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봄 장편소설 『프라이스 킹!!!』 김홍 소설가를 만나다.
소설을 읽는 것은 곧 외계를 탐험하는 일
세계 최고의 장사꾼 '배치 크라우더(박치국)'가 한 마을에 나타나 '마트'를 차린다. 심약하고 쓸모도 존재감도 없는 '구천구'라는 젊은 청년을 직원(또는 제자?)으로 채용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이야기들이 이 소설의 큰 줄기다.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엉뚱한 상상력과 놀라운 몰입력을 선물한다. 2시간여 만에 장편소설 한 편을 다 읽어 낼 수 있다는 만족감도 준다.
김홍 작가는 현재 이 세상에서 벌어질 법한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인 이야기나 면모들을 소설의 기술을 활용해 직관적이고 극단적으로 가공하고 배치하여 개성을 드러낸다. 실소를 터뜨리게 하는 엉뚱한 유머도 같이. 혹, 비논리적인 꿈 같은 설정이나 상황이 황당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작가의 능청스러운 화술에 우선 '속는 셈치고 한 번...'이라고 읽기 시작하면, 화자이자 주인공 '구천구'가 휘말리는 의문스러운 상황들을 호기심을 가지고 어느새 따라가게 된다.
무속인 엄마(종교)는 대통령(정치)가 되길 원하고, 장사의 신인 사장님(자본주의)이 자신의 만능 무기를 전수하고 사라지며 영원한 전설로 남고자 하는데(해결사), 이 심약하고 쓸모도 존재감도 없던 주인공은 그 거대한 욕망 사이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갈 길을 잃는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모든 욕망을 자신의 몸과 마음 안으로 흡수해 버린다. 그렇게 '구천구'는 이전과는 다른 인간으로 변화한다.
이 이야기를 장편소설로 풀어낸 김홍 작가에게, 장편소설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여 이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 물어봤다.
1. 소설이 시대와 공간을 넘어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어떤 소설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어떤 소설이 고전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시대와 공간을 넘어 영향을 끼치려면, 시대와 공간을 넘어 읽히는 일이 우선 필요하겠죠. 계속해서 읽히는 소설만이 매 시대에 새로운 평가를 획득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어떤 종류든 간에 '재미'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고전이라고 평가하며 끊임없이 다시 읽는 소설들 대부분이 시대를 가리지 않고 독자들에게 엄청난 흡인력을 행사하죠. 여러 다른 시대에 여전히 작용하는 고전이란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불온한 무언가가 아닐까요? 고대 빙하에 갇힌 바이러스가 흘러나와 지구적 단위의 감염을 일으키는 흔한 상상이, 고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전은 언제나 세상을 바꿔 낼 수 있는 힘을 숨기고 있죠. 알맞은 환경이 갖추어졌을 때 많은 사람을 오래되고 힘 있는 생각에 감염시킬 수 있는 그런 힘을요.
2. 우리에게 '소설'이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당신이 생각하는, 장편소설이 꼭 갖춰야 할 한 가지를 꼽는다면?
소설은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세계는 이미 존재하는데, 소설이란 세계가 다시 존재하니 소설을 읽는 것은 곧 외계를 탐험하는 일이겠죠. 눈과 팔의 개수가 인간과 다른 생명체가 존재하는 곳만이 외계는 아닐 겁니다. 이 세계를 정합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체계 그 자체가 세계이고, 외계란 그 세계의 규칙에서 몇 발자국이든 떨어져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고 작동하는 체계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엔, 특히 장편소설에는 그런 세계를 위한 세계관이 필요합니다. 동어 반복적으로 당신이 딛고 있는 세계를 설명하는 것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일 수는 있어도 소설이라고 불리기는 힘들겠죠. 자신만의 세계관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것은 그 세계를 외계로 만드는 일입니다. 제가 쓰는 소설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3. 캐릭터에 관하여
각 캐릭터가 재밌다. 무당이자 주인공의 엄마인 억조창생 여사, 장사의 신이자 프라이스킹 마트의 사장 박치국, 미륵 떡볶이 가게의 기우란 할머니, 쌍둥이 형 이구와 칠구, 코끼리 아저씨 등 흥미로운 배경과 성격을 가진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장편소설'이라는 형식 안이니만큼 이들의 인간으로서의 이야기나 배경을 더 알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일부러 그들의 이야기에 깊게 다가가지 않은 듯하다. 그 이유가 있나? 이 소설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역할을 무엇인가? 이들의 단편적인 등장이 의미하는 바가 있을 듯하다.
