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이달의 고전

주홍 글자

 너새니얼 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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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자』 &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공통 키워드: 낙인 찍힌 여자들
•비교 키워드: 죄인이라는 낙인 vs 마녀라는 낙인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로맨스라고 부를 때는, 그 양식이나 소재에 있어서 소설을 쓴다고 인정할 경우에 누릴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어떤 자유를 주장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850년, 갈색 무광천으로 양장된  『주홍글자』의 초판본 표지를 넘기면 다음의 순서로 제목이 등장한다 :   
‘The Scarlet Letter’, 쉼표, 그리고 ‘A Romance’

호손은 이 작품의 부제인 ‘로맨스’를 단순히 장르 구분을 위한 분류어가 아닌, 일종의 문학적 선언으로 남겼다. 그가 말하는 ‘로맨스’는 현실 너머를 탐색하는 상상의 자유, 인간의 영혼이 지닌 빛과 어둠이, 상상과 현실이 ‘서로 물드는’ 지대,  ‘인간의 마음의 진실을 제시할 권리’를 지니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홍글자』는 간통이라는 자극적인 사건을 중심에 놓고도, 그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가 아닌, 그 사건 이후를 ‘어떻게’ 겪어내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간다. ‘로맨스’는 죄를 지은 이후의 삶에서 탄생한다.

“그리하여 친숙한 방바닥은 현실의 세상과 상상의 세계 사이, 현실의 존재와 상상의 존재가 만나 서로의 특징에 물드는 중간 지대가 되는 것이다. 이곳에 유령이 들어온다 해도 우리는 기겁하지 않을 것이다.”

『주홍글자』의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세관(Custom-House)」이라는 비정상적으로 긴 서문을 통과해야 한다. 여기에서 호손은 자신을 조용히 현실에 얽매인 관료로 등장시킨다. 그는 문서 더미와 잡동사니 속 기이한 꾸러미 안에서 낡은 A자 천 조각과 고(故) 검사관의 문서를 발견한다. 이것이 바로 호손이 로맨스를 시작하는 방식이다. '진실을 증명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마치 역사적 사실처럼 서술함으로써, 그는 소설과 역사,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흐린다. 「세관」은 현실의 논리로는 들어갈 수 없는 ‘로맨스의 세계’로 향하는 통과의례적 문턱이다. 이 문턱을 넘어야 비로소 우리는 죄와 낙인, 침묵과 고백, 살아 있는 상징으로서의 인물들과 마주하게 된다.

“엄마, 햇빛이 엄마를 싫어해. 자꾸 도망가서 숨잖아. 엄마의 가슴에 달린 게 무서워서 그러는 거야.”

호손은 『주홍글자』 속에서 반복적으로 숲을 문명과 도덕의 경계 바깥에 위치한 공간으로 묘사한다. 주홍글자를 낙인처럼 가슴에 달고 살아가야 하는 헤스터와 그 죄의 산물인 펄은 사회로부터 추방된 삶을 살아간다. 그런 두 사람에게 숲은 ‘도덕의 이름으로 진실을 감추는’ 마을 바깥에 위치한 장소이며, 펄은 그 경계 위에서 자란 존재다. 문학 비평가 해럴드 블룸의 표현처럼 ‘미국적인 이브’인 헤스터는 어둠과 햇살이 교차되는 이 숲에서만 낙인을 떼어내고, 자신의 욕망과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옆에서 숲을 누비는 펄은  A자의 ‘수수께끼’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어머니의 마음속 깊은 고통과 죄를 상징적으로 해체하고 치유하는 촉매의 역할을 한다.

“이리 올라와요, 헤스터, 펄도 함께. 두 사람은 여기 선 적이 있지만 나는 함께하지 않았소. 다시 올라와서 우리 셋이 함께 서봅시다!”

 『주홍글자』의 가장 강렬한 장면들은 모두 처형대 위에서 벌어진다. 이곳은 단지 형벌이 집행되는 공간이 아니라, 청교도 사회의 위선적인 연극이 진행되는 장이자, 누군가에게는 고백의 무대이기도 하다. 딤즈데일은 밤에 혼자 이 무대 위에 올라 고백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밝히며 헤스터와 펄의 곁에 선다. 딤즈데일이 진실을 말하는 순간, 그는 구원받고, A는 더 이상 간통을 의미하는 ‘Adultery’가 아니라 ‘Atonement(속죄)’ 혹은 ‘Authenticity(진정성)’을 상징하게 된다. 이 지극한 ‘도덕적 우주’ 속에서 진실을 향한 상상력으로 완성되는 서사, 이 순간이야말로 호손이 말한 ‘로맨스’가 성립되는 지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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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자』 &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공통 키워드: 낙인 찍힌 여자들
•비교 키워드: 죄인이라는 낙인 vs 마녀라는 낙인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로맨스라고 부를 때는, 그 양식이나 소재에 있어서 소설을 쓴다고 인정할 경우에 누릴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어떤 자유를 주장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850년, 갈색 무광천으로 양장된  『주홍글자』의 초판본 표지를 넘기면 다음의 순서로 제목이 등장한다 :   
‘The Scarlet Letter’, 쉼표, 그리고 ‘A Romance’

