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 『솔라리스』
• 공통 키워드: 인간과 인간 아닌 것
• 비교 키워드: 괴물 vs 미지의 존재
『솔라리스』(1961)는 소설가이자 미래학자인 스타니스와프 렘의 대표작으로 인간 탐사대가 미지의 외계 생명체를 이해하려는 과정을 묘사한 SF의 클래식이다.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아름답고도 기묘한 텍스트는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심리학자인 크리스 켈빈이 ‘솔라리스’라는 이름의 불가사의한 행성을 탐사하기 위해 우주정거장으로 갔다가 10년 전에 자살한 연인 하레이를 예전 모습 그대로 만나게 되면서, 불가사의한 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이 주축이다. 또 다른 축에는 주인공이자 작중 화자인 켈빈이 우주 도서관에 보관된 문서와 자료를 열람하며 읽어내려 가는, 솔라리스에 대한 인류의 지난(至難)한 연구와 탐험의 역사가 있다. 이른바 ‘솔라리스학’이라 일컬어지는 학문의 계보와 특징, 솔라리스 행성과 직접적인 접촉을 시도했던 탐험가들의 모험담, 솔라리스에서 벌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들과 관측 결과를 둘러싼 사상가들의 다채로운 해석이 소개된다.
인간의 이해력을 훌쩍 뛰어넘는 지성과 사고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솔라리스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과학자와 탐험가, 사상가들이 온갖 가설과 추측, 논리와 해석, 반박과 재반박을 되풀이하고, 탐험과 분석을 시도하지만, 명확히 밝혀진 내용은 없다. 솔라리스학의 유구한 역사가 저장된 거대한 도서관이 입증하는 사실은 단 하나, 솔라리스 연구의 ‘불가지론(不可知論)’이다. 그렇게 소설은 제기된 모든 의문과 질문, 탐구와 학설에 관해 확실한 매듭을 거부한 채 끝을 맺는다. 어떤 의미에서 소설을 독파한 독자들이 당혹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이유는 무엇일까? 렘은 처음부터 ‘솔라리스의 바다’를 불가해(不可解)한 대상으로 설정해 놓고, 명쾌한 답변 대신, 다양한 유형의 질문을 제기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인물의 동선이나 행적을 따라가는 일반적인 스토리텔링이 아닌, 사고실험(思考實驗)의 방식으로 과학철학이나 미래학적인 주제들을 탐구하는데 주안점을 둔 것이다. 렘은 두 태양 사이를 스스로 맴돌며 자력으로 안정 궤도를 유지하는 솔라리스 행성처럼 독자들 또한 작품의 안과 밖에서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보며, 능동적으로 사유하기를 바랐다. 도식적인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모른다’는 자각을 유도함으로써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배제된, 자유로운 사색의 불모지를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렘은 외계의 생명체를 ‘친구’ 아니면 ‘적’으로 간주하는 서구 SF의 이분법적 도식에 과감히 반기를 든다. 그는 지구중심주의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표명하면서, 인류가 과연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를 깊이 있게 탐구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는다.
우리는 인간 말고는 아무것도 찾으려 하지 않아. 다른 세계는 필요치 않은 거지. 우리가 원하는 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인 거야. 지구에서 포화상태에 이르러 질식할 지경인 데도 지구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거지.
이 작품의 핵심은 외계 존재의 해석이 아니라, 오히려 해석 불가능성의 체험, 즉 인간 인식의 한계와 그로부터 비롯되는 존재론적 불안을 형상화하는 데 있다. 그래서 SF 소설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인식의 한계와 모순, 나아가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철학적 텍스트로 평가받는다. 지구의 과학자들이 솔라리스 행성을 탐사하며 겪는 혼란과 실패를 중심으로, 타자에 대한 궁극적인 이해의 한계와 모순을 역설하는 한편, 인간 무의식의 심연을 고찰하고, 나아가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렘은 외계의 존재로 그려지는 타자와의 조우를 통해 비인간적 존재에 대한 새로운 존재론적·윤리적 사유를 촉구한다. 특히 솔라리스 바다의 비소통성과 ‘손님’으로 지칭되는 환영체의 현현은 인간의 인식 체계와 언어, 주체성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다른 문명과의 접촉과 교류. 우리는 지금 그 접촉을 실현하는 중이라네!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보듯이 우리 자신의 추악함과 어리석음, 그리고 수치스러움과 대면하게 된 거지. 그것도 엄청나게 확대된 형태로 말야.
