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럽다! 엘리자베스 처음부터 편견을 가득 품고 읽을 수밖에 없는 책 ‘오만과 편견’ 이미 많은 매체들을 통해 스토리는 알고 있었다. 오만 가득한 다아시라는 ‘재수’가 결국 편견으로 가득했던 나의 왕자님이 되는 스토리. 모든 로맨스 소설의 원류라고 일컬어지는 이야기이다. 서로를 오해하고 편견으로 미워하다가 결국 좋아하는 감정이 싹트고 결국 사랑하게 되는 결론. 심지어 남자 주인공은 왕자님. 이 소설은 읽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가지고 있는 책의 번역이 매끄럽지 않아 실패했었다. 그래도 내용은 알아야지 라는 생각에 영화로도 접했고 오래전에 방영된 BBC의 드라마까지 찾아두었다. 심지어 드라마는 좋아하는 배우 콜린퍼스가 다아시 역을 맡는다. (참고로 콜린퍼스는 이 역할로 영국에서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고 하니, 눈에 하트가 그려진다.) 하지만 긴 호흡의 드라마는 못 보는 타입이라 드라마는 아직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읽기 전부터 여자 주인공은 키이라 나이틀리(영화 속 여 주인공) 남자 주인공은 콜린퍼스로 지정되었다. 소설원작의 영화나 드라마를 본 이후 책을 읽을 때의 단점은 이미 시각화된 이미지가 머릿속에 들어있어 자유로운 상상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번역이 안 좋은 이런 소설을 읽을 때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다.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다아시에 콜린퍼스를 앉혀놓고 읽으니 그 오만 마저도 사랑스럽기만 했다. 소설의 배경이 18세기이니, 왜 이래? 하고 배경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아들이 없으면 아버지의 재산이 딸에게 상속되지 못한다는 충격. 결국 베넷가의 어머니가 그토록 천박하게 딸들의 결혼에 목매는 이유는 재산이 상속되지 못해 그녀들이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불안으로부터 비롯된 거 아니겠는가. 소설 속에서 사람들은 베넷부인을 품위 없다고 계속해서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녀가 전혀 천박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행동이나 말이 가벼운 면이 없지 않지만, 그런 사람은 세상에 널렸다. 그녀는 자신의 딸들의 행복한 미래만이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였다. 물론 그런 목표를 가지고도 고고한 품성의 사람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런 귀엽고 생각이 말과 행동에 투명하게 드러나는 사람도 나쁘지 않다. 혹으로 꿍꿍이를 가지고 음흉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더욱 천박하다 사실 모든 인간의 내면이 베넷여사와 얼마나 다르겠는가. 다들 세간의 평가를 고려해 조심하며 사는 거지. 두 번째로 소설을 읽으며 18세기 귀족들은 좋았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딱히 노동하지 않아도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여행을 다니고 아침이면 치장을 하고 저녁이면 무도회에 참석하거나 사람들을 초대해 시간을 갖는다. 뭐 이런, 호화로운 삶이 있어. 부럽다. 18세기에 태어나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귀족으로 태어나고 싶다. 잠깐 본 드라마에서 실내에서는 파티가 진행 중인데 밖에서는 더럽고 냄새날 것 같은 사람들이 진흙길에서 이게 진짜 춤이지 라며 춤을 추었다. 아마 그들은 귀족들이 데리고 온 마차꾼이거나 하인들이었겠지. 18세기에 잘못 태어나서 신분이 미천했다면 어땠을까. 아이고. 케서린 부인은 어쩌다 보니 콜린즈와 친분이 있고 그가 결혼한 이후 신혼집에 방문해서는 갖가지 충고를 한다. 신분이 높고 콜린즈의 생계와 명예에 적잖게 영향을 끼친다는 건 알겠는데 남의 집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건 아니지 않나.라는 현대적인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당시는 작은 네트워크의 사회. 인맥과 인물평 그 외등등 소문이라는 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던 사회이니 뭐, 어쩔 수 없었겠지만. 마지막에 엘리자베스에게 다아시의 청혼을 상대의 입장을 고려해 (혹은 캐서린 자신을 위해) 거절하라는 이야기를 할 때에는 이 할머니 선 세게 넘네.라는 생각을 했다. 이전에 엘리자베스는 속으로는 못마땅하면서도 그냥 넘어갔다. 딱히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할머니가 뭔데 악기를 배워라 마라에요) 하지만 결국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에 대한 캐서린할머니의 충고에는 대차게 할 말을 한다. 이 부분은 꽤 통쾌했다. 그래, 캐서린도 한 번쯤은 이런 면박을 당해봐야지. 마지막에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대화에서 다아시는 본인이 신분다운 교육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에게 자신의 오만함에 대해서는 한 번도 충고를 듣지 못하고 오히려 강화되었다는 고백을 한다. 이 고백이 다아시의 모든 행동 중 가장 매력적이었다. 본인 스스로 이제까지 자신의 삶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걸 심지어 말로 타인에게 이야기하는 용기는 쉬운 게 아니다. 혼자만 몰래 알고 싶은 본인의 부끄러운 부분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솔직히 이야기한다는 건 꽤 멋졌다. 다아시 만세. 나는 속물이다. 그래서 다아시 같은 왕자님이 나타나길 기다리다 결국 혼자 살고 있다. 생각이 통하는데 심지어 상상불가의 재산가인 남자가 나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기다려 주고 한번 더 청혼해 준다면 앗싸. 아니, 나라면 첫 번째 청혼에서 이미 고마워서 넙죽 절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다아시는 외모도 근사하게 나온다(내 안에서 그는 콜린퍼스다) 아니, 사랑에 안 빠질 수 있겠냐는 말이다. 신분 차이로 그가 나를 눈에 들이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조금 경멸하는 것 같다면 좀 소심해지고 본인의 처지가 안타깝기는 하겠지만,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가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는데, 노 땡큐를 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나는 정말 자신 없다. 당장 두 손 모으고 “네 저도요.” 할 것 같다. 다아시 내게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