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이달의 고전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김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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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함께 읽을 고전>
『주홍색 연구』&『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키워드: 두뇌와 직관
 

 애거사 메리 클라리사 크리스티는 1890년 데번주 토키의 중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형제들과 달리 어렸을 때 정규 학교 교육을 받지 않았고 집에서 책을 읽으며 지냈다. 나중에 프랑스에서 피아노와 성악을 공부했으나 프로가 되기에는 재능이 모자란다는 것을 깨닫고 단념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간호사로 지원했는데 이때 쌓은 독극물에 대한 지식은 범죄 소설가로서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1920년, 크리스티는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을 통해 벨기에인 탐정 에르퀼 푸아로를 세상에 소개했다.

 크리스티는 추리 소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작가였다. 그러나 종종 잊히는 점이지만 그녀는 이 장르의 혁신가였으며, 오늘날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독특한 스타일의 대중 서사를 창조한 사람이기도 했다. 독자들은 비슷한 시기에 활약했던 많은 작가들이 오늘날 그녀와 비교하면 얼마나 낡고 과장돼 보이는지 놀란다. 크리스티의 명성은 에르퀼 푸아로와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그녀의 탐정 소설(장편 소설만 66편)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크리스티의 영역은 미스터리 장르에 국한되지는 않았다. 그녀는 메리 웨스트콧이라는 필명으로 로맨스 소설도 출간했으며, 극작가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크리스티는 두 번 결혼했다. 이는 뚜렷하게 다른 성격의 결혼이었으며 첫 결혼의 종결은 드라마틱한 모습을 띠었다. 그녀는 제1차 세계대전 시기 아치볼드 크리스티와 결혼했으나, 행복한 결혼은 못 되었다. 1926년 12월, 남편과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그녀는 11일간 실종되었다. 이는 전 국민의 관심을 모은 사건이었다. 그녀는 해러게이트의 한 호텔에서 가명으로 숙박하던 중 발견되었다. 사용한 가명은 남편의 정부의 이름이었고, 크리스티는 기억상실 증세를 보였다. 이 사건은 크리스티 본인에 의해 완전히 해명된 적이 없으며, 그녀의 전기 속에서 기이한 에피소드 중 하나로 남아 있다.

 1930년 고고학자 맥스 말로완과의 두 번째 결혼은 그녀의 작품 세계에 지리적, 문화적 지평을 넓혀 주었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고고학 탐사를 다녔으며 이 경험은 이후 여러 소설에서 활용되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 아래에서 영국인들은 외국 호텔, 발굴 현장, 국경 지대에서 뭔가 자국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던 특성들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1952년 런던에서 초연된 「쥐덫」은 세계 최장연속 공연 기록을 세운 추리극이었다. 1971년 그녀는 대영 제국 훈장(DBE)을 수여받았다. 이는 가장 성공적인 추리 작가일 뿐 아니라 ‘안락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지만 가끔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영국의 이미지를 전 세계인의 뇌리에 심어준 그녀에게 꽤나 늦게 찾아온 감사 인사였다.

 크리스티는 1976년 옥스퍼드셔에서 사망했다. 그녀는 85세였다. 줄리언 시먼스가 말했듯 그녀는 영원히 다시 나타날 수 없는 조합이었다. 마술과 같은 플롯의 설계자이자 일상적인 대사의 대가였으며, 가벼운 예절이나 인사와 같은 숨은 요소들을 의미심장한 미스터리의 요소로 전환시킬 줄 알았다. 새롭지 않은 트릭도 그녀의 손을 거치면 신선하게 느껴졌다. 추리 소설의 황금기에 활약한 것은 그녀의 행운이었으나, 그녀는 자신을 위해 그리고 추리 소설을 위해 그 황금기를 연장시켰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1926)은 그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황금기 추리 소설이 산출한 대표작 중 하나이다. 하워드 헤이크래프트는 이것을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추리 소설 중 하나로 뽑았다. 2013년에는 영국 추리 작가 협회가 투표로 선정한 ‘가장 위대한 추리 소설’로 선정되었다.

