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이달의 고전

피아노 치는 여자

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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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5월 이달의 고전〉

『피아노 치는 여자』 & 『너무 시끄러운 고독』
• 키워드: 움직이는 손

『피아노 치는 여자』는 독자를 불편하게 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작품이다. 작가의 천재성과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호평과 동시에, 지나치게 도발적이고 난해하다는 신랄한 비판도 이어졌다. 1970년대 여성문학은 가정․직장․결혼 내에서 여성의 억압과 고통을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호소하는 차원에 그쳤다. 이에 반해 옐리네크는 개인의 경험을 단순히 재현하는 방식을 넘어,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 주체가 어떻게 해체되고 분열되는가를 언어적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건조하고 절제된 문장 뒤에 숨어 있는 반복과 패러디, 냉소 등은 남성 중심 담론의 절대적 권위를 희화화하고 무너뜨리는 서사 방식이다. 

부모님의 불화, 20년 만에 낳은 딸, 아버지의 정신질환과 죽음, 딸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키우려는 어머니의 강박적 기대와 혹독한 음악 교육 등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소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주인공 에리카는 삼십 대 후반의 미혼여성으로 오스트리아 빈 시립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가르친다. 아버지가 정신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뒤, 낡고 허름한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거의 밀착된 생활을 이어간다. 아버지의 부재는 모녀 사이의 분리를 가로막고, 에리카는 어머니에게 남편의 대체자이자 심리적 지지대에 가까운 존재로 자리 잡는다. 두 사람은 부부용 침대를 쓰며, 에리카는 집안의 경제를 책임진다.

에리카는 이른 유년시절부터 그러한 악보체계에 묶여 있었다. […] 그 다섯 개의 선 이외에는 어떤 생각도 해서는 안 된다. 그 패턴은 어머니와 힘을 합하여 ‘규칙’, ‘규정’, ‘명령’이라는 찢어지지 않는 그물로 정육점에 걸린 분홍빛 햄처럼 에리카를 돌돌 말아놓았다.

어머니는 ‘통제자’로서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며 ‘자신의 소유물’을 길들이고, ‘최고 권력’으로서 벌을 준다. 어머니는 신부의 어머니가 되기보다는 딸의 어머니로만 남기를 바란다. 딸을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만들려 했던 어머니는 음악을 제외한 어떤 시간도 딸의 삶에 끼어드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오직 음악만이 에리카의 시간을 채운다. 그녀는 어머니의 나르시시즘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대상에 불과할 뿐, 자의식은 성장에 실패한 아이와 같다. 에리카는 숭고한 정신의 음악을 위해 육체(여성성)를 죽여야 한다. 남성과의 관계, 타인과의 접촉까지 철저히 차단된다. 

치즈 그릇의 유리 덮개 아래, 에리카와 그의 훌륭한 보호막인 어머니가 함께 갇혀 있는 것이다. […] 에리카는 시간과 연령을 초월한 곤충이다. 그녀는 이야깃거리도 없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지도 않는다. 이 곤충은 움찔거리고 기어다니는 능력을 오래전에 상실했다. 

세상과 격리된 채 박제되어 가는 에리카의 일상에 공과대생이자 음악원 학생인 열 살 아래의 클레머는 균열을 일으킨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에리카의 파괴와 폭력 판타지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다. 그녀가 도착적이고 피학적인 요구사항들을 상세히 적은 편지를 건넨 것이 클레머의 분노와 폭력의 도화선이 된다. 그녀에게 성적 쾌락이란 오직 환상으로만 존재한다. 남성 중심적 규범이 만들어낸 이성애적 욕망의 틀에 자신을 맞추지 못하고, 그 결과 관계 형성에 실패하고 만다. 

욕망을 거세당하고 여성적 정체성을 올바로 형성하지 못한 에리카는 도착적인 형태로 어머니와의 분리를 시도한다. 사도마조히즘 성향, 반복되는 자해, 남모르는 관음증 등은 독립된 자아를 발전시킬 수 없는 에리카의 분리 시도이자 그 좌절의 결과이다.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어머니로부터의 분리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설 마지막에 자신이 칼로 찔러 피가 나는 어깨 상처에 손을 얹고 집을 향해 어머니에게로 걸음을 재촉하는 장면이 그 비극적 결말을 암시한다.

이 소설은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텍스트로, 억압된 욕망이 어떻게 일그러진 형태로 표출되고 다시 억압으로 귀결되는지를 탁월하게 보여준다. 더 나아가 옐리네크가 구축한 냉혹하고 실험적인 서술 방식은 독일 여성주의 문학의 지형을 새롭게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Film
<피아노 치는 여자Die Klavierspielerin>
미카엘 하네케Michael Haneke, 2001, 131분, 컬러
옐리네크는 자신의 창작활동을 작곡 과정에 비유하였다. 클래식 음악은 이 소설 외에 『내쫓긴 자들』, 『클라라 S.』 등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01년 오스트리아 감독 미카엘 하네케에 의해 영화화된 <피아노 치는 여자>는 원작을 탁월하게 각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자벨 위페르와 브누아 마지멜이 주연을 맡았고, 2001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2002년에 국내에 처음 개봉되었고, 그 뒤 2016년에 재개봉되었다. 