미래와 우주라는 가상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솔라리스』에서 렘이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주제는 결국 ‘인간’이다. ‘솔라리스의 바다’는 인간의 언어로 해석 불가능한 타자이며, 동시에 인간 무의식의 심연을 드러내는 거울이자, 인간 중심주의를 전복하는 존재론적 타자이다. 타자를 이해하려는 나름의 시도 속에서 우리는 자아를 되돌아보고 재정립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자기 내면의 균열과 무지, 한계와 마주하게 된다는 걸 이 작품은 일깨운다. 출간된 지 반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21세기 인문학적 사유에도 깊은 함의를 제공하며, ‘SF의 위상을 드높인 독보적인 걸작’이라는 극찬이 이 작품에 줄곧 따라붙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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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외 매체
『솔라리스』가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계기는 러시아의 거장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이 작품을 영화화했기 때문이다. 1972년 이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원작소설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소설 『솔라리스』를 전 세계에 알리는데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크게 기여한 것은 분명하지만, 렘은 제작 단계에서부터 작품 해석을 놓고 타르코프스키와 심각한 격론을 벌였다. 한 인터뷰에서 “똑같은 수레를 각기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두 마리의 말처럼 싸웠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영화가 개봉된 이후에도 꾸준히 유감을 표명했는데, 특히 주인공이 솔라리스 행성에 집을 짓고 정착하는 영화의 엔딩 장면을 심각하게 비판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 렘은 타르코프스키를 설득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면서, 결국 그는 모든 걸 자기 방식대로 고집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2002년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솔라리스』에 대해서도 렘은 비판적이었다. 영화의 무게중심이 크리스와 하레이의 로맨스에 지나치게 편중된 점을 못마땅해하면서, 영화의 제목을 ‘솔라리스’가 아닌, ‘우주의 사랑’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 리뷰
SF 문학의 권위자인 이스트반 크식시어리 로네이(Istvan Csicsery-Ronay)는 과학과 문학, 철학과 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솔라리스』의 다면성과 복합성에 주목했다.
“『솔라리스』는 상반되는 여러 해석이 동시에 가능한 작품이다. 스위프트의 풍자문학으로 읽히기도 하고, 비극적인 연애담이나 카프카의 존재론적 우화, 해석학의 메타픽션적 패러디, 세르반테스의 기사 소설, 인간의 인식에 대한 칸트학파의 명상록으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만족스러운 판독은 아니다. 이것은 아마도 작가가 의도한 바일 것이다.”
렘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진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는 『솔라리스』를 가리켜 “인간 정신의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든 작품”(2019)이라는 찬사를 남겼다.
+ 비하인드 스토리
『솔라리스』의 집필 기간은 1959년 6월부터 1960년 6월까지, 불과 1년에 불과하다. 이 기간에 렘은 충만한 영감에 사로잡힌 채, 폴란드 남서부의 휴양도시 자코파네에 틀어박혀 단숨에 작품을 완성했다. 게다가 같은 해에 『행성으로부터의 귀환』과 단편집 『로봇의 서』를 동시에 집필했으니 경이로울 따름이다. 이 두 작품 또한 ‘20세기 SF 문학의 수확’으로 손꼽힌다. 더욱 놀라운 것은 탈고 시점이 인류가 최초의 우주 비행에 성공하기 전이었고, ‘컴퓨터’라는 용어나 개념 또한 널리 보급되기 전이었다는 사실이다. (『솔라리스』에는 ‘컴퓨터’를 대신해서 ‘인공두뇌’나 ‘전자두뇌’, 혹은 ‘전산장치’라는 어휘가 등장한다.) 하지만 렘은 다가올 IT 시대를 예견이라도 한 듯, 프로그램과 정보를 전자적 형태로 저장하고 빠르게 계산 및 제어하는 컴퓨터의 개념을 이 탁월한 미래학 소설에 자연스럽게 도입했다.
렘에게 SF 문학은 ‘인식의 지평을 여는 실험실’이었다. 그래서 진정한 SF라면 지금까지 누구도 생각지 못했거나 해보지 않은 것을 시도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가치관을 입증하려는 듯, 렘은 20세기 중반에 이미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검색엔진, 유전자 복제와 수정, 나노기술, e북 및 오디오북의 등장, 항성공학, 온라인 교육 등 첨단과학기술의 도래를 정확히 예측하였다. 이러한 렘의 선지자적인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92년 국제천문연맹은 소행성 3836을 ‘렘’으로 명명하였으며, 2013년에는 소행성 343000을 작품 속 주인공인 ‘이욘 티히(Ijon Tichy)’의 이름으로 명명했다. 같은 해 폴란드가 발사한 최초의 인공위성 이름도 ‘렘’이다. 폴란드 정부는 작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21년을 ‘스타니스와프 렘의 해’로 선포하기도 했다.
— 최성은 번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