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함께 읽을 고전>
『걸리버 여행기』&『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키워드: 변동과 이동
성인이 되어 다시 읽는 앨리스
1862년 7월 4일, 옥스퍼드 대학교의 수학과 교수였던 찰스 도지슨은 같은 대학 학장의 세 딸들(로리나, 앨리스, 이디스)과 함께 보트 놀이를 간다. 이야기를 해 달라는 아이들의 요청에 따라 도지슨은 즉석에서 몇 가지 이야기들을 지어냈고 이후 다른 이야기들을 조금 더 첨가하고 스케치를 삽입해서 『땅속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Under Ground』라는 책을 만들어 앨리스에게 선사한다. 도지슨은 이후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으로 당대의 유명 삽화가인 티니얼의 삽화를 곁들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판했고 이 책은 순식간에 어린이들의 열광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동화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교훈주의를 거부했다는 데 있다. 기존의 동화들이 어린이들의 교화를 위한 목적이었다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철저히 재미만을 추구한 동화인데 이는 도지슨이 전문적인 동화작가가 아니었다는 점과 그의 개인적인 취미 및 성향에서 유래한 듯 하다. 이 소설은 보트 놀이 중에 아이들을 즐겁게하기 위해 즉석에서 지어낸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미리 의도한 교훈이나 플롯이 존재하지 않는다. 비현실적인 에피소드들이 논리적 연관성이 없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환상적이고 특이한 상황들로 연결되면서 어린이들은 딱딱한 교훈과 도덕적 메시지에서 벗어난 비현실의 세계, 놀라움과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도지슨은 평소 어린이, 특히 여자 어린이를 좋아했는데 아마도 어린이의 순수한 이미지를 사랑한 듯하다. 그는 당시 영국에서 카메라를 소유한 최초의 인물들 중 하나였고 당연히 어린이들 사진, 특히 여자 어린이의 누드 사진을 찍기를 좋아했다. 이런 이유로 소아 성애자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사실은 어린이의 순수한 모습을 영원히 남기고 싶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도지슨은 어린이를 사랑하는 방식이 약간 독특했다. 어린이가 좋아하는 상황을 마련하고 행복해하는 모습보다 예상치 못한 상황, 이상한 사물, 비현실적인 논리에 당황하거나 놀라는 모습을 즐겼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방에는 어린이들의 방문을 대비해서 특이한 장치나 장남감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나 말장난, 특이한 논리가 수 없이 등장하며 주인공 앨리스의 모험은 이러한 <이상한 나라>의 당혹스러운 상황들이 가득하다. 다시 말해서 이 소설은 어린이를 위한 즐겁고 행복한 상황이 아니라 어린이를 당혹시키고 놀라게 하는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이 이 소설을 즐기는 것도 앨리스와 그를 둘러싼 <이상한> 상황과 말장난, 논리와 앨리스의 반응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듯하다.
도지슨이 어린이를 즐겁게 또는 놀라게 하는 방식은 주로 뒤집혀진 사회적 문맥, 난센스에 가까운 말장난, 과도한 형식 논리 등으로 요약된다. 예를 들어, 토끼가 중산층 출신의 앨리스를 메어리라고 부르며 심부름을 시키는 장면에서 앨리스는 매우 놀란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동물과 인간, 사회 계층의 기존 구조를 뒤집어버리는 당혹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메어리라는 이름은 당시 하녀들을 지칭하는 대표적인 이름이었기에 중산층 출신의 앨리스에게는 매우 낮설고 이상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말장난과 관련해서 물고기들의 수업 과목들 중 <읽기(reading)>와 <쓰기(writing)>를 <비틀거리기(reeling)>와 <꿈틀거리기(writhing)>로, <라틴어(Latin)>와 <그리스어(Greek)>를 <웃음(Laughing)>과 <슬픔(Grief)>으로 바꾼 것은 차라리 평범해 보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후속편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는 <재버워키>라는 합성어로만 이루어진 시에 더해 <버터 바른-빵-나비(bread-and-butter-fly)>가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미친 사람이 자신이 미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체셔 고양이, 의미하는 것과 말하는 것 사이의 언어적 관계의 구조적 불합리성을 주장하는 모자 장수의 괴상한 논리 등은 언어와 논리에 대한 앨리스의 이해를 흔들어 놓는다.
이 소설에 대한 연구자들의 시각은 대체적으로 프로이트의 이론에 의존하는 듯하다. 예를 들어 앨리스가 지하 세계로 떨어지는 것은 무의식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며 눈물의 웅덩이는 양수를 의미한다는 식이다. 즉 앨리스는 현실과 현재의 세계에서 무의식적 욕망의 세계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또한 앨리스가 만나는 인물들은 언어와 의식이 발달하기 전, 사회화가 이루어지기 전 단계에서 드러나는 어린이들의 미성숙한 의식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앨리스의 모험은 사회화 이전의 단계로의 퇴행을 다시 한번 경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앨리스가 만나는 인물들이 모두 제멋대로에 고집이 세고 언어의 사회적 문맥을 부정한 채 문자 그대로의 논리만을 따르는 것도 사회화 과정 이전의 상태를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어떤 의미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미성숙한 어린이의 의식과 상대적으로 사회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중산층 소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의식 수준의 갈등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말장난이나 난센스의 언어학적 특성에 주목하는 학자들도 있으며 특히 놀이 이론을 통해 난센스의 문학적 특성을 탐구하는 연구도 있다. 실제로 작품 속에 여러 가지 놀이의 형식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말장난과 형식 논리를 놀이의 재료나 소재로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사회적 문맥에서 벗어난 언어가 어떻게 문학적 희극성 또는 문학적 언어의 새로운 기능으로 작용하는지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특성을 정작 어린이 독자들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말장난이나 논리적 문제 등은 오히려 성인 독자들이 재미를 느낄만한 요소들이다. 성인이 되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다시 읽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읽으며 느꼈던 어딘지 모를 괴상함과 동화로서의 이질성이 성인의 시각으로 다시 조명되었을 때 비로소 이해되기 때문이다.
한동안 <무슨 무슨 나라의 앨리스(또는 누구)>라는 식의 제목이 달린 책들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런 책들은 대부분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를 신기함과 놀라움 속에 전달하는 내용인 경우가 많았다. 신기함과 놀라움은 어린이를 사랑하는 도지슨만의 방식이 아니라 오늘날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지식과 탐구의 도구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단편적인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때로 정체성의 혼란, 현실감의 상실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서 느끼는 당혹감과 혼란은 묘한 기시감을 느끼게 해 준다.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뉴스를 보면서 현대인이 느끼는 감정도 앨리스가 느끼는 당혹감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참고로 영어 원서로 읽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말장난 등을 제대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동화이므로 영어도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