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이달의 고전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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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내 이름은 빨강』

•공통 키워드: 지적인 모험

•비교 키워드: 14세기 이탈리아 vs 16세기 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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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서문에서, (아마도 움베르토 에코일) 저자는 발레라는 수도원장이 펴낸 『마비용 수도사의 편집본을 바탕으로 불역한 멜크 수도원 출신의 (베네딕트회 수도사) 아드송의 수기』를  손에 넣는다. 이 책은 14세기 말 아드송이 라틴어로 쓴 수기를 프랑스의 수도사 발레가 17세기에 신 고딕프랑스어로 번역하고, 19세기에 아비용이라는 수도사가 프랑스어로 정리한 것을 20세기에 작가가 다시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것이다. 

 에코는 소설 집필 이후 발표한 『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를 통해서 자신의 소설에 관해 몇 가지 설명을 덧붙인다. 작가는 왜 세 화자의 이야기를 앞에 두어야만 했을까? 『장미의 이름』을 기호학을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쓰였다. 기호학에서 모든 기호가 원초적 저작성이 없는 것처럼, 텍스트도 마찬가지이다. 에코는 “어떤 것도 스스로 쓰지 않았고 이미 쓰인 텍스트로 소설은 구성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이런 읽기 과정에서 나는, 작가들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아주 중요한 사실(그래서 우리에게 누누이 일러 왔던 것)을 재발견했다. 그것은 책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다른 책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이미 세상에 유포된 다른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그렇다면 내 이야기는 잃어버렸다가 발견된 원고 이야기(당연한 일이지만 이것 역시 인용의 꼴을 하고 있다)에서 시작되기만 하면 될 터이다. 

 아드소의 원고는 1327년 11월 말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산맥에 자리한 어느 베네딕트회 수도원에서 7일 동안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다. 하루하루는 베네딕트 수도회의 성무 공과 시간에 따라 기록되어 있으며, 프롤로그를 통해 멜크 수도원의 수련사였던 아드소가 영국인 윌리엄을 따라 사건이 벌어지는 수도원에 오게 된 연유를 밝히고 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교황 사이의 권력 다툼, 수도회들 사이의 갈등, 종교의 교리를 둘러싼 논쟁, 이단과 종교재판 등 당시의 실제 역사적 사건에 대한 묘사는 『장미의 이름』을 구성하는 핵심인 동시에 독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난관이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 낯선 수도원에 들어가 이레를 묵을 작정을 한다면 그 수도원 자체가 지닌 행보(行步)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그런 수고도 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면 내 책을 읽어 낼 수 없다. 따라서 이 첫 백 페이지는 고행, 혹은 입문 의례와 같은 것이다. 그런 사람은 수도원이 있는 산으로 올라갈 게 아니라 산기슭에 남아 있는 게 좋다. 

 에코의 의도대로 수도원으로 들어온 독자들은 ‘요한의 묵시록’의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살인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살인사건의 미스터리는 윌리엄과 아드소를 비밀스러운 장서관으로 이끈다. 장서관의 미궁을 헤매는 두 사람의 모습은 『장미의 이름』이라는 미궁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독자의 모습과 꼭 닮았다. 

이 미궁은 이 세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 들어가는 자에게는 넓지만 나오려는 자에게는 한없이 좁답니다). 장서관은 거대한 미궁이며, 세계라고 하는 미궁의 기호지. 들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오는 건 장담 못 해요.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범하는 것이 아닌 법.

