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이달의 고전

양철북

귄터 그라스

『양철북』 & 『제5도살장』

•공통 키워드: All this happened
•비교 키워드: 기억의 회상 VS 시간 여행

귄터 그라스는 청년 시절 나치의 지배와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뒤 문학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려 했다. 커트 보니것은 드레스덴 폭격을 경험한 뒤, 포로로 잡혀 있었던 도살장을 개조한 수용소를 작품에 담아냈다. 작품의 비현실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all this happened more or less(이 모든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대체로는)”.

 “양철북의 텍스트는 근본적으로 해석을 거부한다.” 독일의 비평가 클라우스 바겐바하는 이렇게 말했다. 양철북에 관한 수많은 해석들이 오히려 이 문장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철북 텍스트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는 방법은 이 작품을 독일의 역사와 결부시켜 이해하는 것이다.    

 소설의 배경이자 작가의 고향인 단치히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단치히 자유시가 되었다. 그 후 1939년 단치히 반환을 구실로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여 나치 독일의 지배를 받다가, 소련군에 의해 점령당하고, 종전 후에는 폴란드령으로 귀속되었다. 종전 전까지 주민의 대부분이 독일인이었으나 종전 후 독일인은 모두 추방되었다. 그라스는 독일인, 폴란드인, 카슈바이인 등 여러 민족과 문화, 종교가 공존하고, 정치적으로 매우 복잡한 상황에 얽혀있던 이 도시에서의 삶을 양철북에 그대로 그려냈던 것이다.     

 1부에서 주인공 오스카는 정신 병원에 수감된 상태로, 일종의 수기를 작성하려고 한다. 오스카는 자신의 생애를 서술하기 위해 할머니 대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할머니 안나 브론스키는 1899년 카슈바이의 감자밭에서 폴란드 민족운동가인 방화범 콜야이체크를 만나 딸 아그네스를 낳는다. 오스카는 1924년 단치히에서 태어나는데, 법률상의 아버지 마체라트를 친부로 인정하지 않고, 어머니의 사촌이자 애인인 얀 브론스키가 자신의 진짜 아버지일 것으로 생각한다. 아그네스-마체라트-얀 세 사람은 각각 카슈바이, 독일, 폴란드를 상징하며, 당대의 역사적 사실과 인물의 운명이 궤를 같이하고 있다. 

 주인공 오스카는 세 살이 되자 더 이상 성장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의도적으로 성장을 중단한다. 오스카는 94cm의 난쟁이로 살아가면서 양철북을 연주한다. 오스카가 성장을 멈춘 모습은 당대 소시민 계층이 나치 이데올로기로 전락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부에서는 오스카 가족의 삶과 나치의 등장을 보여주며, 나치스 돌격대와 독일인들이 유대인 상점과 시나고그를 공격한 ‘수정의 밤’까지를 다루고 있다. 

 2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다. 얀은 단치히 폴란드 우체국 방어전으로 사망하고, 나치 당원이던 마체라트는 러시아군이 단치히를 점령한 후 나치의 배지를 목에 삼킨 채 살해된다. 오스카는 마체라트의 장례식에서 자신의 양철북을 묻고 다시 성장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마체라트와 재혼한 마리아와 자신이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쿠르트와 함께 화물열차를 타고 서독으로 가게된다. 오스카는 이 열차 안에서 등에 혹이 생기고 121cm까지 자라게 되는데, 나치 치하에서 역사의식을 가지지 못했던 소시민 계층이 간신히 성장이 멈춘 시점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3부에서는 서독에 온 오스카가 석공 생활을 하거나, 미술 대학에서 모델로 일을 하고, 나중에는 다시 양철북을 연주하여 음악가로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등에 혹이 난 난쟁이인데, 이는 전후의 서독 사회가 성찰과 반성으로 과거를 극복해 내지 못하고, 의도적으로 과거의 기억을 지우려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오스카는 무명지 사건에 휘말려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1954년 30세 생일날 수상록의 집필을 끝내면서 소설도 끝나게 된다.       

