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함께 읽을 고전>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여명』
•키워드: 감각의 끝
『여명』은 사랑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삼십 여년의 세월을 산 오십 대 중반의 여성이 어머니 시도(Sido)의 편지를 통해 사랑과 나이 듦, 욕망과 고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사유해 가는 작품이다. 어머니의 편지 속에서 화자 콜레트가 발견하는 것은 딸을 깊이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이 삶 전체를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던 한 노년 여성의 절제와 균형 감각이다.
사랑이 서서히 멀어지고 있음을 감지하는 시간 속에서 화자는 뜻밖에 다가온 젊은 사랑 앞에서 흔들린다. 그 미묘한 내면의 동요를 따라가다 보면 나이 든 여성의 시선으로만 비로소 말해질 수 있는 사랑과 감정의 진실이 조용히 드러난다. 이러한 진실은 어머니의 편지들 사이에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 서른다섯의 이웃 비알(Vial)과 화자가 나누는 대화를 교차해 배치한 독특한 구성 속에서 더욱 또렷해진다. 비알을 사랑하는 화가 엘렌 클레망,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뜻하지 않게 삼각 구도의 한 축이 되는 콜레트. 그러나 젊은 이들과 달리 사랑이 ‘기억할 필요조차 없이 잊혀질 수도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는 나이의 그녀에게 사랑은 더 이상 삶의 중심을 차지하는 사건이 아니다.
생활방식을 바꾸고 다시 시작하는 것, 새로 태어나는 것은 내게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었어. 하지만 지금 원하는 건 그런 일이 아니야. 이제는 내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을 시작하고 싶어. 알겠어, 비알? 열 여섯 살 이후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것과 무관하게 살고 싶고, 사랑이란 것과 무관하게 죽고 싶어. 그건 참 멋진 일이야..... 당신은 몰라. 당신에게는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 [...] 이해해주겠지? 이제 삼십 년 동안 지겹도록 나를 괴롭혔던 그 놈의 사랑 때문에 죽고 사는 것이 아니라, 슬프면 그냥 슬프고, 기쁘면 그냥 기쁘고 그렇게 살려고 해. 요즘은 그래. 근사한 일이지. 너무 근사해. (136쪽)
밤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비알과의 대화는, 여전히 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확인하는 시간이자, 사랑이 더 이상 삶의 중심이 되지 않는 삶을 선택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선언하는 시간이다. 나이듦과 함께 시간의 유한성을 자각한 화자는 “노년에 이르면 좋아하는 것조차 멈출 줄 알아야 한다”는 어머니 시도의 말을 비로소 삶의 태도로 받아들인다. 그런 의미에서 『여명』은 사랑의 소멸을 비극으로 붙드는 소설이 아니라, 정열적인 사랑 이후의 삶을 어떤 리듬과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작품이다.
어머니와 함께 나누던 푸른 여명의 시간을 이제는 홀로 맞이하며 화자는 자연의 리듬을 따르던 어머니 시도의 삶을 점차 닮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여명』은 시간의 무게를 자각한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성찰하게 하는 시적 에세이이자, 절제된 지혜의 책에 가까운 작품이다.
이러한 변화는 작가 자신의 문학적 전환과도 맞닿아 있다. 남편 윌리의 대필작가로 문단에 발을 들인 뒤, 이혼 이후에는 경제적 자립을 위해 여러 직업을 전전해야 했던 그녀에게 글쓰기는 문학적 이상을 실현하는 순수한 행위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노동에 가까웠다. 때로 그것은 자신을 배신한 남성들에 대한 상처와 분노를 우회적으로 표출하는 통로이자, 복수의 욕망을 실현하는 방식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명』에서 콜레트는 비로소 사랑이라는 주제에 갇히지 않고, 자연과 시간, 감각과 태도 같은 요소들을 사유의 중심에 놓는다. 이 작품은 작가로서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자문하기 시작한 기록이자, 글쓰기의 의미를 새롭게 재정립한 순간이라 할 수 있다.
+ 비하인드 스토리
작품 속 화자인 ‘나’는 작가 자신의 이름인 ‘콜레트’로 등장한다. 어머니의 실제 편지에 담긴 사유가 텍스트 안에서 다시 빛을 얻는 이 작품은 자서전과 소설,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넘나든다. 이는 훗날 ‘오토픽션’이라 불리게 될 문학적 형식을 1920년대 말 이미 선구적으로 실천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작품의 서두를 여는 어머니의 편지에서 시도는 딸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서는 대신, 선인장 꽃이 피는 순간을 보기 위해 자신의 집에 머무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 시도가 딸과 사위를 만나기 위해 파리를 방문했던 사실과는 다른 설정이다. 이러한 차이는 『여명』이 사실을 충실히 재현하는 자서전이 아니라, 시간의 유한성 앞에서 삶의 의미와 태도를 사유하기 위해 현실을 선택적으로 재구성한 허구적 글쓰기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내 글을 읽으며 독자들은 내가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할까? 천만에. 그것은 단지 나의 모델일 뿐이다. (45쪽)
글: 이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