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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이 ‘나’에게 어울리는지 질문해 본다. 같은 또래를 기준으로 할 때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결혼하지 않았다. 아이가 없다. 즉, 가정을 만들지 않았다. 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더 자주 나의 결정에 대해 의심하고 의문이 들었다. 과연 적절한 선택이었어? 나이가 들어도 그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괜찮겠어? 이런 두려움은 나와 비슷한 삶을 선택해 살아간 사람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된다는 인생의 미본이 없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자유를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을 준다. 삶을 여러 번 반복하고 연습해 살 수 있다면 덜 두려웠을까?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다양한 관계와 그들의 여러 선택이 녹아있는 삶을 보여준다. 그 다양성 안에서 나는 과연 누구와 어떻게 더 닮아있는가를 생각하며 읽었다. 이 책은 10년에 한 번쯤 읽게 된다. 처음 이 책을 읽은 건 21살이었고 30대에도 한 번쯤 읽은 기억이다. 그리고 40대의 중반인 지금 다시 한번 읽게 되었다. 질긴 인연의 연인 같은 느낌이다. 때 되면 한 번씩 찾아오는 지긋지긋한 전 남자 친구. 지긋지긋한데 생각하면 안쓰럽고 애잔한 마음이 들어서 다시 한번 안아주고 곧 역시, 지긋지긋해.라고 생각하게 되는 아련한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과연 토마스의 테레사에 대한 사랑은 연민일까. 연민과 동정, 사랑은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감정인가. 나에게 사랑은 측은지심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 순서는 명확하다. 사랑하게 된 대상에 대해서는 연민과 동정이 넘쳐흐르게 된다. 그렇다고 연민과 동정으로 인해 사랑을 하게 되지는 않는다. 연민과 동정이라는 큰 집합 안에 사랑은 부분집합으로 존재한다. 연민과 동정과 애정이 모두 갖추어졌을 때 그것은 사랑이 된다. 그러나 동정과 연민이 발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이 되지는 않는다 사랑에는 한 방울의 애정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토마스의 테레사에 대한 감정은 사랑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동정과 연민만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어기고, 삶의 방향성을 바꾸어버리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하지만 토마스는 그 사랑에서 크게 느껴지는 연민이라는 감정이 그가 그녀와 함께하게 된 연유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토마스는 착각하고 있다 자신이 이상하는 자신의 모습과 실존하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아도 살아가게 되는, 느껴버리는 삶에 대한 괴리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거 아닐까. 그 괴리를 메우기 위해 그는 다른 여자들을 만나며 자신이 이상하는 자신의 모습을 채운다. 그리고 본능의 자신은 테레사와 함께하며 편안함을 느낀다.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사비나였다. 그녀의 가벼움과 명확함이 좋다. 작가는 사비나의 행동들에 배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과연 적절한 단어인가. 사비나에게 있어 배신이란 ‘나로 살아감’을 의미한다 관계 맺음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사건 사고에서 상대를 배신하지 않고 상대의 뜻에 따른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는 스스로를 배신하는 행동이다. 사비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본인을 잃지 않기 위해 혹은 사비나 본인으로 살기 위해 상대를 ‘배신’하지만 그것은 본인에 대한 충실함이다. 오히려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본인의 충실함을 강요한 플란츠의 어리석은 행동에 그는 멍청함을 정직으로 가리려는 ‘키치’한 사람이라고 판단되었다. 테레사를 생각하면 답답하다. ‘사랑밖엔 난 몰라’라고 하지만 과연 그녀의 사랑은 순수한가 라는 의심을 계속해서 품게 된다. 그리고 소설의 끝에는 결국 그녀는 고백한다 토마스가 필요했던 거라고. 여성의 애정에 너그러운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레사의 어리석어서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을 인정하게 되었다. 주변에도 가끔 발견되는 테레사 같은 현실 캐릭터들이 있다. 