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이달의 고전

일광유년

김봉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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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함께 읽을 고전>
『닥터 지바고』&『일광유년』
•키워드: 앓는 몸
 

서른 번째 집에 이르러 말했다. “기회가 생기는 대로 교화원에 가서 피부를 좀 팔도록 하시오.” 서른네 번째 집에 이르러 말했다. “아줌마는 보름 뒤에 지우두에 가서 열흘 동안 몸을 팔도록 하시오.”

『일광유년』은 생존이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되었을 때 벌어지는 참상이다. 운명을 이겨보고자 발악하는 이들의 고투이자, 운명을 거부한다는 미명 아래 자행되는 권력과 폭력의 야합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하여 운명이라 생각했던 것이 결국 오랜 시간 누적된 인간의 방종과 타락의 결과임을 끝내 알지 못하고 절멸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가이다.

소설의 공간은 옌롄커 문학의 상수라고도 할 수 있는 바러우 산맥. 이곳에 자리잡은 란씨, 두씨, 쓰마씨가 모여 있는 집성촌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마흔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여태껏 마흔 살을 넘겨 산 사람을 본 적이 없는 이들은 자신 역시 마흔 살을 넘기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태어나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죽음의 구체적 시기는 저마다 다르고 알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이 언제 죽는지를 알고 있는 이들의 삶은 어떠할까. 목구멍이 아프기 시작하면 곧 죽음이 닥칠 것이라는 공포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욕망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이야기는 이 지점에서 시작해 한 해라도 더 살고 싶은 이들의 사투를 그린다.

마흔 살까지만 살 수 있다는 운명을 거스를 수 있는 방법으로 그들은 백 세 넘는 노인들이 많이 사는 마을 근처의 강물을 끌어오기로 한다. 촌장 쓰마란은 마을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면 모두가 마흔 살을 넘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심는다. 그러나 강물을 끌어오기 위한 공사 비용을 마련할 길이 가난한 마을에는 없다. 더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돈이 든다. 그리하여 쓰마란은 마을 이장의 권위로 남자들은 병원에 가서 피부를 팔고 여자들은 시내로 나가 몸을 팔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렇게 번 돈을 수로를 뚫기 위한 공사비용으로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위화의 소설 『허삼관매혈기』 속 허삼관이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피를 팔았던 것처럼, 이 마을 사람들은 생명 연장을 위해 피부를 팔고 몸을 판다. 옌렌커의 소설 속에서 줄곧 가난한 농촌은 돈을 벌기 위해 남자는 도둑질하고 여자는 몸을 팔았다. 이 이야기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신체를 ‘상품화하는’ 방식으로 생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아이러니를 처연하게 다룬다. 

이야기는 이와 같은 시도가 여러 번 있었다는 사실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알려준다. 쓰마란이 장수 마을의 강물을 끌어오려 했던 것은 전 촌장 두옌의 숙원사업이기도 했다. 그 이전 촌장 린바이수이는 흙을 갈아엎어 새로운 전답을 마련하려 했었고, 그 윗대 촌장 쓰마샤오샤오는 유채기름을 먹으면 오래 살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마을 전체에 유채를 심었다가 메뚜기떼의 습격을 받고 초토화된 경험을 했다. 4대에 걸친 노력이 모두 허사라는 사실이 판명되기까지 쌓여가는 서사는 오래 살고 싶다는 원초적 열망을 드러내는 한편 한 사람의 생을 지탱하는 다른 욕망을 펼쳐놓는다.

촌장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 촌장은 마을 전체의 어른이야. 누구든지 촌장이 하라는대로 따라야 한다고.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신체를 ‘훼손’하는 이면에는 쓰마란이 가지고 있는 촌장의 권위와 권력이 숨겨져 있다. 마을 전체를 통솔하며 구성원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리는 촌장에게 있다. 소설은 오래 살고 싶어하는 마을 사람들의 고투를 그리는 이상으로 사람들의 촌장자리를 둘러싼 욕망의 이전투구를 다룬다. 야합과 회유 거짓말과 모략이 횡행하는 가운데 관계는 이해득실에 따라 나뉘고 남녀의 사랑 역시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의 여부에 따라 갈라진다. 쓰마란이 결혼을 약속했던 란쓰스를 버리고 두주추이와 결혼한 이유는 그녀가 전 촌장의 딸이고 그녀의 오빠가 정부에서 일하는 관료이기 때문이다. 두주추이 역시 남편과 란쓰스의 관계를 진작에 알고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연적이었던 그녀에게 승리했다는 감각 속에 애정 없는 결혼 관계를 유지한다. 

