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추천 고전
『탁류』 & 『소송』
• 공통 키워드: 희생당하는 자
• 비교 키워드: 돈 VS 법
맑게 흐르는 물(청류)이고자 했으나 탁류에 휩쓸릴 수 밖에 없었던 한 여성의 이야기. 일제강점하 식민지 조선, 무능력한 가장과 배를 곯는 식구들 속에서 부모를 부양하기 위해 원치 않은 결혼을 택한 딸 <초봉>이 있다. 『탁류』는 초봉의 개인사를 토대로 시대의 고난을 증언하며, 현실 너머 새로운 전망을 향해 격정적으로 흘러 나간다.
한일합방 이후 줄곧 군 서기로 일해 오다 도태된 초봉의 아버지 정 주사는 미두장에서 도박을 일삼는 무능력한 가장이다. 배곯는 것이 다반사인 정 주사의 가족은 초봉이 벌어 오는 봉급으로 간신히 연명해 나간다. 그러던 와중 초봉은 자신의 집에서 하숙하는 예비 의사 남승재와 사랑에 빠지는데, 돈이 급했던 정 주사는 부자라고 소문난 고태수를 초봉과 혼인시킨다. 원치 않은 결혼이었지만, 초봉은 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해 고태수의 처가 된다. 그러나 전부터 초봉을 탐냈던 형보의 음모로 고태수가 비명횡사하자, 갈 곳이 없어진 초봉은 가족을 먹여 살려 주겠다는 소설 속 남성 등장인물들의 유인에 빠져 이리저리 휩쓸리는 운명에 놓이게 된다. 마침내 초봉은 자신의 수난이 형보에게서 비롯되었다 판단하고, 그를 맷돌로 내리쳐 죽인다.
운명의 넌출이 결단코 조만치가 않다. […] 여자이기보다 먼저 인간이라는 각오와, 다부지게 두 발로 대지를 밟고 일어서서 버틸 능能이 없이 치어났다는 죄, 그 죄로 복선의 끝은 면면히 뻗어 들어가서 있는 것이다. _채만식, 『탁류』 중에서
초봉의 운명을 누구보다도 슬퍼하고 분노하던 이는 바로 남승재였다. 승재는 딸을 강제로 혼인시킨 정 주사의 행태가 실상 돈을 받고 딸을 판 것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사회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러한 참상이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승재는 의사 시험에 합격해 병원을 차린 후 〈사회의 병〉을 치료하겠다며 발 벗고 나서게 된다. 그러나 그는 초봉의 동생 계봉과 만난 뒤, 문제는 사회의 가난이 아니라 〈독초毒草〉를 가꿔 내는 〈육법전서〉, 곧 법에 있음을 깨닫는다. 이는 초봉의 수난이 가난이라는 개인적 운명에서가 아닌, 법과 제도의 모순에서 유래된 것임을 시사해 준다. 결국 형보를 살해하고 흐느끼는 초봉에게 〈명일의 언약〉을 다짐하며 자수를 종용하는 승재의 마음은 한층 더 복잡해진다.
승재는 이미 현재의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승재는 이제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여성을 비참하게 만든, 이 무정한 사회를 고치겠다고 다짐하면서. 이는 소설의 마지막 장 이름이 〈서곡序曲〉이라는 점, 작품이 열린 결말로 끝나고 있는 점과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