한없이 좁은 문을 통과한 독자의 앞에 무엇이 나타나게 될까? 아드소는 미궁의 진실을 목격하고 오랜 세월이 지나 수기를 남기며 베르나르의 시구를 덧붙인다. 에코는 이 시구와 제목의 의미를 묻는 독자들에게 아벨라르의 <장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Nulla rosa est>라는 말을 흘려놓는다. 장미의 이름과 실체를 갈라놓으면서.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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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내 이름은 빨강』

•공통 키워드: 지적인 모험

•비교 키워드: 14세기 이탈리아 vs 16세기 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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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서문에서, (아마도 움베르토 에코일) 저자는 발레라는 수도원장이 펴낸 『마비용 수도사의 편집본을 바탕으로 불역한 멜크 수도원 출신의 (베네딕트회 수도사) 아드송의 수기』를  손에 넣는다. 이 책은 14세기 말 아드송이 라틴어로 쓴 수기를 프랑스의 수도사 발레가 17세기에 신 고딕프랑스어로 번역하고, 19세기에 아비용이라는 수도사가 프랑스어로 정리한 것을 20세기에 작가가 다시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것이다. 

 에코는 소설 집필 이후 발표한 『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를 통해서 자신의 소설에 관해 몇 가지 설명을 덧붙인다. 작가는 왜 세 화자의 이야기를 앞에 두어야만 했을까? 『장미의 이름』을 기호학을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쓰였다. 기호학에서 모든 기호가 원초적 저작성이 없는 것처럼, 텍스트도 마찬가지이다. 에코는 “어떤 것도 스스로 쓰지 않았고 이미 쓰인 텍스트로 소설은 구성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이런 읽기 과정에서 나는, 작가들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아주 중요한 사실(그래서 우리에게 누누이 일러 왔던 것)을 재발견했다. 그것은 책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다른 책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이미 세상에 유포된 다른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그렇다면 내 이야기는 잃어버렸다가 발견된 원고 이야기(당연한 일이지만 이것 역시 인용의 꼴을 하고 있다)에서 시작되기만 하면 될 터이다. 

 아드소의 원고는 1327년 11월 말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산맥에 자리한 어느 베네딕트회 수도원에서 7일 동안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다. 하루하루는 베네딕트 수도회의 성무 공과 시간에 따라 기록되어 있으며, 프롤로그를 통해 멜크 수도원의 수련사였던 아드소가 영국인 윌리엄을 따라 사건이 벌어지는 수도원에 오게 된 연유를 밝히고 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교황 사이의 권력 다툼, 수도회들 사이의 갈등, 종교의 교리를 둘러싼 논쟁, 이단과 종교재판 등 당시의 실제 역사적 사건에 대한 묘사는 『장미의 이름』을 구성하는 핵심인 동시에 독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난관이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 낯선 수도원에 들어가 이레를 묵을 작정을 한다면 그 수도원 자체가 지닌 행보(行步)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그런 수고도 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면 내 책을 읽어 낼 수 없다. 따라서 이 첫 백 페이지는 고행, 혹은 입문 의례와 같은 것이다. 그런 사람은 수도원이 있는 산으로 올라갈 게 아니라 산기슭에 남아 있는 게 좋다. 

 에코의 의도대로 수도원으로 들어온 독자들은 ‘요한의 묵시록’의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살인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살인사건의 미스터리는 윌리엄과 아드소를 비밀스러운 장서관으로 이끈다. 장서관의 미궁을 헤매는 두 사람의 모습은 『장미의 이름』이라는 미궁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독자의 모습과 꼭 닮았다. 

이 미궁은 이 세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 들어가는 자에게는 넓지만 나오려는 자에게는 한없이 좁답니다). 장서관은 거대한 미궁이며, 세계라고 하는 미궁의 기호지. 들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오는 건 장담 못 해요.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범하는 것이 아닌 법.

한없이 좁은 문을 통과한 독자의 앞에 무엇이 나타나게 될까? 아드소는 미궁의 진실을 목격하고 오랜 세월이 지나 수기를 남기며 베르나르의 시구를 덧붙인다. 에코는 이 시구와 제목의 의미를 묻는 독자들에게 아벨라르의 <장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Nulla rosa est>라는 말을 흘려놓는다. 장미의 이름과 실체를 갈라놓으면서.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