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함께 읽을 고전>
『닥터 지바고』&『일광유년』
•키워드: 앓는 몸
눈보라는 유리창에/ 원과 화살을 조각한다./ 탁자 위 촛불이 타고 있었다./ 촛불이 타고 있었다./ ...
/ 서로 얽힌 팔, 서로 얽힌 다리,/ 서로 얽힌 운명…
『닥터 지바고』는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한 지식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눈보라 치는 창문과 그 너머에 타오르는 촛불의 교차 이미지처럼, 소설은 역사와 개인, 서사와 서정, 전쟁과 사랑, 혹은 죽음과 삶이라는 대조적 양상들로 붐비는 인간사의 교차로에 대한 기록이다. 유리창 밖 눈보라가 시대와 사회라는 공적 영역을 상징한다면, 타오르는 촛불은 개인의 사적 영역을 상징한다. 이 정경이 표상하는 바대로, 시대의 흐름과 합류해 때로는 소심하고 때로는 담대하게 흘러가는 삶안에서 인간이 내적 자유와 도덕률을 어떻게 지켜낼 것이며, 그럼으로써 그 삶이 어떻게 불멸의 것으로 기억되는가가 소설의 핵심 주제라 할 수 있다.
『닥터 지바고』는 역사소설인 동시에 사회소설이고, 자전소설이며, 또 연애소설인 동시에 예술 소설이다. 소설은 제국 러시아 시대인 1902년에 시작해 두 차례의 혁명과 내전, 숙청, 1·2차 세계 대전을 모두 치르고 난 1940년대 말~1950년대 초에 끝난다(작가는 정확한 연도를 지목하지 않는
다). 어린 소년 유리 지바고가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해 추모 성가를 듣는 첫 장면과 지바고가 죽고난 후 그의 두 친구가 아파트 창틀에 앉아 지바고의 책을 손에 들고 미래를 생각하는 마지막 장면 사이에는 반세기의 격차가 있다. 1890년에 태어난 파스테르나크 자신의 인생 여정과 정확히 겹치는 기간이다.
역사의 시간은 일직선으로 진행하지만, 역사를 바라보며 기억하는 시간은 그렇게 흐르지 않는다. 과거·현재·미래의 세 시점이 한데 섞여 시시각각 존재의 영속성을 환기하는 『닥터 지바고』를 궁 극적으로는 한 편의 종교철학 소설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소설의 진짜 주인공 또한 의사 지바고라는 인물이 아니라 ‘삶’ 자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실제로 ‘지바고Живаго’는 ‘살다жить’라는 뜻의 어근을 지닌 이름이다. 유리 지바고는 방탕한 재산가의 아들로,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부모의 친구인 화학 교수 집안에서 양육된다. 교양 있는 인텔리겐치아 환경에서 자라난 그는 유능한 의학도로 성장해 교수의 딸과 결혼도 하지만, 혁명과 내전을 거치며 '라라'라는 또 한 명의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두 여인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지바고의 운명은 두 이데올로기(혁명과 반혁명), 두 역할(의사와 시인), 두 글쓰기(시와 산문) 사이를 왕래하는 그의 운명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삶의 교차로에 설 때마다 두갈래 길 중 하나를 택하는 대신 두 길 모두를 수용해 걷는 인물이다. 그의 이런 태도를 두고 우유부단함과 행동력 결여의 햄릿형 약점이라 비난할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배제가 아닌 양립, 단절이 아닌 연속적 순환이라는 더 큰 세계관의 발현으로 볼 수도 있다. 후자를 자연의 섭리에 순응한 삶의 태도로 인정한다면, 지바고의 '무의지' 안에는 수난의 길을 걷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적 숙명감마저 깃들어 있다.
하지만 막의 순서는 정해졌고,/ 이 길의 끝은 피할 수 없다./ 모두가 위선이고, 나는 홀로다./ 삶을
산다는 것은 들판을 건너는 일이 아니다.
삶을 산다는 것은 평평한 들판을 가로지르듯 쉬운 일이 아니다. 삶에는 온갖 고통의 굴곡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오하고 영웅적인 고통은 비극적 종말을 예견하면서도 그 길을 피하지 않고 순종하는 소명 의식 앞에서 두드러진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거두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 고뇌가 그것일 테다. 인간의 자유의지조차도 운명의 공식에 속한다고 본 파스테르나크는 삶을 배우의 길에 비유했다. 인간은 삶의 각본을 따라 연기한다는 것이다. 소설 맨 끝에 부록으로 붙은 '지바고의 시' 25편 중 첫 번째 시 「햄릿」에서 시적 화자인 ‘나’와 햄릿, 햄릿을 연기하는 배우, 그리고 죽음을 앞둔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는 하나의 형상으로 합쳐진다. 햄릿은 아버지 유령이 내린 명령에 따라, 배우는 연출자의 각본에 따라, 예수는 하나님의 높은 뜻에 따라 맡겨진 역할을 연기해야 하는 수동적이면서도 능동적인 존재다. 셰익스피어 극의 번역자였던 파스테르나크는 『햄릿』을 "숭고한 숙명의 드라마"로 해석했는데, 이 해석은 소설 『닥터 지바고』에 있어서도 유효하다. 지바고는 격동의 상황에 맞서는 대신 관찰하고, 순응하는 인물이다. 파스테르나크 역시 저항과는 거리가 먼 작가였다. 그는 20세기 초 혁명의 분위기를 정확히 감지하고 인정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혁명에 적극 찬성하거나 적극 반대하지는 않았다. 유대계 부르주아라는 출생 성분상 반혁명에 가까웠을 터, 동시대 많은 동료 작가·지식인이 자유를 찾아 망명을 떠났을 때도, 그는 끝까지 조국에 남아 새로운 체제에 순응하며 살았다.