촌장에게 부여된 권력은 대의라는 명분 아래 오용되고 사적으로 남용되며 개인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가 된다. 수로 건설은 모두가 혜택을 받는, 공동선의 추구라 역설하지만 피부와 몸을 팔기 위해 떠난 이들 중 많은 수가 돌아오지 않는다. 돈의 쓸모와 효용을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을 위해 쓸 돈도 부족한 마당에 수로 공사를 위해 내놓을 돈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강물을 끌어와 그 물을 마신들 마흔 살 넘게 살 수 있다는 보장 또한 없다. 생명 연장의 꿈보다 곤궁한 하루의 해결이 시급한 이들은 자신의 몸을 팔아 번 돈을 밑천 삼아 장사를 하여 더 큰 돈을 번다. 소설은 누구보다 마흔 살 넘게 살고 싶어하는 이가 쓰마란임을 적시함으로써 이 부분의 메시지를 돌출시킨다. 때문에 누구보다 수로 공사가 필요했던 사람 역시 쓰마란이었고 촌장이 되어 진두지휘해야 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욕망 이상으로 하루하루의 풍족함을 원했다. 생명연장이 모두의 욕망은 아니라는 사실은 쓰마란이 내세우는 명분의 허망함과 공허함을 역으로 부조한다.

생의 끝을 알고 있는 이들이 벌이는 다양한 행태는 단명이 운명이라 여겼지만 사실 그것이 수질 오염과 대기오염을 비롯한 환경파괴로 인한 것임을 넌지시 알린다. 알 수 없는 신종 오염물질로 가득한 공기와 치사량에 가까운 수중 불소가 목구멍이 아픈 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본문이 아닌 각주로 처리된 이 문장은 애써 읽지 않으면 없는 것이 된다. 사람들은 원인을 규명하는 대신 땅을 갈아엎고 작물을 바꾸며 강물을 끌어오면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 운명을 바꿀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운명에 저항한다는 행위는 도리어 윤리적 파멸과 폭력을 낳았다. 

소설은 운명이라 믿었지만 사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공허한 믿음이었음을 보여준다. 목구멍이 아픈 병의 유력한 원인이 있으나 사람들은 애써 찾아보지 않는다. 운명을 이용하여 대의를 위한다는 미명을 세우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삶의 연장이라는 생존 본능과 윤리도덕의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을 내내 포착한다. 피부를 팔고 몸을 팔라는 쓰마란의 명령과 유사한 일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메뚜기떼의 습격으로 먹을 것이 없어지자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겼다. 당시 촌장이었던 쓰마샤오샤오는 그 시신들을 땅에 묻지 말고 들판에 버려두라 명령한다. 시신을 까마귀의 먹이로 삼고 그 까마귀를 잡아먹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이들은 굶주린 인간이 벌일 수 있는 행위의 끝점을 보여준다. 소설이 소급해 가는 역사는 운명이라는 오판 속에 인간 본능이 극단적으로 발현될 때 벌어지는 인간성의 파괴와 비극의 시간과도 같다. 그리고 중국 역사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도 이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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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함께 읽을 고전>
『닥터 지바고』&『일광유년』
•키워드: 앓는 몸
 

서른 번째 집에 이르러 말했다. “기회가 생기는 대로 교화원에 가서 피부를 좀 팔도록 하시오.” 서른네 번째 집에 이르러 말했다. “아줌마는 보름 뒤에 지우두에 가서 열흘 동안 몸을 팔도록 하시오.”

『일광유년』은 생존이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되었을 때 벌어지는 참상이다. 운명을 이겨보고자 발악하는 이들의 고투이자, 운명을 거부한다는 미명 아래 자행되는 권력과 폭력의 야합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하여 운명이라 생각했던 것이 결국 오랜 시간 누적된 인간의 방종과 타락의 결과임을 끝내 알지 못하고 절멸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가이다.

소설의 공간은 옌롄커 문학의 상수라고도 할 수 있는 바러우 산맥. 이곳에 자리잡은 란씨, 두씨, 쓰마씨가 모여 있는 집성촌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마흔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여태껏 마흔 살을 넘겨 산 사람을 본 적이 없는 이들은 자신 역시 마흔 살을 넘기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태어나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죽음의 구체적 시기는 저마다 다르고 알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이 언제 죽는지를 알고 있는 이들의 삶은 어떠할까. 목구멍이 아프기 시작하면 곧 죽음이 닥칠 것이라는 공포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욕망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이야기는 이 지점에서 시작해 한 해라도 더 살고 싶은 이들의 사투를 그린다.

마흔 살까지만 살 수 있다는 운명을 거스를 수 있는 방법으로 그들은 백 세 넘는 노인들이 많이 사는 마을 근처의 강물을 끌어오기로 한다. 촌장 쓰마란은 마을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면 모두가 마흔 살을 넘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심는다. 그러나 강물을 끌어오기 위한 공사 비용을 마련할 길이 가난한 마을에는 없다. 더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돈이 든다. 그리하여 쓰마란은 마을 이장의 권위로 남자들은 병원에 가서 피부를 팔고 여자들은 시내로 나가 몸을 팔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렇게 번 돈을 수로를 뚫기 위한 공사비용으로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위화의 소설 『허삼관매혈기』 속 허삼관이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피를 팔았던 것처럼, 이 마을 사람들은 생명 연장을 위해 피부를 팔고 몸을 판다. 옌렌커의 소설 속에서 줄곧 가난한 농촌은 돈을 벌기 위해 남자는 도둑질하고 여자는 몸을 팔았다. 이 이야기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신체를 ‘상품화하는’ 방식으로 생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아이러니를 처연하게 다룬다. 

