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이달의 고전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마리즈 콩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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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자』 &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공통 키워드: 낙인 찍힌 여자들
•비교 키워드: 죄인이라는 낙인 vs 마녀라는 낙인 

사람들이 나를 두려워하는 듯했다. 대체, 왜? 

마리즈 콩데의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는 역사의 뒤편에서 지워진 한 여자의 삶을 복원하고, 그의 목소리를 통해 억압받은 자들의 이야기를 다시 쓰는 여정을 그린다. 콩데는 17세기 말, 미국 세일럼 마녀 재판의 광기 속에서 자신이 마녀임을 자백했지만 처형되지 않고 살아남은 유일한 실존 인물 ‘티투바’의 삶을 재구성한다. 카리브해 노예 농장에서부터 뉴잉글랜드의 차가운 땅까지, 노예제와 식민주의, 그리고 뿌리 깊은 차별이 지배하던 시대로 들어선다.

"넌 살면서 고통을 많이 받을 거다. 많이, 많이."
"하지만 넌 살아남을 거다!"

티투바는 어린 시절부터 아프리카와 카리브해의 전통적인 주술과 치유법을 접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그의 삶은 노예로서 겪는 육체적 고통과 사랑하는 이들을 잃는 비극으로 점철되지만, 그러한 폭력과 억압 속에서도 내면의 강인함과 정신적인 자유를 잃지 않는다. 세일럼의 마녀 재판은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음에도 티투바는 '마녀'라는 낙인을 오히려 자신의 독특한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며 불의에 맞서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간다. 독자들은 티투바의 강렬한 생애를 통해 역사가 외면했던 소외된 이들의 삶이 얼마나 치열하고 존엄했는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죽은 자는 우리 마음에서 죽어야만 죽은 거다. 우리가 망자를 소중히 여기면, 우리가 망자에 대한 기억을 존중하면, 우리가 망자가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을 무덤에 갖다 놓으면, 우리가 규칙적으로 망자를 추모하고 망자와 교감하기 위해 묵상을 한다면, 망자는 산다.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에서 콩데는 지배적인 역사 서술에 대한 도전과 소외된 목소리에 대한 복원을 시도한다. 티투바는 단순히 재판의 희생자가 아니라, 노예제와 여성 혐오, 인종차별이 뒤섞인 폭력 속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려 분투한 생존자이자 저항자이다. 그는 영혼들과 소통하고, 죽은 자들을 위로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파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간다. 콩데는 역사적 기록의 빈틈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채워 넣으며, 티투바의 개인적인 고난을 통해 노예 여성들의 보편적인 경험과 정신적인 강인함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의 이야기는 수 세기에 걸쳐 억압받아온 이들의 슬픔과 분노, 그리고 희망을 응축하고 있다.

얼마나 많이 돌로 쳐 죽여야 하나? 얼마나 불을 더 질러야 하나? 얼마나 피가 들끓어야 하나?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무릎을 꿇어야 하나? 

콩데는 이 소설을 통해 강제로 침묵당했던 이들의 삶에 목소리를 부여하고, 역사의 주류에서 배제된 정체성들을 복원한다. 티투바의 삶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극한의 억압 속에서도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존엄을 유지하고 저항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소설은 우리에게 묻는다.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수많은 '티투바'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얼마나 귀 기울여 왔을까? 쉽게 단언하거나 되물을 수 없는 촘촘한 이야기의 그물 사이로 우리가 놓친 것들이 흘러나가는 듯하다. 그리고 그 그물을 쥔 티투바, 그는 다시 모든 것을 그러 모은다. 새어나가는, 희석되는 목소리 하나 없도록. 

내 이야기를 끝맺는 게 필요할까? 지금까지 이야기를 따라왔던 사람들이라면 그 끝을 짐작하지 않았을까?
예측할 수 있는, 너무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결말이 아닐까?
게다가 이야기를 해나가자면 그 고통을 하나하나 되살아야 하지 않는가? 한 번 더 고통을 받아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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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자』 &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공통 키워드: 낙인 찍힌 여자들
•비교 키워드: 죄인이라는 낙인 vs 마녀라는 낙인 

사람들이 나를 두려워하는 듯했다. 대체, 왜? 

