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추천 고전
『롤리타』 & 『노인과 바다』
• 공통 키워드: 여정을 떠나는 자
• 비교 키워드: 욕망에 휩싸인 도피의 여정 vs 집념과 삶에 대한 여정
노인과 바다 속 산티아고는 오랜 시간 낚시에 실패하는 시간 속에서 자신의 집념을 지켜내기 위해 청새치 말린과의 사투, 거대한 바다와의 사투라는 여정을 벌인다. 롤리타의 험버트는 롤리타에 대한 자신의 비틀린 욕망을 지키기 위해 도피의 여정을 떠난다. 서로 다른 목표를 지닌 여정이기에, 거기서 얻는 결과도 다른다.
『롤리타 Lolita』, 195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Vladimir Nabokov 1899~1977
유려한 이 도입부를 읽는 순간, 독자는 자연스럽게 '롤.리.타.'를 발음해 보게 된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문장, 마지막 단어에서도 다시 발음하게 된다. 나의 롤리타. 본격적으로 소설이 시작되기 전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험버트 험버트로부터 편집과 출간을 부탁받았다는 존 레이 주니어 박사의 머리말에서 우리는 이 소설의 부제를 확인할 수 있다. 어느 늙은 백인 홀아비의 고백.
이 기나긴 고백의 화자인 험버트 험버트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유럽의 지식인이지만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어린 소녀에게만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는 것에 실패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조용하고 작은 마을 렘즈데일에 머물게 된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그려온 님펫Nymphet, 롤리타를 만난다. 12살의 소녀 돌로레스 헤이즈, 롤리타에게 강한 욕망과 집착을 느끼는 험버트는 소녀의 어머니와 결혼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그 곁을 지킨다. 매일 그가 롤리타를 향해 느끼는 감정은 고스란히 비밀 일기에 남는다. 이 비틀리고 내밀한 욕망의 비밀은 오래가지 못하고 부인이자 롤리타의 어머니인 샬롯에게 발각된다. 파국의 시작을 알리는 이 장면 이후로 험버트의 욕망은 더욱 본격적으로 롤리타를 향한다. 1부와 2부로 나뉘는 이 소설의 후반부는 험버트와 롤리타의 도피에 가까운 미국 여행기를 다룬다. 롤리타는 험버트의 욕망에 응하게 되었을까? 혹은 탈출할 수 있었을까?
직접 읽지는 않았더라도 많은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을 이 줄거리는 『롤리타』를 소개하기에 지나치게 단편적이다. 또한 소설 바깥에서 다뤄지는 윤리적 논란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1955년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영어판으로 출간된 『롤리타』는 출간 직후 금서로 지정되었다. 3년 후 금서 지정이 해제되고, 미국, 영국을 순서로 다시 출간되었으나 '소아 성애'라는 문제는 끊임없이 독자와 비평가들의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나보코프는 자신의 소설에 덧씌워지는 도덕적 비평들을 넘어, '한 권의 소설'이 지니는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롤리타』는 명백한 교훈을 지니고 있지 않다. 내게 있어서 한 권의 소설이란, 내가 미학적 축복이라고 단언하는 것, 즉 예술(호기심, 부드러움, 다정함, 황홀함)이 기준이 되는 곳에서 느끼는 존재의 감성을 제공하는 한에 의미가 있다. 그런 소설들은 흔치 않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롤리타』라는 제목의 책에 대해서」 중
나보코프가 결국 『롤리타』에서 '미학적 축복'을 만들어 냈을까? 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다만, 우리는 끊임없는 언어의 유희와 '메타픽션'의 형식으로 독자를 괴롭히고 즐겁게 하는 그의 문장을 계속해서 읽을 수밖에 없다. 어떤 소설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뒤, 책 바깥의 세계에서 다시 시작된다. 조금은 불쾌하고 기이하게 아름다운 고백 끝에서 우리도 각자가 지닌 내밀한 고백을 꺼내 보게 된다. 소설의 역할은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
+ Film
「롤리타」, 스탠리 큐브릭, 1962
152분, 흑백
환상적이고 독창적인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스탠리 큐브릭의 「롤리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직접 각본 각색에 참여하였다. 각색의 과정에서 원작의 큰 서사 구조는 살렸으나, 일부는 수정 및 삭제하여 원작과 다른 부분도 일부 있다. 스탠리 큐브릭 특유의 기이하고도 낯선 무드와 『롤리타 Lolita』의 만남은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책 너머로 상상하던 장면을 확인하는 경험을 준다.
「롤리타」, 에이드리언 라인, 1997
137분, 컬러
욕망에 대한 다양한 작품으로 필모그래피를 채워 온 에이드리언 라인 감독의 「롤리타」는 제레미 아이언스가 주인공인 험버트 역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험버트와 롤리타의 관계에 대해 아름다운 지점을 극대화하고 있어 다층적인 시각으로 험버트의 욕망에 대해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있다.
+ 움베르토 에코
과연 움베르토 에코는 『롤리타 Lolita』를 어떻게 읽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움베르토 에코는 단편소설을 쓴다. 「노니타 Nonita」는 『롤리타 Lolita』와 반대의 설정으로 일종의 패러디 형태를 보여 주고 있다. 노부인에게 사랑을 느끼는 16세의 소년 움베르토 움베르토(본인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성적인 관계를 묘사하는 내용은 없으나, 노부인이 성형외과에 가서 젊어진 외모로 나타나고 소년이 이에 격분하여 총기를 난사하는 등의 소동을 담고 있다.
+ Book Cover
나보코프는 『롤리타』의 책 표지에 대해 아래와 같이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그가 원했던 표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다수의 표지에 소녀의 이미지 또는 여성 신체 일부가 담긴 성적인 뉘앙스의 이미지들이 실렸다.
순색, 녹아드는 구름, 정확히 그린 디테일,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저 멀리 뻗은 도로, 비 내린 날 고랑과 바퀴 자국에서 반짝이는 빛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소녀는 피해 주세요. 제가 어떤 형태건 단호히 반대하는 소재가 하나 있는데, 바로 어린 소녀입니다. 그처럼 예술성 높고 힘 있는 그림을 구하기 어렵다면, 그냥 티 없이 하얀 표지(흔히 쓰이는 광택지 대신 거친 무광 용지면 좋겠습니다)에 굵은 검정 글자로 '롤리타'라고만 쓰는 편이 낫겠습니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1958년 3월 1일 롤리타 초판 미국 출판사에 보낸 편지 중
윤젼
내용이 자극적이라 쉽게 읽기를 마음먹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라디미르의 나보코프의 미학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작품의 가치는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미학적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충분히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
2024.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