투쟁과 일상을 좀먹는 방향 없는 환멸감 따위를 잊거나 없는 셈 치는 방법을 배운다. 병아리콩 크기로 줄어든 자의식 속으로 퇴각해 면벽하는 방법을 배운다. 어느새 글쓰기는 자폐적인 자장가가 되어 동요하는 마음을 잠재우는 일에 낭비된다. 너는 침팬지처럼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을 수도 있지만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네 덜떨어진 표정을 남몰래 경멸한다.

너는 서너 권의 책을 출간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출강을 나가던 대학과 논술 학원의 강사 일을 그만둔다. 학생들 앞에서 딱딱해진 혀로 말을 더듬는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어눌하고 조급하게 온몸을 덩실거린다. 몰려드는 탈진감을 붙들고 땀이 증발한 셔츠에서 풍기는 퀴퀴한 냄새를 맡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너는 네가 먼지 낀 청소함 속에 버려진 더러운 걸레짝으로 변신한 기분이 든다. 너는 지쳐 있다. 너는 어머니가 생활하던 임대 아파트 계약을 이어받아 살던 원룸을 정리한다. 너는 어머니가 생애 내내 마련했던 살림살이들을 물려받고, 기죽은 채 식탁 앞에 앉아 청회색으로 스러지는 늦은 오후의 빛을 바라본다. 불화의 시간은 덧없이 잦아들어 눅눅한 기억의 앙금으로 침전되었지만, 좌절감은 사라지지 않고 석연찮은 얼룩으로 네게 잔존한다. 너는 득도한 사기꾼처럼 무기력하게 흐느적거리는 것만 같은 께느른하며 형편없는 소설들을 생산한다. 나는 덫에 걸려 그만둘 수가 없는 거지. 너는 생각한다. 그동안 아세팔은 블렘미에스에 꾸준하게 일기와 잡문을 게재한다. 자살하기 직전 모든 페이지를 비공개로 돌린다. 혹은 삭제한다. 너는 어느 날 평소처럼 핸드폰을 매만지다 아세팔의 블로그에 게시물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고작해야 세 문단으로 압축된 건조한 요약 속에 네 이십여 년이 통째로 담겨 있다. 너는 삶에 완패했다고 느낀다. 미처 의식하지 못한 수많은 분기점과 변곡점을 통과하며 삶이 변화한다. 네가 네 암울한 실감 속에 틀어박혀 살아가는 동안 아세팔 또한 살아간다. 너는 간혹 이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이 불가해하고 죄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아세팔의 자살을 막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네가 어떻게 아세팔의 자살을 막을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차라리 네가 언젠가 머물렀던 아세팔과의 공유지에서 이탈했다는 감각, 그곳에서 손쓸 수 없이 분리되었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너는 그 공유지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어느 순간 그곳에서 추방되었고, 이제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단호하게 잠긴 그곳의 자물쇠를 열 방법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너는 거기서 출발해 지금에 이르러 다다르게 된 곳이 어디인지를 파악할 수 없었다.

네게는 좌표가 없었다. 너는 너의 출발지를 알고 있었을 뿐이다. 글쓰기가 유실된 결속을 복원할 수 있을까? 네가 살아가는 동안 너와 무관하게, 너의 비좁은 세계와 작별하며, 또한 한없이 광활한 세계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 네가 너의 삶에 충실할 때 너는 그들을 잊는다. 기별과 소식이 단절된 뒤 병에 걸리거나 불운한 사고를 당해 부고조차 듣지 못한 또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 아세팔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기로 결심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네가 이를 눈치챌 수 있을 턱이 없었다. 너는 아세팔의 분신을 상상하지 못한 채 가끔 몽롱한 열기로 붐비던 열여덟 살의 겨울 방학을 회고한다. 아찔함이 수백 개의 바늘처럼 돋아나던, 욱신거리는 미열 같고 덧난 상처 같은 그날의 생생한 갈망을 떠올린다. 그때 아세팔은 이미 죽은 상태였을 것이다.

너는 그의 존재감이 없었더라면 오랫동안 너를 쥐락펴락했던 비열하고 부끄러운 방황들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가당찮은 핑계였다. 우리는 우리가 망각했던 사람들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어쩌면 절대로. 너는 생각한다. 아세팔이 사건을 일으킨 날은 지나치게 평범한 날이었다. 너는 그날 무엇을 했는지도 정확하게 떠올릴 수 없었다.

 

3

 

블렘미에스의 팔로워는 두 명이었다. 아세팔은 너와 네가 알지 못하는 다른 한 사람에게만 블렘미에스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자신의 독자이자 관객이 될 수 있는 자격을 단 두 사람에게만 허용했던 것이다. 경계심이 많은 아세팔의 내면에 삼엄한 출입국 관리소 같은 장소가 있어서 들이거나 들이지 않을 사람을 신중하고 사려 깊게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너는 생각했다. 너는 아세팔이 직접 선택했던 고백의 증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추 또한 네가 아세팔에게 특별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내적으로 주장하기 위한, 거짓된 자격증을 발급받기 위한 근거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네 정당한 말하기를 위해 목에 걸어야만 하는 허가증.

그 허가증을 발급하는 관청의 데스크에는 이제 아무도 앉아 있지 않다. 아세팔은 그저 자신의 글이 읽히고 있으리라 넘겨짚을 수 있는 소수의 사람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네가 아니라 누구든 상관없었을지도 모른다. 아세팔의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혹은 둘 다 아니었던 너는 그의 자살이 임박했을 무렵 그와 어떤 사이였던 걸까? 타인의 증인이 되는 일에도 자격이 필요할까. 모든 사람은 타인의 증인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에 대한 파편화된 기억의 집합으로 구성된다. 죽은 사람은 공동의 환영이자 그를 기억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만약 그 얼굴 전부를 한 사람의 얼굴 속에 겹쳐 놓는다면 죽은 사람은 불가해한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죽은 사람은 여러 얼굴들 가운데 어떤 얼굴이 본모습에 가까운지 말해 주지 않는다. 승인하지도 부인하지도 않는다. 불충분한 얼굴들만이 남아돌 뿐이다. 죽은 사람을 향해 의미를 부여하고 그의 일생을 기념하거나 망각하는 일 또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이 단호한 침묵 속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모든 가설과 환상과 애착과 슬픔이 보존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제멋대로 그를 증언하거나 평가할 자격이 있다고 말해야 할까? 너는 아세팔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특별한 권리를 요청하고 싶은 것이다. 대체 누구에게…… 이미 죽은 아세팔에게? 아세팔을 참칭할 권리를, 신뢰할 수 있는 증언의 자리를 소유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 아세팔을 잘 알아. 나만이 아세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 그러니 함부로 떠들지 말고 입 다물어.