 이 소설은 귄터 그라스의 자전적 이야기로 읽힌다. 귄터 그라스는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를 통해 나치 친위대에 징집당해 복무한 사실을 뒤늦게 고백하여 논란이 되었다. 『양철북』은 전후 독일 사회의 나치 과거청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과거를 비판하여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으며, 귄터 그라스를 ‘독일 문학의 양심’으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만들어준 작품이다. 독일 과거청산 문제에 앞장선 양심적 지식인과 나치 부역자 사이의 간극에서, 독자는 통렬한 자기고백을 읽어낸다. 

 지난 일이라는 말은 랑케스의 애용어이다. 그는 세계를 대개 현재와 과거의 일로 나누곤 했다. 그러나 퇴역 중위의 인식에 따르자면, 지나 버린 일이란 없으며, 계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중에 몇 번이든 반복해 역사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

+ 오웬 미니를 위한 기도
『오웬 미니를 위한 기도(A Prayer for Owen Meany)』는 미국의 소설가 존 어빙(John Irving)의 작품으로, 양철북의 영향을 받았다. 60년대 초 비엔나 대학 연구 대학원생이었던 존 어빙은 양철북을 읽고 자신이 양철북에 나오는 드러머 오스카 마체라트(Oskar Matzerath)처럼 되고 싶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오웬 미니는 오스카 마체라트를 염두에 두고 지어진 이름이다. 이 소설은 아직 한국에 번역되지 않았다. 

+ Film
「양철북」, 폴커 쉴런도르프, 1979
136분, 컬러
독일의 감독 폴커 쉴런도르프(Volker Schlondorff)는 문학 작품을 각색한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로베르트 무질의 『소년 퇴를레스의 혼란』,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등 다양한 작품을 영화화 했으며, 그 중 「양철북」은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국제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상업적, 비평적 성공을 동시에 거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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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레미

도레미

쉽게 정의내릴 수 없는 복잡하고 난해한 소설이지만, 그만큼 강렬하고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오스카의 성장은 멈쳤지만, 그의 양철북 소리는 세상 모든 부조리에 맞서 끊임없이 울려퍼진다.

2025.02.20

2025년 2월 이달의 고전

『양철북』 & 『제5도살장』

•공통 키워드: All this happened
•비교 키워드: 기억의 회상 VS 시간 여행

귄터 그라스는 청년 시절 나치의 지배와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뒤 문학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려 했다. 커트 보니것은 드레스덴 폭격을 경험한 뒤, 포로로 잡혀 있었던 도살장을 개조한 수용소를 작품에 담아냈다. 작품의 비현실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all this happened more or less(이 모든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대체로는)”.

 “양철북의 텍스트는 근본적으로 해석을 거부한다.” 독일의 비평가 클라우스 바겐바하는 이렇게 말했다. 양철북에 관한 수많은 해석들이 오히려 이 문장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철북 텍스트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는 방법은 이 작품을 독일의 역사와 결부시켜 이해하는 것이다.    

 소설의 배경이자 작가의 고향인 단치히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단치히 자유시가 되었다. 그 후 1939년 단치히 반환을 구실로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여 나치 독일의 지배를 받다가, 소련군에 의해 점령당하고, 종전 후에는 폴란드령으로 귀속되었다. 종전 전까지 주민의 대부분이 독일인이었으나 종전 후 독일인은 모두 추방되었다. 그라스는 독일인, 폴란드인, 카슈바이인 등 여러 민족과 문화, 종교가 공존하고, 정치적으로 매우 복잡한 상황에 얽혀있던 이 도시에서의 삶을 양철북에 그대로 그려냈던 것이다.     

