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이달의 고전

『이방인』

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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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추천 고전
『이방인』 & 『무녀도』

• 공통 키워드: 세계와 대립하는 자
• 비교 키워드: 도덕과 실존 VS 전통과 근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일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뫼르소는 엄마의 죽음에 통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 오늘인지 어제인지도 모른다. 그뿐만 아니다. 뫼르소는 아랍인들에게 쫓기고 있는 창고업자 레이몽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도, 살라마노 영감이 개를 잃어버렸을 때도, 직장 사장이 파리로 전근을 제안했을 때도, 애인 마리가 자신을 사랑하냐고 물어 올 때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뫼르소의 신경은 그저 햇빛이 내리쬔다는 것, 날씨가 후덥지근하다는 것 따위에만 전적으로 열려 있다.

몇 편의 에피소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소설 내에서, 서사의 핵심은 단연 뫼르소의 살인이다. 뫼르소는 레이몽과 함께 친구 마송이 살고 있는 해변으로 놀러 간다. 이들은 산책을 하다 그들을 미행하던 아랍인들과 마주쳐 싸움을 벌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아랍인들 중 한 명이 칼을 휘둘러 레이몽이 다치고 만다. 이후 뫼르소는 우연히 레이몽을 찔렀던 아랍인과 다시 조우하게 되는데, 당황한 아랍인이 칼을 꺼내든 순간 칼날에 햇빛이 반사되어 뫼르소의 이마를 찌른다. 현기증을 느낀 뫼르소는 〈자신도 모르게〉 품에 있던 권총을 뽑아 그에게 다섯 발 쏜다. 뫼르소는 곧 살인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법정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흘러간다. 뫼르소의 살인 혐의에 대한 재판은 어느새 어머니의 죽음에 관해 그가 보인 행태에 대한 재판으로 바뀌어 있다. 치열한 법정 공방 끝에 판사는 뫼르소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그런데 이때 뫼르소의 죄는 살인이 아니었다. 그가 범한 죄는 〈친부 살인의 예비죄〉, 즉 사회적 관습과 도덕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뫼르소는 아래와 같이 항변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정의는 아무것도 아니고 하느님의 정의가 전부였다. 그러자 나는 나를 단죄한 건 인간의 정의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래도 그것이 내 원죄를 씻어 주지는 못했다고 답했다. 나는 원죄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내게 가르쳐 준 건 내가 범죄자라는 것뿐이었다. 나는 범죄자였고, 그 대가를 치르고 있었고, 그 이상은 아무것도 내게 요구할 수 없었다. _알베르 카뮈, 『이방인』 중에서

분명 뫼르소의 죄목은 살인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법정은 관습과 도덕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처벌하려 한다. 그는 계속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불가피한 것에 출구는 있는가?〉 뫼르소는 이내 사형을 받아들인다. 주어진 세계를 좇아 살지 않으려는 태도, 기존의 가치 대신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찾아 나서는 태도에 벌을 주려는 법정의 행태를 보며, 세상의 부조리함과 무정함을 깨닫고 스스로 사형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뫼르소가 발견한 것은 〈정당화될 이 새벽〉, 곧 자신의 삶과 운명에 다름 아니었다. 이 땅 위에서의 삶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하며 사는 것, 비록 이방인으로서 세계로부터 거부된다고 할지라도 세상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것, 그리고 끝내는 자기 자신의 운명을 긍정하는 것. 카뮈의 『이방인』은 〈너는 너의 삶을 사랑해야만 한다〉고, 우리에게 말을 건네 온다.

+ Film
「썬다운」, 미셸 프랑코, 2022
82분, 컬러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부고, 그러나 무심한 표정으로 슬퍼하지 않는 주인공. 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이방인』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뫼르소를 떠올릴 것이다. 『이방인』을 오마주한 미셸 프랑코 감독의 영화 「썬다운」은 대체로 원작의 서사 구조와 동일하게 흘러간다. 소설 속 뫼르소는 영화 속에서 닐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소설의 내용과 달리, 태양 빛은 닐로 하여금 살인하도록 만들지 않는다. 자신의 자유를 자각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아랍인을 죽이지 않는 선택을 한다. 즉, 미셸 프랑코에 의해 재탄생한 『이방인』은 타자를 도구화하지 않는 삶과 자유를 설파하며 현대의 부조리극 속 주인공의 삶을 보여 준다.

+ 『뫼르소, 살인사건』
카멜 다우드, 문예출판사, 2017
뫼르소가 살해한 아랍인의 삶은 어떠했을까?
 『이방인』의 반대편에 선 소설. 카멜 다우드는 『이방인』에서 뫼르소의 총에 맞아 죽은 이름 없는 아랍인의 존재에 주목한다. 『이방인』을 <살인자의 이야기>라 비판하는 그는 카뮈를 뫼르소로 대치한 뒤, <살해당한 자>의 관점에서 원작 소설을 다시 써내려 간다. 알제리 태생의 카멜 다우드가 이름조차 호명되지 못한 아랍인에게 이름을 찾아 주고, 그의 삶을 독자들이 볼 수 있도록 한 것은 프랑스의 식민지라는 배경 속에서 알제리의 아랍인과 프랑스인이 느낄 수 있는 서로 다른 부조리를 보여 준 것과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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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추천 고전
『이방인』 & 『무녀도』

• 공통 키워드: 세계와 대립하는 자
• 비교 키워드: 도덕과 실존 VS 전통과 근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일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뫼르소는 엄마의 죽음에 통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 오늘인지 어제인지도 모른다. 그뿐만 아니다. 뫼르소는 아랍인들에게 쫓기고 있는 창고업자 레이몽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도, 살라마노 영감이 개를 잃어버렸을 때도, 직장 사장이 파리로 전근을 제안했을 때도, 애인 마리가 자신을 사랑하냐고 물어 올 때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뫼르소의 신경은 그저 햇빛이 내리쬔다는 것, 날씨가 후덥지근하다는 것 따위에만 전적으로 열려 있다.