읽는 사람들을 대화 상대자나 순수한 청자로 만드는 글이 있는 반면 공모 관계나 패거리로 조직하려는 글도 있다. 블렘미에스의 글들은 명백하게 후자였다. 블렘미에스에 출입하는 일은 블렘미에스에 연루되어 아세팔의 공범이 되는 일과 다름없었다. 아세팔의 게시물들은 기이했다. 파탄적이고 무분별한 경험과 생각을 정돈되지 않은 방식으로 갈겨쓸 때는 위태로워 보였다. 아세팔은 혼자서 떠들고 있었지만 자신을 읽을 사람으로 낙점한 두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블렘미에스는 닫힌 공동체였다. 네가 그 닫힌 공동체에 가담한 적은 없었지만 아세팔이 블렘미에스를 닫힌 공동체로 사용했다. 거기 발을 들여놓는 순간 너는 블렘미에스의 멤버일 수밖에 없었다. 아세팔은 블렘미에스에 업로드한 게시물을 예외 없이 제한적 공개로 설정했다. 작성자인 아세팔을 포함해 셋만이 그 게시물들을 읽을 수 있었다. 제한적 공개의 성격인 각별한 배타성, 행간에 숨어 네게 응답을 요구하는 듯한 은밀하며 독점적인 호출, 선별된 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친밀성과 유대감의 기호들이 아세팔의 글을 나머지 멤버를 향한 밀담이나 편지로 둔갑시켰다. 귀를 간질이는 속삭임 같은, 음험한 고백의 뉘앙스를 불어넣었다. 아세팔은 강요하지는 않았으나 끈덕지게 너를 자신의 공동체에 끌어들였다. 물론 그 공동체의 멤버가 되는 방법은 블렘미에스에 올라온 글을 읽는 일로 충분했다.

너는 네게만 허용된 공간을 스무 해 동안 드나들었다. 네 우편함에만 정확하게 꽂히는 수백 통의 밀담과 편지를 임무에 딴청을 부리는 간첩처럼 얼떨떨하게 전달받았던 셈이다. 그것은 암호의 독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지령과 본래의 지침에 접근할 수 없는 너저분한 더미 데이터였다. 그 시간의 총량은 만만치 않았다. 대수롭지 않은 눈빛으로 블렘미에스의 스크롤을 내리던 시간들을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너는 아세팔의 글을 훔쳐보는 과정에서 블렘미에스에 소속되었고, 네가 블렘미에스에 소속되었기 때문에 아세팔의 글을 훔쳐볼 수 있었던 것이다.

너는 지금까지 네가 어떤 공동체의 일원이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너는 너도 모르는 사이에 너를 아우르는 무수한 이름 없는 공동체에 속해 있다. 그 이름 없는 공동체들은 보이지 않고 경계가 희미하며 국가나 제도나 기관 같은 공인된 정체성의 토대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가령 죽음은 장례에 참석해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모두를 한시적인 공동체로 만든다. 비밀과 우정의 거듭된 교환은 서명을 하거나 각서를 쓰지 않았는데도 다른 곳에서 보증되기 어려운 굳건한 약속들을 만든다. 아세팔의 글을 긴 세월 동안 읽었다는 단순한 사실로부터 너를 그 닫힌 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이는 무형의 족쇄가 만들어진다.

 

지금 블렘미에스는 하얗게 비워진 사각형의 레이아웃이 되었다. 감쪽같이 매장된 이십여 년의 페이지들이 네 머릿속으로 불분명하게 부유했다. 네가 기억하기로 아세팔의 자살 시도는 최소한 세 번이 넘었다. 미처 식별하지 못한 몇 건의 자살 시도가 더 있었는지, 세 번에 이르는 아세팔의 자살 시도 자체가 블렘미에스에 언급된 애매한 암시적 표현들을 네가 제멋대로 곡해하고 착오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아세팔에게는 습관적인 허언증 같은 것이 있었다. 블로그 속의 자아를 치장하는 일에 동원되는 연극적인 가면들. 블렘미에스가 아세팔의 허언증과 연극적 가면들을 위한 무대 장치라는 의혹은 네가 날이 갈수록 아슬아슬해지는 아세팔의 자살 암시 같은 것을 방관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너는 어느 순간부터 아세팔의 괴팍하고 음울한 일기를 읽고도 약간 찝찝한 기분을 느꼈을 뿐 별로 거리낌이 없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아세팔은 〈양치기 소년〉이었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 속에 들어 있던 진실의 함량은 얼마였을까? 훗날 아세팔은 정말 자살했고, 그의 이야기들 속에 증류하기 어려운 진실의 조각이 녹아들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 아닌가. 다량의 거짓말을 통해 희석되어 치명성이 완화된 한 방울의 독약이. 아세팔의 거짓말들은 자신을 털어놓고 싶은 욕망과 자신을 감추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야단법석을 떨었다. 고백하고 싶은 욕망과 침묵하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어느 쪽도 택하고 싶지 않고, 폭로하면서도 동시에 함구하고 싶다는 것……. 진실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거짓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었다. 아세팔은 그 연극적인 가면들로 자신을 감추면서 노출하는 이중적인 유희를 수행했다.

아세팔은 블렘미에스에서 자신을 집요하게 표현했으나 그것은 항상 표현의 왜곡이나 과장을 동반했다. 아세팔은 자신의 투명한 민낯을, 일상적이면서도 평범한 기분을 블렘미에스에 적는 방법을 몰랐다. 나이가 들어서까지 그랬다. 너는 그때 아세팔의 욕망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해석했다. 수치심을 가리기 위해 자신의 수치심을 불온한 것으로 극화하며, 단조로운 일상에 기묘한 허구를 덧붙여 사소한 내면적 고통을 고유하고 쉽사리 이해될 수 없는 것으로 변형시키려는 욕망. 소설가였던 네가 그런 욕망을 전혀 남의 일로 취급할 수는 없었다. 너는 아세팔이 블렘미에스에 쓴 글을 믿지 않았지만 그 욕망을 이해했다. 아세팔은 괴물이 아니었다. 아세팔은 괴물을 선망하는 사람이거나 괴물과 동침하고 싶은 사람, 혹은 괴물로 변신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아세팔은 괴물이 되고 싶은 미숙하고 서투른 괴물이었다.

스무 살 무렵의 어느 새벽이었다. 너는 아세팔과 통화를 하고 있었으며 당시에는 자주 그렇게 시답잖은 잡담을 주고받으며 밤을 지새웠다. 아세팔은 어린 시절에 미친개를 끌어안다 허벅지를 물린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타액에 섞인 바이러스가 신경을 타고 두뇌로 번졌다고, 돌처럼 딱딱해진 두뇌는 머지않아 구멍이 숭숭 뚫린 채 수축하여 짓밟힌 목련처럼 거무스름해질 것이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될 거야. 아세팔이 말했다. 눈두덩이 움푹하게 들어가고 치아를 딱딱 부딪치며, 온몸의 신경 다발을 쥐어짜는 오한과 수백 개의 기포 방울처럼 터지는 살갗의 통증으로 사납게 진저리를 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미친개 때문에 미친개가 되겠지. 의사가 그랬어. 내 머릿속에 그 바이러스가 있대. 네가 나를 돌봐 줄 거야? 그리고서 킥킥거리며 농담을 했다. 걱정 마. 외로운 아이여, 외로움이 사무쳐 어디든 기대고 싶거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고 혼자 거리에서 얼어 죽으렴.

