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5월 이달의 고전〉
『너무 시끄러운 고독』 & 『피아노 치는 여자』
• 키워드: 움직이는 손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주인공 한탸는 자신의 일을 ‘러브 스토리’라고 이야기한다. 한탸는 책과 폐지 더미를 압축하면서 책을 죽이는 ‘상냥한 도살자’인 동시에, 활자에 찌든 살아있는 ‘백과사전’이기도 하다. 그에게 폐지 압축은 독서와 다를 바 없는 행위다.
사실 내 독서는 딱히 읽는 행위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 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 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그런 식으로 나는 단 한 달 만에 2톤의 책을 압축한다.
작업장에는 온갖 책이 쏟아져 내린다. 독자는 그 책들을 통해 시대를 읽어내기도 하고, 인간에 관한 질문에 직면하기도 한다. 한탸는 노동 중에도 책이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빠져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리 떠난다. 그의 소망은 생각들로 채워진 고독 속에 사는 것이며, 그가 추구하는 것은 어찌 보면 ‘영원과 무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매일같이 목격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들의 쇠락과 죽음이다.
내가 보는 세상만사는 동시성을 띤 왕복운동으로 활기를 띤다. 일제히 전진하는가 싶다가도 느닷없이 후퇴한다. 대장간 풀무가 그렇고, 붉은색과 녹색 버튼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내 압축기가 그렇다. 만사는 절룩거리며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지는데, 그 덕분에 세상은 절름발이 신세를 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탸는 압축기의 붉은색과 녹색 버튼의 전진과 후진 속에서, 소멸하고 다시 태어나는 세상의 균형을 찾아낸다. 새 기계의 등장으로 자신의 고독을 빼앗기게 될 위기에 처한 그는 스스로 압축기 속으로 들어간다. 폐지가 압축되어 새 꾸러미가 탄생하듯, 죽음을 앞둔 한탸에게 사랑했던 여인의 이름이 떠오른다. 온전한 러브 스토리의 탄생이다.
Heysu
막장을 덮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 가고 또 돌아가길 반복하게 된다.가슴에 무한의 바퀴로 박혀버리는 책.
2026.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