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내 이름은 빨강』
•공통 키워드: 지적인 모험
•비교 키워드: 14세기 이탈리아 vs 16세기 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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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게 스타일이나 개성이 있다면, 그건 나의 그림이 아니라 내가 행한 살인과 내가 하는 말들 속에 숨겨져 있다. 그러니 당신들은 내 단어들의 색깔로 내가 누구인지 한번 찾아보시라!”
16세기 후반, 동서 문명이 서로 교차하는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내 이름은 빨강』은 살인 미스터리의 외피를 두른 사랑 이야기인 동시에, 문화적 갈등과 변화의 시대에 예술 창작을 둘러싼 믿음과 번뇌를 성찰하는 작품이다. 이를 위해 오르한 파묵이 선택한 방식은 다성의 목소리를 통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글쓰기, 그리고 회화적 이미지로 구현되는 서술적 상상력이다. 20개 화자의 관점과 시각이 퍼즐처럼 자리 잡은 이 한 폭의 거대한 세밀화에는, 이야기를 관통하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 도사리고 있다: 신이 인식하는 세계를 재현할 것인가, 인간의 눈으로 보이는 세계를 묘사할 것인가 즉, 이 질문은 그리던 대로 그릴 것인가, 보이는 대로 그릴 것인가의 문제이다.
“삽화 예술 이전에도 어둠은 있었고, 삽화 예술 이후에도 어둠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색채와 그림, 예술과 사랑을 통해, 우리는 신께서 우리에게 "보라!" 하고 명령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한다. 안다는 것은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기억하지 않고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둠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포문을 여는 사건은 ‘엘레강스’라 불리는 한 세밀화가의 죽음이다. 이 죽음의 배경에는, 원근법으로 대표되는 서구의 회화 양식의 영향으로 자신들의 예술이 끝나가고 있음을 감지하는 세밀화가들의 번민과 혼란이 존재한다. 이들의 주된 갈등은 신이 인식하는 세계를 재현하려는 예술과, 인간의 눈으로 보이는 세계를 묘사하려는 예술 간의 충돌이다. 오스만 장인이나 올리브 같은 세밀화가들은 신의 영광을 기억 속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로 끌어내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실명(失明)이 오랜 헌신의 보상이며 이를 통해 신이 바라보는 세계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의 질문이 추가된다. 예술가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해도 될까? 아니면 예술은 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영적인 목표만을 추구해야 할까? 세밀화의 전통 속에서 익명(匿名)으로 살아가야 하는 세밀화가에게, 예술가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과 영원에 대한 기대는 이 새로운 화풍을 향한 매혹으로 작동한다. 이 철학적인 살인 미스터리는 예술적 양식과 정체성의 변화에 대한 논쟁을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반복한다.
“우리는 사실 행복의 그림에 있는 미소가 아니라 삶 자체에서 행복을 찾아요. 세밀화가들은 그걸 알지요. 하지만 그들이 그리지 못한 것도 그거예요. 이 때문에 그들은 삶의 행복을 바라보는 행복으로 대체한 겁니다.”
전통을 고수하는 세밀화가들은 새로운 스타일을 거부하며, 기존의 정형화된 방식이야말로 신의 무한한 현실을 표현하는 최선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행복의 그림을 원했던 세큐레에게 세계의 진실은 ‘그려진 미소’로 이상화된 현실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경험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위태로운 시대에 떠밀린 가련한 세밀화가들의 실패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한 에세이에서 『내 이름은 빨강』을 집필하며 “그들이 흘린 그 많은 땀이 역사의 쓰레기통과 망각 속으로 던져지는 것을 얼마나 슬퍼했는지” 고백한다. 모든 사람에게 낙관적인 형태로 열려 있길 바라는 오르한 파묵의 이 소설은 곧, 전통과 변화, 신의 눈과 인간의 눈, 그리고 예술가의 욕망 사이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의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