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함께 읽을 고전>
『메데이아』&『부서진 사월』
•키워드: 피로 쓴 복수
창밖에는 오직 그만이 느낄, 알프스 산맥의 불안한 빛과 절반은 미소를 띠고 절반은 여전히 얼어붙은 삼월이 펼쳐져 있었다. 곧 사월이 오리라. 아니, 오직 사월의 첫 보름만이 찾아오리라. 그조르그는 가슴의 왼쪽 한편이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월은 이미 그에게 시퍼런 고통으로 다가왔다……
카다레의 『부서진 사월』은 마치 카프카Kafka의 소설 『성』이 현실화된 듯, 허구이면서도 지극히 사실적인 인상을 독자에게 악몽같이 불쾌한 감각으로 선사한다. 그 감각은 카다레가 고국 알바니아가 공산주의 독재 정권 치하일 때 느낀 감정과 유사할 것이다. 그는 알바니아 북부에 실제로 존재했던, 유서 깊으면서도 강력한 구속력을 지닌 관습법인 <카눈>을 이용하여 거장의 허구적 손길로 빠져나올 수 없는 비극의 순환을 만들어낸다. 소설은 한 가문에 묵은 나그네 손님이 다른 가문의 남자에게 살해당함으로써 환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베사>에 휘말려 살인자의 가문과 수십 년에 걸쳐 피의 복수가 벌어지고 있는 배경에서 출발한다. 작중 화자인 그조르그는 자신이 태어나지도 않았던 선대 시절의 일로 형을 잃고, 그 복수로 자신도 살인을 저지른다. 이제 반대로 복수의 대상이 되어 다가오는 사월에 살해당하게 될 그의 이야기는 그리스 비극과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몇몇 희곡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지만 그조르그에게는 아트레우스나 햄릿과는 달리 자신의 운명에 어떠한 감정도 없다. 그저 시스템에 의해 운명만이 주어졌을 뿐 한 개인으로서의 자유의지는 허락되지 않은 것이다.
「당신의 책들, 당신의 예술에서는 범죄의 냄새가 나오. 이 불행한 산악 지방 주민들을 위해 무엇을 하기는커녕, 당신은 관객이 되어 그들의 죽음을 구경하고, 재미있는 소재나 찾고 있소. (…) 한 민족 전체를 피비린내 나는 연극을 공연하도록 몰아넣고는, 당신은 귀부인들과 함께 박스 좌석에서 그 연극을 관람하는 거요!」
카다레는 작가 베시안과 그의 아내를 복수가 벌어지는 작중으로 신혼여행 보냄으로써, 하층민들이 벌이는 부조리한 피의 게임에 자신이 속한 지식인 계층도 연루시킨다. 또한 이는 국제적으로 알바니아를 바라보던 1세계의 순진한 시선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카다레는 알바니아 바깥에서 안전하게 구경만 하며 그들 세계를 이해할 생각 않고 눈에 보이는 부조리만 비판하는 안일한 지식인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다시금 발소리가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의아해했다. 저 발소리는 누구의 것이지? 그는 그 소리가 친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랬다. 그는 자신의 몸을 돌려놓은 손만큼이나 그 소리를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이 소설의 결말은 독자에게도 너무 친숙할지도 모른다. 그리스 비극을, 대중적인 복수극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그 풍미를 모를 수 없는, 완벽한 원의 완성이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복수자는 마치 과거 자기 자신에게 복수 당하는 듯한 기시감을 겪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야말로 전체주의 정부가 꿈꾸던 유토피아이자, 카다레가 두려워하던 디스토피아일 것이다. 나는 다른 <나>로 대체될 수 있다. 자신과 타인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개개인이 전체의 모습과 속성을 띠고, 전체가 한 사람으로 축약되는 묵시록의 세계를 여는 첫 번째 나팔 소리일 수도 있다.
+Film
「비하인드 더 선Behind the Sun」
바우테르 살레스Walter Salles, 2001, 105분, 컬러
브라질의 영화감독 살레스의 초기작이다. 각색 과정에서 배경이 알바니아에서 브라질 북동부로 바뀐 것뿐만 아니라 내용이 두 가문의 복수극으로 축소되면서 카다레 특유의 디스토피아적인 복잡성이 흐려졌다. 영화 자체는 폭력의 순환이라는 주제 의식과 사실주의적 미장센으로 호평을 받았다.
+Behind Story
작중 복수의 대물림은 아이스킬로스Αἰσχύλος의 그리스 비극 『오레스테이아』 3부작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작가가 1970년대 알바니아 북부에서 머물던 당시 느낀 영감들도 창작의 바탕이 되었다. 작중 권위 있는 중재자이자 명망 깊은 카눈 주석가로 등장하는 알리 비낙은 오스만 제국 치하 당시 알바니아에 실존한 지도자 비낙 알리Binak Alia에서 따왔으며, 실제로도 현명한 조언자였다고 한다.
-김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