그때 네가 어떤 대답을 했더라.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들 중에는 타인을 속이려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이유 모를 불안을 남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거짓말을 지어내는 사람들도 있다. 너는 이를 아세팔에게 배웠다. 그들은 이유 없음 속의 공허를 채우는 근사한 허구가 없다면 타인에게 자신의 불안을 납득시킬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은 동정과 관심을 갈구한다. 이때 거짓말은 동정과 관심을 위한 고백의 우회로일 것이나 동정과 관심은 불안 자체를 향해 있기보다 불안의 이유를 향해 있다. 이유가 구체적이거나 보편적이라면 좋겠지만, 절망한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절망을 타인에게 납득시킬 수 없으리라 생각해 더욱 크게 절망한다. 어떤 사람들은 수치심 때문에 불안의 원인을 타인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가 없다. 말은 고통을 묘사하는 일에 무능하다. 아무리 애써도 그것을 전달할 수가 없고 결국 진단서에 적힌 병명을 말할 때에야 자신의 괴로움을 이해시킬 수 있는 처지에 놓인다. 그러나 괴로움의 실재와 괴로움을 규정하는 병명 사이에는 어떠한 개연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세팔은 솔직함이 결여되어 있었으며 아세팔 자체가 그러한 솔직함에 승복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딱해, 딱하지. 그 시절 아세팔은 자주 죽고 싶다고 말했다. 아세팔이 심드렁한 어조로 그렇게 말할 때마다 너는 놀랐고, 난데없이 정말 깜짝 놀라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다. 왜 죽고 싶은데? 그렇게 물으면 머릿속에 알람 시계가 있는데, 눈알이 불룩하게 튀어나온 뻐꾸기가 일정한 간격으로 둥지에서 뛰쳐나와 저주를 건다는 것이다. 네가 이유를 추궁하면 아세팔은 거짓말로 이유를 메우려 했을 것이다. 그렇게 이유의 세계에서 달아났을 것이다.

대학을 휴학하고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할 때쯤의 일이다. 블렘미에스에서 번개탄, 인적 없는 숲, 차량 대여 따위의 단어들을 읽었을 때 너는 아세팔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는 핸드폰이 꺼져 있다는 음성 메시지를 들었다. 너는 매장 앞의 파라솔을 철수한 뒤 카운터로 돌아왔다. 아세팔에게 한 번 더 전화를 걸었다. 새벽 두 시였다. 너는 컵라면에 물을 부은 뒤 컵라면 위에 폐기로 꺼내 놓은 삼각김밥을 올렸다.

환한 편의점 안에는 어딘가 한심할 정도로 낙천적인 멜로디가 감돌았다. 너는 카운터 안쪽의 감시 장비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모니터 화면 속에서 네가 카운터 뒤편의 의자에 앉아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는 중이었다. 순간 너는 너의 현실이 가파르게 막막해졌고 온몸을 마비시키는 저릿저릿한 긴장감을 느꼈다. 귀가 새빨개졌다. 무자비한 죽음에의 예감이 순식간에 너를 강타했고 너는 매섭게 들이치는 물보라를 얻어맞는 방파제가 되어 있었다. 얇은 빙판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듯 조마조마한 압박감이 함께였다. 깨끗한 편의점, 귓속을 맴도는 쾌활한 멜로디 속에서 운전대 앞으로 고꾸라진 아세팔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네가 있는 편의점 내부가 점차 그가 서서히 죽음의 공기를 흡입하고 있을 폐쇄된 운전석 안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고개를 숙이고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네 구부정한 뒷모습이 아세팔의 뒷모습과 겹쳐졌다.

너는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읊조린 뒤 전화를 끊었다. 이후로도 떨리는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너는 불은 컵라면을 전부 버렸다. 두 시간이 지났을 때, 너는 경찰에게 아세팔이 당시 일하고 있었던 휴게소 기숙사에 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심장이 바닥까지 내려앉듯 다행스러웠지만 너는 기가 막혔고 화가 났다. 퇴근해 정오까지 잠들었다 일어났을 때 아세팔에게 문자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며칠 전에 신비로운 체험을 했어. 나중에 블렘미에스에 써서 올릴 거야.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 그래도 내가 겪은 일은 네가 읽으면 정말 좋아할 것 같아.

마치 유서 같았던 블렘미에스의 게시물은 아세팔의 신비로운 체험을 묘사한 글의 전반부였다. 며칠 뒤 나머지 글이 올라와 절반의 조각이 맞춰진 아세팔의 신비로운 체험은 그의 실패한 자살 시도를 다루고 있었다. 아세팔은 글을 쓰기 일주일 전에 이미 자살 시도와 그 실패를 경험했던 것이다. 그 실패한 자살 시도가 사실이든 아니든 너는 아세팔에게 마음 깊이 실망했다. 사실이라면 아세팔이 그러한 무모한 일을 벌였다는 점에서, 사실이 아니라면 너를 기만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대체 왜 너는 당시에 그런 종류의 배신감을 느꼈던 걸까? 단지 네 염려와 근심을 돌려받지 못한 것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아세팔의 신비로운 체험에 대해서는 이후에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세팔에게 여러 신비로운 체험들이 있었으며 네가 그 체험들을 어떻게 가공했는지에 대한 이야기 또한.

너는 언젠가부터 블렘미에스에 올라온 게시물에서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를 구별하려 하지 않았다. 가짜들 사이에 부분적으로 진짜가 섞여 있다는 사실이야 얼마든지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그것을 알아볼 수 있다는 말인가. 진짜를 가짜로, 가짜를 진짜로 오인하면서 너는 너를 농락하는 함정 속에, 아세팔의 혼란스러운 악취미에 휘말리는 느낌이었으니까. 만연한 가짜가 진짜를 침몰시켰는데, 광대한 수면 위를 떠다니는 난파선의 잔해에서 어떻게 선박의 원래 모습과 선박이 가라앉은 장소를 추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너는 글의 내용에 무감해졌다. 블렘미에스의 글들이 진실의 조각이리라는 애초의 가정은 네 한눈팔기와 피로한 냉소 속에서 그것들 전부가 진실을 가장한 허구에 불과하다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변화는 점진적이었고 네가 아세팔과 더는 연락하지 않게 되는 기간과 일치했다. 아세팔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매번 올리는 게시물과 함께 고지했다. 지루한 일상을 비극적으로 날조하기 위한 피난처, 기분 전환, 소일거리, 여흥, 자기 위안, 처리하고 싶은 정신적 찌꺼기들을 배출하는 놀이터. 너는 블렘미에스의 성격에 대해 그런 결론을 내렸다. 생애 내내 그런 유희를 실천했다는 점에서 아세팔은 천부적인 시인이었다. 그러나 아세팔은 너처럼 작가가 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둘만을 상대로 하는 공연이었다. 블렘미에스의 글들은 과격하고 가학적이었기에 더욱 조잡한 가면처럼 보였다. 너는 개입하지도 반응하지도 않는 방식으로 거기 적힌 내용이 위악적인 거짓일 뿐임을 판결했다. 그런데 너는 진실과 거짓의 구분을 포기한 다음에도 왜 계속해서 블렘미에스를 염탐했던 걸까?