호손은 이 작품의 부제인 ‘로맨스’를 단순히 장르 구분을 위한 분류어가 아닌, 일종의 문학적 선언으로 남겼다. 그가 말하는 ‘로맨스’는 현실 너머를 탐색하는 상상의 자유, 인간의 영혼이 지닌 빛과 어둠이, 상상과 현실이 ‘서로 물드는’ 지대,  ‘인간의 마음의 진실을 제시할 권리’를 지니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홍글자』는 간통이라는 자극적인 사건을 중심에 놓고도, 그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가 아닌, 그 사건 이후를 ‘어떻게’ 겪어내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간다. ‘로맨스’는 죄를 지은 이후의 삶에서 탄생한다.

“그리하여 친숙한 방바닥은 현실의 세상과 상상의 세계 사이, 현실의 존재와 상상의 존재가 만나 서로의 특징에 물드는 중간 지대가 되는 것이다. 이곳에 유령이 들어온다 해도 우리는 기겁하지 않을 것이다.”

『주홍글자』의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세관(Custom-House)」이라는 비정상적으로 긴 서문을 통과해야 한다. 여기에서 호손은 자신을 조용히 현실에 얽매인 관료로 등장시킨다. 그는 문서 더미와 잡동사니 속 기이한 꾸러미 안에서 낡은 A자 천 조각과 고(故) 검사관의 문서를 발견한다. 이것이 바로 호손이 로맨스를 시작하는 방식이다. '진실을 증명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마치 역사적 사실처럼 서술함으로써, 그는 소설과 역사,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흐린다. 「세관」은 현실의 논리로는 들어갈 수 없는 ‘로맨스의 세계’로 향하는 통과의례적 문턱이다. 이 문턱을 넘어야 비로소 우리는 죄와 낙인, 침묵과 고백, 살아 있는 상징으로서의 인물들과 마주하게 된다.

“엄마, 햇빛이 엄마를 싫어해. 자꾸 도망가서 숨잖아. 엄마의 가슴에 달린 게 무서워서 그러는 거야.”

호손은 『주홍글자』 속에서 반복적으로 숲을 문명과 도덕의 경계 바깥에 위치한 공간으로 묘사한다. 주홍글자를 낙인처럼 가슴에 달고 살아가야 하는 헤스터와 그 죄의 산물인 펄은 사회로부터 추방된 삶을 살아간다. 그런 두 사람에게 숲은 ‘도덕의 이름으로 진실을 감추는’ 마을 바깥에 위치한 장소이며, 펄은 그 경계 위에서 자란 존재다. 문학 비평가 해럴드 블룸의 표현처럼 ‘미국적인 이브’인 헤스터는 어둠과 햇살이 교차되는 이 숲에서만 낙인을 떼어내고, 자신의 욕망과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옆에서 숲을 누비는 펄은  A자의 ‘수수께끼’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어머니의 마음속 깊은 고통과 죄를 상징적으로 해체하고 치유하는 촉매의 역할을 한다.

“이리 올라와요, 헤스터, 펄도 함께. 두 사람은 여기 선 적이 있지만 나는 함께하지 않았소. 다시 올라와서 우리 셋이 함께 서봅시다!”

 『주홍글자』의 가장 강렬한 장면들은 모두 처형대 위에서 벌어진다. 이곳은 단지 형벌이 집행되는 공간이 아니라, 청교도 사회의 위선적인 연극이 진행되는 장이자, 누군가에게는 고백의 무대이기도 하다. 딤즈데일은 밤에 혼자 이 무대 위에 올라 고백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밝히며 헤스터와 펄의 곁에 선다. 딤즈데일이 진실을 말하는 순간, 그는 구원받고, A는 더 이상 간통을 의미하는 ‘Adultery’가 아니라 ‘Atonement(속죄)’ 혹은 ‘Authenticity(진정성)’을 상징하게 된다. 이 지극한 ‘도덕적 우주’ 속에서 진실을 향한 상상력으로 완성되는 서사, 이 순간이야말로 호손이 말한 ‘로맨스’가 성립되는 지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