 페러스 부인은 1년 전 남편을 독살했다. 죄의식에 괴로워하던 중 새로운 고통이 추가된다. 누군가 이 사실을 알게 되어 돈을 요구하며 그녀를 협박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견디지 못하고 음독 자살한다. 그녀는 협박범이 누구인지 밝힌 편지를 마을 유지인 로저 애크로이드에게 남겼다. 두 사람은 교제 중이었다. 아침, 제임스 셰퍼드 의사가 불려 가 페러스 부인의 사망을 확인한다. 셰퍼드가 애크로이드를 방문한다. 애크로이드는 그간 페러스 부인이 겪었던 일을 설명한다. 그녀의 마지막 편지가 도착한다. 애크로이드는 셰퍼드를 돌려보내고 편지를 읽기 위해 서재로 들어간다. 귀가한 셰퍼드는 급한 전화를 받고 다시 애크로이드 저택으로 향한다. 서재에서 애크로이드는 칼에 찔려 살해됐다. 편지는 사라졌다. 저택에 있던 사람들이 의심을 받는다. 특히 이날 도피한 의붓아들 랠프 페이턴이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애크로이드의 딸 플로라는 페이턴이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에르퀼 푸아로에게 조사를 의뢰한다. 그는 탐정 일에서 은퇴하여 호박을 재배하기 위해 이 마을에 와 있다. 푸아로는 사람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완전히 진실을 말하지는 않는 이 사건을 면밀히 조사한다. 결국 그는 범인을 밝혀 낸다. 이 결말은 추리 소설 역사상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이다.

 오늘날의 독자들은 이 책을 본격 추리 소설이 표방해 온 ‘공정한 게임’의 한계선에 있는 작품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아마 이 책이 생산한 논란과 추리 소설 역사에 대한 지식이 독해에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크리스티는 이 책을 가장 자랑스러워 했다고 한다. 가장 성공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시도했던 그 어떤 작품보다 더 위험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되돌릴 수 없는 선을 넘었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소설은 단 한 번만 쓸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책 출간 뒤 그녀는 ‘속았다’고 느낀 독자들로부터 수많은 항의 편지를 받았다. 아마 독자들이 문학적 장치에 민감하게 반응한 최초의 사례일 것이다.