〈양치기 소년〉의 결말을 재서술할 때가 되었다. 늑대에게 양들이 잡아먹힌 뒤, 마을 사람들은 양들을 잃은 채 시름에 빠진 양치기 소년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했다. 네가 우리를 속이지 않았다면 네 외침을 믿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미안하게 되었구나. 양치기 소년이 대답했다. 제가 거짓말을 했던 이유도 당신들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인걸요. 제가 당신들의 선의를 믿지 못했기에 당신들을 시험했고, 제가 드디어 당신들을 믿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당신들은 제 믿음을 참담하게 배반했던 거예요. 그러니 당신들은 단 한 번도 저를 온전히 믿어 준 적은 없었던 거예요.

마을 사람들은 양치기 소년의 시무룩한 어깨를 다독이고 마을로 내려갔다. 양치기 소년은 양들의 유령을 돌보며 뒷동산을 배회했다. 아무도 소집하지 못할 거짓말, 양이 없어졌음에도 늑대가 나타났다는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계속했다. 함성이 마을에 메아리쳤다. 양치기 소년의 울부짖음이 마을 사람들을 책망하는 듯했고, 그것은 마을로 늑대를 부르는 소리처럼, 양치기 소년의 고독이 늑대가 되어 포효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리고 정말로 마을에 늑대가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은 같은 마음으로 똘똘 뭉쳐 늑대를 물리쳤다. 양치기 소년의 목소리도 그제야 잠잠해졌다. 누구도 양치기 소년이 어디로 떠났는지 알지 못했다.

 

4

 

너는 정오가 되어서야 잠에서 깬다. 눈을 껌뻑거리며 식탁으로 나온다. 햇볕을 머금은 베란다가 눈부시다. 거실에 내놓은 빨래 거치대로 버석버석하게 마른 수건 몇 장이 햇볕을 받고 있다. 너는 식탁에 놓인 맥주 캔 몇 개를 구겨 비닐봉지에 담는다. 미풍이 부드럽게 너를 어루만진다. 너는 어머니의 집에 있다. 나는 어머니의 집에 있어. 너는 네가 어머니에 집에 있다는 문장을 머릿속으로 암송한다. 그것을 실감하기 위한 문장일 텐데, 문장이 거듭 쌓일수록 실감이 퇴화한다. 너는 언어와 실감 사이에 자석의 양쪽 극처럼 서로를 밀어내는 반발감이 있지 않나 의심한다. 어머니의 집에 있다는 사실이 생경하기 때문에 너는 어머니의 집에 있다는 문장을 머릿속으로 암송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너는 암송이 지긋지긋하다. 너는 기침을 하고, 기침이 잦아들자 허전한 적막 가운데서 네 가슴이 황량하게 비어 있는 것 같다. 그늘진 식탁에서 정면으로 마주하는 베란다의 채광이 실체 없는 홀로그램처럼 느껴진다. 네 시야로 환하고 새파랗게 들어앉은 창공이 나풀거리는 면포처럼 주름져 일렁인다. 실체의 세계에서 환영의 세계로 물러나는 풍경, 건드릴 수 없는 풍경이다. 풍경이 납작해진다. 해상도가 지나치게 높아진 풍경이 모니터 스크린 속의 사진 한 장으로 변질된 듯하다. 너는 마취된 것만 같다. 너는 뻑뻑한 눈두덩을 손가락으로 지압한다.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을 때 너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에 연연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한 조율에 문제가 생겼을 때, 비현실적인 풍경이 줄 끊어진 방패연처럼 멀어지고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너는 너를 추월하는 세상으로부터 뒤처지고 있다는 이물감에 사로잡힌다. 간극은 판판한 유리로 되어 있고 너는 손자국을 덕지덕지 묻히며 그 투명한 유리를 더듬는다. 스위치를 눌러 풍경을 꺼버릴 수도 있고 돌멩이를 던져 스크린을 깨뜨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안으로 들어설 수는 없다. 외로움이라는 못된 문지기가 그것만을 허락하지 않는다. 실내를 채우는 평화로움과 거실로 나른하게 뻗어 드는 햇살 따위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환영을 영사하는 두뇌의 환각에 불과한 것 같다. 따라서 창밖을 응시하는 너 또한 허깨비일 것이다. 너는 예전에 자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었으나 이제는 존재가 희박해져 자신의 실체를 어딘가에 구걸하거나 의지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 같다.

그때마다 너는 네가 어머니의 집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머니의 집에 있어. 그리고 어머니가 기르던 늙은 개를 잃어버렸어. 이 문장은 네 비존재의 자막인 것이다.

어머니의 시신은 이곳에 사흘 동안이나 웅크려 있었어. 너는 생각한다.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출근하기 위해 외출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 바닥으로 쓰러졌다. 어머니의 심장이 멎었다. 그때 못쓰는 낑낑거리며 그녀의 목덜미를 핥고 있었을까. 어머니가 삼시 세끼를 차리던 병원 식당의 영양사가 비상 연락망에 기재된 네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다. 너는 학원 파트타임 수업을 마치고 저녁이 돼서야 어머니의 집을 찾았다.

어머니는 네가 이사를 나간 뒤에도 도어 록 비밀번호를 변경하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현관으로 들어설 때 너는 너를 쓰다듬는 차가운 손길을 느꼈다. 살갗에 닿은 그녀의 마지막 기척이 틀림없었고, 너는 그 서늘한 기척이 사흘 동안이나 너를 기다리며 텅 빈 집에 옴짝달싹하지 않고 고여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구급대에 연락한 다음 어머니를 흔들고 깨우고 쓰다듬으며 어머니의 생명이 거세게 고동치며 펌프질을 하는 네 핏속에 있는 것처럼 무릎을 꿇은 채 오열했다.

울음이 그치자 너는 그녀를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눈동자 속의 물독이 넘칠 듯 찰랑거렸다. 주인 없는 시선은 먹먹한 몽유 상태를 헤매며 어머니의 영정 사진 앞으로, 염을 하는 어두침침한 조명등 아래로 이동했다. 화장장 유리창 너머의 불꽃으로, 봉안당에 안치된 골분 항아리로 떠밀렸다. 너는 들이닥치는 절차의 흐름을 만류할 수 없었다. 네가 상주였음에도 그 신속한 절차가 어머니를 어딘가로 납치하는 것만 같았다. 조문객은 적었다. 네 친구 대여섯 명과 어머니의 직장 동료 몇 사람, 십여 년 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외삼촌 가족이 찾아와 절을 했다. 장례를 치르는 와중에도 간간이 찾아오던 감정의 휴지가, 멍한 유예가 있었다. 너는 올 것이 왔다는 문장을 머릿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머니의 죽음이 미리부터 예고되어 있었다는 사실, 네가 그러한 미래로부터 시선을 피하려 했다는 사실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사흘 동안이나 쓰러져 있었던 어머니는 네가 집을 나오고 나서부터 줄곧 네 시야의 가장자리에 있었다. 곁눈질하면 너는 그런 미래의 그림자를 목격할 수 있었다. 네게는 이렇듯 고질적인 부인의 구조가 있었다. 너는 언젠가 네가 반드시 돌이킬 수 없게 된 어머니를 돌려받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것은 사실이 되었다. 어머니에게 사죄하고 마음 깊이 후회하게 되리라고 상상했으며 그것 또한 사실이 되었다. 이러한 상상은 훗날 너를 덮칠 쓰라린 과오의 대가로부터 너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으나 현실은 상상으로 길들일 수 있는 짐승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너는 어머니를 상상했다. 퇴근한 뒤 어스름한 식탁에서 저녁을 먹는 어머니의 녹초가 된 허기를 상상했다. 이사한 원룸이 좁아 본가에 책을 반이나 넘게 두고 가야 했다. 너는 낡고 헤진 책들, 평생 책에 무관심한 인생을 살았던 어머니가 매캐하고 텁텁한 냄새를 풍기는 네 책들을 짊어지고 혼자 잠드는 광경 속의 짓눌린 어둠을 상상했다. 어머니가 살아 있었을 때 그녀에 관한 무서운 상상들은 전부 미래에 있었고 네 시야의 가장자리에 있었다. 이제 그 상상들은 전부 과거에 있었고 네 눈앞에 있었다. 온갖 살림살이가 어머니의 손길을 오래 탔던 유품이나 마찬가지였다.