+ Music
영화 <피아노 치는 여자>에서 음악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장면에 따라 반복되는 클래식 음악은 에리카의 정서와 행동을 비추는 중요 단서이다. 에리카가 음악을 하나의 규율 체계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바흐 음악의 엄격하게 규칙적인 구조를 통해 전달된다. 반면, 그녀가 스스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홀로 남겨진 모습은 쇼팽과 슈베르트의 보다 서정적인 선율을 통해 강조된다. 억눌린 욕망과 모녀 사이의 긴장이 폭발하는 순간, 베토벤이나 라흐마니노프의 강렬한 음악이 등장하여 감정을 고조시킨다. 소설에서 에리카가 베토벤을 절대적인 존재로 여기는 것이 영화에서도 음악을 통해 그녀가 끝내 닿지 못하는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슈베르트의 곡은 결국 그녀에게 남은 것은 고립 뿐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며, 영화 전체에 강한 여운을 남긴다.

+ 함께 읽을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대표작
『쾌락』, 엘프리에 옐리네크, 1989
『탐욕』, 엘프리데 옐리네크, 2000
『연인들』, 엘프리데 옐리네크, 2004

+ 국내 출간 판본 
『피아노 치는 여자』의 초역은 2002년에 이루어졌다. 2004년에 옐리네크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작가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고, 이후 『연인들』(2004), 『욕망』(2006), 『내쫓긴 아이들』(2006), 『탐욕』(2007) 등의 작품이 속속 번역되어 많은 주목과 관심을 받았다. 

+ 국내 초역
『피아노 치는 여자』, 이병애 옮김(서울: 문학동네, 2002)

+ 주요번역
『피아노 치는 여자』, 이병애 옮김(서울: 문학동네, 2015)

글: 정윤희
동덕여대 독어독문학과 및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E.T.A. 호프만 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젠더 몸 미술』이 있고, 역서로는 『예술 매개 미학』(공역), 『문화학과 퍼포먼스』(공역), 『매체이론』(공역), 『그림책의 새로운 서사형식』(공역) 등이 있다. 이밖에「디지털 시대, 서사의 부재와 다중양식적 서술」, 「외로움의 세기에 대한 문학적 성찰」, 「인턴소설의 현재적 의미」, 「미래의 노동사회와 구직에 관한 시학」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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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여자』 & 『너무 시끄러운 고독』
• 키워드: 움직이는 손

『피아노 치는 여자』는 독자를 불편하게 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작품이다. 작가의 천재성과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호평과 동시에, 지나치게 도발적이고 난해하다는 신랄한 비판도 이어졌다. 1970년대 여성문학은 가정․직장․결혼 내에서 여성의 억압과 고통을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호소하는 차원에 그쳤다. 이에 반해 옐리네크는 개인의 경험을 단순히 재현하는 방식을 넘어,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 주체가 어떻게 해체되고 분열되는가를 언어적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건조하고 절제된 문장 뒤에 숨어 있는 반복과 패러디, 냉소 등은 남성 중심 담론의 절대적 권위를 희화화하고 무너뜨리는 서사 방식이다. 

부모님의 불화, 20년 만에 낳은 딸, 아버지의 정신질환과 죽음, 딸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키우려는 어머니의 강박적 기대와 혹독한 음악 교육 등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소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주인공 에리카는 삼십 대 후반의 미혼여성으로 오스트리아 빈 시립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가르친다. 아버지가 정신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뒤, 낡고 허름한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거의 밀착된 생활을 이어간다. 아버지의 부재는 모녀 사이의 분리를 가로막고, 에리카는 어머니에게 남편의 대체자이자 심리적 지지대에 가까운 존재로 자리 잡는다. 두 사람은 부부용 침대를 쓰며, 에리카는 집안의 경제를 책임진다.

에리카는 이른 유년시절부터 그러한 악보체계에 묶여 있었다. […] 그 다섯 개의 선 이외에는 어떤 생각도 해서는 안 된다. 그 패턴은 어머니와 힘을 합하여 ‘규칙’, ‘규정’, ‘명령’이라는 찢어지지 않는 그물로 정육점에 걸린 분홍빛 햄처럼 에리카를 돌돌 말아놓았다.

어머니는 ‘통제자’로서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며 ‘자신의 소유물’을 길들이고, ‘최고 권력’으로서 벌을 준다. 어머니는 신부의 어머니가 되기보다는 딸의 어머니로만 남기를 바란다. 딸을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만들려 했던 어머니는 음악을 제외한 어떤 시간도 딸의 삶에 끼어드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오직 음악만이 에리카의 시간을 채운다. 그녀는 어머니의 나르시시즘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대상에 불과할 뿐, 자의식은 성장에 실패한 아이와 같다. 에리카는 숭고한 정신의 음악을 위해 육체(여성성)를 죽여야 한다. 남성과의 관계, 타인과의 접촉까지 철저히 차단된다. 

