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이달의 고전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댓글 3개
북도디

북도디

주제와 소제 그리고 형식까지 너무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은 눈먼 자들의 도시. 혹시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게 된다면? 이라는 이상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 하얀 실명 그리고 그것이 집단발병 한다는 설정이 너무 충격적이고도 절묘하게 다가왔다. 빛의 부재인 암흑이 아니라 빛의 과잉인 백색 실명. 문명의 과잉속에서 정작 인간성이란 것이 얼마나 허상이며 식별될 수 없는 것인지.. 인용부호, 쉼표나 마침표도 없이 이어지는 문장들이 몰아치며 읽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더듬거리며 나아가는 체험으로 만든다.

2026.01.31

미이카

미이카

날것 그대로의 인간 본성은 얼마나 이기적인지..

2026.01.27

깍꿍

깍꿍

고작 눈 보이지 않는 것 하나로 인간성을 잃고 동물적 감각만 남는다.

2026.01.13

<2026년 1월 함께 읽을 고전>

『모래 사나이』&『눈먼 자들의 도시』

•키워드: 잃어버린 눈 

 

 눈이 안 보여. 『눈먼 자들의 도시』는 차를 운전하던 남자의 눈이 갑자기 멀면서 시작한다. 눈이 안 보인다는 주장과는 달리 남자의 홍채는 밝게 빛난다. 남자의 눈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이미지, ‘교통 신호등의 둥그렇고 빨간불’은 남자의 건강한 홍채와 함께 배치되면서, 소설 속 도시의 앞날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에 멈추리라는.   

그러나 그가 지금 빠져든 백색의 상태는 너무 환하고, 너무 전면적이어서, 색깔만이 아니라 사물과 존재 자체를 흡수해버렸다. 아니, 삼켜버렸다. 그래서 훨씬 더 안 보였다. 

 마치 안개 속이나 우유의 바다에 빠진 듯 모든 것이 하얗게 보이는 ‘백색 실명’ 상태는 곧 전염병처럼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가고, 정부는 눈이 먼 사람들과 그들과 접촉한 사람을 사회에서 격리한다. 소설은 정신병원에 제일 먼저 격리된 의사와 거짓말로 남편과 함께 수용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를 따라가면서 수용소 안의 폭력과 도덕적 혼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리의 눈은 내부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리 눈은 우리가 입으로는 부정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성한 두 눈과 우리를 안내할 손, 인도할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의사 아내의 독백에서 드러나듯, 눈먼다는 것은 곧 짐승이 되는 일이나 마찬가지이다. 개인의 이기심으로 점점 더러워지는 수용소의 모습과 총으로 무장한 자들이 저지르는 폭력, 모두가 눈이 먼 뒤 쓰레기가 넘치는 도시의 풍경은 인류가 쌓아 올린 문명이 얼마나 취약한지, 현대의 인간성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여자는 자신이 시력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에 책임감을 느끼고 무리를 인도한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을 목격하는 존재인 동시에, 연대 의식을 발휘해 윤리적 행동을 하는 유일하게 ‘깨어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진정한 의미의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보는 행위가 필요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우리보다 앞서 존재했던 인류의 이야기를 읽어주는 소리를 듣는 것이 말이에요, 여기 우리에게 아직도 볼 수 있는 두 눈, 마지막 두 눈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뻐하도록 해요, 만일 그 눈마저 언젠가 소멸해 버린다면,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럼 우리와 인류를 연결시켜주는 끈이 끊어지고 말겠죠.

 소설은 끝내 우리에게 이 실명의 원인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다. 백색 실명은 이유 없이 나타났다가 이유 없이 물러간다. 의사의 아내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이야기한다.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작가가 보내는 서늘한 경고이다.

  • 글자 설정

2026년 1월 이달의 고전

  • 글자 설정

<2026년 1월 함께 읽을 고전>

『모래 사나이』&『눈먼 자들의 도시』

•키워드: 잃어버린 눈 

 

 눈이 안 보여. 『눈먼 자들의 도시』는 차를 운전하던 남자의 눈이 갑자기 멀면서 시작한다. 눈이 안 보인다는 주장과는 달리 남자의 홍채는 밝게 빛난다. 남자의 눈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이미지, ‘교통 신호등의 둥그렇고 빨간불’은 남자의 건강한 홍채와 함께 배치되면서, 소설 속 도시의 앞날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에 멈추리라는.   

그러나 그가 지금 빠져든 백색의 상태는 너무 환하고, 너무 전면적이어서, 색깔만이 아니라 사물과 존재 자체를 흡수해버렸다. 아니, 삼켜버렸다. 그래서 훨씬 더 안 보였다. 

 마치 안개 속이나 우유의 바다에 빠진 듯 모든 것이 하얗게 보이는 ‘백색 실명’ 상태는 곧 전염병처럼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가고, 정부는 눈이 먼 사람들과 그들과 접촉한 사람을 사회에서 격리한다. 소설은 정신병원에 제일 먼저 격리된 의사와 거짓말로 남편과 함께 수용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를 따라가면서 수용소 안의 폭력과 도덕적 혼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리의 눈은 내부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리 눈은 우리가 입으로는 부정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성한 두 눈과 우리를 안내할 손, 인도할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의사 아내의 독백에서 드러나듯, 눈먼다는 것은 곧 짐승이 되는 일이나 마찬가지이다. 개인의 이기심으로 점점 더러워지는 수용소의 모습과 총으로 무장한 자들이 저지르는 폭력, 모두가 눈이 먼 뒤 쓰레기가 넘치는 도시의 풍경은 인류가 쌓아 올린 문명이 얼마나 취약한지, 현대의 인간성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여자는 자신이 시력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에 책임감을 느끼고 무리를 인도한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을 목격하는 존재인 동시에, 연대 의식을 발휘해 윤리적 행동을 하는 유일하게 ‘깨어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진정한 의미의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보는 행위가 필요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우리보다 앞서 존재했던 인류의 이야기를 읽어주는 소리를 듣는 것이 말이에요, 여기 우리에게 아직도 볼 수 있는 두 눈, 마지막 두 눈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뻐하도록 해요, 만일 그 눈마저 언젠가 소멸해 버린다면,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럼 우리와 인류를 연결시켜주는 끈이 끊어지고 말겠죠.

 소설은 끝내 우리에게 이 실명의 원인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다. 백색 실명은 이유 없이 나타났다가 이유 없이 물러간다. 의사의 아내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이야기한다.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작가가 보내는 서늘한 경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