작가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너는 본가에서 살고 있었다. 직장을 퇴사한 너는 오기를 부리며 밤새 소설을 쓰거나 책을 읽었다. 주말에는 콜센터 아르바이트를 나갔으며 돈이 바닥나면 대리운전으로 용돈을 벌었다. 어머니는 네가 비좁은 방에서 풀이 죽은 채 허송세월하며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의무에서 등을 돌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너는 최선을 다해 네가 대체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를 설득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을 설득하는 네 이야기가 천문학이나 고고학에 관한 이야기처럼 난해하게 들릴 것만 같았고, 네가 몰두하는 일이 그녀에게는 네안데르탈인이나 천왕성에 관한 강의처럼 무의미하게 들릴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너는 어머니를 설득하기 전에 네 기대를 단념했다. 그즈음 너는 네 존재의 난해함과 무의미함을 긍정하기 위한 서술의 희한한 기예들을 연마하는 일에 골몰했다. 네 책들은 허공에 발판을 만들고 기이한 건축물을 짓는 줄타기 곡예사처럼 그런 무익한 작업들에 한동안 열성적이었다. 그러나 너는 그러한 난해함과 무의미함을 실제로 무릅쓰지도 너를 해명하기 위해 어머니와 다투지도 않았다. 그저 어느 날 어머니의 집을 나왔을 뿐이다.

너는 어머니가 너를 그리워할뿐더러 마땅한 직업도 없이 단기적인 돈벌이를 전전하는 너를 불쌍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때 너는 어머니의 연민이 너를 폄하하는 것처럼 부당하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죽기 몇 해 전부터 세상이 망하리라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어머니는 정부 요직을 장악한 공산주의자들과 배후에 있는 정체불명의 권력 집단이 국가의 미래를 파멸로 이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런 조악한 음모론이 담긴 유튜브 영상과 인터넷 게시물을 새해 인사와 함께 네게 첨부했다. 시위에 참여한 자신을 찍어 보냈는데, 너는 성조기와 태극기로 요란스러운 단체 사진에서 다소곳이 양손을 모으고 수줍게 미소를 짓고 있는 어머니를 목격했으나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대꾸하지 않은 카톡 메시지들 사이에서 그녀는 말했다. 곧 큰일이 벌어질 거야. 그런 생각이 들어. 지금이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네게도 세상이 망하리라는 예감이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시나리오와는 달랐다.

너는 장례 비용과 봉안당의 자릿세를 지불했다. 임대 아파트의 보증금과 그다지 많지 않은 금액이 예치된 적금 통장을 물려받았다. 어머니의 생명을 판매한 돈으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기분이었다. 네가 상심한 채 어머니의 집에 매달려 있던 겨울,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진화되지 않은 산불에 대한 뉴스가 나왔다. 몰락한 세상에 대한 떠들썩한 통보가 함께였다. 드론으로 촬영한 동영상 속에서 난폭한 화마에 잠식된 남도의 산지가 외계의 행성처럼 붉게 울렁거렸다. 매연과 탄흔으로 아수라장인 대기 속으로 웅장한 황금색 대불이 우뚝 서서 사찰까지 엄습하는 불꽃을 잠재웠다. 스크롤을 넘기면 나타나는 다음 사진 속에서, 화마의 장엄에 굴복한 대불은 새카맣게 그을린 채 잿더미에 점령된 삭막한 산지를 지탱하는 흉측한 기념비로 변해 있었다.

불의 요사스러운 혓바닥이 거대한 대불의 높이까지 기어 올라갔던 모양이다. 일그러져 얼굴이 울퉁불퉁해진 대불은 잿더미가 된 어머니의 예감 속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이르게 종말에 다다른 것처럼. 남베트남의 승려 틱꽝득은 정권이 불교를 탄압하던 시기 이에 저항하며 사이공 거리에서 분신했다. 그는 너울거리는 화염 속에 미동도 비명도 없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결연한 인내심과 성스러운 자비심 속에서 불을 버텼고, 피어나는 화염을 감내하는 검은 실루엣은 불당에서 좌선할 때처럼 흐트러짐이 없었다. 정부에서는 틱꽝득의 소신공양을 바비큐 쇼에 비유했다. 같은 날 청사의 만찬장에서 암퇘지 몇 마리를 불태웠다.

틱꽝득의 분신을 계기로 사이공 거리 곳곳에서 대규모의 시위가 발생했다. 틱꽝득은 단아하고 신실한 열망과 생애 내내 수양했던 열반의 극기를 연꽃처럼 동그랗게 말린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 있었을 것이다. 산지를 삼키던 화마는 세계에 항의하거나 이타적인 헌신을 위해 타오르는 불꽃도 아니었다. 불은 밀면 밀리는 대로 사찰과 짐승과 둥지와 민가를 태우며 산등성이를 건너갔다. 불이 꺼질 때까지 보름이 걸렸다고 했다. 불은 닥치는 대로였고 걷잡을 수 없었으며 게걸스럽게 주변을 먹어 치웠다.

 

5

 

서둘러야 한다. 너는 지하철에서 하차한 뒤 출구로 이어진 계단을 오른다. 아세팔이 인파에 부대끼며 역전으로 나왔을 때 찬바람이 매섭게 불어닥친다. 너는 구글 지도를 확대한다. 너는 봄의 초입에 있고 아세팔은 한겨울의 성탄 전야에 있으며 넘실거리는 벚나무 위로 꽃잎들이 화사하게 북적거린다. 맑은 겨울밤, 크리스마스를 맞아 밤거리의 앙상한 가로수마다 은빛으로 발광하는 광섬유 그물이 걸려 있다. 도보 왼쪽에는 떡볶이를 판매하는 포장마차들이 늘어서고 오른쪽에는 화장품 숍과 카페가 이어진다. 신발을 파는 매장 입구의 스피커에서 경쾌한 음악 소리가 꽝꽝거린다.

