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이달의 고전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 『금각사』

•공통 키워드: 美, 불타다
•비교 키워드: 영원한 아름다움 VS 아름다움에 대한 질투

『설국』과 『금각사』 모두 일본의 탐미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화재가 주요 사건으로 등장하는데, 『설국』의 요코는 화재로 사망하며, 죽음으로써 영원히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 『금각사』의 금각은 절대적인 미의 상징이나 질투에 휩싸인 주인공에 의해 불타고 만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설국을 여는 문장은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간다. 주인공 시마무라는 총 세 번, 이 아름다운 ‘눈의 고장’을 방문하는데, 소설은 ‘손가락으로 기억하는 여자’ 고마코를 다시 만나러 가는 시마무라가 ‘눈에 등불이 켜진 여자’ 요코를 바라보며 시작된다. 

 시마무라는 거울을 통해 두 여자를 겹쳐본다. 기차 안에서 집게손가락을 바라보며 이 손가락만은 여자의 감촉으로 젖은 채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생각하다가, 문득 그 손가락으로 유리창에 선을 긋자 거기에 건너편 좌석에 앉은 요코의 한쪽 눈이 또렷이 떠오른다. 야산의 등불이 그녀의 눈동자와 겹쳐질 때, 요코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으로 묘사된다. 

  고마코(駒子)는 망아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야성이 꿈틀거리는 인물이다. 시마무라는 방안에 있는 거울을 통해 고마코를 본다. 거울 속 가득 비친 새하얀 눈 위에 새빨간 고마코의 뺨이 떠오른다. 시마무라는 자신을 향한 애정을 아름다운 헛수고로 생각하는 한편, 그 허무와 대비되는 고마코의 생명력을 강렬하게 느낀다. 

 시마무라는 부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는 인물로, 모든 사건을 한 발짝 물러서서 관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시마무라는 모든 것을 ‘헛수고’라고 이야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헛수고에 비현실적인 매력을  느낀다. 헛수고라는 단어는 허무의 정서와 연결되어 작품 전반에 깔린 죽음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설국의 세계 안에서는 죽음마저 아름답게 묘사된다. 시마무라가 마지막으로 설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고마코와 화재를 목격하게 된다. 은하수는 두 사람이 달려온 뒤에서 앞으로 흘러내리고, 불똥은 은하수 속으로 퍼져 나가며 흩어진다. 화재로 죽은 요코의 얼굴 위로 불빛이 흔들리며 지나갈 때, 시마무라는 기차 안에서 요코의 얼굴에 야산의 등불이 켜졌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고, 동시에 고마코와 함께한 시간들이 환히 비친 것 같다고 느낀다.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던 요코는 죽고, 고마코와의 관계는 끝이 난다. 그러나 이 소멸의 순간 시마무라는 은하수와 어떤 연결을 느낀다.      

발에 힘을 주며 올려다본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드는 듯 했다. 

+노벨문학상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968년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번역가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의 『설국』 번역이다. 그는 서양 세계에 일본 문학을 소개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고, 노벨문학상 수상식에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함께 참석했다.

+유자와 온천
작품 안에 직접적인 지명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설국』의 공간적 배경은 에치고유자와이다. 에치고유자와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묵었던 다카한 료칸과 고마코의 실제 모델인 마쓰에가 살던 숙소가 ‘설국관’이 되어 남아있다.  

+ Film
설국은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다. 
「설국」, 도요타 시로, 1957
133분, 흑백
토요다 시로가 감독을 맡고 이케베 료, 키시 케이코가 주연을 맡았으며, 1958년 칸 국제영화제에 출품되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소설 원작과 비슷한데, 요코가 화재 장면에서 사망하지 않고 화상만 입은 것으로 각색되었다. 

「설국」, 오오바 히데오, 1965
113분, 컬러
1965년에 제작된 「설국」 또한 원작의 줄거리를 따라가나, 첫 장면에 1935년 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명시하여 당시 시대적 배경을 명확히하였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요코가 사람들을 구하다 죽고, 요코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입원한 고마코를 시마무라가 문병하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신설국」, 고토 고이치, 2001
109분, 컬러
가와바타 야스나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사사쿠라 아키라가 쓴 소설 신설국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당시 일본 대중문화 4차 개방 후 한국에서 처음 개봉되는 18세 관람가 일본 영화인 점, 국내에서 활동한 일본 연예인 유민이 출연한 점 등이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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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자이나

뒤자이나

일본의 전통문화와 자연을 글로 느꼈습니다.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체와 생생한 자연/풍경 묘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2025.01.16