치즈 그릇의 유리 덮개 아래, 에리카와 그의 훌륭한 보호막인 어머니가 함께 갇혀 있는 것이다. […] 에리카는 시간과 연령을 초월한 곤충이다. 그녀는 이야깃거리도 없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지도 않는다. 이 곤충은 움찔거리고 기어다니는 능력을 오래전에 상실했다. 

세상과 격리된 채 박제되어 가는 에리카의 일상에 공과대생이자 음악원 학생인 열 살 아래의 클레머는 균열을 일으킨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에리카의 파괴와 폭력 판타지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다. 그녀가 도착적이고 피학적인 요구사항들을 상세히 적은 편지를 건넨 것이 클레머의 분노와 폭력의 도화선이 된다. 그녀에게 성적 쾌락이란 오직 환상으로만 존재한다. 남성 중심적 규범이 만들어낸 이성애적 욕망의 틀에 자신을 맞추지 못하고, 그 결과 관계 형성에 실패하고 만다. 

욕망을 거세당하고 여성적 정체성을 올바로 형성하지 못한 에리카는 도착적인 형태로 어머니와의 분리를 시도한다. 사도마조히즘 성향, 반복되는 자해, 남모르는 관음증 등은 독립된 자아를 발전시킬 수 없는 에리카의 분리 시도이자 그 좌절의 결과이다.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어머니로부터의 분리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설 마지막에 자신이 칼로 찔러 피가 나는 어깨 상처에 손을 얹고 집을 향해 어머니에게로 걸음을 재촉하는 장면이 그 비극적 결말을 암시한다.

이 소설은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텍스트로, 억압된 욕망이 어떻게 일그러진 형태로 표출되고 다시 억압으로 귀결되는지를 탁월하게 보여준다. 더 나아가 옐리네크가 구축한 냉혹하고 실험적인 서술 방식은 독일 여성주의 문학의 지형을 새롭게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Film
<피아노 치는 여자Die Klavierspielerin>
미카엘 하네케Michael Haneke, 2001, 131분, 컬러
옐리네크는 자신의 창작활동을 작곡 과정에 비유하였다. 클래식 음악은 이 소설 외에 『내쫓긴 자들』, 『클라라 S.』 등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01년 오스트리아 감독 미카엘 하네케에 의해 영화화된 <피아노 치는 여자>는 원작을 탁월하게 각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자벨 위페르와 브누아 마지멜이 주연을 맡았고, 2001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2002년에 국내에 처음 개봉되었고, 그 뒤 2016년에 재개봉되었다. 

+ Music
영화 <피아노 치는 여자>에서 음악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장면에 따라 반복되는 클래식 음악은 에리카의 정서와 행동을 비추는 중요 단서이다. 에리카가 음악을 하나의 규율 체계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바흐 음악의 엄격하게 규칙적인 구조를 통해 전달된다. 반면, 그녀가 스스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홀로 남겨진 모습은 쇼팽과 슈베르트의 보다 서정적인 선율을 통해 강조된다. 억눌린 욕망과 모녀 사이의 긴장이 폭발하는 순간, 베토벤이나 라흐마니노프의 강렬한 음악이 등장하여 감정을 고조시킨다. 소설에서 에리카가 베토벤을 절대적인 존재로 여기는 것이 영화에서도 음악을 통해 그녀가 끝내 닿지 못하는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슈베르트의 곡은 결국 그녀에게 남은 것은 고립 뿐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며, 영화 전체에 강한 여운을 남긴다.

+ 함께 읽을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대표작
『쾌락』, 엘프리에 옐리네크, 1989
『탐욕』, 엘프리데 옐리네크, 2000
『연인들』, 엘프리데 옐리네크, 2004

+ 국내 출간 판본 
『피아노 치는 여자』의 초역은 2002년에 이루어졌다. 2004년에 옐리네크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작가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고, 이후 『연인들』(2004), 『욕망』(2006), 『내쫓긴 아이들』(2006), 『탐욕』(2007) 등의 작품이 속속 번역되어 많은 주목과 관심을 받았다. 

+ 국내 초역
『피아노 치는 여자』, 이병애 옮김(서울: 문학동네, 2002)

+ 주요번역
『피아노 치는 여자』, 이병애 옮김(서울: 문학동네, 2015)

글: 정윤희
동덕여대 독어독문학과 및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E.T.A. 호프만 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젠더 몸 미술』이 있고, 역서로는 『예술 매개 미학』(공역), 『문화학과 퍼포먼스』(공역), 『매체이론』(공역), 『그림책의 새로운 서사형식』(공역) 등이 있다. 이밖에「디지털 시대, 서사의 부재와 다중양식적 서술」, 「외로움의 세기에 대한 문학적 성찰」, 「인턴소설의 현재적 의미」, 「미래의 노동사회와 구직에 관한 시학」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