깊은 애정결핍으로 인해 지독한 소유욕을 가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의 연애는 위험하다. 나의 경우 연애제외대상 1순위이다 (그럼에도 나도 애정결핍에 약간의 소유욕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소설 속의 테레사의 그것과 완벽히 일치한다. 대체로 조금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들은 아름다운 외모로 상대를 홀리고 그 이후엔 상대가 떠날 수 없게 계속해서 측은지심을 자극해 동정과 연민을 유발한다. 상대가 우선 외모에 반했고 선한 마음이랄까. 따뜻한 마음이랄까. 덜 냉정한 사람이라면 그들은 테레사 같은 사람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그들은 일생을 테레사 같은 사람의 안위를 위해 일신을 다 바치게 된다. (소설 혹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들 아닌가) 테레사 같은 캐릭터를 두려워하고 좋아하지 않지만, 한편으로 애정한다 그 어리석음을 빙자한 영악함 그 키치 한 모습을 나도 가지고 싶다. 물론, 가지고 있겠지만 차마 상대에게 그 마수를 뻗혔을 때의 자기혐오가 더 괴롭기에 나는 깔끔하게 상대를 버린다. 가장 언급의 가치가 없는 플란츠는 매력적인 남성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그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플란츠 같은 남자는 플란츠 같은 여자 혹은 테레사 같은 여자를 만나서 사랑했다면 행복한 삶이었을 테다. 그러나 연애의 잔인한 점은 플란츠 같은 남자는 사비나 같은 여성을 사랑하게 된다는 점이다. (참고로 비슷한 다른 연애의 불행은 토마스 같은 남자는 쉽게 테레사 같은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삶을 저당 잡힌다는 점이다) 그가 사랑하게 된 사비나가 원치도 않는 관계의 공개를 통해 스스로의 연애를 망친다. 그런데 이 불행한 연애는 플란츠가 자초했다. 그는 상대에 대한 깊은 고민과 공감이 없다. 그렇기에 상대는 원치도 않는 선택을 하고 결국 사비나가 그를 떠나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은 스스로 자처한 일이다. 이후 그의 일련의 선택과 죽음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그 답다. 진심을 궁금해하지 않고 게으른 사고를 하며 본인에 대한 고민도 상대에 대한 고민도 없는 어리석은 남자의 표본. 테레사와 플란츠가 한눈에 반하고 연애를 하게 되었다면? 토마스와 사비나가 비밀스러운 연인관계를 유지했다면, 그 이야기들은 소설이 되지 못했겠지. 테레사와 플란츠커플을 상상해 본다. 그들은 안정적인 연애를 유지할 테다. 플란츠의 자기중심적인 사랑표현이 애정결핍의 테레사에게는 적절하다. 그러나 그런 밋밋한 연애라는 건 금방 싫증 나기 마련이다. 사비나와 토마스가 계속해서 비밀스러운 연인으로 남았다면, 그들은 좋은 친구이자 연인으로 긴긴 연애를 했겠지. 확정되지 않은 관계의 불안과 은밀함이 그들의 관계의 긴장감을 유지해 서로에게 싫증 나지 않게 했을 거라 생각한다. 테레사의 토마스에 대한 사랑은 어쩌면 토마스의 그 끊임없는 바람으로 인해 더더욱 불타오르고 유지되었다고 생각한다 소유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소유욕만큼 끊임없는 욕망이 있을까. (물론 테레사는 그 소유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소유욕으로 인한 괴로움으로 그를 떠날 결심을 했지만, 과연 그거 진짜였어?라고 의심되었고 마지막 그녀의 고백에서 역시, 그녀는 그저 그의 애정으로 포장된 순종을 시험해 본 거라고 알게 된다) 마지막으로 소설의 끝에 토마스와 테레사의 모습은 가장 슬픈 연애의 결말이었다. 소진되고 늙어버린 연애의 끝은 그렇게 슬픔만이 가득 차게 되는구나라는 감각이었다. 그저 곁에만 있는 과거의 연인들 그리고 변해버린 그 감정과 감각들은 무시하고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유지되는 관계 모습이었다. 내 안에서 그것은 가장 슬픈 연애의 끝이다. 차라리 그들은 진즉 헤어져 서로를 그리워했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사랑에는 일말의 동정을 하게 되었을 텐데. 이 소설은 이런 애정관계를 줄거리로 가지고 있지만 그 사이사이 작가의 철학과 질문 또한 멋지다. 그 질문들에 대한 이야기로도 아마 전혀 다른 방향의 서평이 완성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즉, 여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철학적 담론들은 아직 내 안에 정리되지 않은 사항이기에 천천히 생각을 발전시키고 그 이후 느긋이 적어볼 생각이다. 다시 읽어도 역시 좋았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내용이 눈에 보인다는 게 이런 의미일까. 하고 생각하며 읽었다. 곧 다시 읽어야지 하고 늘 마음에 품고 있던 책을 이번 기회에 깊게 다시 읽을 수 있어서 책을 읽은 3주간 무척 행복했다. 내 머릿속의 일정 부분이 늘 토마스와 테레사 그리고 사비나, 플란츠로 할애되어 있었다.
참을 수 없는 그 존재들의 가벼운과 무거움 그 사이 어디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