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이달의 고전

걸리버 여행기

이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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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함께 읽을 고전>
『걸리버 여행기』&『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키워드: 변동과 이동
 

풍자와 희극성의 만남

15세기에 시작된 “지리상의 발견”으로 인해 영국 및 유럽에서는 그 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다른 세상,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동양 등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 특히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같이 선원이나 모험가들을 통해 전해졌던 신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은 사실과 허구, 경험과 상상이 결합된 형태의 다양한 모험담 또는 여행기들을 만들어냈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도 일종의 허구적 여행기로서 당시에 유행했던 이국적 취향을 바탕으로 한 환상적인 이야기의 한 예이다. 그러나 『걸리버 여행기』가 영국의 대표적인 고전으로 인정받는 것은 단순히 미지의 세계에 대한 환상적인 묘사나 흥미로운 모험 때문이 아니다. 사실 환상적인 모험이나 이국적인 묘사는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현실의 모순과 불합리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스위프트의 진짜 의도는 당대의 사회 현실과 인간의 본질적인 성향을 풍자하는데 있었으며 실제로 『걸리버 여행기』는 영국 신고전주의 문학의 핵심 요소인 합리적 이성주의와 그에 바탕을 둔 풍자문학을 대표하는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흥미롭게도 국내에서는 『걸리버 여행기』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함께 어린이용 세계명작 시리즈에 단골로 포함된다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두 작품 모두 첫 부분의 에피소드(『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 이야기와 『돈키호테』의 풍차 거인 이야기)만 소개되고 이후의 본격적인 정치, 경제적 풍자들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린이용으로 편집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풍자라는 어려운 부분을 삭제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 결과 세계적 명작이자 고전이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걸리버 여행기』가 정치적 풍자라는 사실은 스위프트가 레뮤엘 걸리버라는 허구적 인물을 필자로 내세우고 작품의 소유권자인 걸리버의 사촌 심프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앤 여왕에 대한 언급이나 검열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실제로 작품에 등장하는 네 번의 모험담은 각각 당대의 정치, 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 인간의 편협함(소인국), 허풍과 자기기만(대인국), 엉터리 과학과 이성주의(라푸타), 인간의 천박한 본성(후이넘)을 우스꽝스럽게 비꼬고 있다. 물론 『걸리버 여행기』의 문학적 가치를 풍자라는 측면에서만 평가할 수는 없다.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감독의 인생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듯이, 스위프트가 정치학자나 철학자가 아닌만큼 독자가 그의 작품을 당시의 정치적인 측면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 읽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 걸리버의 모험담을 단순히 환상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동화 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나 원시적인 형태의 SF처럼 접근해서는 안되는 것도 사실이다.
   소인국 릴리퍼트와 대인국 브로딩낵은 시각의 차이에 따른 “낯설게 하기”를 통해 묘사되고   있다. 소인국 사람들은 체구가 작은 만큼 작은 것을 잘 보고 크거나 멀리 있는 것은 잘 보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은 사소한 것에 집착하며 의심이 많고 편협하다. 계란을 깨는 문제로 옆나라와 전쟁을 하고 걸리버를 제거하려 엉뚱한 음모를 꾸미기도 한다. 왕 앞에서 누가 줄타기를 잘하는지로 공직을 얻는다거나 구두의 높낮이로 당파가 나뉘어 극단적인 정치적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게다가 계란 깨는 법에 대한 종교적 가르침을 왜곡하고 부활을 대비해 시체의 머리를 아래로 향해 묻는 등의 이야기는 당연히 당시의 궁정 사회, 정당정치, 종교를 풍자하는 내용이다. 반대로 거인국에서는 모든 것이 거시적 시각에서 묘사되며 그곳의 왕은 영국인들이 자랑하는 그들의 제도와 문화가 얼마나 사소하고 불합리한 것인지를 지적한다.
   라퓨타와 휴이넘에서도 영국 사회에 대한 스위프트의 공격은 계속된다. 라퓨타에서는 수학, 과학, 논리 등 당시에 급격하게 퍼지고 있던 과학 지식에 대한 맹목적인 태도를 비꼬고 있으며 휴이넘에서는 동물(말)과 인간을 정 반대의 시각에서 비교하면서 인간 본성의 천박함을 꼬집는다. 그리고 독자는 이 과정에서 당시 영국 사회의 불합리한 체제, 사고방식, 문화를 엿볼 수 있으며 그것들을 희극적으로 비트는 스위프트의 위트와 재치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스위프트의 목적이 당시 사회를 무조건 공격하고 비꼬는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스위프트는 흔히 염세주의자, 인간혐오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역설적으로 이성의 가치, 인간의 본성, 인간 사회의 발전 가능성을 믿었다. 그가 당시 사회를 풍자한 것은 개선과 발전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절망 때문이었다. 오히려 긍정적인 희망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인간 사회의 모순을 적극 드러내고 풍자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사랑했기 때문에, 인간에게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에 풍자라는 회초리를 들었던 것이다.
   풍자적인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걸리버 여행기』를 너무 정치적 풍자로만 읽을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도 『걸리버 여행기』는 당시 사회의 여러 문제 거리를 흥미롭게 비틀고 분석해서 만들어 낸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에서 독자는 아이러니, 풍자, 패러디를 통해 이루어지는 재미있는 한 편의 환상적인 모험담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더해 특정 시대의 사회를 소인, 거인, 과학자, 동물 등 서로 다른 시각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걸리버 여행기』를 읽는 여분의 즐거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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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키워드: 변동과 이동
 