너는 빌딩과 빌딩 사이의 지저분한 너구리 굴에 들어가 담배를 피운다. 오랜만에 외출한 탓에 줄곧 허둥지둥하는 느낌이 든다. 롱 패딩 차림의 아세팔은 네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빌딩과 빌딩 사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무심하게 지나친다. 아세팔은 철제 바퀴가 찰캉거리는 작은 카트를 끌고 있다. 입김이 공중으로 새하얗게 말려 올라간다. 시간은 정오이고 약간 더운 듯하다. 너는 옥스퍼드 셔츠를 벗어 팔에 걸친다. 골목마다 사람들이 붐빈다. 뭉클한 활기가 흩뿌려진 대로에서 캐럴이 울리고 사람들이 저마다 엇갈린 방향으로 교차한다.

돌풍이 불자 떠다니던 불빛들이 휘갈겨진다. 아세팔은 수상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양쪽 귀가 축 처진 당나귀 모양의 복면을 쓰고 있는데도 그렇다. 성탄 전야의 밤거리에는 산타나 천사나 동물 분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성경에서 수다쟁이인 신은 시도 때도 없이 천사들을 파견해 인간에게 말을 건다. 간혹 동물의 입으로 말하는데, 민수기에는 당나귀의 입을 빌린 신에 관한 우화가 나온다. 아세팔은 지하철역 출구에서 당나귀 모양의 복면을 뒤집어썼을 것이다. 출렁이는 카트 위로 뚜껑이 빨간색인 플라스틱 기름통이 놓여 있다. 수런거리고 날카롭게 튀어 오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지러이 반죽된 채 귓가를 왕래한다. 당나귀 복면은 실제의 당나귀가 아니라 윙크하고 콧물을 흘리며 푸르릉거리는 바보스러운 당나귀 캐릭터에 가깝다. 카트가 보도블록의 깨진 홈에 걸려 덜그럭거린다. 아세팔이 주춤거리자 뒤따르던 코스프레 천사들이 두 쪽으로 갈라진다.

너는 대로 가장자리에서 댄스 공연을 하는 학생들을 바라본다. 네 걸음걸이를 유예하기 위해서다. H공원 앞 사거리까지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15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했다. 너는 이미 한 시간 정도를 정처 없이 우회했고, 네가 무엇 때문에 이곳까지 왔는지를 상기할 때면 왔던 길을 돌아갔다. 네가 지름길에서 이탈할 때마다 구글 지도는 H공원으로 가는 경로를 수정해 네게 알린다. 끝없이 분열하는 최단 거리들. 아세팔은 지하철역에서 H공원 앞 광장까지 주저하지 않고 나아갔을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호리호리한 장신이었던 아세팔은 바다코끼리처럼 뚱뚱하며 몸집이 크다. 아세팔이 뒤뚱거리고, 무릎 통증을 앓는 그가 호흡을 고르기 위해 멈춰 서면 순조로웠던 인파의 흐름에 미약한 소용돌이가 생긴다. 물론 대로를 휩쓰는 인파 사이에서 그는 조그맣게 불거진 암초에 지나지 않는다. 아세팔은 호주머니 속의 라이터를 조몰락거린다.

너는 아세팔의 걸음을 늦추고 싶다. 너는 너를 보류하고 싶다. 그래서 일관되게 길을 잘못 들어서는데, 이때까지는 누구도 아세팔이 저지를 사건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H공원 앞으로 지정된 구글 지도가 네 탈선에 호응하듯 목적지로 향하는 닫힌 무한을 갱신한다. 민수기의 신은 당나귀 복면을 쓰고 있다. 천사가 칼을 치켜들고 길 앞에 서 있었다고 한다. 당나귀가 먼저 천사를 알아보고 길에서 벗어나 가장자리의 포도밭으로 들어갔다. 당나귀를 부리던 예언자가 길을 돌이키기 위해 옴짝달싹하지 않는 당나귀를 채찍질했다. 이번에 천사는 포도밭으로 진입하는 소로에 칼을 들고 서 있었다. 양쪽에 담장이 있었고, 당나귀는 담장 쪽으로 비켜서며 예언자가 앞서지 못하도록 그의 발을 밟았다. 당나귀의 기행에 화가 난 예언자는 다시 당나귀를 채찍질했다.

마지막으로 천사는 피할 데 없는 좁은 길로 다가왔다. 당나귀는 천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가만히, 결연하면서도 착실하게 뻗대고 있었다. 예언자가 들고 있던 지팡이로 말을 듣지 않는 당나귀의 머리를 후려쳤다. 신은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위축된 채 몰매를 맞는 당나귀의 입을 빌려 말했다. 제가 대체 당신에게 무슨 짓을 했길래 저를 이렇게 세 번이나 때리는 겁니까? 예언자가 대답했다. 네가 나를 거역했으니까지. 되바라지고 쓸모없는 녀석. 내게 칼이 있었다면 당장 네 목을 쳤을 거야. 신이 대답했다. 저는 당신이 평생 동안 탔던 당나귀가 아닌가요. 제가 언제 당신의 말을 듣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요?

이윽고 예언자의 눈이 뜨였다. 예언자는 천사를 알아보고 머리를 숙이며 바닥에 엎드렸다. 천사가 예언자를 꾸짖었다. 네 앞길이 사악하여 신께서 나를 보내 네 앞길에 칼을 들고 서 있게 하였다. 당나귀만이 나의 경고를 먼저 알아보고 너를 다른 길로 이끌려 하였으나 너는 그런 당나귀를 세 번이나 때렸다. 네가 억지로 지나치기라도 했다면 소리 없이 다가가 칼로 네 목을 쳤을 것이다. 상점가에는 문을 열지 않은 술집 간판들이 퇴락한 조각보처럼 산만하게 널려 있다. 양지바른 카페 마당의 테이블에 손님들이 모여 앉아 한가로운 길거리를 구경한다. 너는 네가 우연하게 나아가는 길목마다 칼을 들고 서 있을 천사들을 떠올린다. 너는 골목길을 선회하다 후미진 모퉁이에 있는 칼국숫집에 들어간다. 식탁에 반투명한 비닐 식탁보가 깔려 있다. 너는 칼국수를 먹는다. 표면에 밀착된 비닐 안쪽의 공기 방울들을 손가락으로 훑어 식탁 가장자리로 내보내는 놀이를 한다. 너는 식당을 나온다.

아세팔은 너보다 먼저 H공원 앞 사거리에 다다른다. 너는 아세팔이 사망한 장소를 실제로 답사하기 위해 외출했지만 어쭙잖은 탐정 놀이를 하는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출애굽기에서 당나귀는 신성한 제단 위에 올릴 수 없는 부정하고 천한 짐승으로 간주된다. 신은 태어난 모든 가축의 첫 번째 새끼를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지만 당나귀의 첫 새끼만은 거부한다. 탄생한 당나귀의 죄를 정화하기 위해 정결한 새끼 양을 당나귀 대신 도살하라고까지 말한다. 제단에서 목이 잘리는 양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때 인간은 신이 꺼림칙한 존재로 규정한 당나귀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는 셈이다. 훗날 예수는 마차나 수레가 아니라 당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한다.