마리즈 콩데의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는 역사의 뒤편에서 지워진 한 여자의 삶을 복원하고, 그의 목소리를 통해 억압받은 자들의 이야기를 다시 쓰는 여정을 그린다. 콩데는 17세기 말, 미국 세일럼 마녀 재판의 광기 속에서 자신이 마녀임을 자백했지만 처형되지 않고 살아남은 유일한 실존 인물 ‘티투바’의 삶을 재구성한다. 카리브해 노예 농장에서부터 뉴잉글랜드의 차가운 땅까지, 노예제와 식민주의, 그리고 뿌리 깊은 차별이 지배하던 시대로 들어선다.

"넌 살면서 고통을 많이 받을 거다. 많이, 많이."
"하지만 넌 살아남을 거다!"

티투바는 어린 시절부터 아프리카와 카리브해의 전통적인 주술과 치유법을 접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그의 삶은 노예로서 겪는 육체적 고통과 사랑하는 이들을 잃는 비극으로 점철되지만, 그러한 폭력과 억압 속에서도 내면의 강인함과 정신적인 자유를 잃지 않는다. 세일럼의 마녀 재판은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음에도 티투바는 '마녀'라는 낙인을 오히려 자신의 독특한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며 불의에 맞서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간다. 독자들은 티투바의 강렬한 생애를 통해 역사가 외면했던 소외된 이들의 삶이 얼마나 치열하고 존엄했는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죽은 자는 우리 마음에서 죽어야만 죽은 거다. 우리가 망자를 소중히 여기면, 우리가 망자에 대한 기억을 존중하면, 우리가 망자가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을 무덤에 갖다 놓으면, 우리가 규칙적으로 망자를 추모하고 망자와 교감하기 위해 묵상을 한다면, 망자는 산다.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에서 콩데는 지배적인 역사 서술에 대한 도전과 소외된 목소리에 대한 복원을 시도한다. 티투바는 단순히 재판의 희생자가 아니라, 노예제와 여성 혐오, 인종차별이 뒤섞인 폭력 속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려 분투한 생존자이자 저항자이다. 그는 영혼들과 소통하고, 죽은 자들을 위로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파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간다. 콩데는 역사적 기록의 빈틈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채워 넣으며, 티투바의 개인적인 고난을 통해 노예 여성들의 보편적인 경험과 정신적인 강인함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의 이야기는 수 세기에 걸쳐 억압받아온 이들의 슬픔과 분노, 그리고 희망을 응축하고 있다.

얼마나 많이 돌로 쳐 죽여야 하나? 얼마나 불을 더 질러야 하나? 얼마나 피가 들끓어야 하나?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무릎을 꿇어야 하나? 

콩데는 이 소설을 통해 강제로 침묵당했던 이들의 삶에 목소리를 부여하고, 역사의 주류에서 배제된 정체성들을 복원한다. 티투바의 삶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극한의 억압 속에서도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존엄을 유지하고 저항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소설은 우리에게 묻는다.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수많은 '티투바'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얼마나 귀 기울여 왔을까? 쉽게 단언하거나 되물을 수 없는 촘촘한 이야기의 그물 사이로 우리가 놓친 것들이 흘러나가는 듯하다. 그리고 그 그물을 쥔 티투바, 그는 다시 모든 것을 그러 모은다. 새어나가는, 희석되는 목소리 하나 없도록. 

내 이야기를 끝맺는 게 필요할까? 지금까지 이야기를 따라왔던 사람들이라면 그 끝을 짐작하지 않았을까?
예측할 수 있는, 너무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결말이 아닐까?
게다가 이야기를 해나가자면 그 고통을 하나하나 되살아야 하지 않는가? 한 번 더 고통을 받아야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