풍자와 희극성의 만남

15세기에 시작된 “지리상의 발견”으로 인해 영국 및 유럽에서는 그 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다른 세상,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동양 등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 특히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같이 선원이나 모험가들을 통해 전해졌던 신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은 사실과 허구, 경험과 상상이 결합된 형태의 다양한 모험담 또는 여행기들을 만들어냈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도 일종의 허구적 여행기로서 당시에 유행했던 이국적 취향을 바탕으로 한 환상적인 이야기의 한 예이다. 그러나 『걸리버 여행기』가 영국의 대표적인 고전으로 인정받는 것은 단순히 미지의 세계에 대한 환상적인 묘사나 흥미로운 모험 때문이 아니다. 사실 환상적인 모험이나 이국적인 묘사는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현실의 모순과 불합리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스위프트의 진짜 의도는 당대의 사회 현실과 인간의 본질적인 성향을 풍자하는데 있었으며 실제로 『걸리버 여행기』는 영국 신고전주의 문학의 핵심 요소인 합리적 이성주의와 그에 바탕을 둔 풍자문학을 대표하는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흥미롭게도 국내에서는 『걸리버 여행기』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함께 어린이용 세계명작 시리즈에 단골로 포함된다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두 작품 모두 첫 부분의 에피소드(『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 이야기와 『돈키호테』의 풍차 거인 이야기)만 소개되고 이후의 본격적인 정치, 경제적 풍자들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린이용으로 편집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풍자라는 어려운 부분을 삭제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 결과 세계적 명작이자 고전이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걸리버 여행기』가 정치적 풍자라는 사실은 스위프트가 레뮤엘 걸리버라는 허구적 인물을 필자로 내세우고 작품의 소유권자인 걸리버의 사촌 심프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앤 여왕에 대한 언급이나 검열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실제로 작품에 등장하는 네 번의 모험담은 각각 당대의 정치, 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 인간의 편협함(소인국), 허풍과 자기기만(대인국), 엉터리 과학과 이성주의(라푸타), 인간의 천박한 본성(후이넘)을 우스꽝스럽게 비꼬고 있다. 물론 『걸리버 여행기』의 문학적 가치를 풍자라는 측면에서만 평가할 수는 없다.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감독의 인생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듯이, 스위프트가 정치학자나 철학자가 아닌만큼 독자가 그의 작품을 당시의 정치적인 측면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 읽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 걸리버의 모험담을 단순히 환상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동화 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나 원시적인 형태의 SF처럼 접근해서는 안되는 것도 사실이다.
   소인국 릴리퍼트와 대인국 브로딩낵은 시각의 차이에 따른 “낯설게 하기”를 통해 묘사되고   있다. 소인국 사람들은 체구가 작은 만큼 작은 것을 잘 보고 크거나 멀리 있는 것은 잘 보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은 사소한 것에 집착하며 의심이 많고 편협하다. 계란을 깨는 문제로 옆나라와 전쟁을 하고 걸리버를 제거하려 엉뚱한 음모를 꾸미기도 한다. 왕 앞에서 누가 줄타기를 잘하는지로 공직을 얻는다거나 구두의 높낮이로 당파가 나뉘어 극단적인 정치적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게다가 계란 깨는 법에 대한 종교적 가르침을 왜곡하고 부활을 대비해 시체의 머리를 아래로 향해 묻는 등의 이야기는 당연히 당시의 궁정 사회, 정당정치, 종교를 풍자하는 내용이다. 반대로 거인국에서는 모든 것이 거시적 시각에서 묘사되며 그곳의 왕은 영국인들이 자랑하는 그들의 제도와 문화가 얼마나 사소하고 불합리한 것인지를 지적한다.
   라퓨타와 휴이넘에서도 영국 사회에 대한 스위프트의 공격은 계속된다. 라퓨타에서는 수학, 과학, 논리 등 당시에 급격하게 퍼지고 있던 과학 지식에 대한 맹목적인 태도를 비꼬고 있으며 휴이넘에서는 동물(말)과 인간을 정 반대의 시각에서 비교하면서 인간 본성의 천박함을 꼬집는다. 그리고 독자는 이 과정에서 당시 영국 사회의 불합리한 체제, 사고방식, 문화를 엿볼 수 있으며 그것들을 희극적으로 비트는 스위프트의 위트와 재치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스위프트의 목적이 당시 사회를 무조건 공격하고 비꼬는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스위프트는 흔히 염세주의자, 인간혐오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역설적으로 이성의 가치, 인간의 본성, 인간 사회의 발전 가능성을 믿었다. 그가 당시 사회를 풍자한 것은 개선과 발전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절망 때문이었다. 오히려 긍정적인 희망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인간 사회의 모순을 적극 드러내고 풍자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사랑했기 때문에, 인간에게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에 풍자라는 회초리를 들었던 것이다.
   풍자적인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걸리버 여행기』를 너무 정치적 풍자로만 읽을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도 『걸리버 여행기』는 당시 사회의 여러 문제 거리를 흥미롭게 비틀고 분석해서 만들어 낸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에서 독자는 아이러니, 풍자, 패러디를 통해 이루어지는 재미있는 한 편의 환상적인 모험담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더해 특정 시대의 사회를 소인, 거인, 과학자, 동물 등 서로 다른 시각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걸리버 여행기』를 읽는 여분의 즐거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