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함께 읽을 고전>
『주홍색 연구』&『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키워드: 두뇌와 직관
“무미건조한 삶의 실타래 속에 뒤엉킨 살인의 주홍빛 실오라기, 그것을 한 올 한 올 세밀하게 골라 풀어내는(unravel) 것이 우리의 임무.”
세상 모든 추리소설의 피부를 벗기고 피와 살점을 걷어내면, 그 모두를 지탱해주던 뭔가가 파르스름하게 인광을 튀기며 뼈대를 드러낸다. 〈문제〉와 〈풀이〉의 이항 대립으로 이루어지는 추리소설의 본질, 이른바 ‘솔루션의 구조’인데, 위의 예문은 그것의 핵심을 지적하는 셜록 홈즈의 유명한 발언이다. ‘뒤엉킨 실오라기를 풀어낸다’라는 근사한 표현은 과연 홈즈의 ― 코난 도일의 ― 독창적인 착상일까? 놀랍게도 40여 년 전 「모르그가 살인사건」을 쓴 에드거 앨런 포의 어느 편지글에 “거미줄을 풀어내는 재주(ingenuity of unravelling)”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풀어내는’ 과정이 새로운 소설의 존재 이유라는 취지였다. 포를 향한 오마주가 굳이 아니더라도, 영원히 기억에 남을 이미지로 추리소설의 정곡을 찔러 보여준 점은 「주홍색 연구」를 각별하게 받아들일 이유로 충분하다.
좀 더 민감한, 다른 이유도 있다. 이 작품의 유명세는 뭐니 뭐니 해도 주인공 홈즈와 왓슨이 엮어갈 특별한 관계의 탄생을 그렸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역사상 가장 빛나는 파트너십으로 인정받는 탐정과 의사의 의기투합은 본업이 의사인 저자 코난 도일에겐 자연스러운 발상이었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이미 훌륭한 선례가 있다. 「주홍색 연구」가 탄생하기 16년 전, 프랑스 작가 앙리 코뱅이 「막시밀리앙 헬러」라는 추리소설을 발표하는데, 그 또한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 막시밀리앙 헬러와 그를 도우면서 사건 해결의 증인이 되어주는 의사 친구가 듀오를 이루어 활약하는 구도이다. 이와 관련하여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 ‘표절 논란’이 제기된 바도 있으나, 어쨌든 홈즈와 왓슨을 따로 떼어놓고는 추리소설의 역사를 감히 논할 수 없을 만큼 둘의 관계가 성공적으로 형상화되었다는 사실엔 모두가 동의한다.
런던 어느 허름한 살인 현장의 벽면에 핏빛으로 휘갈긴 의문의 단어 ‘RACH(복수)’. 이를 출발점으로 하여,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의 사건목록 제1호를 수놓을 활약들이 펼쳐진다. 천재적인 두뇌만큼이나 유별난 개성의 소유자와 의리 있고 성실한 협력자의 팀플레이가 과거 배타적인 종교공동체의 잘못된 신념에서 비롯한 오랜 비극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가운데, 우리는 한편의 추리소설을 감상할뿐더러, 법의 정의와 인간의 정의 사이에서 갈등에 답하는 방법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저자 코난 도일은 과학자이면서 역사 및 심리학에도 조예가 깊어, 자신의 첫 장편 소설에 논리적 사고의 묘미와 인간사의 굴곡진 숙명 모두를 완성도 높게 버무려놓았다. 이제 ‘주홍색 연구’라는 제목은 수수께끼로 얽히고설킨 혼돈의 세상으로부터 과학과 논리의 힘이 가져다줄 영원한 승전보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셜록 홈즈의 명민함뿐 아니라 그 까탈스러운 습성까지 살아 숨 쉬는 영웅의 모습으로 극진히 애정할 것이요, 그가 휴대한 돋보기와 담배 파이프는 모두의 가슴에 불멸의 상징으로 아로새겨질 테다.
+ 드라마
〈셜록〉 에피소드1 ― 핑크색 연구(A Study in Pink). 2010년.
셜록 홈즈 시리즈는 연극과 드라마, 영화 장르로 무수히 많은 각색이 이루어졌다. 그중에서도 「주홍색 연구」는 소설의 복잡한 구성 때문에 각별한 테크닉이 요구되는데, 2010년 영국 BBC에서 제작한 ‘셜록 시리즈’ 중 〈핑크색 연구〉는 원작의 핵심 요소만 가져오되 줄거리는 창의적으로 재해석해 큰 호응을 얻었다. 스티븐 모펏이 각본을 쓰고 마크 게이티스가 연출했으며, 홈즈 역에는 베네딕트 컴버배치, 왓슨 역으로는 마틴 프리먼이 열연했다. 시대 배경을 현재 런던으로 옮겨와, 홈즈와 왓슨의 첫 만남부터 시작해 연쇄 자살로 보이는 살인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주홍’의 모티프를 ‘핑크’로 바꾸고, 스마트폰과 문자 메시지를 활용한 현대적 감각의 추리 과정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 작품을 필두로 하여 ‘셜록 시리즈’ 전체의 세계적 팬덤이 부활하면서 2010년 새턴 어워즈 최고 드라마상과 2011년 영국 BAFTA 최고 드라마상을 수상, 2010년 새턴 어워즈 남우주연상과 2011년 에미상 드라마 부문 후보에 올랐다.
글: 성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