 사실 이 소설의 트릭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여기서 말하지 않을 가장 유명한 트릭이고, 또 하나는 당시의 신문물인 녹음기를 사용한 트릭이다. 첫 번째 트릭의 압도적 중요성 때문에 보조적인 두 번째 트릭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상황은 크리스티의 본질적 특징을 드러내는 좋은 예가 된다. 두 번째 트릭은 썩 설득력 있지는 않다. 이 트릭이 보조적인 데 머문 건 다행한 일이었다. 분명 크리스티의 강점은 일상적이고 친숙한 것들 속에 있는 심리적 맹점을 이용하는 데 있었다. 그런 트릭은 하나의 직관으로 한 번에 완전히 풀리게 된다. 반대로, 복잡한 논리나 신기술을 이용한 트릭은 그녀와 잘 맞지 않았다. 이런 특징은 결과적으로 약점이라기보다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그녀는 정통적 추리 소설을 썼다고 하나, 이 장르가 너무나 복잡하고 기계적인 퍼즐이 되려는 순간이면 언제나, 아마 본능적으로 멈추었다. 이런 ‘제한된 본격 추리’ 내지는 ‘경계선적 본격 추리’라는 특징은 그녀의 작품들이 누리는 긴 생명의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이 공정한가라는, 100년 전 출간 당시의 질문은 이미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추리 소설로 뽑히기 때문이다. 보통 이 책의 해설을 논란을 중심에 놓고 소개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매력에 충분히 주의하지 않기 쉽다. 실제로 이 책은 크리스티가 쓴 가장 재미난 책 중 하나이다. 등장인물의 묘사나 대사도 생생하고, 영국 전원 풍경이 이처럼 쾌적하게 묘사된 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푸아로조차 평소의 연극적이며 거들먹거리는 ‘대륙식’ 거동을 억제하고 차분한 모습을 유지한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그가 주의를 끌면 크리스티의 기획에 방해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특별하게 자극적인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점은 새삼스럽게 놀라운 사실로 느껴진다. 나중에 독자는 이 평화로운 사람들의 일상 묘사가 핵심이자 주인공이었고, 읽으면서 그 아래 존재하는 살인자의 그림자를 감지해야 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적어도 크리스티는 독자들이 이를 몰라보게 방해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결말이 충격적인 것은 실제로 그녀가 독자를 속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보르헤스나 로브그리예가 구상한 추리 소설 중에는, 결말을 불확실하게 만듦으로써 독자가 첫 페이지부터 다시 읽게 하는 것들이 있다. 여기서 핵심은 ‘다시 읽는다’이다. 추리 소설 같은 정교한 기계는 독자가 한번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는 전모를 알기 어렵다. 재독을 하게 하면 좋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결말을 비워두든지 마지막에 취소함으로써 독자가 어쩔 수 없이 다시 읽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아마 그 취지에 공감하더라도 추리 소설 애독자들은 여기서 뭐가 잘못됐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보르헤스나 로브그리예의 생각과는 달리 많은 추리 독자들은 이미 읽은 책을 여러 번 다시 읽는다. 범인을 아는 건 재독할 때 큰 문제로 작용하지 않는다. 다시 읽고 싶을 만큼 잘 썼는지가 문제가 될 뿐이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을 읽고 바로 또 읽지 않은 추리 독자는 별로 없을 것 같다. 만일 이 책을 ‘다시 읽게 만드는 기계’라고 부를 수 있다면, 첫 번째 읽을 때 받게 되는 충격 외에 두 번째, 세 번째 읽을 때 작용하는 매력이 서서히 드러날 것이다. 알다시피 가장 많은 차이를 낳는 요소는 그런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작품들이 영화나 TV 때문에 ‘사실상 결말이 모두 공개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히는 미스터리를 이해하는 한 방법일 것이다.

 

글: 김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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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이달의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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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함께 읽을 고전>
『주홍색 연구』&『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키워드: 두뇌와 직관
 

 애거사 메리 클라리사 크리스티는 1890년 데번주 토키의 중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형제들과 달리 어렸을 때 정규 학교 교육을 받지 않았고 집에서 책을 읽으며 지냈다. 나중에 프랑스에서 피아노와 성악을 공부했으나 프로가 되기에는 재능이 모자란다는 것을 깨닫고 단념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간호사로 지원했는데 이때 쌓은 독극물에 대한 지식은 범죄 소설가로서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1920년, 크리스티는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을 통해 벨기에인 탐정 에르퀼 푸아로를 세상에 소개했다.

 크리스티는 추리 소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작가였다. 그러나 종종 잊히는 점이지만 그녀는 이 장르의 혁신가였으며, 오늘날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독특한 스타일의 대중 서사를 창조한 사람이기도 했다. 독자들은 비슷한 시기에 활약했던 많은 작가들이 오늘날 그녀와 비교하면 얼마나 낡고 과장돼 보이는지 놀란다. 크리스티의 명성은 에르퀼 푸아로와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그녀의 탐정 소설(장편 소설만 66편)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크리스티의 영역은 미스터리 장르에 국한되지는 않았다. 그녀는 메리 웨스트콧이라는 필명으로 로맨스 소설도 출간했으며, 극작가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크리스티는 두 번 결혼했다. 이는 뚜렷하게 다른 성격의 결혼이었으며 첫 결혼의 종결은 드라마틱한 모습을 띠었다. 그녀는 제1차 세계대전 시기 아치볼드 크리스티와 결혼했으나, 행복한 결혼은 못 되었다. 1926년 12월, 남편과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그녀는 11일간 실종되었다. 이는 전 국민의 관심을 모은 사건이었다. 그녀는 해러게이트의 한 호텔에서 가명으로 숙박하던 중 발견되었다. 사용한 가명은 남편의 정부의 이름이었고, 크리스티는 기억상실 증세를 보였다. 이 사건은 크리스티 본인에 의해 완전히 해명된 적이 없으며, 그녀의 전기 속에서 기이한 에피소드 중 하나로 남아 있다.