몇 편의 에피소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소설 내에서, 서사의 핵심은 단연 뫼르소의 살인이다. 뫼르소는 레이몽과 함께 친구 마송이 살고 있는 해변으로 놀러 간다. 이들은 산책을 하다 그들을 미행하던 아랍인들과 마주쳐 싸움을 벌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아랍인들 중 한 명이 칼을 휘둘러 레이몽이 다치고 만다. 이후 뫼르소는 우연히 레이몽을 찔렀던 아랍인과 다시 조우하게 되는데, 당황한 아랍인이 칼을 꺼내든 순간 칼날에 햇빛이 반사되어 뫼르소의 이마를 찌른다. 현기증을 느낀 뫼르소는 〈자신도 모르게〉 품에 있던 권총을 뽑아 그에게 다섯 발 쏜다. 뫼르소는 곧 살인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법정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흘러간다. 뫼르소의 살인 혐의에 대한 재판은 어느새 어머니의 죽음에 관해 그가 보인 행태에 대한 재판으로 바뀌어 있다. 치열한 법정 공방 끝에 판사는 뫼르소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그런데 이때 뫼르소의 죄는 살인이 아니었다. 그가 범한 죄는 〈친부 살인의 예비죄〉, 즉 사회적 관습과 도덕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뫼르소는 아래와 같이 항변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정의는 아무것도 아니고 하느님의 정의가 전부였다. 그러자 나는 나를 단죄한 건 인간의 정의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래도 그것이 내 원죄를 씻어 주지는 못했다고 답했다. 나는 원죄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내게 가르쳐 준 건 내가 범죄자라는 것뿐이었다. 나는 범죄자였고, 그 대가를 치르고 있었고, 그 이상은 아무것도 내게 요구할 수 없었다. _알베르 카뮈, 『이방인』 중에서

분명 뫼르소의 죄목은 살인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법정은 관습과 도덕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처벌하려 한다. 그는 계속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불가피한 것에 출구는 있는가?〉 뫼르소는 이내 사형을 받아들인다. 주어진 세계를 좇아 살지 않으려는 태도, 기존의 가치 대신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찾아 나서는 태도에 벌을 주려는 법정의 행태를 보며, 세상의 부조리함과 무정함을 깨닫고 스스로 사형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뫼르소가 발견한 것은 〈정당화될 이 새벽〉, 곧 자신의 삶과 운명에 다름 아니었다. 이 땅 위에서의 삶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하며 사는 것, 비록 이방인으로서 세계로부터 거부된다고 할지라도 세상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것, 그리고 끝내는 자기 자신의 운명을 긍정하는 것. 카뮈의 『이방인』은 〈너는 너의 삶을 사랑해야만 한다〉고, 우리에게 말을 건네 온다.

+ Film
「썬다운」, 미셸 프랑코, 2022
82분, 컬러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부고, 그러나 무심한 표정으로 슬퍼하지 않는 주인공. 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이방인』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뫼르소를 떠올릴 것이다. 『이방인』을 오마주한 미셸 프랑코 감독의 영화 「썬다운」은 대체로 원작의 서사 구조와 동일하게 흘러간다. 소설 속 뫼르소는 영화 속에서 닐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소설의 내용과 달리, 태양 빛은 닐로 하여금 살인하도록 만들지 않는다. 자신의 자유를 자각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아랍인을 죽이지 않는 선택을 한다. 즉, 미셸 프랑코에 의해 재탄생한 『이방인』은 타자를 도구화하지 않는 삶과 자유를 설파하며 현대의 부조리극 속 주인공의 삶을 보여 준다.

+ 『뫼르소, 살인사건』
카멜 다우드, 문예출판사, 2017
뫼르소가 살해한 아랍인의 삶은 어떠했을까?
 『이방인』의 반대편에 선 소설. 카멜 다우드는 『이방인』에서 뫼르소의 총에 맞아 죽은 이름 없는 아랍인의 존재에 주목한다. 『이방인』을 <살인자의 이야기>라 비판하는 그는 카뮈를 뫼르소로 대치한 뒤, <살해당한 자>의 관점에서 원작 소설을 다시 써내려 간다. 알제리 태생의 카멜 다우드가 이름조차 호명되지 못한 아랍인에게 이름을 찾아 주고, 그의 삶을 독자들이 볼 수 있도록 한 것은 프랑스의 식민지라는 배경 속에서 알제리의 아랍인과 프랑스인이 느낄 수 있는 서로 다른 부조리를 보여 준 것과 다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