곁다리에서 곁다리로 헛디디며 갈팡질팡하는 이러한 생각의 궤적도 아세팔이 불타는 장소로 향하지 않기 위한 것일까? 발길 닿는 대로 내닫다 길을 잃어버린 너를 발견하기 위해. 하지만 지도는 착실하게 너를 H공원 앞으로 안내한다. 너는 이미 시간을 꽤나 많이 허비했다. 너는 갑작스레 거의 뛰다시피 하여 H공원 앞에 도착한다. 얼굴이 터질 듯이 달아오른다.

포근한 대기, 봄볕이 살뜰하게 내리쬐는 작은 공원 안으로 유순하게 유아차를 밀고 다니는 가족들이 있으며 마실을 나온 할머니들이 어깨를 붙이고 벤치 위에 앉아 조잘거린다. 연인들이 무성한 꽃나무 아래를 서성거리며 사진을 찍는다. 꽃잎들이 살갑게 흩날린다. 아세팔은 공원 외곽의 울타리를 따라간다. 너는 짐을 운반하는 당나귀처럼 굽은 목으로 어기적거리듯 아세팔을 추적한다. 당나귀를 부리는 예언자도 없는데, 한 줄의 맹목적인 경로를 제외한 모든 샛길에 엄격한 천사들이 칼을 치켜들고 서 있는 듯하다. H공원 안으로 푸른 번개를 닮은, 자잘하게 쪼개진 불빛들이 오밀조밀하게 수놓인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다. 칼바람에 뺨이 붉어진 아세팔은 벤치에 앉아 외투에 머리를 파묻고 눈앞의 푸른 번개를 우러러본다. 귓전에서 쓸쓸하게 딸랑거리는 종소리를 듣는다.

살갗으로 엄습할 불꽃을 상상하던 그가 짤막하게 몸서리를 친다. 산소가 희박하고 기온이 냉랭한, 짙은 안개에 에워싸인 높다란 봉우리에 다다른 것처럼 아연한 고립감이 아세팔을 덮친다. 아세팔은 꼭대기의 황금 별을 향해 눈을 부라린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발이 시리고 배가 고프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단팥빵을 꺼내 포장지 비닐을 벗긴다. 움켜쥔 단팥빵을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해치운다. 황량한 고립감 속에서 다급했던 그의 강박 관념이 점차 잦아든다. 아세팔은 양팔로 몸통을 껴안고 웅크린다. 이토록 철저하게 버려졌다면 죽음조차 자신이 틀어박힌 육중한 고독을 허물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고, 무모했던 죽음의 계획마저 변덕스러운 삶의 충동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두터운 파카 차림의 행인들이 팔짱을 낀 채 그의 곁을 쏜살같이 지나간다. 유치한 디자인의 구리 방울들과 할로겐 조명이 그의 키보다 높은 그물에 매달려 번쩍거린다. 아세팔은 자신을 놓아주지 않던 환상적인 열정에서 해방될 것이다. 당나귀 복면을 벗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서두를 것이다.

그러나 아세팔은 사건이 벌어진 사거리를 향해 곧장 전진한다.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칼을 치켜든 천사가 그를 노려보고 있기 때문이다. 정정할 수 없는 운명의 화살을 지키는 천사. 그의 삶을 지속시킬 수도 있었을 모든 샛길이 직선으로 올곧게 날아가는 화살의 조준점인 눈먼 동공 속으로 일제히 집결한다. 예언자의 목이 떨어진다. 너는 사거리에서 숨을 헐떡거린다. 수업에 지각해 부랴부랴 교문을 통과하는 학생처럼, 토끼몰이를 당하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도주하다 막다른 벽과 마주친 셈이다. 너는 별안간 등을 돌려 덤벼들 준비를 하듯 네 목을 치려는 천사를 노려본다. 아세팔이 지퍼를 내린다. 구겨진 롱 패딩이 아스팔트 위로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너는 사거리를 배회하며 그을린 자국을 찾고 있다. 바닥은 쌀쌀맞고 새카맣다. 행인들이 아스팔트 바닥으로 아른거리는 네 그림자 속을 넘나든다. 수색한다고 믿고는 있지만 결국 얼쩡거리는 것에 불과하다. 질 나쁜 코미디 같다. 아스팔트 바닥에는 미세한 크랙과 얼룩이 듬성듬성하지만 그뿐이다. 행인들이 너를 곁눈질한다. 너는 장소를 절개하고 싶다. 풍경을 양손으로 잡아 뜯으면 이면의 난폭한 공간이 드러날 것이다. 어린 시절 가죽 소파를 찢었을 때 갈라진 틈새로 솟아나던 샛노란 스펀지처럼. 광채가 비치는 틈새에 고개를 기울이면, 검붉은 분화구 안쪽으로 아세팔의 노골적인 절규가 펄펄 끓고 있을지도 모른다. 풍경의 심연에 불타는 태양이 처박혀 있을 것이다. 너는 천사가 아니다. 그러나 네게도 풍경의 불안을 개복할 칼날이 필요한 것이다.

너는 핸드폰을 꺼낸다. 지도를 닫은 다음 구글 검색창에 단어 몇 개를 입력한다. 손가락을 세 번 정도 두들기자 아세팔의 분신 현장을 녹화한 영상이 나온다. 너는 재생 버튼을 누른다. 당나귀 머리 뒤쪽으로 편의점과 인형 뽑기 가게가 있다. 프레임 바깥으로 서너 걸음, 혹은 그보다도 적게. 너는 거기 있다. 행인들이 네 시야를 쉬지 않고 지나친다. 너는 기억의 치안을 관리하는 천사가 되어 인파의 흐름을 중단하고 싶다. 하얀 반팔 차림의 아세팔이 무릎을 꿇고 있다. 환한 배후로 오렌지빛 조명들이 난립한다. 당나귀 머리가 목 위로 쑥쑥 뽑히며 흔들흔들한다.

영상의 화질은 좋지 않다. 끄덕거리는 머리가 상점가의 조명들 속으로 으깨어진다. 누덕누덕한 픽셀들이 첨벙거리는 진흙탕처럼 서로 뒤섞여 곤죽이 된다. 아세팔은 정면의 카메라와 마주한 채 손뼉을 친다. 몇 사람이 아세팔을 무신경하게 돌아본다. 아세팔은 주먹으로 얼어붙은 바닥을 거칠게 내리친다. 영문 모를 행동에 열중하는 광인이나 다를 바가 없다. 자연스레 그의 주위로 원형의 무대가 만들어진다. 무대는 행인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당나귀 머리를 피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확장된다. 아세팔은 수신호를 하고 광분한 채 깍지 낀 손을 뒤흔든다.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도록 제지하기 위한 몸짓이다. 아세팔은 영상의 관객들에게 자신을 인증한다. 바지 뒷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종이를 꺼내 읽기 시작한다.

 

라이터를 당기는 짤막한 순간을 상상할 때면 놀라운 자부심과 안도감이 샘솟았다.

나는 원시의 불 속에서 구워지는 병든 원숭이다.

번제의 불, 희생의 불이다.