 1930년 고고학자 맥스 말로완과의 두 번째 결혼은 그녀의 작품 세계에 지리적, 문화적 지평을 넓혀 주었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고고학 탐사를 다녔으며 이 경험은 이후 여러 소설에서 활용되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 아래에서 영국인들은 외국 호텔, 발굴 현장, 국경 지대에서 뭔가 자국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던 특성들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1952년 런던에서 초연된 「쥐덫」은 세계 최장연속 공연 기록을 세운 추리극이었다. 1971년 그녀는 대영 제국 훈장(DBE)을 수여받았다. 이는 가장 성공적인 추리 작가일 뿐 아니라 ‘안락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지만 가끔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영국의 이미지를 전 세계인의 뇌리에 심어준 그녀에게 꽤나 늦게 찾아온 감사 인사였다.

 크리스티는 1976년 옥스퍼드셔에서 사망했다. 그녀는 85세였다. 줄리언 시먼스가 말했듯 그녀는 영원히 다시 나타날 수 없는 조합이었다. 마술과 같은 플롯의 설계자이자 일상적인 대사의 대가였으며, 가벼운 예절이나 인사와 같은 숨은 요소들을 의미심장한 미스터리의 요소로 전환시킬 줄 알았다. 새롭지 않은 트릭도 그녀의 손을 거치면 신선하게 느껴졌다. 추리 소설의 황금기에 활약한 것은 그녀의 행운이었으나, 그녀는 자신을 위해 그리고 추리 소설을 위해 그 황금기를 연장시켰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1926)은 그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황금기 추리 소설이 산출한 대표작 중 하나이다. 하워드 헤이크래프트는 이것을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추리 소설 중 하나로 뽑았다. 2013년에는 영국 추리 작가 협회가 투표로 선정한 ‘가장 위대한 추리 소설’로 선정되었다.

 페러스 부인은 1년 전 남편을 독살했다. 죄의식에 괴로워하던 중 새로운 고통이 추가된다. 누군가 이 사실을 알게 되어 돈을 요구하며 그녀를 협박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견디지 못하고 음독 자살한다. 그녀는 협박범이 누구인지 밝힌 편지를 마을 유지인 로저 애크로이드에게 남겼다. 두 사람은 교제 중이었다. 아침, 제임스 셰퍼드 의사가 불려 가 페러스 부인의 사망을 확인한다. 셰퍼드가 애크로이드를 방문한다. 애크로이드는 그간 페러스 부인이 겪었던 일을 설명한다. 그녀의 마지막 편지가 도착한다. 애크로이드는 셰퍼드를 돌려보내고 편지를 읽기 위해 서재로 들어간다. 귀가한 셰퍼드는 급한 전화를 받고 다시 애크로이드 저택으로 향한다. 서재에서 애크로이드는 칼에 찔려 살해됐다. 편지는 사라졌다. 저택에 있던 사람들이 의심을 받는다. 특히 이날 도피한 의붓아들 랠프 페이턴이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애크로이드의 딸 플로라는 페이턴이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에르퀼 푸아로에게 조사를 의뢰한다. 그는 탐정 일에서 은퇴하여 호박을 재배하기 위해 이 마을에 와 있다. 푸아로는 사람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완전히 진실을 말하지는 않는 이 사건을 면밀히 조사한다. 결국 그는 범인을 밝혀 낸다. 이 결말은 추리 소설 역사상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이다.

 오늘날의 독자들은 이 책을 본격 추리 소설이 표방해 온 ‘공정한 게임’의 한계선에 있는 작품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아마 이 책이 생산한 논란과 추리 소설 역사에 대한 지식이 독해에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크리스티는 이 책을 가장 자랑스러워 했다고 한다. 가장 성공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시도했던 그 어떤 작품보다 더 위험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되돌릴 수 없는 선을 넘었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소설은 단 한 번만 쓸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책 출간 뒤 그녀는 ‘속았다’고 느낀 독자들로부터 수많은 항의 편지를 받았다. 아마 독자들이 문학적 장치에 민감하게 반응한 최초의 사례일 것이다.