 1부에서 주인공 오스카는 정신 병원에 수감된 상태로, 일종의 수기를 작성하려고 한다. 오스카는 자신의 생애를 서술하기 위해 할머니 대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할머니 안나 브론스키는 1899년 카슈바이의 감자밭에서 폴란드 민족운동가인 방화범 콜야이체크를 만나 딸 아그네스를 낳는다. 오스카는 1924년 단치히에서 태어나는데, 법률상의 아버지 마체라트를 친부로 인정하지 않고, 어머니의 사촌이자 애인인 얀 브론스키가 자신의 진짜 아버지일 것으로 생각한다. 아그네스-마체라트-얀 세 사람은 각각 카슈바이, 독일, 폴란드를 상징하며, 당대의 역사적 사실과 인물의 운명이 궤를 같이하고 있다. 

 주인공 오스카는 세 살이 되자 더 이상 성장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의도적으로 성장을 중단한다. 오스카는 94cm의 난쟁이로 살아가면서 양철북을 연주한다. 오스카가 성장을 멈춘 모습은 당대 소시민 계층이 나치 이데올로기로 전락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부에서는 오스카 가족의 삶과 나치의 등장을 보여주며, 나치스 돌격대와 독일인들이 유대인 상점과 시나고그를 공격한 ‘수정의 밤’까지를 다루고 있다. 

 2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다. 얀은 단치히 폴란드 우체국 방어전으로 사망하고, 나치 당원이던 마체라트는 러시아군이 단치히를 점령한 후 나치의 배지를 목에 삼킨 채 살해된다. 오스카는 마체라트의 장례식에서 자신의 양철북을 묻고 다시 성장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마체라트와 재혼한 마리아와 자신이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쿠르트와 함께 화물열차를 타고 서독으로 가게된다. 오스카는 이 열차 안에서 등에 혹이 생기고 121cm까지 자라게 되는데, 나치 치하에서 역사의식을 가지지 못했던 소시민 계층이 간신히 성장이 멈춘 시점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3부에서는 서독에 온 오스카가 석공 생활을 하거나, 미술 대학에서 모델로 일을 하고, 나중에는 다시 양철북을 연주하여 음악가로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등에 혹이 난 난쟁이인데, 이는 전후의 서독 사회가 성찰과 반성으로 과거를 극복해 내지 못하고, 의도적으로 과거의 기억을 지우려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오스카는 무명지 사건에 휘말려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1954년 30세 생일날 수상록의 집필을 끝내면서 소설도 끝나게 된다.       

 이 소설은 귄터 그라스의 자전적 이야기로 읽힌다. 귄터 그라스는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를 통해 나치 친위대에 징집당해 복무한 사실을 뒤늦게 고백하여 논란이 되었다. 『양철북』은 전후 독일 사회의 나치 과거청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과거를 비판하여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으며, 귄터 그라스를 ‘독일 문학의 양심’으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만들어준 작품이다. 독일 과거청산 문제에 앞장선 양심적 지식인과 나치 부역자 사이의 간극에서, 독자는 통렬한 자기고백을 읽어낸다. 

 지난 일이라는 말은 랑케스의 애용어이다. 그는 세계를 대개 현재와 과거의 일로 나누곤 했다. 그러나 퇴역 중위의 인식에 따르자면, 지나 버린 일이란 없으며, 계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중에 몇 번이든 반복해 역사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

+ 오웬 미니를 위한 기도
『오웬 미니를 위한 기도(A Prayer for Owen Meany)』는 미국의 소설가 존 어빙(John Irving)의 작품으로, 양철북의 영향을 받았다. 60년대 초 비엔나 대학 연구 대학원생이었던 존 어빙은 양철북을 읽고 자신이 양철북에 나오는 드러머 오스카 마체라트(Oskar Matzerath)처럼 되고 싶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오웬 미니는 오스카 마체라트를 염두에 두고 지어진 이름이다. 이 소설은 아직 한국에 번역되지 않았다. 

+ Film
「양철북」, 폴커 쉴런도르프, 1979
136분, 컬러
독일의 감독 폴커 쉴런도르프(Volker Schlondorff)는 문학 작품을 각색한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로베르트 무질의 『소년 퇴를레스의 혼란』,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등 다양한 작품을 영화화 했으며, 그 중 「양철북」은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국제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상업적, 비평적 성공을 동시에 거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