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에 대해

마지막 계절을 마치며

박혜진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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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혜진 문학 평론가

소설 읽기는 작가가 만들어 놓은 질문에 독자가 해답을 찾아가는 ‘정답 풀이 과정’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작가의 대답을 통해 그를 사로잡은 최초의 질문이 무엇이었을지 발견해 나가는 흔적 화석 찾기에 더 가깝습니다. 소설의 형식이 다양해지는 만큼 해석의 방식도 다양해져야 한다는 필요성에 수차례 부딪쳤기 때문일까요. 소설 읽는 방법에 대해 유독 생각이 많았던 시즌이었습니다. 다양한 소설만큼 다양한 해석이 등장하고 있는가? 돌이켜보니 이 계절의 소설을 시작할 때의 목표도 이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함께 읽은 책은 아니었지만 샐리 루니 장편소설 『아름다운 세상이여, 그대는 어디에』를 둘러싼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러브 스토리에 마음을 주는 건 사랑의 역학에 관여하는 것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철학... 이른바 ‘모든 것’이기 때문일 겁니다. 두 커플의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본질은 이들 각자의 선택, 그리고 선택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현실입니다. 현실에 투사된 이들의 생각은 ‘MZ세대’라는 기호 이면에 어떤 본질이 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젊음’이라는 표상에 대한 한 편의 연극 같은 작품입니다. 전체적으로 '말'이 많습니다. 지나치게 해설적인 구성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나뉠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함께 읽은 두 작품은 김홍의 『프라이스 킹』과 찬쉐의 『격정세계』입니다. 2023년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이기도 『프라이스 킹』은 ‘스며드는’ 소설이었습니다. 이미 김홍의 독자였던 비평진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반신반의하며 시작하다 결말에 이른 다음 저마다 매력을 경험했다고 이야기하는 수순이었습니다. 유머와 풍자의 계보를 잇는 듯하면서도 사실상 독자 노선을 걷고 있는 이 소설은 ‘세상’과 ‘세상인’을 알레고리적으로 표현합니다. 장사의 신이 정치를 대체하고 무속의 신이 종교를 대체하는 ‘현실’에서 몸을 바꾸며 다른 존재가 되어 가는 주인공은 무엇일까요. 바뀌면서 생존하는 이 존재에게서 20세기적 부조리 너머 21세기적 분열을 목격합니다. 과감한 설정에 더해 어떤 예상도 불허하는 전개 방식이 독자를 끊임없이 사색하는 존재로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앞으로를 더 기대해도 좋을 작가입니다. 

『격정세계』는 기대가 컸던 것에 비해 가장 실망도 컸던 소설이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자라는 수식어가 우리를 얼마나 억압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독서이기도했던 것 같네요. 독자는 소설을 읽으며 작가를 관통하는데, 그럴 때 독자의 독서는 작품을 쓰는 행위에 준한다는 식으로 초월적 독서 행위를 이야기합니다. 전복적인 주장이 공감을 얻기도 했지만 판에 박힌 ‘격정’에서 자신만의 ‘격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모범적인 주제 의식을 필두로 비둘기 북클럽 회원들의 관계와 생각이 전반적으로 고루하게 전개된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통찰은 발견하기 힘들었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가였습니다. '자신만의 격정'을 추구할 수 없는 억압적 상황에 있는 중국 독자들을 향한 작가의 메시지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세계적 보편을 얻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새삼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 생각합니다. 17, 18세기 이래 짧지 않은 시간을 거쳐 2024년에 이른 지금, 누가 왜 소설을 쓰고 있을까요. 세 편의 소설에는 우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느라 먼지가 돼 버린 주인공들이 먼지로 사라지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표정이 보입니다. 다양한 소설을 읽어 내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다양한 해석이고, 다양한 해석을 위해 필요한 것은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일 것입니다. 소설 읽기 방법은 사람 읽기 방법과 다르지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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