『닥터 지바고』는 시인이었던 파스테르나크가 "낯익은 것의 위대성"을 보다 쉬운 언어로 드러내기 위해 만년에 쓴 소설이다. 혁명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려는 그 어떤 정치적 의도도 없었고, 단지"다시 한번 새롭게, 새로운 방법으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일들, 땅과 하늘, 지극히 따스한 느낌, 창조의 정신, 삶과 죽음 등"에 대해 쓰고자 했을 뿐이다. 그러나 소설은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소련 내에서는 혁명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출판이 금지되고, 서방에서는 바로 그 이유로,즉 소비에트 체제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반체제 문학의 후광을 자동 획득했다. 소련 정부가 금지한 작품이 이탈리아로 흘러 들어가 이탈리아어로 출판된 데 이어 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기까지의 전 과정은 문화적 의미에서의 체제 전쟁을 방불케 한다. 서구 세계는 소설에 환호했지만, 반대로 소련 사회는 작가를 조국의 배신자로 낙인찍어 작가동맹에서 제명했다.추방당할 위험에 몰린 파스테르나크는 결국 노벨문학상을 거부함으로써 조국에 남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무슨 비열함인가./ 내가 살인자던가, 악한이던가?/ 이 땅의 아름다움에 대해/ 온 세상이 눈물흘리도록 만들었건만."
시 「노벨상」에서 이렇게 억울함을 호소했던 파스테르나크는 노벨상 스캔들 이후 2년도 못 돼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가 죽은 후 '라라'의 실제 모델이었던 연인은 서방과 접촉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4년간 유형 생활을 해야 했다. 오랜 기간 지하에서만 유통되던『닥터 지바고』가 세상의 빛을 본 것은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인 1988년에 이르러서다. 그리고 그이듬해인 1989년이 되어서야 노벨상위원회는 30년 전의 메달을 작가의 아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닥터 지바고』는 푸시킨의 『대위의 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같은 위대한 역사소설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푸시킨은 18세기의 푸가초프 반란기, 톨스토이는 19세기의 나폴레옹 침략기, 파스테르나크는 20세기 혁명기의 역사를 각각 다루었지만, 그들의 질문은 하나로 종합된다. 역사의 흐름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 안에서 개인과 집단의 관계는 무엇이며, 개인의 역할은 또 무엇인가? 푸시킨, 톨스토이, 파스테르나크의 공통점은 역사적 사건을 단순 나열하거나 어느 한쪽 편에 서서 평가하기보다, 역사의 법칙을 객관적으로 성찰하며 사유하고자 했던 데 있다. 지바고 시 「촛불이 타고 있었다」에 나오는 눈보라와 촛불 사이의 창 이미지는 인간의 눈을 연상시킨다. 파스테르나크는 눈 밖에서 진행되는 집단적 역사의 휘몰이와 눈 안에서 진행되는 영혼의 휘몰이를 동시에 보고자 했다. 그 면에서 주인공 지바고가 안과 전공의로 설정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지바고에게 중요한 건 ‘본다’는 사실이며, 그의 뛰어난 진단 능력은 ‘있는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볼 뿐 아니라, 표면적 현상 너머까지 꿰뚫고 들어가 보는 능력에서 나온다. ‘보는’ 사람이기에 함부로 선택할 수 없고, 보이는 것 너머까지를 보기 때문에 과감히 행동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닥터 지바고』는 20세기 러시아의 가장 뛰어난 시인이 쓴 소설이며, 시적 언어와 감각으로 충만한 아름다운 소설이다.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은, 비록 불륜에 속한 것임에도, 땅과 하늘과 구름과 나무가 더 원하고 기뻐한 사랑이었다고 묘사된다. “모든 예술 작품은 존재의 기쁨을 표현한다”는 것이 시인 지바고의 예술관이었듯이, 파스테르나크는 혁명의 격동 안에서도 여전히 기뻐하고사랑했던 삶을 기리기 위해 『닥터 지바고』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