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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20년쯤 전에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가졌다. 당시에 이 책은 읽기 어려운 책이었다. 많은 기억들이 희미해졌고 20년이 지난 지금은 나에게 다시 어떻게 읽힐지 궁금했다. 이전의 기억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과거보다 잘 읽혔다. 1부에서는 작가의 종교와 동물원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의 동물권에 대해 나는 무관심한 사람이다. 한 번도 강아지나 고양이를 가깝게 곁에 둔 적이 없기에 그들에 대한 정보가 없을 뿐 아니라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던 기억은 없다. 하지만 동물원의 동물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그들의 동물권을 박탈하고 있다던가, 사자나 호랑이를 아프리카 초원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게 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는 뭐랄까 꿈같은 소리 하고 있네. 라든가 그래서 어쩌라고 같은 느낌을 주는 이야기들 뿐이다. 물론 좁고 쾌적하지 않은 환경의 동물원에 갔을 때 움직임이 적은 늘어진 동물을 만날 때면 이게 최선인가 하는 생각은 했지만,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동물을 그들의 원래 환경으로 보내주는 게 과연 최선일까라는 의문도 품었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동물의 생태를 생각하면 동물원도 그럴듯한 그들의 삶을 보장할 것 같지만 다시 읽어보니, ‘원래’ 라는 것, 서열이 존재하고 먹이가 부족한 환경이 그들에게 맞는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결국 동물이 스스로 선택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들에게 선택하게 한다는 것도 인간적인 사고이다. 서열문제나 먹이부족처럼 인간의 사고에서 불쾌한 것들이 어쩌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종교에 대해서는 애초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비관적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를 어리석은 자들이 도망가는 쉘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파이는 모든 종교의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고 각각의 종교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인다. 맞는 말이다. 모든 종교에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내가 종교를 비난했던 점은 그들이 뭉쳐서 그룹을 만들고 배타적인 성향을 가졌을 때 나타나는 폐해였다. 그런데 집단이 된 인간들은 모두 비슷한 폐해를 가지고 있다. 그 나쁜 점들의 원인이 종교가 아니라 집단성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를 가진 개인들은 어쩌면 오히려 홀리하다. 그들이 뭉쳐 집단으로 활동할 때 그들은 나와 너를 구별하고 배타성이 확대된다. 결국 파이는 신 자체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신을 믿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2부에서는 같이 표류하는 느낌이었다. 대체로 힘들었다 하지만 문득 고독하고 고요한 밤하늘을 바라보던 파이의 감정에 공감되기도 했다. 내가 쉬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프랑스인을 파커가 발로 쳤을 때 그 숨이 끊어지는 느낌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스스로가 무척 나약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에베레스트든 망망대해든 고립된다면 나는 인간성을 아주 쉽게 버릴 거라고 예전부터 생각해 왔다. 목숨이 걸린 상황이기에라기보다는 우선 두려움과 공포에 잠식당해 버렸을 때 나는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 망설임을 가질까. 아니, 나는 아마 하이에나처럼 아주 쉽게 인간성을 버릴 거다. 그건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두려움과 공포에 잠식된 동물의 행동일 것이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인간성을 회복했을 때 바로 하이에나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아마 나는 소설 속 프랑스인 요리사에 가장 가까운 멘털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 살아남는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파이는 계속해서 죽음을 두려워한다. 아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극한의 공포를 계속 느끼는 상황에서는 차라리 빨리 죽어버리겠다고 이야기해 온 사람이다. 좀비 영화를 보며, 어떻게든 살려고 가 아니라 빨리 물려서 좀비가 되어버리는 걸 선택하는 부류인 거다. 물론 정신없이 도망칠 때는 우선 도망이 목적이겠지만 정신 차리고 인간으로 돌아왔을 때 선택을 해야 한다면 무조건 이런 좀비행이다. 파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계속해서 삶을 선택한다. 아니 삶을 선택한 것일까 그저 살 수밖에 없었던 것 일까는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파이는 살아남는다. 삶은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2부에서의 많은 이야기들은 환상 같았다. 아름답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고 두렵고 더럽기도 했다. 3부에서 그 이야기는 결국 파이가 만들어낸 동화라는 걸 알게 된다. 결국 살아남은 인간들의 선택이다. 곧 죽을 부상을 당한 인간, 그 인간을 이용한 겁 많은 인간 그리고 비인간성에 분노하고 용서하지 못한 인간, 마지막으로 그 모든 상황에서도 결국 삶을 이어가는 선택을 한 인간. 어떤 인간도 나쁘지 않다. 그저 각자의 삶을 대하는 태도이거나 선택이다. 나는 왜 쉽게 삶을 버리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판단하고 있을까. 삶의 의지가 부족한가. 왜 이렇게 자랐을까.
나는야 하이에나