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함께 읽을 고전>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하나코는 없다』
•키워드: 코와 정체성
『하나코는 없다』는 1994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회가 밝힌 ‘대상 수상작 선정 이유서’는 이 작품의 핵심을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코는 없다>는 제목 그대로 타자他者, 또는 집단의 시선 속에서 소외되고 증발되어 버린 한 여성의 존재 상실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도시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인간의 익명성匿名性과 모래알처럼 원자적 개인화 하는 현상을 다시 한 번 날카롭게 확인하게 해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하나코’는 집단 앞에 놓인 개개의 ‘나’라는 존재다. 이 소설의 감동은 가해자면서 동시에 피해자인 나 자신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소설은 사업 상의 이유로 이탈리아를 방문한 ‘그’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그는 하나코가 이탈리아에 있다는 K의 전화를 받고 베네치아로 향한다. 그에게 이 방문은 ‘가까운 어제가 몇 년 전의 시간처럼 느껴지는 허구에 가까운 여행의 시간’이다. 그가 베네치아에 도착하자마자 본 환상에 가까운 팻말은 그가 이 여행에서 겪을 일을 암시하는 듯 하다.
폭풍이 이는 날에는 수로의 난간에 가까이 가는 것을 금하라. 그리고 안개, 특히 겨울 안개에 조심하라⋯⋯ 그리고 미로 속으로 들어가라. 그것을 두려워할수록 길을 잃으리라.
그는 하나코를 만나 ‘낙동강 강변여행 사건’으로 표상되는 과거의 기억과 대면하고 화해하려 한다. 베네치아의 미로 속에서 하나코를 기억할 때마다 그는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간다. 하나코를 찾는 행위는 곧 그의 ‘자아-찾기’와도 연결된다. 결국 그는 하나코를 만나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독자의 앞에도 하나코는 하나의 분명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는 과거의 기억이나 전화 속 목소리, 누군가를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하나코는 남성 집단 속에서 오직 예쁜 ‘코’로만 존재한다.
그래, 그녀는 코가 아주 예뻤다. 그녀의 용모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어떤 분위기를 전달하는 반면, 그녀의 코 하나는 정말 예뻤다. 정면에서 보건, 옆에서 보건 일품인 코를 가진 여자. 그래서 붙여진 별명, 하나코. 그러나 이 암호는 그들이 어울려 다니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별명이 붙여지기 전에, 그녀를 생각하면서 맨 먼저 떠올리는 것이 그녀의 코는 분명 아니다. 그녀의 별명이 하나코가 된 데는 숨기고 싶은 그들 모두의 실수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하나코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날 몰라요?”라고 되묻던 장진자와의 통화에서, 그리고 출장 여행에서 수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접하게 된 잡지를 통해 ‘하나코’가 아닌 장진자의 삶을 짐작해 볼 뿐이다. 성공한 디자이너로 동업자이자 동반자인 여자친구와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도 그에게는 하나코의 코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나코의 얼굴은, 옆에서 웃고 있는 친구의 얼굴 쪽으로 반 정도 돌려져 있어서 오똑하게 돋아난 코가 더욱 부각되어 보였다.
히야신스2 독서단
아름답고 인상적인 문장으로 시작해서 집단주의에 매몰된 개인의 소외와 개인이 가진 각자의 기억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26.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