나는 축제의 몸 없는 몸, 도살된 내 육신을 먹이로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미칠 듯한 향락이다.

나는 모든 이를 처벌할 수 있는 능력이자 모든 이를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나는 내 친구에게 보복할 수 있는 칼, 내 원수에게 헌신할 수 있는 빵이다.

 

나는 내가 아니라 내 몸에 불을 끼얹을 수 있는 능력이다.

나는 불능의 장작이자 불의 집정관,

화형식의 죄수이자 화형을 집행하는 제사장이다.

내게는 나를 불태울 수 있는 긍지가 남아 있었고 누구도 그것을 말살할 수는 없었던 거다.

아무도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고 말해 주지 않았다.

 

나는 웃는 불꽃이다.

내 몸이었던 피와 똥이 재가 되리니.

나는 희생자였고, 희생자였던 운명에 저항하기 위해 너무 고달프게 인생을 허비했던 것 같다.

신병을 앓는 자는 신을 받들게 되고,

제물이었던 자는 자기 가슴에 칼을 꽂게 된다고 하더라.

 

그걸 몰랐던 거다.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 빌어먹을 몸뚱이는 이 세상을 속죄하고 탄핵하기 위해 쓰일 거다.

나는 쓰레기가 아니다.

나는 쓰레기를 소각하는 바로 그 불꽃이다.

 

내가 순순히 뒤질 줄로만 알고 있었겠지?

원한과 억울함, 소외감과 열등감에 시달리는 불운한 병자로 생을 마감할 줄 알고 있었을 거다.

배척된 자는 기름 부은 자이니,

나는 나를 연소해 억지로라도 성스러운 땔감으로 변신할 각오를 하고 있다.

 

내 고통은 아마 흥행하고 불티나게 팔릴 거다.

나는 유명해질 거야.

거기에 내가 없겠지.

나는 사람들의 눈동자에 불을 각인하고, 나를 모욕한 자들의 영혼에 지우지 못할 손톱자국을 남길 거다.

그들의 죄 속에 그들의 악을 짊어지고 불구덩이로 들어간 내가 영원히 보관될 거다.

 

추신: 제 분신 쇼를 구경하고 싶으면 돈을 입금하세요. 날짜는 크리스마스 전야. 아래에 계좌 번호를 남깁니다.

빨리.

빨리.

저를 도와주세요.

 

아세팔이 죽기 1년 전쯤부터 활동했던 온라인 커뮤니티의 게시판에는 이와 같은 내용의 글이 수십 개나 올라와 있었다. 하단에는 아세팔의 본명과 계좌 번호가 적혔다. 영상 속의 목소리는 왁자지껄한 웅성거림 속으로 익사해 들리지 않는다. 네가 아세팔이 그 게시물을 낭독하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따라서 그의 호소는 영상에 덮어씌운 너의 자막인 것이다.

아세팔은 손을 떨며 왼쪽에 놓인 기름통의 뚜껑을 연다. 여전히 행인들은 그를 주목하지 않는다. 당나귀 머리가 공중으로 젖혀진다. 온몸을 씰룩거린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른다. 너는 누군가 뛰어들어 그의 행동을 제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팔을 당겨 일으켜 세우라. 그의 뺨을 내리쳐라. 휘발유가 철퍼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뚱이로 엎질러진다. 행인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몇몇 사람들은 코를 찌르는 휘발유 냄새, 넋이 나간 뚱뚱한 남자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흥건하게 젖어 번들거리는 그의 처참한 용모를 바라보며 본능적으로 사태를 파악한다. 뒤따를 재앙보다 먼저 탄성을 지른다. 막힌 둑이 허물어지듯 범람하는 소란스러움 속에서 아세팔이 호주머니 속의 라이터를 당긴다. 불길이 치솟는다. 아세팔이 손발을 휘두른다. 피어나는 연기가 화면 안을 잠식한다. 아세팔은 뒤로 자빠진다. 몸부림을 치고 펄떡거리며 불꽃 속에서 좌충우돌한다. 행인들이 소리치고 껑충거리며 발을 구른다. 몇몇 사람들이 다가서지만 잦아들지 않은 화염에 가로막힌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발을 동동거린다. 눈물이 난다. 달려온 누군가가 소화기를 들고 화염 쪽으로 노즐을 겨냥한다. 불꽃 속의 검은 음영은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

하얀 분말이 사방으로 분사된다. 백색의 너울거리는 폭풍, 자욱한 연기 속에서 석회 가루가 새빨간 불의 아가리를 틀어막는다. 불길과 백색의 분말이 뒤엉켜 회오리친다. 아세팔의 몸뚱이가 저곳에 누워 있다. 네가 있는 여기에. 아세팔은 흑백의 농담으로 덧칠된 검은 덩어리가 되어 있다. 너는 영상을 종료한다. 너는 비틀거리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은 채 사거리를 벗어난다. 거기에 불타는 몸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곳에도 그 몸이 없었다. 너는 아세팔과 재회한다. 재회하지 못한다. 너는 경악한다. 다시는 경악하지 못할 정도로 경악한다.

 

6

 

1. 아세팔의 이모에게 연락을 취할 것. 메일로? 그녀에게 아세팔에 관해 들을 수 있겠지.

2. 동영상을 촬영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3. 내 소설을 뒤져 블렘미에스의 글들을 복원할 것. 가공한 이야기들의 원본. 재료 상태로 되돌리기 또는 허구를 벗겨 내고 남을 알맹이.

4. 블렘미에스의 두 번째 팔로워. 수소문할 방법이 있을까. 잘 모르겠다.

 

너는 지하철 좌석에 앉아 네가 해야 할 일들을 핸드폰 메모장에 적는다. 지하철이 덜컹거리며 대교를 통과한다. 강물 위로 햇볕의 조각들이 떠다닌다. 메모장을 닫은 너는 포털의 뉴스를 읽는다. 네가 사는 G시에서 테러 사건이 일어났다는 긴급 속보 기사가 메인에 떠 있다. 버스에서 불상의 폭발물이 터져 탑승한 승객 다섯 명과 운전기사가 사망했다는 내용이다. 너는 멍해진다. 손가락을 움직여 새로 온 메일 한 통을 읽는데, 동시에 너는 불쾌하게 쭈뼛거리는 초조함을 느낀다. 세상이 망하리라는 예감. 너를 포위하는 불의 고리.

 

선생님께.

 

선생님, 오랜만에 메일 드려요. 잘 지내셨나요? 완연한 봄입니다. 2년 전쯤 선생님 수업 들었던 마기성입니다. 그때 선생님이 조언해 주셨던 「더블Double」을 고쳐 보았는데요. 아무래도 이 소설은 완성되기 위해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했던 것 같아요. 소설이 시대를 기다렸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동안 선생님도 저도 변했겠죠. 그때 일은 치기 어린 반항심 때문이라 생각하시고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 제가 선생님 글 정말 좋아하는 거 알고 계시죠? 처음 등단하셨을 때부터요. 소설 보내드리고 직접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요. 답장 주시면 첨부하도록 하겠습니다.

건필과 문운을 빕니다. 보고 싶어요.

 

마기성 올림.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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