이야기는 이와 같은 시도가 여러 번 있었다는 사실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알려준다. 쓰마란이 장수 마을의 강물을 끌어오려 했던 것은 전 촌장 두옌의 숙원사업이기도 했다. 그 이전 촌장 린바이수이는 흙을 갈아엎어 새로운 전답을 마련하려 했었고, 그 윗대 촌장 쓰마샤오샤오는 유채기름을 먹으면 오래 살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마을 전체에 유채를 심었다가 메뚜기떼의 습격을 받고 초토화된 경험을 했다. 4대에 걸친 노력이 모두 허사라는 사실이 판명되기까지 쌓여가는 서사는 오래 살고 싶다는 원초적 열망을 드러내는 한편 한 사람의 생을 지탱하는 다른 욕망을 펼쳐놓는다.

촌장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 촌장은 마을 전체의 어른이야. 누구든지 촌장이 하라는대로 따라야 한다고.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신체를 ‘훼손’하는 이면에는 쓰마란이 가지고 있는 촌장의 권위와 권력이 숨겨져 있다. 마을 전체를 통솔하며 구성원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리는 촌장에게 있다. 소설은 오래 살고 싶어하는 마을 사람들의 고투를 그리는 이상으로 사람들의 촌장자리를 둘러싼 욕망의 이전투구를 다룬다. 야합과 회유 거짓말과 모략이 횡행하는 가운데 관계는 이해득실에 따라 나뉘고 남녀의 사랑 역시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의 여부에 따라 갈라진다. 쓰마란이 결혼을 약속했던 란쓰스를 버리고 두주추이와 결혼한 이유는 그녀가 전 촌장의 딸이고 그녀의 오빠가 정부에서 일하는 관료이기 때문이다. 두주추이 역시 남편과 란쓰스의 관계를 진작에 알고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연적이었던 그녀에게 승리했다는 감각 속에 애정 없는 결혼 관계를 유지한다. 

촌장에게 부여된 권력은 대의라는 명분 아래 오용되고 사적으로 남용되며 개인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가 된다. 수로 건설은 모두가 혜택을 받는, 공동선의 추구라 역설하지만 피부와 몸을 팔기 위해 떠난 이들 중 많은 수가 돌아오지 않는다. 돈의 쓸모와 효용을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을 위해 쓸 돈도 부족한 마당에 수로 공사를 위해 내놓을 돈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강물을 끌어와 그 물을 마신들 마흔 살 넘게 살 수 있다는 보장 또한 없다. 생명 연장의 꿈보다 곤궁한 하루의 해결이 시급한 이들은 자신의 몸을 팔아 번 돈을 밑천 삼아 장사를 하여 더 큰 돈을 번다. 소설은 누구보다 마흔 살 넘게 살고 싶어하는 이가 쓰마란임을 적시함으로써 이 부분의 메시지를 돌출시킨다. 때문에 누구보다 수로 공사가 필요했던 사람 역시 쓰마란이었고 촌장이 되어 진두지휘해야 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욕망 이상으로 하루하루의 풍족함을 원했다. 생명연장이 모두의 욕망은 아니라는 사실은 쓰마란이 내세우는 명분의 허망함과 공허함을 역으로 부조한다.

생의 끝을 알고 있는 이들이 벌이는 다양한 행태는 단명이 운명이라 여겼지만 사실 그것이 수질 오염과 대기오염을 비롯한 환경파괴로 인한 것임을 넌지시 알린다. 알 수 없는 신종 오염물질로 가득한 공기와 치사량에 가까운 수중 불소가 목구멍이 아픈 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본문이 아닌 각주로 처리된 이 문장은 애써 읽지 않으면 없는 것이 된다. 사람들은 원인을 규명하는 대신 땅을 갈아엎고 작물을 바꾸며 강물을 끌어오면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 운명을 바꿀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운명에 저항한다는 행위는 도리어 윤리적 파멸과 폭력을 낳았다. 

소설은 운명이라 믿었지만 사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공허한 믿음이었음을 보여준다. 목구멍이 아픈 병의 유력한 원인이 있으나 사람들은 애써 찾아보지 않는다. 운명을 이용하여 대의를 위한다는 미명을 세우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삶의 연장이라는 생존 본능과 윤리도덕의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을 내내 포착한다. 피부를 팔고 몸을 팔라는 쓰마란의 명령과 유사한 일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메뚜기떼의 습격으로 먹을 것이 없어지자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겼다. 당시 촌장이었던 쓰마샤오샤오는 그 시신들을 땅에 묻지 말고 들판에 버려두라 명령한다. 시신을 까마귀의 먹이로 삼고 그 까마귀를 잡아먹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이들은 굶주린 인간이 벌일 수 있는 행위의 끝점을 보여준다. 소설이 소급해 가는 역사는 운명이라는 오판 속에 인간 본능이 극단적으로 발현될 때 벌어지는 인간성의 파괴와 비극의 시간과도 같다. 그리고 중국 역사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도 이와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