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함께 읽을 고전>
『거미여인의 키스』&『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키워드: 섹슈얼리티
눈앞으로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안개가 흘러가고 머리가 무겁고 멍해졌다. 손발을 천천히 움직이자 관절에 기름칠을 한 듯, 미끌미끌한 기름이 온몸을 휘감는 느낌이 들었다. 숨을 쉴 때마다 나를 잊어 간다. 몸에서 온갖 것들이 하나씩 빠져나가고 내가 인형 같다는 느낌이 든다. 방은 달콤한 공기로 가득 차고 연기가 폐를 마구 긁는다.
내가 인형이라는 감각이 점점 더 강해진다. 놈들 생각대로 움직이면 된다, 나는 최고로 행복한 노예다.
1976년 군조 신인상을 받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주일 미군 요코타 기지 근처의 훗사시의 일명 <하우스>에 사는 젊은이들의, 마약과 섹스에 빠져 있는 출구 없는 일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발표 직후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물론 이 작품이 1945년 이후 한국과 일본 등에 들어선 미군 기지와 그 주변 젊은이들의 타락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첫 작품은 아니다. 예컨대 점령 이후에 발표된 일본 소설들은 이미 담배와 위스키, 초콜릿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풍요로움과 이에 대비되는 기지촌 여성들의 빈곤, 미군에 의한 일본 여성에 대한 폭력과 이를 방조하는 일본 남성 등에 대해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미국 지배하의 일본의 현실을 폭로했다. 하지만 1970년대 일본은 전쟁과 패전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져 경제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던 만큼, 이른바 패전과 그로 인한 미군 주둔의 영향이 여전히, 아니 더욱 강하게 미치고 있음을 여과 없이 보여 주는 이 작품의 충격은 상당했다.
이 작품 속에 미군에 의한 일본인에 대한 폭력이 직접적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이 소설은 미군에게 일본 여성을 소개하는 일을 하면서 그들과 거의 일상을 함께하는 주인공 류의 시선으로 이야기되는데, 그의 눈에 비친 일본 젊은이들은 거의 매일같이 온갖 종류의 술과 마약, 파티와 섹스에 탐닉하고 토하면서 괴로워한다.
자신 역시 그런 젊은이들 속에 있으면서도 류는 여자 친구인 리리의 말처럼 그들의 행각과 그에 따른 신체적 감각을 <마치 기록해 두었다가 나중에 그걸 연구하려는 학자>처럼 집요하게 응시하고, 마침내 미국을 통해 흘러들어 오는 온갖 쾌락의 도구에 물들어 가는 자신을 <인형 같>고 <행복한 노예>로 인식하기에 이른다. <행복한 노예>는 인간으로서 즐길 수 있는 최소한의 쾌락조차 억압받아 언제나 자신이 노예임을 잊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어떠한 신체적 쾌락도 억압받지 않고 허용되며 오히려 그것에 중독되어 가는 상황 속에 자신이 있음을 표현한 말로, 이는 전후 일본인에 대한 무라카미 류의 해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소설 속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류는 쾌락에 빠져 사는 파멸적인 일상으로부터 혼자만이라도 탈출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쾌락에 찌들어 있는 도시 젊은이들의 감각을 집요하게 언어화하고자 한다. 마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파란색 유리 파편처럼.
그림자처럼 비치는 도시는 그 능선에서 미묘한 기복을 그린다. 그 기복은 비 내리는 비행장에서 리리를 죽일 뻔했을 때, 벼락과 함께 한순간 눈 깊이 박힌 저 희멀건 기복과 똑같은 것이다. 출렁거리며 뿌옇게 보이는 수평선 같은 여자의 하얀 팔처럼 부드러운 기복.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어김없이 나는 희멀건 기복에 감싸여 있었던 것이다. 가장자리에 피가 묻은 유리 파편은 새벽 공기에 닿아 투명에 가깝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나는 일어서서 내 방으로 걸어가며 이 유리처럼 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 이 하얀 기복을 비쳐 내고 싶었다. 나에게 비친 하얀 기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결국 이 소설은 화자 류가 이 타락한 공동체에서 떠나지 않고, 그들의 현실을 비추는 <유리>가 되기로 결의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어째서 이런 일상이 지속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한 번도 던지지 않는 채로. 이는 그 이유를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를 포함해 동시대 일본인들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니까 그들은 전쟁에 졌고, 전쟁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온갖 쾌락을 손에 넣었음을 말이다.
자기 자신의 일상사 속 파편화된 감각을 세계사라는 큰 이야기 속에 위치시키기보다는 아예 양자의 단절을 노골적으로 보여 주는 이 작품의 서사 스타일은, 당시로서는 일본인들의 정신 세계를 드러내려는 소설적 전략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출현한 <거대 서사의 종언>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예견한 선구적인 포스트모던 작품으로 보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Flim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무라카미 류, 1979, 103분, 컬러
이 소설은 작가 무라카미 류가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을 맡는 조건으로 <키티 필름>에서 제작되어 1979년에 일반 공개되었지만 흥행에 참패하고 말았다. VHS로는 발매되었지만, DVD는 발매되지 않아 현재 구하기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