책에 다 담지 않은 캐릭터들의 디테일한 이야기들이 당연히 있습니다. 구천구의 눈 사이가 얼마나 가깝거나 먼지, 기우란 할머니의 머리 색깔이 햇빛을 받을 때마다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고 있는 건 저밖에 없을 겁니다. 작가들은 그렇게 자기 소설에 대해 자기만 알고 있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죠. 저는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일부러 비밀을 만들려고 하진 않아요. 하지만 저는 이 소설 속에 있는 특정한 사건들이 제가 연출한 방식으로 독자에게 전달되기를 바라거든요. 작가들은 당연히 연출자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다 보면 모든 이들의 모든 모습을 담는 것이 글을 쓰는 목표가 되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상상하기 좋아하는 독자라면 얼마든지 상상해도 좋습니다. 저를 만나서 상상한 것을 이야기해 주면 저는 소설 쓰는 사람으로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을 느끼겠죠. 그리고 저 역시 최선을 다해서 제가 상상한 것들을 당신에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4. 특별한 설정에 관하여
소설 속 세계는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 위에 서 있지만 그 작동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마트에서 사고파는 것은 복수, 행복, 슬픔, 망각이고, 장사의 신이 만든 '킹 프라이스 마트'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커다란 금고뿐이다. 그리고 금고는 검은 굴처럼 무한한 공간을 품고 있으며 그 안에서 낚시를 하는 성경 속 인물 베드로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 베드로의 그물은 현재에 누구든 대통령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도구이다. 또한 주인공은 다른 인물들을 자신의 몸을 흡수하여 구체가 되고, 구체가 된 주인공은 (손도 없는데) 할머니 집에 가서 떡볶이 장사를 돕는다. 이런 설정들은 이미지적이고 흥미를 유발하며 재미있지만, 소설 속의 설정인 만큼 독자는 작가가 이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은근히 보여 주고 독자로 하여금 그것을 눈치채길 원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그 의미들을 쉽게 알아채기 어렵거나 나름의 해석이 어려운 독자들은 이 소설이 난해하다고 말한다. 이런 설정들은 당신의 문학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가? 그리고 독자는 그것을 어떻게 읽어 나갔으면 하는가?
해석은 전부 환상이죠. 우리가 무언가를 이해한다고 믿는 것은 거의 다 오해에 가깝습니다. 일테면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기존 형태에서 구체라는 형태로 변해 버리잖아요. 독자는 구가 되어 버린 어떤 존재에 대해서 '해석할 수 없다!'라고 난처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독자는 자신의 기존 형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진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신체의 모든 말단을 인지하며 외부와의 정확한 경계를 감각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잖아요. 아주 예민한 고양이조차 수염이 없으면 벽에 몸을 부딪힐 겁니다. 그러니까 존재든 상태든 뭐든 간에 우리는 정확한 해석을 한다기보다 위태로운 자기 확신을 지속시키고 있다는 것에 불과해요. 물론 어떤 이야기는 꽤 정확한 설정과 메시지로 독자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죠. 뿌듯하고 고양되게 만들어요. 그때 충족되는 것은 일종의 자기 효용감일 텐데요. 저도 이 소설이 독자에게 효용감을 주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독자들이 그걸 그냥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믿는 세계는 믿을 만하지 않다는 것! 농담이 과하네 싶은 일들이 현실에서 심심찮게 발생하곤 한다는 것! 독서가 주는 혼란은 생각보다 안전한 데 반해 세계는 더 무시무시한 혼란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말이죠.
5. 작가가 생각하는 이 소설에 대하여
이 소설을 쓸 때, 어렵고 풀리지 않았던 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나?
이 세계에 완전히 진입하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여러 번 문 앞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는데, 다시 들어가려고 하면 그 문마저 사라진 기분이었습니다. 해결한 방법은 자꾸 찾아가는 거였어요. 수첩에 계속해서 이 세계가 어떤 풍경으로 구성돼 있는지 적고 또 적었습니다. 같은 풍경을 여러 번 적고서야 분명해지는 것들이 있었어요. 지금은 또 남의 나라처럼 느껴지기만 해요.
6. 앞으로의 계획에 대하여
작가로서 이 소설에서 이룬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리고 다음에 쓸 소설에서는 어떤 것을 이루고 싶은가?
이룬 것은 이 이야기를 써냈다는 것이고, 다음에는 다음 이야기를 써내는 걸 이루고 싶어요. 다음 소설에 진입하려고 계속 시도하고 있는데 전보다 더 어렵게 느껴져서 고역입니다. 이게 작가인 저의 문제인지, 제가 들어가려는 그 세계의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어느 쪽이든 제 스스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굉장히 답답하고 여러 방안을 고민 중입니다. 그렇게 여차저차해서 다음 소설의 세계에 진입을 해내고, 그곳에 대해 또 한바탕 써내고, 한 권의 책으로 묶을 수 있게 된다면 이뤄야 할 것을 다 이룬 것이겠죠. 그 이상의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다음에는 또 다음 이야기를 써내고, 그렇게 계속해서 쓰고 싶은 것들을 써내는 게 제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