2025년 1월 이달의 고전

『설국』 & 『금각사』

•공통 키워드: 美, 불타다
•비교 키워드: 영원한 아름다움 VS 아름다움에 대한 질투

『설국』과 『금각사』 모두 일본의 탐미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화재가 주요 사건으로 등장하는데, 『설국』의 요코는 화재로 사망하며, 죽음으로써 영원히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 『금각사』의 금각은 절대적인 미의 상징이나 질투에 휩싸인 주인공에 의해 불타고 만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설국을 여는 문장은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간다. 주인공 시마무라는 총 세 번, 이 아름다운 ‘눈의 고장’을 방문하는데, 소설은 ‘손가락으로 기억하는 여자’ 고마코를 다시 만나러 가는 시마무라가 ‘눈에 등불이 켜진 여자’ 요코를 바라보며 시작된다. 

 시마무라는 거울을 통해 두 여자를 겹쳐본다. 기차 안에서 집게손가락을 바라보며 이 손가락만은 여자의 감촉으로 젖은 채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생각하다가, 문득 그 손가락으로 유리창에 선을 긋자 거기에 건너편 좌석에 앉은 요코의 한쪽 눈이 또렷이 떠오른다. 야산의 등불이 그녀의 눈동자와 겹쳐질 때, 요코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으로 묘사된다. 

  고마코(駒子)는 망아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야성이 꿈틀거리는 인물이다. 시마무라는 방안에 있는 거울을 통해 고마코를 본다. 거울 속 가득 비친 새하얀 눈 위에 새빨간 고마코의 뺨이 떠오른다. 시마무라는 자신을 향한 애정을 아름다운 헛수고로 생각하는 한편, 그 허무와 대비되는 고마코의 생명력을 강렬하게 느낀다. 

 시마무라는 부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는 인물로, 모든 사건을 한 발짝 물러서서 관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시마무라는 모든 것을 ‘헛수고’라고 이야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헛수고에 비현실적인 매력을  느낀다. 헛수고라는 단어는 허무의 정서와 연결되어 작품 전반에 깔린 죽음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설국의 세계 안에서는 죽음마저 아름답게 묘사된다. 시마무라가 마지막으로 설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고마코와 화재를 목격하게 된다. 은하수는 두 사람이 달려온 뒤에서 앞으로 흘러내리고, 불똥은 은하수 속으로 퍼져 나가며 흩어진다. 화재로 죽은 요코의 얼굴 위로 불빛이 흔들리며 지나갈 때, 시마무라는 기차 안에서 요코의 얼굴에 야산의 등불이 켜졌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고, 동시에 고마코와 함께한 시간들이 환히 비친 것 같다고 느낀다.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던 요코는 죽고, 고마코와의 관계는 끝이 난다. 그러나 이 소멸의 순간 시마무라는 은하수와 어떤 연결을 느낀다.      

발에 힘을 주며 올려다본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드는 듯 했다. 

+노벨문학상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968년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번역가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의 『설국』 번역이다. 그는 서양 세계에 일본 문학을 소개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고, 노벨문학상 수상식에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함께 참석했다.

+유자와 온천
작품 안에 직접적인 지명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설국』의 공간적 배경은 에치고유자와이다. 에치고유자와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묵었던 다카한 료칸과 고마코의 실제 모델인 마쓰에가 살던 숙소가 ‘설국관’이 되어 남아있다.  

+ Film
설국은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다. 
「설국」, 도요타 시로, 1957
133분, 흑백
토요다 시로가 감독을 맡고 이케베 료, 키시 케이코가 주연을 맡았으며, 1958년 칸 국제영화제에 출품되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소설 원작과 비슷한데, 요코가 화재 장면에서 사망하지 않고 화상만 입은 것으로 각색되었다. 

「설국」, 오오바 히데오, 1965
113분, 컬러
1965년에 제작된 「설국」 또한 원작의 줄거리를 따라가나, 첫 장면에 1935년 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명시하여 당시 시대적 배경을 명확히하였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요코가 사람들을 구하다 죽고, 요코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입원한 고마코를 시마무라가 문병하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신설국」, 고토 고이치, 2001
109분, 컬러
가와바타 야스나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사사쿠라 아키라가 쓴 소설 신설국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당시 일본 대중문화 4차 개방 후 한국에서 처음 개봉되는 18세 관람가 일본 영화인 점, 국내에서 활동한 일본 연예인 유민이 출연한 점 등이 화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