 사실 이 소설의 트릭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여기서 말하지 않을 가장 유명한 트릭이고, 또 하나는 당시의 신문물인 녹음기를 사용한 트릭이다. 첫 번째 트릭의 압도적 중요성 때문에 보조적인 두 번째 트릭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상황은 크리스티의 본질적 특징을 드러내는 좋은 예가 된다. 두 번째 트릭은 썩 설득력 있지는 않다. 이 트릭이 보조적인 데 머문 건 다행한 일이었다. 분명 크리스티의 강점은 일상적이고 친숙한 것들 속에 있는 심리적 맹점을 이용하는 데 있었다. 그런 트릭은 하나의 직관으로 한 번에 완전히 풀리게 된다. 반대로, 복잡한 논리나 신기술을 이용한 트릭은 그녀와 잘 맞지 않았다. 이런 특징은 결과적으로 약점이라기보다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그녀는 정통적 추리 소설을 썼다고 하나, 이 장르가 너무나 복잡하고 기계적인 퍼즐이 되려는 순간이면 언제나, 아마 본능적으로 멈추었다. 이런 ‘제한된 본격 추리’ 내지는 ‘경계선적 본격 추리’라는 특징은 그녀의 작품들이 누리는 긴 생명의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이 공정한가라는, 100년 전 출간 당시의 질문은 이미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추리 소설로 뽑히기 때문이다. 보통 이 책의 해설을 논란을 중심에 놓고 소개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매력에 충분히 주의하지 않기 쉽다. 실제로 이 책은 크리스티가 쓴 가장 재미난 책 중 하나이다. 등장인물의 묘사나 대사도 생생하고, 영국 전원 풍경이 이처럼 쾌적하게 묘사된 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푸아로조차 평소의 연극적이며 거들먹거리는 ‘대륙식’ 거동을 억제하고 차분한 모습을 유지한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그가 주의를 끌면 크리스티의 기획에 방해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특별하게 자극적인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점은 새삼스럽게 놀라운 사실로 느껴진다. 나중에 독자는 이 평화로운 사람들의 일상 묘사가 핵심이자 주인공이었고, 읽으면서 그 아래 존재하는 살인자의 그림자를 감지해야 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적어도 크리스티는 독자들이 이를 몰라보게 방해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결말이 충격적인 것은 실제로 그녀가 독자를 속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보르헤스나 로브그리예가 구상한 추리 소설 중에는, 결말을 불확실하게 만듦으로써 독자가 첫 페이지부터 다시 읽게 하는 것들이 있다. 여기서 핵심은 ‘다시 읽는다’이다. 추리 소설 같은 정교한 기계는 독자가 한번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는 전모를 알기 어렵다. 재독을 하게 하면 좋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결말을 비워두든지 마지막에 취소함으로써 독자가 어쩔 수 없이 다시 읽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아마 그 취지에 공감하더라도 추리 소설 애독자들은 여기서 뭐가 잘못됐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보르헤스나 로브그리예의 생각과는 달리 많은 추리 독자들은 이미 읽은 책을 여러 번 다시 읽는다. 범인을 아는 건 재독할 때 큰 문제로 작용하지 않는다. 다시 읽고 싶을 만큼 잘 썼는지가 문제가 될 뿐이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을 읽고 바로 또 읽지 않은 추리 독자는 별로 없을 것 같다. 만일 이 책을 ‘다시 읽게 만드는 기계’라고 부를 수 있다면, 첫 번째 읽을 때 받게 되는 충격 외에 두 번째, 세 번째 읽을 때 작용하는 매력이 서서히 드러날 것이다. 알다시피 가장 많은 차이를 낳는 요소는 그런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작품들이 영화나 TV 때문에 ‘사실상 결말이 모두 공개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히는 미스터리를 이해하는 한 방법일 것이다.

 

글: 김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